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을 읽고 - 박정원

함께 읽기/기타 2015. 11. 25. 15:1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바시 / 아즈마 히로키『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 2015.11.25 / 박정원

 

오타쿠와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

 

 

‘오타쿠’에 관한 책인데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책제목을 보고 얼른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1장, 2장에서 오타쿠, 포스트모던, 이야기 소비, 커다란 비이야기, 모에 요소, 데이터베이스 소비, 시뮬라크르, 스노비즘, 해리적 인간의 개념까지 읽고, 마침내 9절 ‘동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책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동물의 욕구는 타자 없이 충족되지만 인간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타자를 필요로 한다.’(p150) ‘동물이 된다’는 것은 간(間)주체적인 구조가 사라지고 각자가 각자의 결핍-만족의 회로를 닫아버리는 상태의 도래를 의미한다. 현재의 소비사회에서는 소비자의 요구가 가능한 한 타자의 개입 없이 순식간에 기계적으로 충족되도록 날마다 개량이 거듭되고 있다. 우리들의 사회는 최근 수십 년간 확실히 동물화의 길을 걸어왔다. 오타쿠들의 소비행동도 또한 ‘동물적’이라는 형용에 그대로 부합한다. 현재의 오타쿠들은 감정적인 만족을 더욱 손쉽게 달성해주는 모에 요소의 방정식을 찾아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소비하며 도태하고 있다. 저자는 1995년 이후의 시대를 ‘동물의 시대’라고 명명하고 포스트모던화 전체 속에서 생겨난 것이며 결코 국내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한다. 예전에는 공감의 힘이 사회를 만드는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감정적인 마음의 움직임은 오히려 비사회적으로, 고독하게 동물적으로 처리되는 것으로 크게 변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데이터베이스형 세계에서는 더 이상 커다란 공감 따위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의 인간은 ‘의미’에 대한 갈망을 사교성을 통해 충족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동물적인 욕구로 환원함으로써 고독하게 채우고 있다. 거기에서는 작은 이야기와 커다란 비이야기 사이에 어떠한 연계도 없고, 세계 전체는 단지 즉물적으로 누구의 삶에도 의미를 주지 않는 채 표류하고 있다.

 

여기에서 필자가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오타쿠계 문화의 변천과 그 바깥쪽의 사회적 변화와의 관련성을 이끌어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오타쿠계 문화 같은 기묘한 서브컬쳐를 끌어안게 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