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의 정치 / 2부 전체주의와 풀뿌리 / 1장 [전체주의와 종북]


- 아렌트는 전제정, 독재,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를 구분했다.

- 전체주의는 특정한 상대와 경쟁하거나 다투는 예측가능한 정치체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전의 정치질서와 다르다.

- 전체주의는 다름 아닌 권력자체를 없애려 한다는 점, 시민들의 공적인 장을 구성할 가능성 자체를 봉쇄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정치제제와 다르다.

- 인간의 자발성 자체를, 정치 자체를 제거하려 든다.

- 전체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분석. 악의 평범섬, 사유하지 않음, 세계를 읽어버림.

(세계 : 모든 인간사가 이루어지는 사이공간) 전체주의는 이 세계를 파괴하려 들기에 서구 역사의 연속성을 파괴한 사건이다.

- 전체주의는 특정 시기의 정치체계가 아니다. 그것을 등장시켰던 조건들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1. 어떤 상황이 전체주의를 불러오는가?

1) 반유대주의

- 유대인들은 유대인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어떤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 뿔뿔이 흩어진 존재였고, 자신이 살던 국민국가에서는 국민도, 이주민도 아닌 비국민의 지위를 가졌다.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순수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만 관심을 쏟는 세속적인 존재를 대표하던 유대인은 국가와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정부에 반감을 품은 세력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자 악덕의 표상이 되었다.

 

2) 제국주의.

- 팽창 그 자체를 추구했다. (자본주의처럼)

- 팽창된 식민지에서 정치공동체와 분리된 권력은 야만적인 폭력과 다를바 없었고, 권력의 이름으로 가해지던 노골적인 폭력은 식민지인과 이주민 모두의 마음에 지배와 폭력의 경함을 깊이 새겼다. 본국과 식민지의 이중권력이 시민도 이중화시킨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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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중사회의 출현.

- 수동적인 존재들이 공적인 상태에 불만을 품을 때 그들은 정치가 아니라 폭력에 매혹된다. 즉 타자와 함께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개별적인 분로로 뭉쳐져 화풀이를 할 약자들을 찾는다.

- 대중의 특징은 야만과 퇴보가 아니라 고립과 정상적인 사회관계의 결핍, 전체주의운동은 원자화되고 개인화된 대중이라는 특수한 조건에 의존했다.

- 대중과 엘리트의 공모,동맹. (상류사회와 부르주아의 위선에 환멸을 느끼던 엘리트들은 전체주의운동이 그 위선을 공격하고 모욕하자 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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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운동은 각기 다른 계급에 속한 참여자들에게 강력한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했고, 부조리한 현실을 파괴하려면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2. 전체주의는 무엇을 파괴하나?

 

(전체주의의 특징)

- 전체주의에서는 지도자 외에 공식적인 의사결정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지배.

- 개인이 지도자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게 만듦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한다.

-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을 내세우지만 그것을 실제 현실에서 찾지 않고 이데올리기의 허구세계에서 찾았다.

- 정치를 거부하면서 현실에 관해 논평을 하려 든다.

- 지도자의 현실 해석과 다른 해석을 하는 세력, 정치를 추구하는 세력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비밀경찰이 필요하다. “모든 정치적인 반대파가 사실상 사라졌을 때 그 업무가 늘어난다.” 실제의 적이 사라지고 난 뒤 가상의 적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공포정치가 더욱더 환산된다.

 

(파괴하는 것)

- 전체주의는 총제적 지배를 실현하려한다. 총체적 지배는 무한히 다양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마치 모든 인류가 한 사람인 것처럼 조작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자발성을 제거하려 한다.

- 정치가 실현되는 공간 자체를 없애려 하기에 사악한 체제이다. 사람은 사라질지언정 정치의 장은 결코 사라지면 안된다.

-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개인의 기원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에 관한 질문이자 정치적인 질문이다.

- 인간이 각기 다르게 태어났고 그렇기에 다양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타자라는 형상을 우리의 시야에서 지운다.

- 거대한 무리처럼 보이는 대중들은 무리를 유지하고 있는 고립된 개인들일 뿐이다.

- 국익이나 대의를 내세운 운동이 위험한 이유는 인간의 자유를 그 운동의 희생양으로 삼기 때문이다.

- 새로운 가능성이나 대안을 부정하고 이미 알려진 길만 가려는 태도는 전체주의의 흔적이다.

 

(우리가 해야할 일)

- 정치를 가능케 할 세계를 지키고 공론장을 활성화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 사람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상호작용하는 곳에서는 권력이 구성되고 말과 행위를 통해 권력이 다시 구성된다.

-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정치가 싹튼다. 소소한 소통이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한다. (골드파브)

3. 왜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에 갇혀 있나?

- 독재를 단순하게 탄압과 복종, 지배/저항, 강제/동의라는 이분법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 실체 없는 지배는 대중 개개인이 지도자와 일체감을 가지며 자신이 지도자의 위대한 뜻을 실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지배 형태이다.

- 공식적인 의사결정구조보다 밀실타협을 활성화 시켰다. 다원적인 정치의 활성화가 불가능했다.

- 국민과 지도자의 일체감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집중적인 교화와 주입식 교육(국민교육헌장), 심한 처벌을 통해 형성되었다.

- 대한민국중앙정보부KCIA. 잠재적인 범죄자를 적발한다. 비밀경찰은 적을 검거하는 장치가 아니라 내부의 적을 만드는 장치였다. 정부가 보여주는 것을 믿지 않으려는 의지’, 정부가 제시한 것과 다른 의견을 말하려는 생각자체를 단속한다. 중앙정보부의 활동은 북한보다 남한에 맞춰져 있었다.

- 한국전쟁과 남북한의 대치라는 상황은 정부나 정치인에 대한 반대를 국가에 대한 부정이나 배신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시민들이 공적인 부분에서 행복을 경험하는 것은 금지되었고 오로지 사적인 행복, 경제적인 삶에 집중할 것을 강요당했다.

- 저쪽이 가지면 악이고 내가 가지면 선이라는 이분법은 정치를 다시 진리의 영역으로 몰아갔다. 권력이 공통의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는 점도 무시되었다.

 

4. 우리는 전체주의의 조건에서 벗어났을까?

- 지금 우리 사회의 유대인은 누굴까? 여성과 청소년,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그리고 종북이라 생각한다. 종북이라 규정되는 순간 이들의 목소리는 소음이 되고 이들의 권리는 부인되어야할 위협요인이 된다.

- 사회적인 증오가 아무런 여과 없이 표출(일베의 소수자들 공격 등)되는데 공권력은 이를 방치하고 있다.

- 한국의 기득권층은 이들에 대한 반감을 활용해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치적인 조건과 상황을 만들어낸다.

- 한국정부와 재벌들은 공유지들을 사유화하고 기존의 사회적 관계들을 화폐관계로 대체하면서 시민을 소비자로, 일하는 노예로 전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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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정치_권정우하승우_2부 전체주의와 풀뿌리_혁명과 풀뿌리

과천녹색당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공부모임 _ 깃털 | 2015.10.11

 

1980서울의 봄에 다시 열린 정치의 장.

전두환 계엄사령부의 비상계엄, 광주항쟁, 통일주체국민회의 체육관 박수, 전두환 대통령 취임.

정의사회 구현’, 가짜 야당 + 통금 해제, 교복 자율화, 3S정책 + 삼청교육대와 수용시설

경기 호황. 사적인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게 중산층이라는 메시지. 마취.

잠시 열렸던 자유의 공간은 폐쇄되고, 노골적 폭력과 은밀한 거래, 위선적 만족감이 정치세계의 등장을 가로막음.

광주항쟁의 기억, 새로운 조직운동.

 

질문 :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은 왜 정치를 활성화시키지 못했나?

 

1. 자유로서의 혁명은 왜 어려웠을까?

 

혁명 : (권력 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행위자가 계속 등장할 정치의 기본틀 다시 만들기. 헌범 제개정, 시민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기구와 제도 만들기.

 

19604월항쟁

민주주의 바로잡아 공산주의 타도하자”, “질서를 지킵시다

남북 대치 현실. 시민들의 자기 검열. 질서를 내세워 이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사건 이후과정을 주도하게 함.

질서를 지켜 = 너는 목소리 내지 마. = 비지식인, 비엘리트, 청소년, 빈민, 농민 .

항쟁의 정치행위자들은 헌법 개정, 정부 기구제도 개혁을 위한 공적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못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풍기문란을 막고 질서를 세워야 한다는 논리가 열정을 가로막음. (권명아, 음란과 혁명). 혁명 이전에 내재해 있던 불안감의 투영.

엘리트 패닉’(Rebecca Solnit) : 공황에 빠진 대중과 영웅적 소수? “(엘리트의) 사회적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 빈민과 소수자와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 약탈과 경제범죄에 대한 강박관념, 치명적인 무력에 기대려는 마음, 헛소문에 기초한 행동 엘리트의 공포. 매우 중요한 개념.

주요 행위자는 대학생 아닌 중고등학생과 시민. 기록은 대학생을 주역으로.

경제, 생계, 임노동의 발목잡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국회 해산 없는 양당 타협, 50일 만에 마련된 헌법 개정안, 민주당 압승, 윤보선 대통령 선출

정치는 다시 기성 정치인의 몫이 되었다.

 

1987년 전후

1985년 김영삼, 김대중의 신한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의제는 개헌으로.

1987년 호헌 대 호헌철폐. 대통령 직선제 개헌 쟁취 운동 - 박종철 사망 -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 610 30만 명, 626 150만 명.

노태우 후보의 629선언 :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시국사범 대폭 석방.

개헌 논의는 야당만이 참여. 시위, 조직활동, 노동자투쟁은 탄압.

604월항쟁과 마찬가지로, 헌법 개정 기회는 시민의 참여로 마련.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는 대통령 직선제 문제 하나로 축소.

당시의 목소리들은 헌법 개정에 얼마나 반영되었나? “8시간 노동으로 생활임금 쟁취”, “민주노조 결성”, “통장에서 대통령까지 내 손으로”, “공정보도 언론각성”, “경제침략 자행하는 미일 외세 몰아내자”, “농민이 빚을 져서 야반도주한 후 목매어 자살하게 만든 현 정권 즉각 퇴진”, “잔업특근, 철야작업 없이도 노동자가 먹고살 수 있게 힘쓰자

민정당, 민주당 8인 정치회담이 헌법 개정 과정 주도. 48일만에 개정안 확정.

헌법 개정 과정은 민주주의의 뿌리를 단단하게 하지도, 새로운 정치공간을 열지도, 시민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강화시키지도 못했다. 대통령을 뽑는 절차와 선거가 주요 협상의제가 되었다.

제헌의회파CA : 김문수, 심상정, 유시민, 박노해 등.

 

아렌트의 시선으로 본 4월항쟁과 6월항쟁의 공통된 특징

1) 대안 정치세력 구성 없이 공명선거, 직접선거 외침. 시민들이 헌법 개정 과정에 참여하여 공적 자유와 행복을 느낄 기회 박탈. 기성 정치인이 독점. 자유를 지속시킬 틀 만드는 데 실패.

2) 개헌 주도세력은 철저히 기성 정치세력. 논의는 국회 내부로 제한.

3) 항쟁의 정치행위자들이 이후 사라짐. 대학생? 여성, 노동자, 도시빈민, 농민, 심지어 초등학생. 타자와의 세계 공유 없이 특정 주체가 중심이 되어 세계를 독점. (소위 386, 전대협)

4) 서울 중심성, 국가 중심성 강화. 부마항쟁, 광주항쟁, 지방의 사건과 지방의 죽음.

결국, 한국에 서구와 비견할 혁명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혁명정신을 지속시킬 정치공간을 구성하지 못했던 것.

 

2. 고난과 슬픔의 정치는 가능한가?

 

함석헌 : 아렌트와 비교할만한 사상가

사악한 세력과 맞설 때 저기다 대고 하지 마시고 민중을 향해 데모를 하세요. 그래서 나라라는 건 이렇습니다. 이렇게 해가지곤 민주주의가 안 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권력을 향해 징징대는 시위 하지 마라. ~해주세요.

김상봉의 함석헌 : 고난과 슬픔을 대면하는 자의식은 슬픔과 하나 되어 체념하지 않고 불행한 현실을 부정할 또 다른 현실을 사유하게 된다. 슬픔과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자기를 억누르는 모든 타자적 힘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짐으로써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공감하기 어려움.) 함석헌의 사상은 우리가 겪는 사회 부조리를 고난과 슬픔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나와 우리의 슬픔, 이런 공통의 슬픔은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용기를 낼 수 있는 정서를 형성한다.

슬픔과 동정심 : 동정심이 인간관계에서 차이와 거리를 제거하는 반정치적 감성이라면, 슬픔은 서로 마주 보면서도 자신이 주체임을 인식하는 감정. (자의적인 구분이거나, 개념의 오용. 동정심이 pity라면 그럴 수 있으나, sympathycompassion이라면 그렇지 않음. 슬픔은 매우 애매.)

어두운 시대에 슬픔을 기름 삼아 자신을 태울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어 희망의 불이 반짝인다.

김상봉의 서로주체 : 만해, 다석, 함석헌, 소월, 윤동주. 자기상실 속에서의 자기실현. 아렌트의 비지배non-rule’와 닮았다.

정치와 자유 :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 나를 발전시켜 완전에까지 이르자는 것이 인격. (현재의 시공간과 나의 상태에 저항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생의 의지를 말하는 듯하지만...)

우리의 하나는 하나 속에 전체가, 전체 속에 하나가 있는 그런 개성적 하나”. (온 인간. 글로벌 시티즌.)

자유와 우정 : 자유를 찾아나서는 길은 자신의 자유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임을 깨닫는 과정이고, 동료시민과의 우정을 키우는 과정.

아렌트의 노동, 작업, 행위 : 함석헌의 맞춤(適應), 대듦(拒否), 지어냄(創造). 베르그송의 영향. elan vital, 생명의 도약.

스스로 하는 민의 종합 행동이 정치. 길거리에서 웅성거리는 생활꾼의 정치.

연방국가의 이상 : 자치 공동체, 연방, 세계가 한 나라로.

씨ᄋᆞᆯ : 어리석고 못나 부정적인 존재이지만 그 속에 얼을 품고 있어 주체의 전환가능성을 내포한 존재. 꿈틀거림. 수동적이지만 능동적인. 삶의 절대이며,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터지고야 마는. 그러므로 민중의 바다로.

8-90년대 맑스-레닌주의에 의해 밀려났으며, 혁명을 지속시킬 자유와 정치에 관한 사유도 위축되었다.


3. 우리 시대에 정치를 부활시킬 방법은?

 

박근혜 시대, 우리는 전체주의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파괴된 세계를 복구하고 정치적 자유를 지속시킬 방법 찾아야.

기업권력의 부상. 다운사이징, 구조조정, 괴멸된 노동조합, 노동기술의 무용지물화, 해외 이전, 규제완화. 공포의 경제와 통제 시스템. 경제적 타격과 탈정치화. 경제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

살아남는 일에 급급한 사회에서 정치는 부활하기 어렵다.

아렌트의 우려 : 사회가 정치를 파괴시킨 상황.

공적인 장에 기꺼이 나서려는 용기와 그 용기를 쓸 곳(공간).

시민의회 : 공청회, 합의회의, 시민배심원제도, 공론조사, 시나리오 워크숍, 협력적 의사결정 제도 등.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대립을 넘어서기 위한 설계들 존재.

헌법개정과 시민의회

내가 약하다는 냉소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폭력. 나서는 사람에 대한 시기와 왕따. 그렇게 나는 부속품이 된다.

탄생성이라는 인간의 기적. 정치의 가능성. 일상적 삶에서 실현되는 교육.

땅과 종자를 지키는 일은 (비정규, 일용직) 노동자들의 운동에도 과제가 될 수 있다.

슬픔과 고난의 정치. 개별화된 슬픔 아닌, 정치로 이어지는 슬픔. 정치적 악용이라는 금기 넘기.

투덜거리느니 차라리, 투표를 거부하자, 미디어를 치우자, 외부에서 나를 조종하는 것들을 조금씩 떠나보내자.

권위주의 사회 : 청년이 스스로의 현실 생활에 대해 의식을 지니지 않고, 그리하여 멍청하게 무위도식하거나 맹목적으로 복종한다는 것에서 찾아짐. (W. Reich)

정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정치. 타자의 얼굴을 맞댈 때에만 우리는 정치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마치며

권력의 문제, 권력의 독점과 배제의 문제 : 배제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고, 그 권력의 행사를 통해 참 정치의 공간과 가능성을 파괴하는, 현실 권력의 문제를 다뤄야.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어 말과 행위를 시작하는 용기, 그곳에서 대화가 시작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지어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무엇이든 시작된다. 자유를 위해, 숨지 마라.

    - 정치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제2의 탄생에 버금가는 사건이다. 120. 그것은 공론장에서 말과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또 다른 자신이 된다는 것.

공동체와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자.

    - 공동체 안의 인간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무대) 위의 인간이다.

    - 우리는 공동체에게 (정치경제적 공동체로서,) 노동과 작업을 조직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를 경영하는 공론장을 통해 자유로운 인간들의 말과 행위가 꽃 피는 무대, 즉 정치 공간이 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공동체는 과거의 어떤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 아리스토텔레스 "폴리스는 단순한 생존을 위해 형성되지만 훌륭한 삶을 위해 존속하는 것." 기막힌 표현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공동체에 대해 단지 책임과 의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무대를 통해 멋진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게 정치다. 

1부 수용소와 공론장

3장 공론장과 자유

● 공론장 : public sphere 또는 in-between space. 사이공간 / 탁자의 비유

나와 너를 구분해주는 사이, 나와 너의 거리감, 중간지대

일체가 아니라 독립된 개체인 각자에 대한 상호인정, 존중, 합의, 조정이 이루어지는 공간

정치가 행해지는 자유의 공간 / 행위의 공간

 

1. 자유란 무엇인가

 

● 고대적 의미 : 필요로부터의 해방

오직 타인에 대한 폭력에 의해서만 가능

시민에게만 가능한 특혜

콩스탕 : 고대의 자유는 집단자유, 시민 전체가 권력을 나누는 것


● 중세, 봉건사회 : 면제, ‘세금을 내지 않는 자는 자유로우며 그들은 귀족이 된다

자유 = 면제특권, 배타적 권리 = 고귀함, 양육, 관대함, 대범함


 ●  자유주의 : 모든 인신적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왕이나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와 간섭, 방해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상태

- 홉스 : 자유는 저항이 없는 상태, 나를 막아서는 것이 없는 상태.

가장 큰 저항은 살해에 대한 공포

이 공포를 피하기 위해 국가(리바이어던)와 계약

자유 반납의 대가로 생명, 사적 소유의 안전을 보장

콩스탕 : 근대적 자유는 개인 자유, 정치권력과 제도로 하여금 사적 소유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

 

- 고대 폴리스에서의 자유는 정치적인 영역에서만 중요, 근대에 와서 자유는 비정치적 영역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바뀜

자유와 안전이 동일시되는 한, 개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공포의 흔적들은 더욱더 자주 드러난다. ‘타자에 대한 불신은 안전사회라 하더라도 줄어들 수 없고 제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 어둠을 다 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안전을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타자에 대한 불신을 의도적으로 증폭시킴으로써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는 경향이 강하다.

- 불신을 기반으로 안전 논리는 공간-공론장을 분리하고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확대

- 타자와의 만남의 장소 상실, 공동의 문제에 대한 관심 상실, 결국 나 아닌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게 됨.

- 객관적인 적, 내부의 적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을 고립시킴. 안전 논리는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논리

- 결국 나의 자유 상실.

 

자유는 행위로 드러날 뿐 감각을 통해 확인할 수 없다. 내면의 자유만 가지고는 자유로울 수 없다. 세계-공론장에서의 관계와 행동과 실천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 자유의 조건

1. 자유에는 인간들 간의 만남의 장소, 물리적인 공간, 정치적 행위와 말들이 통용되는 공론장이 필요하다자유는 나와 나 자신만의 뜨거운 논쟁이 아니다. 자유는 철저히 외부 세계와의 문제, 자유는 정치 없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2. 자유와 행위는 동일하고 행위는 공동세계의 원칙에 의해 촉발된다공동세계의 원칙은 탁월함,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모든 사람 가운데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 정신이다.

3. 자유는 훈련, 기교를 필요로 한다정치영역에서의 기교는 말과 행위의 능숙함, 타자를 염두에 두고 말하고 행위하는 능력.

4. 자유는 배타적 주권·지배·명령이 없는 곳에서 가능하다.

 

- 이사야 벌린, ‘적극적 자유가 옹호하는 자기지배에서 자기가 무한히 확장하여 국가나 집단이 되어버릴 경우 전체주의의 위협이 다시 도래할 것이다.’ 무질서가 전체주의를 낳을 것이다. 박정희의 논리.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전체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2. 권력이란 무엇인가

 

고립된 대중은 자기 이외의 사람과 소통할 수 없다. 이것은 공동세계의 파괴, 공통감각의 상실, 세계성의 상실이다. 이 때의 대중은 의외로 쉽게 자신과 타자를 동일시한다. 자기가 갇혀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주관성에 타인을 동일화해버리기 때문이다.

공론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정치적 행위는 작업(노동, 작업, 행위의 구별)처럼 지속성을 가지기 어렵다. 정치적 행위에 지속성을 부여해주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열린 공간에서 서로 소통하는 복수의 인간이 동의할 때 생기는 힘이다. 열린 공간이 없다면 권력은 사라진다. 그럴 때 남는 것은 폭력, 배타적 주권이다.

권력은 공론장에 불을 켜 두고 정치적 인간들이 만들어 낸 더 나은 것들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3. 자유와 평등이 다를까?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복수의 타인과 공동체를 인식하는 정치적 인간만이 자유를 경험한다. 정치는 자유다. 생존을 위한 삶(조에, 수용소의 삶)을 두고 자유롭다고 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삶(비오스)까지 누릴 수 있어야 자유로운 삶이다.

사회와 정치공간은 다르다. 사회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나의 것과 공동의 것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고대에 경제와 노동은 영역은 가정, 사적 공간이었다. 지금은 경제와 노동이 사회의 전 영역을 차지해버렸다. 인간의 행태는 생산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표준화되었고 자발적인 행위나 탁월함이라는 고대의 가치는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활동을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생각한다. 생존이 공적인 것으로 등장하는 세계가 되었다.

가장(, 주권자)이 휘두르는 권력 앞에서 유지되는 가족구성원의 평등, 생존을 위한 평등은 노예의 평등이다. 여기에 자유는 없다.

그렇다면, 생존은 보장되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보장되어야 개인이 해방될 수 있고, 해방된 개인만이 자유롭게 복수의 타자들과 함께 공론장에 참여하여 권력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권력은 생존을 위협하며 모두의 생존이 보장될 수는 없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자유는 이상주의자의 헛된 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정치는 사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삶, 할 수 있는 것들 중 최고의 것에 따라 사는데 필요하다.

 

4. 왜 정치에서 용기가 중요한가.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사적인 생활의 필요나 외부의 강요에 굴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두려움에 처해도, 욕망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판단)을 버리지 않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 속에 공포의 감정을 결여하거나 단번에 극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보려주려는 것이 공포가 아니라고 결정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공포와 두려움을 피해 자기보호로 나아갔던, 홉스의 의지 없는 인민들의 경우와는 정반대다.

가정은 생존의 위한 사적 영역, 필요의 영역, 노동의 영역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지루한 일상과 가혹한 반복이 주는 고통을 견디는 인내이다. 정치적 삶은 이 지겨운 일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용기 역시 가정 안의 삶 속에서는 드러날 수 없다. 반드시 폴리스에서의 좋은 삶을 전제해야만 가능하다. 용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가정이라는 안온한 필연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고, 진정한 인간으로서 영위할 수 있는 좋은 삶역시 요원하다. 오직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만이 필요만을 원하는 동물적 삶을 넘어 진정한 인간으로, 정치적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다.

인간이 가정에서 폴리스로 나오려면 심연을 건너야 한다. 이것은 따뜻하고 안온한, 엄격한 불평등의 장소인 가정에서 나와, ‘자신이 가혹하게 노출되고 불편하고 불안정하고 행위가 가지는 허약성이 온몸으로 느껴지는공적 영역으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적 영역 자체가 공적 영역의 자리를 대체해버린 오늘날 심연은 사라졌을 뿐 아니라 감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오늘날 공적 영역은 사라지고 심연도 사라졌다. 심연을 건너는 수고로움도, 심연을 건너서 맞이하게 되는 가혹한 노출과 곤경도 사라졌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기묘하게 뒤섞인 사회에서 대중은 노예의 풍요로움은 맛볼 수 있지만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잃어버렸다. 이는 곧 진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래, 너 잘났다!

 

- 김상봉 : 용기를, 정신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는 것,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상호적인 것, 도덕적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정신의 강건함, 도덕적 당위에 따르는 것.

- 홀로주체성 : 타자 없는 자유, 로빈슨 크루소, 노동·작업과 관련

- 서로주체성 : ‘의 인격적 만남으로서 자유가 가능,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

우리 시대에 공론장을 다시 만들고 정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용기이다. 수용소의 무슬림 같은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 단계 역시 용기이고, 이것은 우리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하나의 시작이며 우주가 이미 존재하게 된 이후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