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까닭에'를 읽고

함께 읽기/인권 2015. 9. 20. 18:1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람인 까닭에'를 읽고 -이한진


인권에 대한 책이란 얘길 듣고 막연하게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권이라는게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평소 가까운 주제가 아니여서 일수도 있고, 어쨋든 인권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좀 거리가 멀어보이고 더욱 험한 환경에서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지키는 고귀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점에서 볼땐 이 책은 그 거리감을 좀 좁혀준 것 같다. 실제활동가들은 상상했던대로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겠지만 지키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개념설명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자연스럽게 들은 것 같고 내가 속한 곳, 내 주위의 사람이 다인 나에겐 생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단순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야라는 느낌보단 그냥 사람이구나. 이런 사연과 이유가 있었구나 그냥 공감하며 지나갔다.
그런데 한편 책을 마치고나니 무거운 마음도 약간 남는다.
인권이라는 말보단 연대라는 말이 이젠 좀 생소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듯하다.
연대한다는 것에 대해선 뭔가 정리가 안된 기분이다. 
기존에 연대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연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함께 사는 것을 기초로 하는 것 외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튼 뭔가 어려운 말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인것 같으나 그것도 어렵다.
나만의 고민이지만 청년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 약자가 되어버린 세상. 청년들이 연대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필요성은 느껴지나 어떻게 풀어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인 까닭에_류은숙 : 메모

함께 읽기/인권 2015. 9. 20. 11:40 Posted by 서형원

좋은 책을 써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저자 류은숙에게 감사를. 




150920사람인까닭에_메모.pdf



사람인 까닭에_류은숙 : 메모

과천녹색당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공부모임 _ 깃털 | 2015.9.20

 

당신이, 당신의 권리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회. 나는 이것이 모욕이 일상화된 사회만큼이나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 위험한 선동에 넘어가지 말라.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도 아니고, 불가침의 권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공적 투쟁과 사적 관용에 대해. 7-8.

 

앤지 젤터가 그런 궂은 일을 자처하는 것은 자신을 지구 시민 global citizen"이라 부르는 신념에서 나오는 것일 터이다.

글로벌 시티즌은, 시대의 절실한 요청이며, 삶의 근사한 지향이라 믿는다. 그런데 영어 global은 지구적이라는 말과는, 세계 경영, 국제적 인사, 지구를 누빈다는 말과는 내포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것은 공간적 정의 이전에, 내 생각에는 전구적(全球的)이라는 말에 가장 가깝다. 공 전체, ‘온전함’, 쪼개지거나 이지러지지 않은. 인격, 공감, 이해, 소통, 두루 생각해보자. (장회익의 온생명을 global life로 번역한다.) 47.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연대에 관한 저명한 이론가인 레옹 부르주아. “인간사는 거대한 채무관계, 다른 모든 이들의 도움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인간 각자에게는 타자에 대한 부채와 책임이 있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타인과 다음 세대에 베풀려고 하는 건 우리가 빚쟁이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해서, 사귀고 싶어서,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싶어서, 함께 더 즐거워지고 싶어서, 이런 것들이다. 빚진 심정으로, 괴로운 부채감으로, 자기를 불행하게 하는 / 자신은 즐겁지 않은 책임감 따위로는 웬만하면(아마도 절대로), 남에게 베풀지 마라. 억울해지고, 남에게 다시 내놓으라고 하고 싶어진다. 베풂은 비대칭, 다자, 그물의 것, 채권채무는 대칭, 양자, 족쇄의 것. 저자 류은숙은 어떤가? 79.

 

빈민의 삶 그 자체로 유명한 빈민

빈민 그 자체인 빈민, 농민/노동자 그 자체인 농민/노동자. 유명해지고 설사 대표가 될지언정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빈민, 농민, 노동자인 사람을 우리 사회에선 찾기 힘들다. 빈민/농민/노동자의 대변자나 천사는 넘쳐나지만. 빈민 정치인, 농민 정치인, 노동자 정치인이 없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비극에서 벗어날 힘을 갖고 있지 못한 큰 이유다. 유명인사, 대표, 정치인이 되는 것이 구질구질한 과거에서 벗어나는 입신의 길로 여겨지는 한, 더구나 억울한 과거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지는 한, 어렵다. 61.

 

이 싸움은 동정을 구하는 싸움이 아니라 권력을 구하려는 싸움이다.

이게 가장 중요. 복지나 경제적 평등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배분, 정치적 평등을 구하는 싸움. 뒤엣것 없는 앞엣것은 동정과 시혜를 구하는 것에 불과.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들과 경제적으로 평등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경제적 평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돈 벌 사람은 돈을 벌라. 질투하지 않겠다. 다만 품위 있는 삶이 가능할 정도의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이고, 무엇보다 타협할 수 없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완전히 평등한 정치적 권리, 권력을 갖는 것이다. (폴 우드러프, 최초의 민주주의 참고) 63.

 

노동 종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품위 있는 삶을 누릴 권리는 노동과는 정말 아무 관계가 없다. 노동해야 먹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범죄적인지, 착취의 공범이 되는 길인지, 모욕을 강요하는 일인지, 이성을 총동원해서 깊이 생각하라. 72-73.

 

품위와 조화. dignity & harmony. 삶에 이밖에 또 뭐가 필요할까? 73.

 

행복한 활동가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기본소득과 존경

류은숙, <사람인 까닭에>를 읽고

함께 읽기/인권 2015. 9. 16. 14:3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바시 / 류은숙『사람인 까닭에』/ 2015.9.20 / 박정원

 

연대하는 개인주의

-기대어서지 않는 관계는 없다-

 

‘인권은 개인의 것’

신체, 소유, 사상의 자유라는 삼두마차를 내세운 인권의 대표 구호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게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로운 계약이라는 미명 아래 갖은 임노동 관계에 얽혀 있으면서 대부분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할 부자유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청소년들에게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 학생이 “제가 옳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저는 자유를 느꼈어요.” 학교나 집에서 정해 준 선악에 따른 규범을 거부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자기’를 찾았을 때 자유를 느낀 것이다. 자유는 자기답기 위해 분투해야 얻을 수 있다.

- 멘토 자유인 유시민은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글쓰기)로 공동체에 기여(연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

 

스물네 살의 강용주는 5.18 때 수감되어 14년 만에야 감옥 밖 세상으로 나왔다. ‘사람이 다니는 대문을 놔두고 개구멍으로 기어나갈 순 없다’며 ‘준법 서약서’를 거부. 같은 처지의 고문 피해자들과 만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개인들은 만남을 통해서, 나만 아픈 것이 아니며 저 사람의 고통이 내 고통과 같다는 것을 느꼈다.

- 자신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정도는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문이 있어도 개구멍을 이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다 느끼며 살고 싶지는 않다.

 

당돌해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상상력은 연대하는 개인주의가 가진 제일 좋은 무기이다.

나에 대한 모욕에 같이 싸워 주는 다른 자기들이 없으면 나를 지킬 자신이 없다. 그런 자기들이 만나서 서로의 낯을 세워 주는 것이 연대하는 개인주의일 것이다.

- 연대도 개인주의도 다 인정. 연대의 정도는 나름의 방식으로.

2015830. ‘세상을 바라보는 몇가지 시선’ 4번째 시간.

살아가겠다(고병권 저)를 읽고.

삼호사 공사.

 

참석자 : 장예정, 홍지숙, 박정원, 서형원, 박병선, 이한진(기록).

 

지난 3번의 모임동안 나눴던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처럼 챕터별로 나눠 발제형식으로 하지 않고 간단하게 감상문을 기록해오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확한 주제의 구분이 없어서 그런지 자유롭게 이 얘기 저 얘기가 오갔고 덕분에 기록을 맡은 저는 혼이 반정도 나가있었던 것 같네요. 이 내용을 어떻게 정리해야하나 막막하다가 그냥 기록해 놓은대로 조금씩만 다듬어서 그대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대화록이라 해야 할 것 같네요. 놓친 부분도 엄청나게 많고 발언자가 말한 의도와 뜻이 맞지 않는 부분 많을텐데 불편하신 부분은 언제든 알려주시면 수정해나가도록 할께요. 읽으시면서 서술어 없이 말이 짧아도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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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 감상 발표

잘 산다는 것

사람이 잘 산다는 건 뭔가? 내 경우엔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어떻게? 내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찾아서 진정한 나를 표현하는 일, 나답게 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병권의 지식이 아니라 욕망이 생기게 하라’(p98)는 말은 나의 본성을 찾아 실현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니체는 그대들이 의욕하는 바를 언제든 행하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의욕할 수 있는 자가 되라!”(차라투스트라 p304)고 했다. 욕망하고 욕망을 실현하면서 만나게 되는 타인과의 욕망의 충돌 속에서 적절함을 찾아내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하여튼 살아가는 일은 남과 얽히는 일이고 타인이 없이 행복도 없다.

타인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나도 너도 억압되지 않고 함께 행복과 평화가 커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나, 그리고 세계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저자는 감히 알려 하고 감히 말하려 하는 용기가 참된 지식에 이르는 길(p60)이라고 말하고 있고, 각자는 자기의 앎이 이르는 수준에서 판단하고 행위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잘 살기 위해서 앎을 확장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잊지 않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계속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슈를 정하고 그것을 지속하는 방식에서 내가 드러난다. 철학한다는 것은 잘 사는 것에 대한 추구고, ‘행함으로 드러나는 지혜라는 저자의 생각에 매우 공감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고병권 씨의 내용에 많은 공감.

 

[서형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확장해야 하는가.

이것도 원래 학습된 오염된 사고방식 아닌가. 나와 나아닌 세계로만 구분되는 세계관이.

 

[홍지숙]

타인이 사람으로 안보였었다.

나와 나아닌 것을 분리하는 것은 어려운일 아닌가.

 

[박병선]

잡식가족 딜레마 영화를 보면서.

사람이 식량한테도 연민 동정 공감을 느끼는구나.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고 방식.

죽음의 소회.

먹는 다는 것이 살해하고 식량화되어 버리는.

죽음을 내리는 행위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혐오. 먹을 것에도 그렇게 대하게 되는게 아닌가.

 

[서형원]

어떻게 살 것인가가 훨씬 중요.

결국 죽고 사는 것이 반복 되는데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것 같은.

단순한 개체로만 놓고 보면 죽고 사는 것에 대한 단순한 생각에 머물게 된다.

 

[박병선]

옛날 공동체에선 공동체가 굶어 죽는 일이 있어도 개인이 굶어 죽는 일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홍지숙]

죽음이 또 다른 생명을 이어진다는 생각이 단절되고 분리되어서 드는 생각.

 

[박정원]

우선순위를 떠나서 나나 타인 모두가 존중되어야.

 

[홍지숙]

심리학 공부한 친구. 나르시즘이 강한 사람이 깨지면 타인에 대한 사랑도 커진다는.

 

[서형원]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살까 잘 살야할텐데' 너무 생각 많이 하는게 좀 쓸데없는 것 같다.

자아에 대한 사유. 어디까지 해야하나.

 

[장예정]

삼수한 친구. 연대고대를 거쳐 서울대. 별거 없더라.

앞만 보고 살아야 할 때도 있고.

자기를 돌아보며 사는게 필요할 때도 있지 않나.

결국 그 적정선은 사람마다 다르고 각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나.

 

[홍지숙] / 감상 발표

관습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틀 밖에서 사고하고.

학교나 회사나 속한 공동체에서 규칙을 자꾸 어기는 사람이었는데.

크게 보면 큰 주류에 순응하며 살았던 사람인 것 같다.

어찌보면 답이 앞에 제시되어 있었고.

기독교인이라 교리가 있고 답이 있었다.

교회 안에서는 늘 답이 있었다. 이런 삶을 추구해야 하는. 이럴 때 이래야하는.

대학교 기독교 동아리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참한 언니. 모두가 이 언니를 따라하는.

예수를 만들어서 정해놓고 예수를 따라하고 모방하는. 실제 예수님과는 상관 없이.

어렸을 땐 질문해도 되는지 몰랐다.

성경말씀에 너희가 신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알만한 것들은 세상 곳곳에 두었다는 말씀. 로마서 8장인가.

이렇게 해야한다는 생각, 욕망.

외부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습관.

억누를게 아니라 질문해 보는게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장애인 이야기. 읽기 싫고 자꾸 피하고 싶었다.

한꼭지만 읽고도 숨막히고 끔찍하고 비참했다.

 

회사 그만두면서 돈을 많이 주고 시간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자들이 밤에 안쉬고 공부했다. (책내용)

건강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답게 살려면 정신이 건강해질 수 있다면, 몸이 좀 축날 필요가 있나.

의자놀이. 쌍용차.

이제는 그만 읽고 싶은 마음이지만 결국 외면할 수 없는 진실.

 

3때 닭갈비 집에서 알바.

아빠 회사가 망했었는데 (그 땐 몰랐지만 집안에서 알고 보니 어려웠었다.)

아빠가 힘들어지셔서 꼭 알바를 해야한다고 설득하고 들어갔는데.

2일만에 그만둠. 너무 힘들어서.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과 있으면 내가 고3을 망칠것 같다는 생각.

 

[박병선]

초등학교 저학년. 콩쥐팥쥐 권선징악.

계몽사가 각색한 버전.

콩쥐가 쫓기다 못해 절벽에서 하늘에서 데려가는 이야기.

콩쥐처럼 살면 안되겠구나. 핍박받다가 죽겠구나.

어린아이들의 정서가 아닐까. 굉장히 비겁한 존재. 자기밖에 생각할 수 없는.

소외되고 고립된 존재를 확장된 존재로 만들어주는게 이 사회에 구성원이 되는 성인식이라 하는 것 같은데.

개인을 사회에 구성원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과정을 누락시키고 있는 것 같다.

양양군. 케이블카 반대하러 갔었는데.

찬성하는 사람이 버스 33. 1200명 왔다는. 해병전우회부터 젊은 사람들까지.

오색케이블 개발 이익. 경상도는 많이 먹었으니 우리도 좀 얻어먹자는 식의 논리, 떡고물 좀 먹자.

폭넓은 사고가 안먹히는. 다른 동네 사람들이 왜 간섭하냐는 식.

 

[서형원]

제로썸 심리. 결국 저놈이 가져가느냐 내가 가져가느냐. 뺏느냐 뺏기느냐의 문제.

그게 매달리는게 너무 중요하고 절박하다 생각하는 것. 남들이 해야 하는 것에는 해야만 하는.

곧 죽어도 오늘 먹고 떨어져야하는 것. 다음 세대니 뭐니.

 

[박정원]

나이브 한거 아닌가.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자꾸 알아야 한다.

토지를 읽다보니까. ‘임이네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 삶의 의지 일관되게 보여준다.

이기적은 혹은 이타적인 적절한 조화라고 해야하나.

나라는 것이 이타적인 것으로 인해 무시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성숙하기 위해서 이런 걸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걸 하면서 함께 사는 행위가 가능하지 않을까.

 

[장예정]

해를 품은 달. 원작.

김수현의 여동생 공주.

민화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사랑스러워 보일 수 있지?

이타적으로 살아야한다는 강박관념.

자신에게 가장 충실했던건 공주였다.

나에게 충실하라고 가르친 사람은 없었다.

'착하려고 사는게 아니라 행복하려고 사는거야'

저렇게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서형원]

그런 욕망을 가지고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나.

그것이 과제인 것 같다.

 

[박정원]

배치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

 

[서형원]

상당히 이타적이어야 한다고 배우고 자란사람.

스스로에 대한 억압이 심하다.

이기적인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시선 속에 질투. 공동체가 낙인 찍고 방출하길 바라는 마음.

양양에 할아버지들. 두근두근 쫓아내는 사람들. 미래 창조과학부 아니면 안되는 사람.

우리 같은 사람들을 낙인 찍고 잘난척한다고 추방하길 원하고 질투한다. 근본적인 정서.

착한사람들이 전부인 곳에서 한사람이 그 상황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면 그 사람이 다 가져가게 되어있다.

공동체는 그 사람을 추방하길 원한다. 천사 같은 사람들이 소수로 인해 악마가 되어가는 이야기 많다.

핵심은.

공동체를 위해서 이타적으로 선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지.

하나의 이물질만 생겨도 얼마나 얄팍해지는지. 욕망을 드러내지 않은 착한 공동체.

 

[박병선]

자신이 그런지 잘 모른다. 이권에 따라 움직이는게 세상 원리라는 자연스러운 것.

세상의 이치가 그런거다. 사람들의 그 이치가 낮은 차원이다라는 것.

미워하기 보다는 도와줘야 한다 알도록.

연민하는 마음이 모두에게 든다.

 

[서형원]

싸우는 방식으로 애정해야 한다.

지지고 볶아야 한다.

 

[홍지숙]

덮어주고 감싸주고만 살 순 없지 않은가.

 

[장예정] / 감상 발표

학생이라 공감되는 부분.

47. 오늘날 대학은 무엇인가 3가지.

꼭 대학을 가야하나라는 물음. 후회하는 것은 아니나 3학년인데도 잘 모르겠다.

저렇게 힘들게 등록금을 벌면서 학교를 다니며 얻게 되는 것이 뭘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아버지가 얘기하셨다.

학교에 가보니 조선시대에 대해 배우는데 새로운걸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다른 분야도 똑같겠구나.

그렇게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박병선]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덴마크 성인 자유학교. 학교가 싸지 않다. 기숙사. 수료증도 없다. 대학을 왜 다니나.

진짜 공부하기 위해서. 이직을 할 때마다 공부를 장려.

 

[서형원]

두려움 때문. 대학안나오면 뭘 하나. 취업도 안되고.

케이블 카를 놓는다는 것도 결국엔 다 두려움이다. 이 라인에서 떨어지면 나락이다라는 것.

그 줄에 서있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 떨어지면 절벽이 된 세상.

실제로 죽는다는 것을 봤기 때문에. 두려움의 실체를 보아서.

어디에도 고유성이라는 것은 없는 것.

 

[박정원]

남산강학원. 대학에서 학문이 죽었다. 인문학은 바닥이다.

대학을 안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 않나.

 

[박병선]

출산율 1% 아래로 들어서고. 애도 안낳고. 대학산업은 곧 정리될.

치킨게임을 계속해서 누군가 폭탄 맞겠지 하는.

 

[서형원]

탈출의 개연성과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

별 대안이 없어서 가긴 가지만.

탈출을 어떻게 조직할까.

코뮌으로 하면 그것이 의미가 있는 건가.

상업적으로 대체되버릴 수도 있고.

그냥 탈출하는 것만으로는 이 책을 읽은 의미가 약하고.

그 탈출이 의미가 있으려면 어떠해야 하는가.

 

[홍지숙]

먼저 그 길을 가는 사람 한사람을 만나는 것.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

 

[박정원]

탈출한다고 해서 또 뭐 대단한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은 일상에서 드러나는 것.

 

[홍지숙]

그래도 혁명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서형원]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들에 대해 모델 삼지 말자.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 모델이 될만한 사람이 있는지.

노동운동에 당연히 기반을 둬야하는데.

노동에 관련 없는 지식인, 지도자가 가득한 사회가 옳은가.

정말 삶에 모델이 있는가.

누구나 선택할만한 개연성이 있는.

 

[박병선]

결사적으로 전환해서 투사적인 형태가 아니라.

저렇게 살면 괜찮다는 모델?

 

[서형원]

자신의 출신이나 자신을 만들어온 무엇에 기생하는 것이 있다.

본인은 그것들보다 가치가 높다고 생각.

권력을 다투는 자리에서 그런 사람이 있나.

 

[홍지숙]

밀양 대책위 청년 3.

1. 거기서 농사짓고 살꺼다.

1. 20. 밀양시내에서 마을 원룸으로

1. 환경대학원 환경 공부해서 밀양으로 돌아가겠다.

 

밀양이 왜좋냐. 할매들이 좋고. 대책위 사람들이 좋고.

송전탑 영향아래 없는 사람들로 생성된 관계들이 좋다.

 

[서형원]

수수도 비슷하지 않나.

원래 그 마을 사람이 아니지만 운동하면서 사는.

전업활동가 좀 다른면이 있다.

 

[박병선]

이계삼씨가 한 말에 마음이 혹한건.

환경단체들이 현장에 뿌리내리는 걸 너무 안하더라.

이를테면 활동 전문가들 지킴이들.

투쟁의 형식이 삶의 형식이 되는 것이 확연해지나.

전문활동가 보도자료 내는 것과 가서 같이 사는 것.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살 장소를 선택하는 일이 되겠네 라는 생각이 든다.

 

[서형원]

전문활동가 비평을 쓰는 사람들.

노동자였는데 현장에서 변화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

선비 같은 사람. 의병장처럼. 인품이나 지식이 훌륭해서 리더가 된 사람들. 지사들.

지킴이. 새로운 분류.

지사들에 지목하는 것은 퇴보하는 방법이 아닌가.

지사는 욕망을 안드러낸다. 적어도 끝까지 그런척하며 살 수 있는.

 

[박정원]

욕망을 드러내고 안드러내고 보다.

기본적으로 명예욕이 있는 것 아닌가.

아무튼 내가 일체화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도닦는 일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서형원]

지사. 플라톤의 철인 정치가 말하는 철인이 아닌가.

 

[박병선]

내가 진짜 바라는건 뭘까. 계속 고민하는.

자유롭든 자유롭지 못하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박정원]

억압이라는 것.

부자유스러운 것.

 

[홍지숙]

성경에 가진 것을 모두 팔아 밭을 산다.

밭에 금화가 있다는 것을 아니까.

제자가 보물을 갖고 싶으니까 억압하고 도닦는게 아니라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타인을 병들게 하지는 않을 것인데.

도닦으며 살고 싶진 않다.

 

[장예정] / (발표 이어서)

대학 외의 이야기.

탈 시설 운동을 어떻게 읽었는지 다른 분들 이야기 궁금.

장애인 인권영화제 스텝 했을 때.

시설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내용의 영화.

과연 이 시설을 벗어났을 때 살 수 있을까. 행복할까.

장애인이 많기 때문에 실제 장애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다 다르지 않을까.

 

[서형원]

장애인 운동은 철저하게 당사자 운동으로.

교도소는 그래도 보이는 곳.

사각지대에 있는 곳이 지옥이 어딘가 있다.

 

[박정원]

스스로 표현하게 해서 스스로 깨닫고 욕구를 표출하도록.

탈시설을 자기 의지로 하는 사람이 그래서 나오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욕구대로 살려고 하는 의지.

결국 인간에 대한 태도인거죠.

만인이 다 공부해야한다로 귀결되는 것 같다.

 

[박병선]

당연히 탈시설해야한다고 생각. 책 읽고 더 그렇게 생각.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는 것.

장애인들을 부담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외부적인 목적으로 해야 하는 것 말고.

탈시설 그렇게 되면 질문을 더 세게 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안에 있던 사람이 밖으로.

안에 있어도 대책이 없으니 일단 나와서.

 

[서형원]

대책이 있든 없든 나와야. 생존에 대한 것.

지금의 내 삶의 행태는 계속 싸움의 행태일 수 밖에 없을지라도. 그렇게 사는 것.

소설이든 르포든 그 사람들의 삶이 불쌍하게 비추도록 한다면 잘못됐다 생각한다.

아이들 불쌍하게 비춰서 기부 받는 모습에 질린 (ㅎㅈ 선생님 딸.)

동정 연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친구가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 굉장히 잘못된 태도.

 

어떤 조건에 있던지 간에 시설이나 노예제도에 있지 않는한 삶의 해학을 느끼며 산다.

가난한 뒷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나름 행복. 살아겠다는 대단한 의지라기보다 살아가게 되는 그런게 있는데.

타자로서 너무 그런 삶을 불쌍하게 전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닌가.

친구가 되지 못했으면서 그 사람 이야기를 전하는것.

중졸 고기집 알바하는 사람들(홍지숙 고3 이야기)과 친구가 되는게 행복해야 한다. 실제로 즐겁다.

삶의 다양한 용기와 의지를 느낀다. 나도 그렇게 될까봐의 걱정보단.

 

[박정원]

주제넘게 연민하는 것.

인간의 존엄성. 한사람 한사람에게 우주가 들어있다.

그 사람 자체로 완전한건데.

존엄성을 생각하고 지켜주는 태도 예의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홍지숙]

아이가 장애인이 아닌데 어눌한 아이를 둔 엄마.

자기 딸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냥 생각났다.

 

[서형원]

예전 동네에선 다 드러났는데.

정상과 비정상을 더 나누고.

산업일군이 아닌 사람을 숨기는.

위생사회랑도 비슷한데.

 

[장예정]

장애인을 대하던 조선시대.

렛미인. 못생기면 장애인이 되는.

못생겼다고 때리는 아빠. 그 아이를 성형시키는.

사회 전체가 병들어 버린 것 같다.

 

[박병선]

맹인들이 안마사 하는게 정책이었던 조선시대.

사람으로 같이 살아야하니까.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맹인 친구학교를 만들었다. 1900년대 후반을 거치며 없어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을 미적 기준이건 기준을 하나로 제시하는 것.

그 하나에 맞추도록 너도나도 강요하는.

매체의 발달이 좋은 것인가.

이미지가 모든 것을 다 가져간다.

 

[홍지숙]

우리 안에서 해당되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 나누고 있는데.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의 기본적으로 호감형.

하나라도 해당 되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으면 굉장히 부담되지 않을까.

 

[박병선]

괜찮은 사람들?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이런 얘길 나누기 어려워도 그래도 나눠야 하지 않나.

 

[서형원]

인문학. 상대적으로 덜 배운 사람들에게

우리가 있는 자리에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계속 생각하고 조심해야하는 부분이 아닌가.

자연스러운 것보다 의식해서 노력해야하는 부분이라 여겨지니

기능적인 모임이 아니라 삶에 변화를 주고 싶은 단체나 모임들

삶의 다양성이 반영되고 있는가 예민하고 있는가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

우리 동네사람들이 잘해왔다는 생각은 든다.

비닐하우스에 살던 주민들이 이웃이 되어가는 과정.

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그 반대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시설을 깬다는 것, 사회의 계층을 깨는 작업들을 계속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처음부터 다양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건 어렵지만 그 점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박병선]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

어제 탈핵캠페인.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이런거 다 필요 없는 일이야 던지던.

이런거 하는게 뭐 하러 가는게 아니구나 그냥 삶이구나.

삶에서 이것이 최선인 것이구나.

캠페인을 할 수 있는 생활이니까.

세월호에 대한 행사에 그냥 가는 것. 최소의 형식이겠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서형원]

그런데 그게 옳다!라고 하면 뭔가 달라진다.

 

[서형원] / 감상 발표.

http://ecologists.tistory.com/12 (길어서 링크로)

 

[홍지숙]

이계삼이라는 사람이 모델이 되도록 이계삼을 만든 사람들이 존재.

 

[서형원]

누군가를 따라가는 일이 가장 쉬운 일.

스스로 하려고 하는게 너무 힘든 일. 정치. 경제.

참여라는게 억압적인 일이라 느끼는.

유명한 정치인, 이계삼에게 의탁하는게 자연스러운 일.

시민운동도 제가 대신 해드리겠습니다가 판을 치고 있다.

당장에 좋은 일이 일어날지는 몰라도 사회는 안바뀐다.

 

[박병선]

김연아 박지성이 싫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아이들 티비에서 항상 나온다.

 

[서형원]

꿈을 주입하려는 것. 조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이계삼이 결론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대안을 말하는 책에서 대안이 못되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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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모임은 2015920. 사람인 까닭에(류은숙 저)를 읽고 나눕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몇가지 시선모임은 계속됩니다. 5번째 시간에 뵙겠습니다

소감문이라고 썼지만 짧은 단상들입니다. (조금 고쳐서 다시 올렸습니다.)


150830살아가겠다_고병권_소감문v2.hwp

150830살아가겠다_고병권_소감문v2.pdf



소감문 : 살아가겠다_고병권

과천녹색당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공부모임 _ 깃털 | 2015.8.30

 

철학하는 왕을 철학하는 데모스로.

철학하는 데모스, 이성을 사용하는 대중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희망일 거라고 자주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결국 철학하는 데모스가 어떻게 탄생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람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가진 이가 곧 민주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아직 그렇다고 주장할 정도의 생각은 아니다. 사람을 깊이 신뢰하지 못하면서 민주주의자인 양 하는 이는 시대를 잘 타고난 권력 추구자에 불과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45.

 

폭력을 행사하기 전에도 시설은 잔인하다. 인간의 삶을 날 생명으로 떼어내어 권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시켰다는 점. 한 삶이 날 생명으로 분리된 채 관리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시설의 장애인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을 개체로 발가벗기는 이 사회에 순응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조화로움을 체험하는 삶, (경제적, 정치적 힘을 가지는) 공동체, 세대를 잇는 삶을 허용하지 않고, 개체로서 권력 앞에 웅크리도록 강제된 것이 현대의 삶이다. 우리는 날 생명이며, 잔인하게 벌거벗겨진 무기력한 생명체다. 이 조건 위에서 지배가 작동한다. (개체의 생명과 권리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태도에 대해 돌이켜 생각할 필요가 있다.) 71.

 

의지가 꺾일 때 바보가 생겨난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지를 꺾어 놓는다79.

 

시설사회, 시설병을 앓는 사회, 생명권력

어떤 바보들은 인간의 문제가 심각한데 무슨 동물복지냐고 말한다. 모두 우리가 만든 지옥들이며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장애인 시설, 정신질환 관련 시설(최근까지도), 바닷가와 배 위에 있다는 노예 노동 등등 사람으로 채워진 지옥들과, 동물로 채워진 축산 공장은 다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지옥 위에 집을 짓고 산다는 바로 그 점에 있다. 80.

 

인권 담론은, 권리 단위를 고립된 생명으로서 재생산하는 측면이 있다.

인권은, 개인을 억압한다고 전제된 공동체와 폭력을 독점한 국가로부터 개인을 지켜내는 매우 소중하고 타협 불가능한 가치다. 더 큰 조화로부터 뿌리 뽑혀 무기력한 개체로 내던져진 삶의 존재 조건 자체에 대해서는 어떨까? 자본주의는 개인을 신분적으로 불평등한 과거의 생산관계에서 떼어내어 인권의 진보와 동시에 새로운 지배-피지배 관계 구축에 성공했다. 81.

 

정상적인 삶은 없다. 비정상의 삶을 연민하는 데서 멈추지 마라. 81-82.

 

탈출 구축 기성의 삶을 공격하고 변형시키는 투쟁

논리로는 늘 옳다 여기면서도 한 번도 실감나지 않는 이야기. 왜일까? 새로운 코뮌을 구축하는 것 자체로 심원하고 의미 있고 즐거운 프로젝트. 그래서 비정상 속에 하나의 정상을 만드는 데 그치고 다음으로 잘 나아가지 않는다는 느낌. (논리적/현실적) 단계론에는 늘 함정이 있다. 처음부터 정치여야 하지 않을까. 너무 깔끔한 논리는 더 생각할 의무를 적당한 데서 멈출 핑계가 되기도 한다. 82-82.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 죽는다. (들뢰즈) 자신일 수도 있었을 많은 것들을 실현시키지 않은 채 죽어간다.

거꾸로다. 기계 부품이나 노예일 때, 타인이 나를 규정할 때 내가 누구인지 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테론 그레이조이는 램지 볼튼의 장난감이 되고서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되었다.) ‘나는 누구입니까?’ ‘너는 장애인이다.’ 사실은 누구인지가 아니라 무엇인지겠지만. 저자의 말대로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라면 그 삶은 멈추지 않으므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고, 심지어 누구인지 알려하지도 않는다. 나는 삶을 누릴 뿐이며, 굳이 말하자면 내가 누구인지는 내 삶이라는 책을 통해 사후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으나, 역시 나의/주체의 삶은 말과 지식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은,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말 자체가, 조작된 욕망일 가능성이 크다. 개체에게 무한이 어디 있냐?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96.

 

현장이란 시간공간이 결합되어 있는 흥미로운 단어이다. 무엇보다 사건시공간이다.

현장에 있다는 말은 어떨 때 쓸 수 있을까? 현장이라는 말은 자부심과 두근거림을 동반한다. 거기 긴장이 산다. 아마도 현장은 갈림길이며, 의지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시공간이기 때문 아닐까. 현실을, 삶을, 이편으로도 저편으로도 이끌 수 있는 그 갈림길에 발 딛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삶 아닐까. 대체로 현실은 무기력하고 정해진 듯하지만, 어떤 시공간의 어떤 삶은 변화의 가능성에 발 딛고 있다는 것. (거꾸로 말해 현장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정해진 대로 산다는 것, 혹은 내 의지로 선택할 변화가 없는 삶을 산다는 것.) 104.

 

죽음의 설교자

내 삶의 가치를 절하하는 사람. 내 의지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사람. 내게 기대하는 게 없는 사람. 나를 장애인, 혹은 정해진 어떤 것이라 부르며 규정짓는 사람. 수많은 주인들, 스톡홀름 증후군은 대체 얼마나 보편적인 질병인가? 117.

 

우리 안에 맹수가 살고 있다.” 학생들이 자기 안에 산다고 확신하는 그 맹수는 아마 그동안 입은 상처의 표시겠지만 앞으로 그들의 엄청난 힘이 될 수도 있겠다.

내 안에도 맹수의 의지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의지의 억압에 대한 순응에서 탈출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또 한 편, 이제 이 사회는 상처 받은 맹수를 풀어놓으라고 이 멋진 맹수 전용 상품을 사라고 부추겨지기도 한다. 사회가 맹수를 길들이기 전에 내가 맹수의 주인이 되는 것이 그래서 문제다. 117.

 

소위 대안이라는 것 자체가 좌우 엘리트들에 의해 구조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현실적 대안이라는 말의 득세와 함께 그들의 권력이 공고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현실적 대안이 없음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 ... , 혹은 하나의 대안을 다른 대안으로 계속 바꿔치기 하며 대안 없음에 대한 자각을 늦추는 것.

적어도, 너희에게는 대안이 없다고, 분명히 말해야. 그러나 어차피 대안은 없구나, 라는 안도와 안주도 안 된다. 자칫, 생각하기를 멈추게 된다. 131.

 

난 석사학위를 땄고, 그 대신 5만 불의 학자금 대출을 떠안았다. 보험도 안 되는 2개의 파트타임을 뛰고 있고, 의료보험도 없으며, 집도 없고, 아이 둘을 키워야 한다. 젠장, 완전히 엿같다!” “해고는 살인이다!” ‘이 체제의 존속은 살인이다.’ ‘삶의 불가능성에 대한 고발.

우리는 매일 듣는다. 삶이 체제에 하는 말, 삶이 불가능하므로 체제도 불가능하다. 136, 146-147.

 

민주주의의 직접성과 직접민주주의

민회를 통해 민주주의의 직접성을 체험(해방)하면서, 그런 해방에 턱없이 부족한 직접민주주의와 같은 제도적 변화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도전해야 한다. 해방의 체험에 안주하지도, 그 순간에 중독되거나 집착하지도 마라. 비루한 현실에서도 그 현실의 구차한 개선에서도 빠져나가지 마라. 137-138.

 

목적과 수단은 분리되지 않는다. 당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가 당신의 투쟁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운동은, 투쟁은, 예시적이다.

나도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그 예시적 삶이 충분히 유혹적이어서, 내 삶과 우리의 투쟁을 이어줄 거란 믿음이 사실 잘 들지 않는다. 훌륭하게 살면 훌륭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위로가 되나? 삶과 세상이 이어지는 지점에 대해, 더 집요하게 생각하기 힘들어서 택하는, 논리의 위안 같은 건 아닐까? 훌륭한 삶은, 세상의 변화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그 자체로 좋고 그 이상 생각하는 건 무리라고, 이렇게 솔직하게 (도가적으로?) 말하는 게 옳을까? 139.

 

이제는 운동도 무한정의 시간에 직면하고 있다. 단기냐 장기냐가 아니라, 시간을 한정하지 않는 어떤 운동의 형식, 시간의 한정성을 넘어선 투쟁의 형식 우리는 시간적 무한정성을 다루는 운동의 형식을 발명해야 한다.

최소한의 올바름. 그냥 절망하지는 말라는 거지. 144, 147.

 

지킴이들의 삶의 방식. 현장의 삶. 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정당한 방식으로 선택할 만하다. 지킴이와 같은 삶이, 특이한 몇몇 사람의 삶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삶의 한 형태가 될 순 없을까? 가능할 것도 같은데. 149.

 

당시의 지배적 감성, 노동자는 낮에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밤에 자지 않고 읽고, 쓰고, 토론하는 노동자들이 생겨났을 때가 해방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넘어서는 그 깨침의 과정을 나는 공부라고 말하고 싶다.

어떻게든 시간을 짜내어 공부를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노예인 줄 모르는 것, 오늘 노동의 스트레스를 푸는 오락이나 내일 노동을 위한 휴식이 아닌, 쓸 데 없는 일들에 매달리는 사람을 경멸하는 것, 이야말로 정말 가련한 일. p. 188.

 

해고는 살인

해고가 살인이라면 고용은 뭐냐? A에서 벗어나는 게 곧 죽음이라면 A는 살인의 공범이다. 어째서 임금노동자 되기가 인간 삶의 보편적 조건이 되었는가? 비극은 해고에 있는 게 아니라 임금노동자로 고용되어야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203.

 

청년유니온. 존재 자체가 연대

마음으로 연대하고 가끔씩 가서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위치(position)를 연대의 일부로 이동해야 한다. 연민이 아닌(연민도 중요하다.) 연대라면. 218-219.

 

이계삼

민주주의의 직접성을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노동자, 농민,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쓰기 시작했다가, 다시 헌신하는 소수의 삶의 이야기로 후퇴했다. 이 책은 여전히 현장에 있지 않다. 이름 불리는 사람의 삶을 동경하지 마라. 221-233

 

그동안 현장을 장악했던 건 기독교 담론이에요. 헌신, 봉사, 이런 담론.

해방의 기독교와, 헌신과 봉사의 기독교. 원래 기독교는 무엇이었냐, 따위의 질문은 의미 없다. 해방의 종교/사상이 필요할 뿐. 238

고병권, <살아가겠다>를 읽고

함께 읽기/인권 2015. 8. 23. 16:1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상을 바라보는 몇가지 시선 / 고병권『살아가겠다』/ 2015.8.30 / 박정원

 

잘 산다는 것

 

사람이 잘 산다는 건 뭔가? 내 경우엔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어떻게? 내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찾아서 진정한 나를 표현하는 일, 나답게 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병권의 ‘지식이 아니라 욕망이 생기게 하라’(p98)는 말은 나의 본성을 찾아 실현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니체는 “그대들이 의욕하는 바를 언제든 행하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의욕할 수 있는 자가 되라!”(차라투스트라 p304)고 했다. 욕망하고 욕망을 실현하면서 만나게 되는 타인과의 욕망의 충돌 속에서 적절함을 찾아내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하여튼 살아가는 일은 남과 얽히는 일이고 타인이 없이 행복도 없다.

 

타인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나도 너도 억압되지 않고 함께 행복과 평화가 커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나, 그리고 세계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저자는 ‘감히 알려 하고 감히 말하려 하는 용기’가 참된 지식에 이르는 길(p60)이라고 말하고 있고, 각자는 자기의 앎이 이르는 수준에서 판단하고 행위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잘 살기 위해서 앎을 확장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잊지 않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계속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슈를 정하고 그것을 지속하는 방식에서 내가 드러난다. 철학한다는 것은 ‘잘 사는 것’에 대한 추구고, ‘행함으로 드러나는 지혜’라는 저자의 생각에 매우 공감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