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나눔

카테고리 없음 2015. 11. 30. 02:4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서형원, 박정원, 장예정, 홍지숙, 박병선, 이한진, 신은희-

11268시 삼오사 공사

 

발제문 발표

· 박정원 발제문 발표

 

형원: 그냥 이 사회의 현상이 이렇다 하는거지 어떠한 해결방법이나 그런 것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정원: 우리집 오타쿠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시밀러크루를 수도 없이 수집.

 

한진: 일종의 포켓몬 스티커 같은거.

 

지숙: 그런 것도 오타쿠인가? 그런건 엄청 재미있는데!

 

정원: 물건뿐 아니라 그들의 사람 관계에 대한 것도 조금 이해가 되었다.

 

지숙: 그런건 일종의 맹세 때문 일수도 있음.

 

병선: 예를 들어 십자가 이런거 모으는 그런 것인 듯. 본질이 아닌 것들

 

병선: 옛날에는 큰 이야기를 진짜라고 여겼는데,

 

형원: 지금은 건담이나 판타지 소설등 일종의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그 데이터베이스가 모두 분해되서 그것에 집착하는 것

 

정원: 그게 분해되서 하나의 큰 비야기를 만든 것

 

형원: 아예 이야기가 안되는, 어떠한 데이터 조각을 소비하는 것

 

지숙: 왜 그런거래요?

 

형원: 그건 책에서 깊게 설명하지 않아요. 예전엔 어떠한 작가가 있었는데 이제는 마법천자문처럼 어느 팀이 만드는거지 작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원: 23(p.80) 커다란 비이야기. 커다란 이야기는 진리나 절대적 어떠한 것을 믿었을 때이고, 커다란 비이야기는 그것을 대신하는 것. 톨킨이나 그런 것도

 

병선: 톨킨이나 그런 이의 작품은 그 세계를 구성하는 세계관이 있는데 건담이나 이런 것은 그 이야기의 구성이나 역사와 무관하게 캐릭터에 집중

 

형원: 톨킨은 수만년, 수천년의 이야기를 새로 쓴 것인데 그건 하나의 큰 이야기인 것, 그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 이야기만 담아낸 것이 호비트, 반지의 제왕이 된 것. 건담이나 에반게리온은 엄청나게 탄탄한 세계관을 깔아두고 그것에 대한 설명 없이 이야기만 몇 개 던져주고 사람들이 그 밑에 깔린 세계관을 찾아가게 하는 것. 그 밑에 깔린 데이터는 데이터일뿐 이야기가 아니다.

 

· 서형원 발제문 발표

형원: 미국의 소비자 대중, 일본의 오타쿠. 동물화 된 인간. 이라는 말에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함. 그러나 이 중심에는 타자가 없다. 욕망은 간주체적이기 때문에 나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기 어려움.

 

지숙: 이런 상황에는 이렇게 반응해야한다는 것을 항상 주입되고 있음. 회사나 군대에서 특히. 상황, 상황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정상인데 그런 것이 이상하게 주입되고 있음.

 

형원: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들고 있음. 그래서 인간관계에 지친 3, 40대가 혼자 산에 가는 것이 그런 이유. 타자와의 만남에 지쳐서.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은 곧 헤어질 사람으로 진짜 관계가 아님. 우리의 언어로 극복해야 한다. 첫째, 내가 내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프로야구나 영화를 보았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들.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면 가짜라는 것. 타자에 대한 욕망.

 

지숙: 인간이 독립적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음.

 

정원: 독립적인 것과 다른 이와 함께 사는 것 둘은 함께 가야함.

 

형원: 옛날 선비들처러 청빈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혼자 살아도 추레해보이지 않는 일종의 기준을 세우고 맞춰가려는 것은 왜곡된 욕망. 고로 우리의 언어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사회는 내가 선택하는 것은 극히 일부이더라도 세상에는 수없이 많고 다양한 선택지가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정원: 발제문이 거의 책의 언어가 아니라 감상을 세밀하게 적으셨어요.

 

지숙: 이런 것들을 공부해서 이런 것이 10, 20, 30, 4,50대까지 올라갔을 때, 내가 오타쿠라는 그런 것을 깨달았을 때 너무 허무할 것 같아. 세상이 완전 무너지는 것인데 그걸 무너뜨리려고 할까?

 

형원: ‘마음 둘 곳이 있어야 깨닫게 되는 것. 나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괜찮아 보일 때, 새롭게 마음 둘 곳을 찾아야 지금의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한진: 책에도 나오듯, 오타쿠도 마냥 고립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소비하고 커뮤니티가 있지만 곧 도태되는 것에 집착하는 것.

 

병선: 흔한 동호회와 같은 듯. 테니스, 사진, 등산, 마라톤 등등 혼자 하는 종목인데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함. 스마트폰, 특히 sns가 오타쿠의 수집을 자랑하기에 굉장히 좋게 만든 것 같다. 혼자 하는 행위인데 그걸 계속 사진 등으로 업데이트함.

 

한진: 인스타그램이 그거에 엄청 적절한 플랫폼인 듯.

 

· 박병선 발제문 발표

p.126.

심층에서 거대한 이야기가 사라진 까닭은?

 

병선: 정도의 법을 인간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것이 감동.

 

형원: 이성적인 기획, 도구적인 기획으로 어떻게 인간이 원하는 것을 창조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신화적인 이야기와 이상적인 기획을 크게 나누지 않았음. 저자가 말하고 싶던 것은 대중은 큰 이야기를 잃었다는 것. 세상을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사람과 하루하루 삶을 연명하는 대중으로 구분. 소수의 엘리트는 주도면밀하게 세계를 기획,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한 돼지가 되어 살아갈 것이라고 했던 절망의 나라 행복한 젊은이들과 같은 맥락. 배고파는 큰 이야기를 잃은 것은 지배층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지배층은 이성적인 기획으로 큰 이야기 안에서 살고 있음. 그것이 신화는 아니지만.

 

병선: 지배층이라고 하였지만 지식인 계층이 그러한 듯.

 

형원: 지배층이 맞는 것 같은게 지금은 진정한 지식인이 없는 듯.

 

예정: 나는 아직도 왜 오타쿠에 대해서 이렇게 심도 깊게 분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병선: 이 책에서는 포스트모던과 오타쿠의 문제가 서로 다른 것이라고 하지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형원: 동의하는 구조가 있다. 대중은 비슷하게 항상 그래왔던.

 

예정: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큰이야기들과 하나의 캐릭터를 소비하는 것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형원, 정원: 큰 이야기나 그 세계관을 소비하는 세대와는 다르게 하나의 캐릭터를 소비하는 것은 타자가 빠져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 그것은 세계와 연관지었을 때 세상에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됨. 가령 교과서 문제에 전국민이 연대하여 어떠한 액션을 취하는 것. 그런 타인과의 연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됨.

 

· 이한진 발제문 발표

형원: 이 책 자체가 스노비즘이라는 배고파의 지적이 맞는 말인 것 같다.

정원: 지난번에 이어서 일본 작가의 책을 두 번째로 읽고 있는데 굉장히 간단한 이야기마저도 엄청난 수치를 제시하여 쓰는 것이 굉장히 책을 잘 쓰는 것 같다.

 

병선: 과거의 책들은 대중을 향하여 쓴 것일까? 과거에는 책을 써대기만 하고 대중은 항상 빨려갔을 뿐. 대중이 생산의 주체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 대중들이 컨텐츠를 소비해야 돌아가는 사회가 되었다. 과거 지식인은 부조리한 구조와만 싸워왔지만 지금은 부조리한 구조와 소비해야하는 대중과도 싸워야 한다.

 

형원: 과거, 조선의 선비나 루소 등이 살던 시대의 대중과 별반 다르지 않는 듯.

 

정원: 옛날에는 어떠한 진리 추구를 위한 책 위주였지만, 지금은 세계를 진단해주는 책이 인기가 많은 것 같다.

 

 

 

다음 모임: 12204

다음 책: 한국 현대사 산책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이한진

카테고리 없음 2015. 11. 25. 19:4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읽고 [이한진]

읽는 내내 굳이 이걸 이렇게 어렵게 분석을 해야하나 싶으며 읽다가도 그럭저럭 이해가는 부분도 있고 해서 전체적으로는 문안하게 읽었던 것 같다. 게임 분석을 엄청 장황하게 하는데 단순히 그냥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만들다보니 이 지경에 이르렀지라는 생각을 떨구기가 힘들었는데 다 읽어보니 그런 관점으로도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식으로 읽어나갔다. 오타쿠를 통해서 무언가를 읽어냈다는 것보다 시뮬라크르, 데이터베이스형, 스노비즘, 모에 등 새소한 용어들을 배우면서 생각해볼만한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읽다가 네스케이프 네비게이터 나오는거 보고 이거 좀 오래된 책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 당시엔 스마트폰이 없었겠구나 상상해봤다. 불과 10년 조금 넘은 것 같은데. 데이터베이스화 되어가는 거라든지 사교성이 떨어져간다든지 하는 것들이 지금과도 들어맞고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방향은 부정할 수 없어보인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넘어서 VR의 세계가 표면위에 올라오려하고 있다. 언젠가는 하겠지가 바로 앞에 와있다. 놀라우면서도 문득문득 소름 돋는 일이다. 결국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제목에 다 들어가있지 않나 싶다. ‘동물화’되는 것.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뭔데?라는 약간은 익숙한 질문을 던져보게 만들게 되었고,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정확히 어떤 부분 때문에 그런지는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고전이나 클래식을 더 많이 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더라도 내가 좋아하던 고전영화를 더 많이 봐야지싶었다. 좀 더 단순하면서도 시대의 가벼움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지켜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을 읽고 - 박정원

함께 읽기/기타 2015. 11. 25. 15:1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바시 / 아즈마 히로키『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 2015.11.25 / 박정원

 

오타쿠와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

 

 

‘오타쿠’에 관한 책인데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책제목을 보고 얼른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1장, 2장에서 오타쿠, 포스트모던, 이야기 소비, 커다란 비이야기, 모에 요소, 데이터베이스 소비, 시뮬라크르, 스노비즘, 해리적 인간의 개념까지 읽고, 마침내 9절 ‘동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책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동물의 욕구는 타자 없이 충족되지만 인간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타자를 필요로 한다.’(p150) ‘동물이 된다’는 것은 간(間)주체적인 구조가 사라지고 각자가 각자의 결핍-만족의 회로를 닫아버리는 상태의 도래를 의미한다. 현재의 소비사회에서는 소비자의 요구가 가능한 한 타자의 개입 없이 순식간에 기계적으로 충족되도록 날마다 개량이 거듭되고 있다. 우리들의 사회는 최근 수십 년간 확실히 동물화의 길을 걸어왔다. 오타쿠들의 소비행동도 또한 ‘동물적’이라는 형용에 그대로 부합한다. 현재의 오타쿠들은 감정적인 만족을 더욱 손쉽게 달성해주는 모에 요소의 방정식을 찾아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소비하며 도태하고 있다. 저자는 1995년 이후의 시대를 ‘동물의 시대’라고 명명하고 포스트모던화 전체 속에서 생겨난 것이며 결코 국내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한다. 예전에는 공감의 힘이 사회를 만드는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감정적인 마음의 움직임은 오히려 비사회적으로, 고독하게 동물적으로 처리되는 것으로 크게 변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데이터베이스형 세계에서는 더 이상 커다란 공감 따위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의 인간은 ‘의미’에 대한 갈망을 사교성을 통해 충족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동물적인 욕구로 환원함으로써 고독하게 채우고 있다. 거기에서는 작은 이야기와 커다란 비이야기 사이에 어떠한 연계도 없고, 세계 전체는 단지 즉물적으로 누구의 삶에도 의미를 주지 않는 채 표류하고 있다.

 

여기에서 필자가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오타쿠계 문화의 변천과 그 바깥쪽의 사회적 변화와의 관련성을 이끌어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오타쿠계 문화 같은 기묘한 서브컬쳐를 끌어안게 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