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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9자급과 정치

 

타로 밭의 정치인가 남성의 집 정치인가?

벨라우 섬 이야기.

여성이 중요한 역할. 밭에서 양식 생산, 남성들의 결정을 여성들에게 정당화 시켜야하고 결정은 뒤집힐 수 있음.

여성들은 특별한 회의에서 의논하지 않고 타로밭에서.

 

타로밭 : 어떤 사안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해주는 공간. 결속력, 친근감, 주인의식, 그 자체. .

남성들이 생각하는 정치는 오로지 돈에 대한 생각뿐.


자급의 정치화?

자급의 관점을 정치적인 차원으로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

 

<슈페르의 자급의 정치화에 대한 5가지 비판>

1. 자급 관점 매력이지 않다. 작고, 많은 일을 요구, 지배체제에 대항하는데 무력.

2. ‘자급 틈새는 사회적 시스템과 생태계 보전을 위해 국가가 치러야 하는 비용을 낮추는데 일조.

3. 자급은 정의되지 않는다. 누가 그것을 정의하는 권력을 갖는가?

4. 권력과 조직문제에 대해 예민한 차이를 낭만화하는 경향이 있다.

5. 과거의 역사는 폭력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좋은 삶에 대한 개념을 확신시켜도 그 기반이 사라지지 않는다.

 

자급 관점의 필요성과 매력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확신이란 타당성과 당파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가치중립적인 이성적 담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

 

<슈페르의 비판에 대한 대답>

1.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라고 생각했던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정치로 인식을 못한다. ‘자유로운 남성의 직업.

이 구조가 계속되는 한, 가정이나 타로밭보다 남성 의회가 더 매력적일 것이다.

문제는 구조 자체. 일상의 삶과 정치의 분리. 정치와 일상생활의 위계화이다.

 

2. 편협한 흑백논리식 사고.

자급틈새 영역은 사유지를 없애는 것을 배우는 교육장.

종속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한, 우리의 목적은 자유나 자율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요구할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으로만 제한 될 것이다.

 

3. 4. 5. 그 말하는 권력. 노동조합, 정당, 교회 등 크고 조직화된 권력. 대중의 낡은 사고 안에서의 권력.

여성에 대한 폭력이 경제체제의 본질적인 부분. 폭력과 대항폭력이라는 모델은 남성 정체성이 만들어 왔다.

젊은이들의 람보화 큰 문제. 탈군사화를 요구하는 남성운동이 필요하다.

자급정치란, 남성이 자급의 일을 여성과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이 아니라 남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타로밭 정치의 다른 측면>

- 정치는 일상생활, 자급과 분리되지 않는다.

- 정치는 위임, 선거, 정당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 정치는 일상의 작은 문제와 관련된 것 만이 아니다. 전체의 시스템과 관련된다.

-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는 모두에게 분명히 드러난다.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것을 정의하는 권력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

- 여성은 합의에 의해 일한다. (형식에 치중하지 않는다)

- 타로밭의 의견을 특별한 미디어와 정보 채널로 퍼뜨릴 필요가 없다. 여러 관계의 채널로 널리 퍼진다.

- 지역 공동체의 요구인 도덕 경제’, 환경과 미래 세대의 보호를 강조하는 정치는 장기적 관점을 가져야만 한다.

(단기간의 이윤이나 권력 잡단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 타로 밭 정치에서의 권력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무력하게 희망도 없이, 지배 체제가 앞에 열어놓은 블랙홀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다른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싶다. 산업사회는 매우 역사가 짧고 주변적이며 일반화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고 싶다. 우리는 이 터널에서 빠져나와 무지, 편협함 그리고 도시적 오만에서 오는 사고의 장막을 걷어내려 한다.

 

저항 없이는 자급도 없다! 자급 없이는 저항도 없다!

[마라구아의 여성들]

케냐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남편의 땅에서 일하고 그 생산물을 통제하는 권리를 지님.

수출을 위한 생산이 도입되면서 이익은 남편들에게만, 일하기를 거부.

정부, IMF(SAP 프로그램), 여성정책도 이를 막지 못함.

 

마라구아 여성들은 몰래 콩을 심어서 자신과 아이들을 먹였다.

커피나무 해끼치는 것 불법 임에도 땔감으로 썼다.

집에서 재배한 과일과 야채를 가지고 스스로 지역 시장을 만들었다.

 

여성들의 투쟁 세단계 : 여성착취(남편에 의한 착취), 국가에 의한 착취, 국제 자본에 의한 착취에 대항.

여성들은 투쟁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자급 기반을 만들었기 때문에, 투쟁에서 승리했다.

 

어떻게 거기까지 이르렀는가?’

1. 여성들은 지역 시장으로 자급 사회를 만들었다.

2. 여성을 착취하는 모든 권력(남편, 국가, 초국적 자본은 서로 긴밀히 얽혀있음)들과 투쟁했다.

3. 가정주부화된 개인으로 서려고 하지 않고, 전통적이고 집단적인 여성의 조직을 고수했다.

4. 결과적으로 남성에게 남은 선택. (여성지원 권위 인정 or 정부, 자본과 폭력적으로 여성을 공격할 것인지)

 

<인도 농장의 사티야그라하 종자 저항운동>

인도의 카길사(인도의 모든 종자에 대한 소유권을 변용, 소유) 같은 다국적 종자 기업들이 종자 생산을 독점하려 함.

남인도 농장 기업 카르나타카 라지야 이료타 상하는 농장의 옥수수 종자와 이에 대한 지식, 이들의 식량 주권의 착취에 저항해서 싸움. (카길 사의 지역 사무소를 습격하여 종자 저항운동 시작)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 사유화 정책을 강요하는 정부, 초국적 기업,GATT/WTO와 같은 모든 행위자들에 대항하는 직접 행동이 되었다.

 

<다른 경제 개념이 다른 정치 개념을 이끈다>

- 자급을 지향하는 지역운동이 결국은 지배적인 글로벌 자유 시장 정치와의 갈등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사실 분명.

(정치에 대한 다른 개념도 발전시킬 것이다.)

- ‘민중의 아젠다는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지구화대신에 지역화를 강조한다.

- 지역공동체의 다원적인 직접민주주의, 신분과 성별에 기반한 식민 지배 구조를 폐지해야 한다.

- 피라미드식 빙하구조 사라지고, 삶은 그 중심에 개인이 있는 대양의 동심원처럼 조직될 것.

(민족국가의 힘이 공동체들 안에 있는 이 개인들을 보호할 것이다)

- 우리를 강요된 소비라로 만드는 상황에서, 지역 경제와 직접 민주주의야말로 식량 주권과 같은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자유권을 회복하는 길이다.

 

자급정치는 특정 장소와 특정 공동체 안에 있는 개인들의, 구체적인 정치적·경제적 임파워먼트를 나타낸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서로 평등하게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국제주의는 착취에 기반하지 않고 북반부와 남반구의 살림 공동체가 서로 자산의 자급 정치를 결정할 때에만 가능하다. 문화, 사회, 민족의 다양성을 위협하지 않는 힘의 근원으로서 진정한 풍요로움이 만들어진다.


지금 여기서 자급 정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급 정치는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과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단계보다 첫 번째 단계.

 

- 작은 소규모 농업을 보호하는 실천해야 한다.

- 유전자 조작, 모든 생활양식에 대한 특허, 지속적인 전 지구적 식량 사유화 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거대 초국적 식량기업의 상품을 안쓰는 불매운동(장바구니 정치)

- 일과 노동 이슈를 임금 노동 체계를 너머서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정치가, 자본가, 노동조합에 맡기지 않아야한다. 일을 다르게 이해하는 개념이 필요하다.

- 임금 노동의 지배에 종말을 고하는 것을 의미하는 임금 노동 체계의 헤게모니를 해체하는 것이 중요하다.

- 공유지의 사유화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그 지역에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말아야 한다.

젊은 남성들이 보수를 받지 않는 자급 노동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람보화를 멈춰야 한다.)

- 농민, 여성, 토착민 운동 등과 같은 민중운동과 긴밀한 국제 네트워크를 유지해야 한다.

그들과 연결, 대중화, 서로 배우며 시민 아젠다 조직해야 한다.

- 도시를 경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도 함께 시작해야 한다.

 

[쾰른 최초의 여성 감자밭]

검은 딸기 덤불로 덮인 황무지를 감자밭으로 경작.

이웃들의 호응, 종자 구입 도움, 아이들 스스로 자신들의 화단을 돌봄.

 

[나야크리쉬 안돌론 : 행복한 삶과 식량 보호를 위한 방글라데시 농민운동]

새로운 자급 경제와 정치가 무엇이며 그것이 지역적인 차원과 글로벌한 차원, 물질적인 영역과 상징적인 영역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수확 품종 종자의 단일 경작으로 인해 농업의 유전적 기반이 좁아졌다. 글로벌 시장의 확대로 여성들은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다. 자살률 높아지고 피임약의 덤핑, 신약 테스트의 타깃. 비쉬(살충제, 해로운 화약약품 지칭함)에 반대하여 방글라데시 농민들이 조직되었다. 혼합곡식재배, 윤작, 다른 정교한 기법과 아난다(모든 행복이 식량생산과 함께 시작된다는 뜻)생산방식을 통해 독특한 농업 실천으로 빠르게 확대되었다.

 

나야크리쉬 안돌론의 단순한 원칙.

- 해충제, 화학비료 사용하지 않거나 점점 줄이기

- 토양을 비옥하게 할 수 있는 친숙한 방법 사용하기.

- 다목적 나무 생산을 통합하기

- 농가의 총 산출과 공동체의 실질 수익을 전체적으로 계산하는 일

- 가축, 가금류, 집에서 기르는 새와 동물은 농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성요소로 인식

- 다양한 지역의 생물들은 거의 항상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고 생태적으로도 어울린다

- 종자와 유전자원들은 가구와 공동체 차원에서 보존된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기술을 발전시키려는 나야크리쉬 안돌론은 식량과 식량 생산이 다양한 문화적 시스템의 맥락에서, 그리고 공동체의 풍요로운 문화적 실천들과의 관계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힐러리에게암소를 8장 발제.hwp

8장 여성 해방과 자급

 

- 이 모든 것이 페미니즘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 착취, 생태 이슈, 군사주의, 평화, 경제 등 모든 이슈는 여성주의 이슈이다. ‘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개혁해야만 한다.
  • 페미니즘은 주로 평등 정치학과 문화 페미니즘으로, 성적 지향이나 언어와 사회적 행동에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좁혀져 왔다.
  •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것은 분석의 출발점일 뿐이다. 그런데 왜 여성운동은 탈정치화되어 가는가? 왜 관점이 점점 제한되어 가는가? 왜 남반구 여성들의 승리가 자기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자급에 대한 경멸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 이런 탈정치화, 연대의 위기, 혼란, 비전의 부족은 다음 세 가지 때문

1. 정체성과 차이에 대한 담론

2. 여성의 권력-구조 참여에 대한 담론

3.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 담론

 

젠더 관계에서의 평등, 정체성 그리고 차이 :

여성운동이 여성을 해방시켰는가? - 성평등과 여성 해방은 다르다.

 

  • 7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의 목표 : ‘여성 해방’, ‘착취와 억압, 성차별주의와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 대한 투쟁
  • 삶을 창조하고 유지하는데 있어 여성의 노동이 지닌 긍정적인 특성. 자급관점의 출발
  • 자급은 상품생산에 얽매이지 않고 삶을 직접 창조하고 유지하는 것.
  • 여성의 관점, 어머니의 상징적 질서
  •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은 사람들 간의 좀 더 많은 차이, 즉 그들 안의 장벽을 계속해서 발견해나간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착취와 억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 평등, 자유 : 여성 해방에서 평등의 정치학까지 성평등의 함정

8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목표는 남성과의 평등 이것은 여성들을 얼마만큼 해방시켰나.

여성들은 가부장적 구조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했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이 견고하면서도 안전한 틀, 아버지 국가 속에서 적소를 찾기를 갈망했다. , 자유, 평등.

그러나 이것은 결코 모든 이들에게 가능하지는 않다.

북반구 여성들은 행복한 삶이라는게 돈에 달려 있지 않다는 걸 생각할 수 있을까?

주류화의 결과

2의 성이라는 공통성/연대의식 무너짐. 계급, 인종, 문화, 종교에 따른 차이/차별 존속

공통성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1세계의 커리어우먼이 대표하는) 획일성으로,

살아있고 통제 받지 않는 평등 돈으로 측정되는 표준화된 형평으로.

많은 여성들은 식민지 농부나 백인 사회의 빈민들이 아닌 위에 있는특권층 백인 남성과 동등해지길 원했다. 그러나 인권은 자연권이고 이 세계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가 가지는 생득권이다. 따라서 이 생득권이란 여성들이 소수 남성 엘리트의 특권을 나누어 갖기 위해 구걸하거나 투쟁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들 자신이 갖고 있는 권리가 무력의 법칙에 따른 것임을 있는 그대로 보임으로써 그 권리의 규칙을 비법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 자유 그리고 안전

자연에 대한 평가절하여성에 대한 평가절하와 긴밀히 연관

여성 혐오는 근대 경제의 부작용이 아니라 남성과 자본의 지배 유무를 결정하는 갈등의 중심에 있다.

인공적으로 생산된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과 경쟁할 수 없다.

아이를 낳는 여성의 능력은 여성 자신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사회관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대신에 바로 이러한 과학과 기술로부터 자유와 안전을 기대한다. 기술이 원치 않는 생식력과 원치 않는 불임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희망한다. 그러나 여성의 힘과 자유는 그들의 전 존재, 즉 자신들의 육체와의 일치에서부터 나온다. 오로지 전 존재로서만이 그들은 자신의 자립과 자존을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그들 자신의 힘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 대신 기술과 돈이 제공하는 안전에 의지한다.

화폐가 제공하는 부, 자유, 안전성은 허구다. 결국 돈으로 안전과 자유를 살 수는 없다.

자급 관점에서 안전은 사람의 전체성과 자립, 사람들의 상호의존과 그들 간의 상호성과 책임에 기반을 두게 될 것이다.

여성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돈을 얻을 수도, 대단한 직업을 가질 수도 없다. 오직 그들 자신의 힘을 잃을 뿐이다.

 

권력을 위한 투쟁

 

어머니 문제

현실화 과정의 문제 : 해방형평성의 정치, 세력화(impowerment), 어머니 문제

독일 녹색당의 의회 진출 : 모든 정당에서 의석의 50%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 요구 수용, 여성 정치인들 많아짐어머니들 저녁, 주말 정치활동 불가

아이가 없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새로운 정치적 프로젝트에 자신의 모든 시간을 쏟을 수 있었던 반면, 오래된/새로운 어머니 문제는 녹색당을 생태적 관심사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1987년 어머니 강령 : 아이가 있으나 없으나 똑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녹색당의 일과 조직이 변화해야 한다.

비판 : 이 강령은 가부장제과 자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어머니 본능을 이상화하고 여성을 아이들과 부엌과 교회로 복귀시켜려 한다.

여성운동진영 전체로 논쟁 확산 어머니에 대한 적대감, 여성의 몸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한 경멸 내포 대다수의 사람들은 약탈물에서 단지 더 큰 부분을 갖기를 원한다.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는 혹시 아이? 여성이 약자인 까닭은 물리적으로 아이의 편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성들이 권력을 얻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독일 녹색당은 새로운 여성운동으로부터 가장 많이 수혜를 받은 당

초기 많은 페미니스트 프로젝트와 회의 지원/후원

다른 정당들에 영향 : 의원의 여성할당제 도입(비례대표가 많아서 이런 일이 가능?)여성정치인의 수 급증

보다 많은 여성들이 먼저 정치권력을 나눠가져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이 양적 변화에 따라 질적 변화도 일어날 것이다?

1998년 선거 이후 녹색당은 처음으로 사회민주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할 만큼 충분한 의석을 확보했다. 녹색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생태, 여성 등 급진적인 목표들을 많이 버리거나 약화시켰다.

기원 살해 발생. 초기의 지향, 이념과 결별

이들은 녹색당의 성공이 상당 부분 생태학, 평화, 여성운동에서의 여성 동원 때문이었음을 잊어야 했다. 대신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는 젊은 여성들의 새로운 성향을 따랐다.

전문적인 현실정치라고 불리는 남성들의 권력 게임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억압과 착취에 기반을 둔 정치경체 체제 안으로 여성을 참여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여성들이 또 다른 경제와 사회에 대한 비전을 생산하지 않는 한 권력을 얻어봐야 전혀 쓸모가 없다.

여성들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더 나은 성별이 되는 건 아니다?(더 나은 성별이라는 게 있나?)

 

페미니스트 포스트모더니즘:

망각과 탈물질화의 이데올로기

 

363쪽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섯 가지 망각의 전략

FPM의 유사성 : 지배적인 합리성의 개념 비판.

F, 1970년대 여성운동의 경험, 가부장적 폭력/군사주의/·유전자 기술 반대, 자연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에 기초한 인식론(데카르트식 자만) 반대에서 출발.

1980년대 대학 여성학과 등 여성학의 제도화 거대사회이론 프로젝트 포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해 페미니스트 학문은 성숙해졌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인간은 이성으로 움직이는 책임있는 주체이자 역사의 주체라는 계몽 시대의 합리성 개념 부정.

세계의 물질적 실재-‘실제의역사-는 없다.(매트릭스?)

다수 사람들과 문화와 이슈 사이의 연관성과 공통점을 더이상 인지할 수 없게 되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게 되었다.

정치적 행동은 정치적 올바름으로 축소.

한쪽을 지지하길 두려워한다.

어떤 사회적 범주를 본질화시키는 것을 두려워한다.

특히 젠더에 관한 담론이 여성운동의 탈정치화에 기여했다.

 

본질주의 새로운 원죄

 

차이를 옹호하는 포모페의 만장일치 본질주의 단죄

본질주의=생물학적 결정주의?

생물학적 결정주의 : 가부장적 성별관계의 원인을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해부학적 구조에 있다고 보는 사상

보편주의적 거대담론을 문화적·사회적 본질주의로 봄

이에 대한 회피에 따르는 오류

여성, 남성, 어머니 등의 범주에는 물질적·역사적 실재가 없다. 개인이 있을 뿐. 공통성 인식이나 연대는 불가하다.

급진적 구성주의 : 남성성과 여성성은 문화적 조작의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의 문화는 자연보다 우월하다. 여성 신체에 대한 소외 심화.

여성은 사이보그이거나 동물이다?

sex은 오직 생물학적인 것, 젠더는 문화적인 것?

 

남성 포스트모더니스트 영웅 니체, 리오타르, 라캉, 데리다, 푸코

이들은 우리 모두가 여성으로부터 태어나며 다른 유기물처럼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머니(물질) 살해 즉 탈물질화가 없었다면, 남성이 삶의 창조자로 우뚝 서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구로부터의 해방? 유기체로부터의 해방?

이러한 자유는 그들이 궁극적으로 가상현실에서 육체 없이 떠다닐수 있음을 의미한다.(매트릭스!)

본질주의에 대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은 여성으로부터 태어난우리들의 기원, 실제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여성에 대한 상징 질서를 부인하는 데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여성에게 이러한 부인은 자기파괴적이다.

주인의 집을 파괴하는 대신에 그 집으로 상향 이동하는 모든 피억압자의 오래된 꿈은 많은 여성들의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몇몇 여성들은 자신의 기원을 부인하고 여성운동으로부터 분리되고 여성의 아카데미로 퇴거한 후에야 남성 주류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신자유주의와 함께 등장했다. 거대 서사에 대한 공격, 신자유주의적 다원주의, 정치적 무관심, 신보수주의는 함께 춤춘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위협적이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대중, 특히 젊은이들을 탈정치화하고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 간의 연관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신자유주의경제가 쏟아내는 불평등과 사회적 생태적 파괴에 둔감하게 만든다.

철학을 탈정치화하려 한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주요 피해자다.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것이든 좋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이데올로기를 선도한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여성해방과 자급 관점 테제와 강령

 

세계 여성들에게 주요한 문제는 차이/정체성이 아니라 착취, 억압, 폭력, 식민주의다. 우리는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이 유지되고 축복받는 세계를 만들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다른 생물체와 연결되어 있다. 물질을 영혼으로부터 분리하여 평가절하하고 영혼을 이상화하는 이원주의를 거부한다.

우리의 임파워먼트는 자립과 자율성, 상호 의존, 자기 조직, 자기 공급, 지역적·지구적 네트워크, 수익관계가 아닌 자급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여성이 역사적 존재임을 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아들들을 되찾아 우리 자신과 연결하기를 원한다.

 

자연에 대한 약탈 대신 협력

타자에 대한 관용

다양성에서의 평등

(어머니, 물질, 자연)은 힘, 지혜, 지식, 생기의 원천

한계 인식, 한계 존중 - ‘전능은 가부장적 환상

다양성에 기반한 연대와 자매애

 

1998년 생물다양성협약 회의에서 다양성을 위한 다양한 여성들의 성명

자급의 삶 6장 (키메라 공부모임)

함께 읽기/생태론/페미니즘 2015. 7. 21. 16:2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아시다시피 '키메라'에서도 '세바시'의 커리큘럼을 따라가고 있는데 이번 주 모임(20일, 월)에서 5, 6장을 공부했어요. 6명이 모였는데 이 책을 공부하는 것을 대체로 좋아하고 있답니다. 6장을 발제해오신 양미경님의 정리가 간단하고 보기 좋아서 올려봅니다. 저희는 다음 주 월요일에 7~9장 나갑니다.

 

 

공유지.docx

 

 

1.공유지 파괴와 유럽의 농업정책:

-1940년대 이후 유럽의 농업정책으로인해 농업이 근대화, 기계화, 화학화, 자본화되면서 농민 수는 감소하고, 농업은 산업에 종속됨

- 자연농법이 사라지면서, , 생산과 재생산의 오래된 순환이 사라지면서, 염소//소의 먹이였던 풀이 녹색쓰레기, 잔디가 녹색쓰레기가 됨. 이러한 쓰레기 이동에 따라 마을 주민들은 감당못할 빚을 지게 됨

- 오래된 공유지 제도는 파괴되고 자유로운 공동노동은 사적임금노동으로 대체됨. 공유지 사용권은 사적 소유로 바뀜. 공동체 자체가 파괴됨.

 

2.공유지 지키기: 파푸아뉴기니 사례

-1조달러에 달하는 파푸아뉴기니의 부채를 갚게 하기 위해 세계은행 등이 구조조정 프로그램 시행.

-세계은행,IMF,다국적기업들의 개발정책의 본질을 지역민들이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응.

- , 이들은 기름야자나무 플랜테이션, 광산자원 찾기, 열대원목에 대한 접근권등을 위해 공유지에 접근코자 함. 반면 지역민들은 생계뿐 아니라 문화와 언어의 기반이 되는 공유지를 계속 사용하면서 공동체의 관습적인 권리를 유지하기를 원함 (파푸아뉴기니 토지의 97%가 공유지이며, 400만 민중이 869개의 지역 언어 사용. 그 어떤 부족도 인구의 7%이상을 차지하지 않음).

- 세계은행의 명령으로 수행되는 토지개혁에 대한 저항은 공적토지관리를 위한 투쟁일뿐 아니라, 언어/문화/생계보존을 위한 투쟁임.

- 파푸아뉴기니 민중들은 자각 훈련 캠페인, 문맹퇴지운동을 통해 구조조정프로그램의 의미를 파악하고, 학생,지역장,교회,군인 등 모두가 그들의 땅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함. 그들은 수많은 식민지가 그랬듯 근대화가 결국 그들을 거지로 만들 것 을 정확히 간파했던 것임.

 

3. 새로운 공유지와 새로운 엔클로져

- GATT는 토착민중들의 공동지식에 대한 약탈행위라는 새로운 신식민주의적 시도를 함.

- 님나무가 살충성분을 가지고있다는 인도 민중의 전통지식을, GATT가 특허권/지적재산권관련 무역조항을 적용해 약탈해 가 이를 사유화하고, 상업화 함.

- 이러한 님나무 사례는 국제자본이 공유지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을 갖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보여 줌.

- 유네스코는 인간게놈을 인류의 공동재산 또는 전지구적 공유물로 선언함. 이를 통해 제약회사와 농업회사 자본들이 제3세계 유전적 자원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을 얻게 됨.

 

4.북반구에서의 공유지 재발명

-생산과 소비의 연속성: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만 만들며, 소비되지 않을 것은 만들지 않으므로 쓰레기가 생산되지 않음.

- 생산과 소비의 분리: 생산자들은 임금에만, 소비자들은 물건의 사용가치에만 관심을 갖고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음.

 

5. 공유지, 여성 그리고 자연

- 여성의 노동이 사랑의 행위로 이상화, 감성적인 일로 되 버리면서 비경제화 됨.

- 출산이 경제적 가치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이는 여성 저임임으로 이어짐.

- 근대사회에서 자연은 뭔가를 창출해내는 생산적인 것이 되기 위해 착취되어야 하는 하나의 자원. 근대이전에 자연은 어머니 지구로 숭상됨.

- 이러한 착취되어야 할 자원이, 공유지,/여성이 됨.

- 하딘의 공유지 비극: 공유지에서의 자유는 모두에게 파멸을 가져온다. , 한정된 공간에 너무 많이 살고 있다.

 

6.공유지 다시 만들기.

- 세계화의 물결에 저항하는 지역화와 지방화

-기계적인 대중 연대에 저항하는 상호부조: 기술진보는 생태계의 파괴와 프롤레타리아화를 위한 변명을 제공

-위로부터의 정책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정책: 전지구적 거버넌스 반대

- 공동체를 살리는 다중적 방식, 공동체의 다양성

 

 

 

자급의 삶 4장 발제

함께 읽기/생태론/페미니즘 2015. 7. 16. 16:4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작년에 남산강학원에서 글쓰기강좌 할 때 발제는 자기 생각으로 다시 정리해서 쓰는 거라고 배웠습니다만... 그냥 간략하게 요약하는 정도로 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hwp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자급의 삶은 가능한가』2 / 2015.7.19 / 박정원

 

4장 자급 관점과 시장

 

유키탄의 여성 상인들 인구 8만.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 상인. 여성들은 가정과 아이를 돌보고 시장에 가는 것, 그리고 먹거리와 수공예 생산 활동을 책임지고 있다. 주부들의 자급 활동과 여성 상인들의 시장 활동 사이의 이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그녀들이 참여하는 목적은 생계 보장을 위함이고, 무엇보다 그 공동체와 다른 여성들의 존경을 받기 위함이다. 모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 어머니는 핵심적 권위를 지니는 존재. 능동적 주체로서 상황을 주도해나간다.

 

자급과 시장의 관계는 모순적이지 않다

 

다양한 종류의 교환 관계가 존재하고 있지만 상품 생산의 일반화가 진행된 결과 시장과 거래가 현대 사회를 만들어내는 결정 요인이 되었다. 그 결과 전통 사회는 시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자급 사회로 상상되며, 전통 사회 속에 실제로 존재해온 시장 관계는 산업사회 이전의 상업 형태를 지닌 시대착오적인 유물로서 간주된다. 그러나 한 사회는 두 측면을 모두 갖고 있고, 시장과 교환이 반드시 살벌한 경쟁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

 

시장은 단지 시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익 극대화를 중심으로 하는 시장 관계가 유일한 시장의 형태로 여겨져서 이것이 없다면 시장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인식한다. 시장 자체가 윤리와는 무관하다는 믿음이 있다.

 

시장에 관한 신화: 시장 자체는 내재적 법칙을 가지고 있다

폴라니는 근대 시장 경제가 필연적인 법칙들에 의해 작동함을 밝힌다. 그는 경제와 사회를 분리하고 경제의 우세함이 현대 시장 사회를 특징짓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처럼 오늘날에도 문화와 경제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시장 경제가 내재적인 법칙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 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추동력은 바로 근대 가부장적 지배구조이며 오직 한 종류의 경제만이 남는데 그것이 바로 시장 경제다.

저자들은 폴라니가 기술적으로 진보한 시장경제가 삶에 필수적인 경제의 자급자원을 망쳐놓았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음을 비판한다.

 

자급의 탈경제화

경제는 내재적이고 물질에 기반한 법칙을 갖게 되면서 생물학적 남성이 공격적인 상대에 대처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경제 영역은 남성의 것이 되고, 여성은 경제로부터 배제된다. 이는 여성노동이 탈경제화de-economisation되는 과정이며 여성의 자리는 주부의 자리로, 보살핌과 관련된 일은 여성들에게 위임된다.

여성노동의 탈경제화와 자급의 탈경제화는 하나의 과정이다. 경제 단일체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갈라지고, 자급 생산은 시장을 위한 상품 생산에서 분리된다. 따라서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자급은 탈경제화되고 여성은 사적 영역 안에 머물게 된다.

이제 시장은 자본주의-가부장적인 규정에 따라 이익의 실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자급과 시장 사이의 연결을 복원하기

‘자급 지향의 시장’과 ‘자급 지향의 거래’는 교환과정이며, 이러한 교환을 통해 자급과 시장 사이의 연결이 지속된다. 자급과 시장 사이의 연결을 복원하는 게 여성에게 특히 중요하다.

자급과 시장 간의 연결에 장애가 되는 것은 경제 성장이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망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개인이 일상의 경제 활동에서 스스로의 책임으로부터 손을 떼는 것을 허용한다. 소비주의 , 환경과 시장에서의 행위를 정당화.

 

여성과 시장 그리고 자급의 수호

 

여성의 시장 지배는 식량 거래와 밀접한 관련. 서아프리카 해안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 상인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 그러나 그곳의 여성들은 매우 핍박받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식량에 관한 거래가 사소하고 가치가 낮다는 가부장적 경제 성장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여성의 시장 조절 능력은 강력한 사회적 지위 그리고 자급 지향성과 연관이 있다.

독일의 경우 나치하에서 완성된 계획적인 정책으로 인해 여성들이 시장으로부터 방출되었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주부로 변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시장 여성들의 저항

 

시장 여성들은 유달리 독립적인 존재.

나이지리아 시장에서 여성들은 다국적 석유기업들에 저항. 기업이 초래하는 경제적, 생태적 파괴와 그 지역의 지구화 정책의 부당함에 저항. 여성들의 주된 관심사는 ‘토양, 낚시터, 시장, 성소 그리고 그들 자신의 삶의 터전, 즉 온전한 농부로서의 모든 존재기반’에 관한 것.

나이지리아의 시장 여성들은 여성 고유의 힘을 사용함으로써 지구화 정책에 대한 의식적인 저항을 촉발시킨 것. 글로벌 경제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지 않으며, 진정한 공동체에 속하는 지역적인 영토만이 있을 수 있는 것. 토착적 페미니스트.

 

하나의 결론: 구매행위는 정치적인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도덕 경제를 원한다”

각 개인이 기꺼이 책임감을 짊어짐으로써 이루어낼 수 있는 도덕 경제를 원한다는 것이 이들의 이상과 원칙이다. 21세기 말에 도덕 경제가 실현되는 과정에는 소비만이 아니라 구매도 정치적 행위라는 자각이 포함된다. 소비자 협동조합이나 7일장, 농부의 노점이나 농사짓는 이웃 여성에게서 물건을 산다면, 우리는 이미 소농 경제의 가동성, 지역화나 자급에의 지향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 각 개인이 각성해서 도덕적인 소비와 구매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

 


북반구 백인 남성 여피족의 여유를 연상하게 하는 사진? 



150719자급의삶은가능한가_6공유지지켜내기되살리기다시만들기.pdf



위에 첨부한 PDF 파일로 보시는 게 편합니다.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The Subsistence Perspective _ Beyond the Globalised Economy

6 공유지 지켜내기, 되살리기, 다시 만들기

마리아 미즈베로니카 벤홀트-톰젠 지음, 꿈지모 옮김

과천녹색당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공부모임 _ 깃털 | 2015.7.19

 

가축 사료로부터 쓰레기까지: 공유지 파괴와 EU의 농업정책

마리아의 고향 : 쾰른 남쪽 구릉 지대 작은 마을. 공유지인 숲, , 작은 시내, 자급자족하는 32명 농부의 자유로운 공동노동으로 유지. 공동체 작업은 즐거웠다. 마을 숲의 장작, 소 돼지 먹이기, 가난한 이들의 마을 땅 이용은 무료. 오늘날 두 가구 남음. 공유지는 사유화, 혹은 거대 기업농 임대. 남은 공유지인 마을 숲은 임금 노동으로 관리.

1940년대 이후 EU 농업 정책 : 근대화, 기계화, 화학화, 자본화. 농민 감소, 농업의 산업 종속.
농업 보조금, 값싼 대출금이 거대화, 시장화 강요. 경쟁력 없는 농민 도태, 젊은이들은 공장으로.
마을 가꾸기’: 어린이공원, 포장도로, 잔디마당 딸린 집들로 꾸미기. 빚더미. (새마을운동)

사료, 비료로 쓰던 유기물, 잔디, 잔가지가 엄청난 유기물 쓰레기: 순환 사라짐 임금 싼 튀링겐의 산업 비료 회사에 폐기물 수출. 이동 비용으로 감당 못할 빚 + 생태적 손해.

EU 농업 정책: 농민을 ‘garbage population’으로 선언, 상품 아닌 생산물은 쓰레기로 전락.

 

오랜 공유지 제도 파괴, 자유로운 공동 노동은 사적 임금 노동으로, 공유지 사용권은 사적 소유로.

(유기성) 쓰레기: 저자들은 사적 소유와 개인의 이윤 추구가 부정적 공유지인 폐기물 문제를 풀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산업사회는 유기, 산업, 독성 폐기물을 공유지’, ‘자유 접근 지역’(공짜)으로 불리는 남반구에 수출. 공기, , 열대우림, 사막은 산업사회의 쓰레기장이 됨. (()폐기장, 매립장의 정치학)

 

남반구 공유지를 지키지 않고는 북반구 공유지를 다시 만들 수 없다

리카르도 비교우위 법칙 : 산업국 소농 줄이고 노동력 싼 남반구의 먹거리 수입하는 게 타당.

산업국 공유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려면 남반구 공유지를 조사해야 한다.

글로벌 엘리트들이 관리하는 전 지구적 공유지(global commons)’, ‘지구촌(global village)’. 공유지 접근권 얻기 위해 이용하는 개념. 남반구 공동체에 대한 파괴, 파편화, 포획은 개발, 진보, 효율의 이름하에 정당화되었다. “공유지를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든다.” = “농부를 자급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세계 시장을 위해 생산하게 한다. 남반구 여성 노동력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공유지 지키기: 파푸아뉴기니의 사례 토지 동원mobilisation 프로그램에 대한 저항과 승리.

세계은행, IMF: 채무 이행 강요한 구조조정 프로그램(SAPs). 기름야자나무 플랜테이션, 광산 자원과 열대 원목 접근권 획득 위해 공유지 접근하고자 함.

토지 개혁에 대한 저항은 생계, 언어, 문화, 그 기반인 공유지와 공동체의 권리 유지 위한 투쟁.

언제든 고향에 돌아가 땅을 이용할 수 있어 기아, 노숙, 실업 문제가 없었다. 성공 모델.

공동체가 공유지 관리하는 한 개인 소유권, TRIPs 등은 쉽게 실행될 수 없다. 민중과 지역언론은 정부의 토지 동원, 토지 해방 정책의 배후(세계은행), 땅을 빼앗기면 구걸하는 거지가 된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충분히 풍요로운 사람들이다.

여성들의 적극성. 모계 전통 가진 씨족들에서 여성들은 관습적 토지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토지를 등록할 필요 없이 그러면 누구나 다 땅에 계속해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땅을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공동체들의 원칙이 세계은행, IMF, 국제 자본, 지역 정부까지 무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토지 동원령은 철회되었다.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의 접점은 있는가

공유지를 둘러싼 몇 개의 이론적 이슈들
자본은 식민주의적 엔클로저를 계속해야
독일 소농의 잉여화와 말살은 (1) 근대 산업농에의 통합, (2) 남반구 농산물의 수입과 연관.
남반구 민중은 자신의 자급/생계와 공유지의 연결고리를 여전히 알고 있다.
유럽의 도시 소비자와 농촌 생산자는 생계-땅 관계를 망각하고, 생계-/시장만을 떠올리게 되었다. 유럽에서 GATT/엔클로저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파푸아뉴기니로부터 배울 때다. 공유지를 지키고 재창조하는 일은 산업사회에서 생존의 질문.

 

새로운 공유지와 새로운 엔클로저

마르크스의 생각과 달리, 자본은 지금도 공유지의 엔클로저와 폭력적 식민화를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더 많은 지역/차원의 엔클로저를 의미 : 토지, 광물, + 종 다양성, 식물, 동물, 종자, 토착민의 지식. 생명공학, 특히 유전공학은 생명의 모든 구성물을 엔클로저/사유화.

인도 님나무 특허권 사례 : 토착 민중 공동의 지식을 약탈하려는 신식민주의적 시도.

인간 게놈 프로젝트 : 인간 게놈을 신성불가침한 인류의 공동 재산, 전 지구적 공유물로 선언(유네스코 윤리위원회)함으로써 유전자 기술과 상업적 이해관계에 자유 접근을 허용한다.

제약회사, 농업회사는 유전 자원에 대한 자유 접근권 얻기 위해 세계 유산으로 인정할 것 요구.

공동체의 공유지를 전 지구적 공유지’, ‘세계 인류 유산으로 선언 다국적 기업의 접근권 보장. 특허법에 의해 국가가 공공선의 수호자로 등장, 합법화 사유화, 상업화, 독점화의 합법화 지역 공동체의 몰수와 빈곤화. | 파푸아뉴기니 민중들은 속지 않았다.

 

북반구에서의 공유지 재발명

명확히 할 것들 : 1) 전 지구적 공유지란 없다. 공유지란 하나의 공동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2) 공동체, 공유지, 문화와 자급 윤리의 연결성. 인간 공동체와 자연 사이의 경계가 엄격하지 않으며, 상호 침투한다. 경제는 윤리, 문화, 영성과 분리되지 않는다. 쓰레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자본주의: 책임과 돌봄의 부재. 생산자(임노동자)는 사용가치에, 소비자는 어디서 와서 그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에, 관심이 없다.

쓰레기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공동체 : 생산과 소비를 다시 연결해 특정 지역의 삶의 지속성에 대한 공통의 책임감이 출현하도록 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공유지를 재창조할 수 있다.

 

쓰레기로서의 공유지

공유지를 재발명하려는 미국, 유럽의 사회적 실험들은 (1) 복지제도가 부닥친 벽, (2) 새로운 생산과 삶의 방식을 실험하려는 사람들 때문/덕이다.

탈산업화된 도시의 폐허 속에 공동체의 정원 창조하기, 지역 경제를 통해 새로운 공동체 세우기, LETS와 같은 시도. 쓰레기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상품화(민영 비료시설 건립)로는 쓰레기를 해결할 수 없다. NIMBY. 유기물 쓰레기를 부정적 공유물로 선언. ‘우리가 처리한다.’ 지역 생태계의 순환으로 다시 돌아가야.

북반구의 채무의 덫. 의문 제기. 가난한 자들의 생계/자급 기반으로 공유지 보존되어야.

공유지, 여성 그리고 자연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것

Garet Hardin “공유지의 비극”(1968) : 목장(공유지)이 모두에게 개방되면 목동은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목장을 파멸시킨다. 비극을 피하기 위해 공유지를 엔클로저, 사유화하고, 중앙 집중 권력 장치로 관리해야 한다. 이 단순한 논리가 신뢰받으며 문제 해결의 길로 여겨졌다!

 

여성 길들이기와 공유지 엔클로저

인류의 공동 유산이라는 신비화. 지구를 지키는 올바른 방법처럼 보인다.

공동체와 자연의 직접적 교환 작용은 비생산적이고 가치 없는 일로 간주된다.

공유지가 전 지구적 관심사가 되는 방식은 여성 노동의 가내화domesticationfmf 떠올리게 한다. 이상화됨과 동시에 비경제화. 삶의 재창조 활동에 대한 긍정적 느낌과 존중이 그 구체적 물질적 현현과 분리. 존중은 감성적으로, 경제는 사랑 없는 일로 되었다. 여성의 자급 일은 일이 아니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 착취가 아닌, ‘순수한 사랑이라는 이상화.

남성-프롤레타리아, 여성-주부. 프롤레타리아이면서 더 낮은 계급. 여성은 출산의 운명이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갖지 않게 되었기에 임금을 덜 받는 게 당연하게 되었다.

공유지도 마찬가지로 비가시화, 탈경제화되면서 매우 높게 이상화. 누구나 보호할 자격, 조작할 자격을 가졌다고 여긴다. 결국 거기 삶을 의존한 사람들로부터 땅을 빼앗는다. 공유지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만인의 권리로 쉽사리 조작되었다.

공유지는 순수한 자연/야생이 아니며, ‘재생산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무시된다.

 

자연 길들이기와 엔클로저

여성의 자급 노동과 공유지의 이상화와 비가시화는 같은 뿌리를 가진다. 자연과 경제를 분리하는 근대적 세계관. 인간과 자연의 교환에 기반한 생산 방식은 자연 과정 그 자체로 간주.

공유지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 그리고 여성 노동에 대가 없이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

자연은 생산적이기 위해 착취되어야 한다. 즉 단순히 자원이다.

 

비극에 저항하는 역사

멕시코의 깜뻬시니스따스-데스깜뻬시니스따스논쟁. 후자는 사회주의자의 정치적 프로젝트에 따라, 노동자의 기계적 연대보다 열등한 토착 농부 공동체의 유기적 연대를 파괴하길 원했다. 이들은 결국 멕시코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즉 국가와 국영 집단/협동 기업(가짜 공동체)에 의한 지역 공동체의 파괴(그리고 농부의 추방과 도시 프롤레타리아화)를 정당화했다.

논쟁은 상호부조의 공동체와, 그 위에 군림하는 공산주의 체제가 어떻게 다른지 알려 주었다. 결국 사회주의의 협동 제도와 자본주의의 사적 제도 간의 차이는 사소하거나 없다.

 

문화적 무지

하딘의 문화적 무지. 매우 대중적인 이데올로기를 확실하게 글로 드러낸 셈. 가난한 자들의 물, 공기, 공간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반대편의 과소비와 경제의 거대화를 정당화했다. 자신의 몸, 문화, 경제 형태, 사회구조, 자원, , 공기, 공간을 관리할 개인 주권에 대한 공격.

오로지 다른 사람의 상황에서 성찰함으로써만 자기 자신에 관해 알 수 있다.” 이것이 인종차별주의를 극복하는 필수조건이다.

 

경제 합리성 논리: 경제는 삶을 가져다주지만 어머니와 공유지는 삶을 파괴한다

부조리한 근대의 정당화. 자연의 다산성을 파괴적인 것으로 범주화.

여성의 자급 노동은 이상화됨으로써 비가시화되었는데, 하딘은 경제적으로 부적합할 뿐 아니라 파괴적인 것이라고 공공연히 선언.(급진화) 어머니 지구를 존중하던 세계관의 180도 전환.

하딘에 의하면 생명을 낳고 돌보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순전히 자연. 사람들은 통제 없으면 식물처럼 증식한다는 맬서스주의. 사회적 해결이나 여성의 자각적 결정 무시.

공유지, 공동체는 의식적인 인간의 재생산과 유지로부터 제거되며, 이를 사회적 책임 하에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에게 단 하나의 이성은 환경을 파괴하는 경제적 이성이므로.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것은 불합리하다. 공유지는 엔클로저 되어야 하며, 사유 재산을 소유한 인간들만이 경제적으로 적절히 행위하는 인간이고 나머지는 잉여인구이다.

 

공유지 다시 만들기: 자급 관점

공동체 없는 공유지는 없고, 공동체는 경제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유지 재창조는 곧 공유지 경제의 재발명과 연결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공적 공간을 지켜내고 다시 만드는 것. 부정적 공유지인 쓰레기에 대한 책임에서 출발.
세계화의 물결에 저항하는 지역화와 지방화. 생태적 지역 생산.
탈중앙집중화.
기계적인 대중 연대에 저항하는 것으로서의 상호부조. 모두가 환경을 약탈해 평등하게 나눠갖자는 사회 정의. 기술 진보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믿음. 이에 대한 우리의 비판. 기술 진보란 생태계 파괴와 여성 종속의 결과를 낳는 산업과 프롤레타리아화를 위한 변명을 제공할 뿐.
위로부터의 정책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정책. 우리는 전 지구적 해결책이나 전 지구적 거버넌스와 같은 새로운 거대 정부의 전 지구적 정치를 믿지 않는다. ‘여성의 경우 글로벌 정치학은, 모든 여성은 평등하며 따라서 가부장제하에 있는 북반구 국가의 도시 백인 여성의 기준에 따라 평등하게 취급되고 지배될 수 있다는 담론을 만다는 데 봉사한다.’
공동체를 실현하는 다중적 방식, 그리고 공동체의 다양성. (마치, 생태계 다양성)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3장 발제 중..

함께 읽기/생태론/페미니즘 2015. 6. 28. 18:4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3. 자급과 농업

 

아그네스와 리즈베스 : 여성의 손에 달린 토지 1989년 독일 쉔펠트에서의 대화

시몬농장

아그네스가 농장을 물려받은 이유

-여 문제

여성 농민에서 가정주부로

농부의 촌 냄새

관계들: 세대, 이웃, 마을

-문화-삶의 기쁨-페미니즘

근대적 농업정책

미래에 대한 관점

돈 벌이가 되는 일자리는 무슨 의미인가?

자급 지식과 감정들 : 염장, 발효 등 삶의 지식들, 돌봄, 농사 등 자연과의 관계의 지식들. 땅과 인간과의 상호 연결성.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에게 전수되어야 한다.

자급 소농 경제 : 자연과 연결, 생명에 밀착된 삶. 고난도 고생도 행복도 치유도 자연에 의해서 비롯됨.

도시 소비자 생활 : 인간과 연결, 관계, 서열, 비교, 권력관계에 밀착. 성공, 실패, 고통, 극복, 모두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평가에 의해서 규정.

 

여성과 생태학

도살, 가축의 삶 : 눈을 보기 어렵다는 것. 태어날 때부터 알아온 소. 정말 아름다운 동물. 하지만 죽기 위해서 길러졌다. 이것은 인간의 의도일 뿐.

생명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명은 언젠가 죽는다. 늙어죽든, 잡아먹히든 마찬가지. 본질은 계속 이어가는 것 아닐까. 가축으로 태어나 결과적으로 잡아먹히더라도 과정으로서의 의미는 충분할 듯.

내 현생을 영위하기 위해 너의 생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채식을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채식의 선택은 일종의 영적인 차원의 일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중요한 까닭 : 나 자신을 속속들이 존중하기 위해서. 나도 생명. 영혼은 이 세상에 생명의 형태로 나온다. 영혼으로서의 자아, 생명으로서의 자아. 생명을 받아 나온 까닭, 찰나적 생명의 무한한 네트워크, 모래 한 알의 장엄함. 이 앞에 겸손해지지 않고서 어떻게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을까.

 

, 자급의 기초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의도 : , 자본, 기계, 투자를 진정한 근원으로.

자본주의. 가부장제. 모두 시스템. 시스템은 뭐지? 왜 생기지? 개인들의 욕망의 공감대인가? 불안, 권력욕, 우월욕을 보장하기 위한? ‘암컷에게 선택받고 싶은 수컷의 본능의 사회적 형태?

생명은 여성으로부터, 음식은 땅으로부터.

농경문화와 소농 경제는 자급관점의 결정적 구성요소.

도시환경에서의 임금노동, 도시의 노동과 실험에 초점을 두면, 자급 능력이라는 아이디어를 회복하기가 힘들어진다.

좌파들조차 농업·소농 경제를 대안으로 택하지 못한다 : 소농 경제로 돌아가는 것은 그 지루한 필요의 세계로 퇴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땅·지구는 매우 특별한 질료이다. 산업자원이 아니라 매우 다른 방식으로 취급되어야. 근거는? 우리 하나하나가 소속되어 있다, 어머니 지구, 생명체 네트워크, 신성. 모두 영적, 개인적 차원에서 확인되는 것. 가치·세계관 차원의 공감이 필요.

경작이 토양에 적응해야 하는가, 토양이 경작에 적응해야 하는가.

 

생산력의 발전 대 농경

기아는 기술화의 한 결과이다. 식량농업기구가 수차례 기술을 통한 녹색혁명은 토지의 자본가 집중을 낳는다.

기술과 부정의한 분배는 동전의 양면이다.

기술, 즉 생산력의 수준은 그 자체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상이다.

좌파의 논리, 자급 경제는 산업 사회 이전 단계 즉 필요에 의한 생산으로 회귀하는 것. 자기 자신의 필요를 위한 수공업적 생산에 불과한 것.

사회적 필요노동. 하향식 권력의 작동에 의해 조직되어서는 안 됨. 땅에 대한 접근을 기초로 하는 상향식 상호관계를 통해 조직되어야

소규모의 혼합경작이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것은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우리는 땅에 의지해 먹고 살아야만 하는가

감자를 캐는 공포스러운 그림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20세기 말, 현재의 자급을 그려야 한다.

도시는 우리의 조건이자 현실이다. 도시에서의 자급을 구상해야 한다.

자급시장 철폐

 

독일에서의 소농 경제 파괴

농장 몰락 메카니즘. 자급지향에서 이윤지향으로의 전환에서 가장 사라지기 쉬운 것은 소농이 아니라 중간 규모의 농장 즉 빚을 내어 투자에 나섰던 이들이다.

 

소농 경제

모든 경작자를 농부로 취급하면 대토지소유주와 소농 사이의 구분이 은폐된다. 진짜 농부(소농)를 이윤창출을 위한 사업가의 무리에 끼우게 된다.

진정한 소농 경제의 특징 : 축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농장과 여러 세대에 걸친 생계 해결과 사람들의 재생산을 위해 운영된다는 것.

소농 경제는 땅, , , 식물, 동물들 안에서의 경제적 활동이 유한한 기반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자체로 특수한 삶의 방식, 간소한 생활문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 모든 사람들은 나처럼 자신의 땅을 가질 권리가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하나를 희생하여 다른 하나를 얻는 것을 금지하는 사회적 통제가 갖는 긍정적 기능을 깨닫지 못하여 마을에서의 삶이 갖는 편협성(함께 살기 live and let live)에 대항해 반항을 하기도 했다.

함께 살기. 도덕적 경제. 경쟁이 아닌 상호성. 모든 인간이 그들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생산의 필요조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농부, 농장주, 농경기업가. ‘농부라는 말에 들러붙은 경멸의 뉘앙스 : 아기의 똥을 치우는 어머니에 대한 경멸, 토양을 다루는 농부에 대한 경멸, 생명의 기본적 필요를 보살피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

 

[베스트팔리아 보르겐트라이히의 소농경제] : 1960~70년대 도덕 경제에서 최대화 경제로 이동한 마을의 사례. 소농 전통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오래전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개발에 대한 저항: 치아파스 농부들의 경우

[치아파스 소농들과 개발의 실패]

플랜테이션 개발이 실패한 사례.

77년 사파티스타 봉기, 82년 맥시코 부채 위기, 프로젝트 자금 철수, 개발의 길 위에 있는 실패를 감지한 첫번째 사람들. 자급용 옥수수, 호박, 콩 대신 수출용 화훼와 고급 채소를 공급하기 위해 빚을 내도록 유도됨.

그들은 자급 지향성 때문에 자신들에게 쏟아지던 퇴보적이다, 바보 같다, 이성에 둔감하다 등의 경멸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오랜 농경문화가 그들을 진보라는 종교에 의해 세뇌당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농 연구의 기여

자급 지향성 등 소농 경제의 잔존요소들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1920년대 러시아의 차야노프. 독립 소농 경제 이론 발전시킴. 생태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적응력을 지닌 소농 경제를 지지함. 농부를 임노동자화시키는 집단농장 콜호즈에 반대함.

소농 경제는 이윤극대화가 아니라 필요에 맞게 조정되었다. 그것은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위험은 피하며 운영되었다. 목표 이윤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하여 농장이 문을 닫지도 않았고, 더 높은 기대 때문에 자본이 다른 영역으로 이전되지도 않았다. 어려운 시기에는 사람들이 허리끈을 졸라매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적게 소비했다. 시절이 좋아지면 더 많은 여가를 즐겼고, 잉여 수입은 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축제를 벌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것을 유지시키는 일이 우선순위였다.

근대 초기 이후로 농부에게 부여되던 사회적 지위가 주부로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유사하다.

농부와 여성은 인간 존재의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필요에 종사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필요의 영역을 극복해야만 자유의 문이 열린다고 믿는 세계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 간주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우파나 좌파 모두에서 발견되며, 페미니스트나 여성 혐오주의자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우리가 현 세계를 위해 소농 경제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외극 경제 : 소농 경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양 극단의 경제 시스템 바깥에 존재

소농 친화는 낭만적이다? “최대화 경제로 다 해결이게 더 낭만적이다.

어쨌든 실업은 증가하고 사회복지의 축소는 계속될 것이고 따라서 비공식 영역이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문화 사회적 모델에 의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룸펜프롤레타리아트 모델인가? 아니면 사회적 경제 모델인가?

 

여성농부와 자급 관점

미래에 대한 공주병적인 전망 : 가능한 한 적게 일하고 투쟁 없는 평등을 즐기며 일상적인 필요에 의한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일종의 파라다이스.

농부의 삶은 여성에게 어떤 권리도 부여하지 않는 길고 긴 고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자급생활에서 즐거움과 고생은 동전의 양면이다. 만족과 자기 실현의 원천, 삶을 자신을 손아귀에.

유기농업 : 낭비된 기회?

소농 경제, 지역화 그리고 자급 관점

[농업의 산업화에 찬성하지 않는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