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3장 발제 중..

함께 읽기/생태론/페미니즘 2015. 6. 28. 18:4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3. 자급과 농업

 

아그네스와 리즈베스 : 여성의 손에 달린 토지 1989년 독일 쉔펠트에서의 대화

시몬농장

아그네스가 농장을 물려받은 이유

-여 문제

여성 농민에서 가정주부로

농부의 촌 냄새

관계들: 세대, 이웃, 마을

-문화-삶의 기쁨-페미니즘

근대적 농업정책

미래에 대한 관점

돈 벌이가 되는 일자리는 무슨 의미인가?

자급 지식과 감정들 : 염장, 발효 등 삶의 지식들, 돌봄, 농사 등 자연과의 관계의 지식들. 땅과 인간과의 상호 연결성.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에게 전수되어야 한다.

자급 소농 경제 : 자연과 연결, 생명에 밀착된 삶. 고난도 고생도 행복도 치유도 자연에 의해서 비롯됨.

도시 소비자 생활 : 인간과 연결, 관계, 서열, 비교, 권력관계에 밀착. 성공, 실패, 고통, 극복, 모두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평가에 의해서 규정.

 

여성과 생태학

도살, 가축의 삶 : 눈을 보기 어렵다는 것. 태어날 때부터 알아온 소. 정말 아름다운 동물. 하지만 죽기 위해서 길러졌다. 이것은 인간의 의도일 뿐.

생명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명은 언젠가 죽는다. 늙어죽든, 잡아먹히든 마찬가지. 본질은 계속 이어가는 것 아닐까. 가축으로 태어나 결과적으로 잡아먹히더라도 과정으로서의 의미는 충분할 듯.

내 현생을 영위하기 위해 너의 생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채식을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채식의 선택은 일종의 영적인 차원의 일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중요한 까닭 : 나 자신을 속속들이 존중하기 위해서. 나도 생명. 영혼은 이 세상에 생명의 형태로 나온다. 영혼으로서의 자아, 생명으로서의 자아. 생명을 받아 나온 까닭, 찰나적 생명의 무한한 네트워크, 모래 한 알의 장엄함. 이 앞에 겸손해지지 않고서 어떻게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을까.

 

, 자급의 기초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의도 : , 자본, 기계, 투자를 진정한 근원으로.

자본주의. 가부장제. 모두 시스템. 시스템은 뭐지? 왜 생기지? 개인들의 욕망의 공감대인가? 불안, 권력욕, 우월욕을 보장하기 위한? ‘암컷에게 선택받고 싶은 수컷의 본능의 사회적 형태?

생명은 여성으로부터, 음식은 땅으로부터.

농경문화와 소농 경제는 자급관점의 결정적 구성요소.

도시환경에서의 임금노동, 도시의 노동과 실험에 초점을 두면, 자급 능력이라는 아이디어를 회복하기가 힘들어진다.

좌파들조차 농업·소농 경제를 대안으로 택하지 못한다 : 소농 경제로 돌아가는 것은 그 지루한 필요의 세계로 퇴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땅·지구는 매우 특별한 질료이다. 산업자원이 아니라 매우 다른 방식으로 취급되어야. 근거는? 우리 하나하나가 소속되어 있다, 어머니 지구, 생명체 네트워크, 신성. 모두 영적, 개인적 차원에서 확인되는 것. 가치·세계관 차원의 공감이 필요.

경작이 토양에 적응해야 하는가, 토양이 경작에 적응해야 하는가.

 

생산력의 발전 대 농경

기아는 기술화의 한 결과이다. 식량농업기구가 수차례 기술을 통한 녹색혁명은 토지의 자본가 집중을 낳는다.

기술과 부정의한 분배는 동전의 양면이다.

기술, 즉 생산력의 수준은 그 자체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상이다.

좌파의 논리, 자급 경제는 산업 사회 이전 단계 즉 필요에 의한 생산으로 회귀하는 것. 자기 자신의 필요를 위한 수공업적 생산에 불과한 것.

사회적 필요노동. 하향식 권력의 작동에 의해 조직되어서는 안 됨. 땅에 대한 접근을 기초로 하는 상향식 상호관계를 통해 조직되어야

소규모의 혼합경작이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은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우리는 땅에 의지해 먹고 살아야만 하는가

감자를 캐는 공포스러운 그림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20세기 말, 현재의 자급을 그려야 한다.

도시는 우리의 조건이자 현실이다. 도시에서의 자급을 구상해야 한다.

자급시장 철폐

 

독일에서의 소농 경제 파괴

농장 몰락 메카니즘. 자급지향에서 이윤지향으로의 전환에서 가장 사라지기 쉬운 것은 소농이 아니라 중간 규모의 농장 즉 빚을 내어 투자에 나섰던 이들이다.

 

소농 경제

모든 경작자를 농부로 취급하면 대토지소유주와 소농 사이의 구분이 은폐된다. 진짜 농부(소농)를 이윤창출을 위한 사업가의 무리에 끼우게 된다.

진정한 소농 경제의 특징 : 축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농장과 여러 세대에 걸친 생계 해결과 사람들의 재생산을 위해 운영된다는 것.

소농 경제는 땅, , , 식물, 동물들 안에서의 경제적 활동이 유한한 기반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자체로 특수한 삶의 방식, 간소한 생활문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 모든 사람들은 나처럼 자신의 땅을 가질 권리가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하나를 희생하여 다른 하나를 얻는 것을 금지하는 사회적 통제가 갖는 긍정적 기능을 깨닫지 못하여 마을에서의 삶이 갖는 편협성(함께 살기 live and let live)에 대항해 반항을 하기도 했다.

함께 살기. 도덕적 경제. 경쟁이 아닌 상호성. 모든 인간이 그들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생산의 필요조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농부, 농장주, 농경기업가. ‘농부라는 말에 들러붙은 경멸의 뉘앙스 : 아기의 똥을 치우는 어머니에 대한 경멸, 토양을 다루는 농부에 대한 경멸, 생명의 기본적 필요를 보살피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

 

[베스트팔리아 보르겐트라이히의 소농경제] : 1960~70년대 도덕 경제에서 최대화 경제로 이동한 마을의 사례. 소농 전통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오래전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개발에 대한 저항: 치아파스 농부들의 경우

[치아파스 소농들과 개발의 실패]

플랜테이션 개발이 실패한 사례.

77년 사파티스타 봉기, 82년 맥시코 부채 위기, 프로젝트 자금 철수, 개발의 길 위에 있는 실패를 감지한 첫번째 사람들. 자급용 옥수수, 호박, 콩 대신 수출용 화훼와 고급 채소를 공급하기 위해 빚을 내도록 유도됨.

그들은 자급 지향성 때문에 자신들에게 쏟아지던 퇴보적이다, 바보 같다, 이성에 둔감하다 등의 경멸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오랜 농경문화가 그들을 진보라는 종교에 의해 세뇌당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농 연구의 기여

자급 지향성 등 소농 경제의 잔존요소들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1920년대 러시아의 차야노프. 독립 소농 경제 이론 발전시킴. 생태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적응력을 지닌 소농 경제를 지지함. 농부를 임노동자화시키는 집단농장 콜호즈에 반대함.

소농 경제는 이윤극대화가 아니라 필요에 맞게 조정되었다. 그것은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위험은 피하며 운영되었다. 목표 이윤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여 농장이 문을 닫지도 않았고, 더 높은 기대 때문에 자본이 다른 영역으로 이전되지도 않았다. 어려운 시기에는 사람들이 허리끈을 졸라매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적게 소비했다. 시절이 좋아지면 더 많은 여가를 즐겼고, 잉여 수입은 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축제를 벌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것을 유지시키는 일이 우선순위였다.

근대 초기 이후로 농부에게 부여되던 사회적 지위가 주부로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유사하다.

농부와 여성은 인간 존재의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필요에 종사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필요의 영역을 극복해야만 자유의 문이 열린다고 믿는 세계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 간주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우파나 좌파 모두에서 발견되며, 페미니스트나 여성 혐오주의자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우리가 현 세계를 위해 소농 경제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외극 경제 : 소농 경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양 극단의 경제 시스템 바깥에 존재

소농 친화는 낭만적이다? “최대화 경제로 다 해결이게 더 낭만적이다.

어쨌든 실업은 증가하고 사회복지의 축소는 계속될 것이고 따라서 비공식 영역이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문화 사회적 모델에 의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룸펜프롤레타리아트 모델인가? 아니면 사회적 경제 모델인가?

 

여성농부와 자급 관점

미래에 대한 공주병적인 전망 : 가능한 한 적게 일하고 투쟁 없는 평등을 즐기며 일상적인 필요에 의한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일종의 파라다이스.

농부의 삶은 여성에게 어떤 권리도 부여하지 않는 길고 긴 고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자급생활에서 즐거움과 고생은 동전의 양면이다. 만족과 자기 실현의 원천, 삶을 자신을 손아귀에.

유기농업 : 낭비된 기회?

소농 경제, 지역화 그리고 자급 관점

[농업의 산업화에 찬성하지 않는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