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수용소와 공론장

3장 공론장과 자유

● 공론장 : public sphere 또는 in-between space. 사이공간 / 탁자의 비유

나와 너를 구분해주는 사이, 나와 너의 거리감, 중간지대

일체가 아니라 독립된 개체인 각자에 대한 상호인정, 존중, 합의, 조정이 이루어지는 공간

정치가 행해지는 자유의 공간 / 행위의 공간

 

1. 자유란 무엇인가

 

● 고대적 의미 : 필요로부터의 해방

오직 타인에 대한 폭력에 의해서만 가능

시민에게만 가능한 특혜

콩스탕 : 고대의 자유는 집단자유, 시민 전체가 권력을 나누는 것


● 중세, 봉건사회 : 면제, ‘세금을 내지 않는 자는 자유로우며 그들은 귀족이 된다

자유 = 면제특권, 배타적 권리 = 고귀함, 양육, 관대함, 대범함


 ●  자유주의 : 모든 인신적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왕이나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와 간섭, 방해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상태

- 홉스 : 자유는 저항이 없는 상태, 나를 막아서는 것이 없는 상태.

가장 큰 저항은 살해에 대한 공포

이 공포를 피하기 위해 국가(리바이어던)와 계약

자유 반납의 대가로 생명, 사적 소유의 안전을 보장

콩스탕 : 근대적 자유는 개인 자유, 정치권력과 제도로 하여금 사적 소유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

 

- 고대 폴리스에서의 자유는 정치적인 영역에서만 중요, 근대에 와서 자유는 비정치적 영역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바뀜

자유와 안전이 동일시되는 한, 개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공포의 흔적들은 더욱더 자주 드러난다. ‘타자에 대한 불신은 안전사회라 하더라도 줄어들 수 없고 제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 어둠을 다 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안전을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타자에 대한 불신을 의도적으로 증폭시킴으로써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는 경향이 강하다.

- 불신을 기반으로 안전 논리는 공간-공론장을 분리하고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확대

- 타자와의 만남의 장소 상실, 공동의 문제에 대한 관심 상실, 결국 나 아닌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게 됨.

- 객관적인 적, 내부의 적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을 고립시킴. 안전 논리는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논리

- 결국 나의 자유 상실.

 

자유는 행위로 드러날 뿐 감각을 통해 확인할 수 없다. 내면의 자유만 가지고는 자유로울 수 없다. 세계-공론장에서의 관계와 행동과 실천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 자유의 조건

1. 자유에는 인간들 간의 만남의 장소, 물리적인 공간, 정치적 행위와 말들이 통용되는 공론장이 필요하다자유는 나와 나 자신만의 뜨거운 논쟁이 아니다. 자유는 철저히 외부 세계와의 문제, 자유는 정치 없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2. 자유와 행위는 동일하고 행위는 공동세계의 원칙에 의해 촉발된다공동세계의 원칙은 탁월함,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모든 사람 가운데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 정신이다.

3. 자유는 훈련, 기교를 필요로 한다정치영역에서의 기교는 말과 행위의 능숙함, 타자를 염두에 두고 말하고 행위하는 능력.

4. 자유는 배타적 주권·지배·명령이 없는 곳에서 가능하다.

 

- 이사야 벌린, ‘적극적 자유가 옹호하는 자기지배에서 자기가 무한히 확장하여 국가나 집단이 되어버릴 경우 전체주의의 위협이 다시 도래할 것이다.’ 무질서가 전체주의를 낳을 것이다. 박정희의 논리.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전체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2. 권력이란 무엇인가

 

고립된 대중은 자기 이외의 사람과 소통할 수 없다. 이것은 공동세계의 파괴, 공통감각의 상실, 세계성의 상실이다. 이 때의 대중은 의외로 쉽게 자신과 타자를 동일시한다. 자기가 갇혀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주관성에 타인을 동일화해버리기 때문이다.

공론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정치적 행위는 작업(노동, 작업, 행위의 구별)처럼 지속성을 가지기 어렵다. 정치적 행위에 지속성을 부여해주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열린 공간에서 서로 소통하는 복수의 인간이 동의할 때 생기는 힘이다. 열린 공간이 없다면 권력은 사라진다. 그럴 때 남는 것은 폭력, 배타적 주권이다.

권력은 공론장에 불을 켜 두고 정치적 인간들이 만들어 낸 더 나은 것들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3. 자유와 평등이 다를까?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복수의 타인과 공동체를 인식하는 정치적 인간만이 자유를 경험한다. 정치는 자유다. 생존을 위한 삶(조에, 수용소의 삶)을 두고 자유롭다고 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삶(비오스)까지 누릴 수 있어야 자유로운 삶이다.

사회와 정치공간은 다르다. 사회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나의 것과 공동의 것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고대에 경제와 노동은 영역은 가정, 사적 공간이었다. 지금은 경제와 노동이 사회의 전 영역을 차지해버렸다. 인간의 행태는 생산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표준화되었고 자발적인 행위나 탁월함이라는 고대의 가치는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활동을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생각한다. 생존이 공적인 것으로 등장하는 세계가 되었다.

가장(, 주권자)이 휘두르는 권력 앞에서 유지되는 가족구성원의 평등, 생존을 위한 평등은 노예의 평등이다. 여기에 자유는 없다.

그렇다면, 생존은 보장되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보장되어야 개인이 해방될 수 있고, 해방된 개인만이 자유롭게 복수의 타자들과 함께 공론장에 참여하여 권력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권력은 생존을 위협하며 모두의 생존이 보장될 수는 없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자유는 이상주의자의 헛된 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정치는 사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삶, 할 수 있는 것들 중 최고의 것에 따라 사는데 필요하다.

 

4. 왜 정치에서 용기가 중요한가.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사적인 생활의 필요나 외부의 강요에 굴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두려움에 처해도, 욕망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판단)을 버리지 않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 속에 공포의 감정을 결여하거나 단번에 극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보려주려는 것이 공포가 아니라고 결정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공포와 두려움을 피해 자기보호로 나아갔던, 홉스의 의지 없는 인민들의 경우와는 정반대다.

가정은 생존의 위한 사적 영역, 필요의 영역, 노동의 영역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지루한 일상과 가혹한 반복이 주는 고통을 견디는 인내이다. 정치적 삶은 이 지겨운 일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용기 역시 가정 안의 삶 속에서는 드러날 수 없다. 반드시 폴리스에서의 좋은 삶을 전제해야만 가능하다. 용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가정이라는 안온한 필연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고, 진정한 인간으로서 영위할 수 있는 좋은 삶역시 요원하다. 오직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만이 필요만을 원하는 동물적 삶을 넘어 진정한 인간으로, 정치적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다.

인간이 가정에서 폴리스로 나오려면 심연을 건너야 한다. 이것은 따뜻하고 안온한, 엄격한 불평등의 장소인 가정에서 나와, ‘자신이 가혹하게 노출되고 불편하고 불안정하고 행위가 가지는 허약성이 온몸으로 느껴지는공적 영역으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적 영역 자체가 공적 영역의 자리를 대체해버린 오늘날 심연은 사라졌을 뿐 아니라 감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오늘날 공적 영역은 사라지고 심연도 사라졌다. 심연을 건너는 수고로움도, 심연을 건너서 맞이하게 되는 가혹한 노출과 곤경도 사라졌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기묘하게 뒤섞인 사회에서 대중은 노예의 풍요로움은 맛볼 수 있지만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잃어버렸다. 이는 곧 진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래, 너 잘났다!

 

- 김상봉 : 용기를, 정신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는 것,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상호적인 것, 도덕적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정신의 강건함, 도덕적 당위에 따르는 것.

- 홀로주체성 : 타자 없는 자유, 로빈슨 크루소, 노동·작업과 관련

- 서로주체성 : ‘의 인격적 만남으로서 자유가 가능,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

우리 시대에 공론장을 다시 만들고 정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용기이다. 수용소의 무슬림 같은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 단계 역시 용기이고, 이것은 우리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하나의 시작이며 우주가 이미 존재하게 된 이후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