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까닭에'를 읽고

함께 읽기/인권 2015. 9. 20. 18:1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람인 까닭에'를 읽고 -이한진


인권에 대한 책이란 얘길 듣고 막연하게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권이라는게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평소 가까운 주제가 아니여서 일수도 있고, 어쨋든 인권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좀 거리가 멀어보이고 더욱 험한 환경에서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지키는 고귀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점에서 볼땐 이 책은 그 거리감을 좀 좁혀준 것 같다. 실제활동가들은 상상했던대로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겠지만 지키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개념설명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자연스럽게 들은 것 같고 내가 속한 곳, 내 주위의 사람이 다인 나에겐 생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단순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야라는 느낌보단 그냥 사람이구나. 이런 사연과 이유가 있었구나 그냥 공감하며 지나갔다.
그런데 한편 책을 마치고나니 무거운 마음도 약간 남는다.
인권이라는 말보단 연대라는 말이 이젠 좀 생소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듯하다.
연대한다는 것에 대해선 뭔가 정리가 안된 기분이다. 
기존에 연대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연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함께 사는 것을 기초로 하는 것 외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튼 뭔가 어려운 말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인것 같으나 그것도 어렵다.
나만의 고민이지만 청년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 약자가 되어버린 세상. 청년들이 연대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필요성은 느껴지나 어떻게 풀어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인 까닭에_류은숙 : 메모

함께 읽기/인권 2015. 9. 20. 11:40 Posted by 서형원

좋은 책을 써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저자 류은숙에게 감사를. 




150920사람인까닭에_메모.pdf



사람인 까닭에_류은숙 : 메모

과천녹색당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공부모임 _ 깃털 | 2015.9.20

 

당신이, 당신의 권리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회. 나는 이것이 모욕이 일상화된 사회만큼이나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 위험한 선동에 넘어가지 말라.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도 아니고, 불가침의 권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공적 투쟁과 사적 관용에 대해. 7-8.

 

앤지 젤터가 그런 궂은 일을 자처하는 것은 자신을 지구 시민 global citizen"이라 부르는 신념에서 나오는 것일 터이다.

글로벌 시티즌은, 시대의 절실한 요청이며, 삶의 근사한 지향이라 믿는다. 그런데 영어 global은 지구적이라는 말과는, 세계 경영, 국제적 인사, 지구를 누빈다는 말과는 내포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것은 공간적 정의 이전에, 내 생각에는 전구적(全球的)이라는 말에 가장 가깝다. 공 전체, ‘온전함’, 쪼개지거나 이지러지지 않은. 인격, 공감, 이해, 소통, 두루 생각해보자. (장회익의 온생명을 global life로 번역한다.) 47.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연대에 관한 저명한 이론가인 레옹 부르주아. “인간사는 거대한 채무관계, 다른 모든 이들의 도움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인간 각자에게는 타자에 대한 부채와 책임이 있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타인과 다음 세대에 베풀려고 하는 건 우리가 빚쟁이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해서, 사귀고 싶어서,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싶어서, 함께 더 즐거워지고 싶어서, 이런 것들이다. 빚진 심정으로, 괴로운 부채감으로, 자기를 불행하게 하는 / 자신은 즐겁지 않은 책임감 따위로는 웬만하면(아마도 절대로), 남에게 베풀지 마라. 억울해지고, 남에게 다시 내놓으라고 하고 싶어진다. 베풂은 비대칭, 다자, 그물의 것, 채권채무는 대칭, 양자, 족쇄의 것. 저자 류은숙은 어떤가? 79.

 

빈민의 삶 그 자체로 유명한 빈민

빈민 그 자체인 빈민, 농민/노동자 그 자체인 농민/노동자. 유명해지고 설사 대표가 될지언정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빈민, 농민, 노동자인 사람을 우리 사회에선 찾기 힘들다. 빈민/농민/노동자의 대변자나 천사는 넘쳐나지만. 빈민 정치인, 농민 정치인, 노동자 정치인이 없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비극에서 벗어날 힘을 갖고 있지 못한 큰 이유다. 유명인사, 대표, 정치인이 되는 것이 구질구질한 과거에서 벗어나는 입신의 길로 여겨지는 한, 더구나 억울한 과거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지는 한, 어렵다. 61.

 

이 싸움은 동정을 구하는 싸움이 아니라 권력을 구하려는 싸움이다.

이게 가장 중요. 복지나 경제적 평등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배분, 정치적 평등을 구하는 싸움. 뒤엣것 없는 앞엣것은 동정과 시혜를 구하는 것에 불과.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들과 경제적으로 평등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경제적 평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돈 벌 사람은 돈을 벌라. 질투하지 않겠다. 다만 품위 있는 삶이 가능할 정도의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이고, 무엇보다 타협할 수 없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완전히 평등한 정치적 권리, 권력을 갖는 것이다. (폴 우드러프, 최초의 민주주의 참고) 63.

 

노동 종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품위 있는 삶을 누릴 권리는 노동과는 정말 아무 관계가 없다. 노동해야 먹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범죄적인지, 착취의 공범이 되는 길인지, 모욕을 강요하는 일인지, 이성을 총동원해서 깊이 생각하라. 72-73.

 

품위와 조화. dignity & harmony. 삶에 이밖에 또 뭐가 필요할까? 73.

 

행복한 활동가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기본소득과 존경

류은숙, <사람인 까닭에>를 읽고

함께 읽기/인권 2015. 9. 16. 14:3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바시 / 류은숙『사람인 까닭에』/ 2015.9.20 / 박정원

 

연대하는 개인주의

-기대어서지 않는 관계는 없다-

 

‘인권은 개인의 것’

신체, 소유, 사상의 자유라는 삼두마차를 내세운 인권의 대표 구호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게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로운 계약이라는 미명 아래 갖은 임노동 관계에 얽혀 있으면서 대부분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할 부자유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청소년들에게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 학생이 “제가 옳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저는 자유를 느꼈어요.” 학교나 집에서 정해 준 선악에 따른 규범을 거부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자기’를 찾았을 때 자유를 느낀 것이다. 자유는 자기답기 위해 분투해야 얻을 수 있다.

- 멘토 자유인 유시민은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글쓰기)로 공동체에 기여(연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

 

스물네 살의 강용주는 5.18 때 수감되어 14년 만에야 감옥 밖 세상으로 나왔다. ‘사람이 다니는 대문을 놔두고 개구멍으로 기어나갈 순 없다’며 ‘준법 서약서’를 거부. 같은 처지의 고문 피해자들과 만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개인들은 만남을 통해서, 나만 아픈 것이 아니며 저 사람의 고통이 내 고통과 같다는 것을 느꼈다.

- 자신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정도는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문이 있어도 개구멍을 이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다 느끼며 살고 싶지는 않다.

 

당돌해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상상력은 연대하는 개인주의가 가진 제일 좋은 무기이다.

나에 대한 모욕에 같이 싸워 주는 다른 자기들이 없으면 나를 지킬 자신이 없다. 그런 자기들이 만나서 서로의 낯을 세워 주는 것이 연대하는 개인주의일 것이다.

- 연대도 개인주의도 다 인정. 연대의 정도는 나름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