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5차 모임
-류은숙 <사람인 까닭에>, 9월20일, 삼호사 공사-
참석자: 홍지숙 박정원 이한진 서형원 신은희 김예원 박병선 장예정
지숙
: 장애인 인권을 더 공부하고 싶다.
예정
: 모든 사회적 문제를 ‘내 문제’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강정마을 등등.
병선
: 재밌게 읽었어요. ‘p.167/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며 묻지 마 범되를 저지르도록 만든 배타성은 더 센 배타성을 부른다. 더 좋은 약 효과를 보려고 더 센 약을 먹는 것과 같다./’ 내 안의 하층민과 상층민을 나누는 기준. 이러한 기준 때문에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구나. 어느 기준 아래로 내려가면 평소에 나의 그 배타성으로 인해서 사회는 더 이상 나를 품어주지 않을까하는 불안감. ‘부류의 이데올로기’ 절대 내가 될 수 없는 것을 모델로 삼는 것. 그로 인한 억압. 다른 계층의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 나와 다른 사람과의 ‘타자화’과 이루어지면서 인권문제 발생의 원인이라고 생각.
형원
: ‘인권’에 대한 정의. 2권째 읽는 인권 책이지만 한 번도 인권을 체계화한 적이 없었음. 인 권을 한번 정리합시다!
인권을 더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우리 모임에서)
뭔지 모르게 불편하고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 책. 이 답답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진
: 편안하게 읽혔다. ‘인권’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는 단어였는데, 문체가 편안해서 그런지 읽기에는 편안했다. 형원쌤 의견과는 반대로, 인권이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책을 덮으며, ‘연대’라는 개념을 향한 모호함. 연대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연대란? 청년들에게 연대란 어떤 개념일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은희
: 청년의 언어로 연대란 무엇일까요?
정원
: (기대어 서지 않는 관계는 없다)chapter. 책을 통해 느껴지는 저자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앞부분은 편안히 읽다가 ‘기대어 서지 않는 관계는 없다.’ 챕터에 와서 개인주의-연대의 관계성에 대하여 설명하는 챕터같아서 주의깊게 봄. p.143. 인권은 개인의 것. 인권의 정의-‘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게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인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부자유스럽게 살고 있다. 청소년에게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 아이의 발언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이 설명을 통하여 느낀 것만으로도 가치 있었다.” 자유는 자기답기 위하여 분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을 찾는 것이다. 유시민씨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라고 생각하여 여러 강연을 하며, 글쓰기를 연대의 한 방식으로 찾은 것 같다. 규범 등에서 벗어나 ‘나’를 표현하는 것.
강용주. 5.18때 수감되어 준법서약서에 서명하면 풀려날 수 있었으나, 그것을 거부하고 형기를 모두 마치고 자신과 비슷한 고문 피해자들을 만나고, 돕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일을 통하여 자신만의 방식을 이용한 연대. 나였으면 서약서에 서명하고 나왔을 것. 사람마다 각자 느끼는 고통의 깊이와, 그 한계는 모두 다를 것. 모든 사람이 그것을 모두 느끼며 살아야할까? 피해갈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상상력을 통하여 연대하는 것. 남을 위해 싸워주는 내가 모여 함께 싸우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연대를, 어떻게, 얼마만큼 할 것인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 세상 모든 일에 관여할 수는 없으므로 관심 갖는 곳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연대’를 정하여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처럼 사는 것은 저자 그 한 사람의 연대에 대한 선택일 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며 사겠다.
병선
: ‘노란 리본’ 서명, 오늘이 과천의 축제 마지막 날이라 서명을 받으러 갔다. 피켓을 들고 있는데 사방에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나도 모르게 흥겹게 리듬을 타는 내 모습.
세월호에 내 모든 일상을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들은 즐기거나 놀면 안되는 것일까? 4.16연대의 사람들은 1년이 넘어가면서 투쟁과 슬픔이 일상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할까? 떠난 사람들의 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때. 유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올 권리가 있고, 유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보수 언론에서 씌워 내보내는 프레임 “세월호 특조위도 놀 것 다 놀더라!” 이에 응하는 대중의 반응- “정말? 뭐야, 맨날 슬퍼야하는거 아니야? 일상을 누리고 있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들을 위해 슬퍼해야하는 것처럼 하더니만. 쯧쯧.”
형원
: 그러한 잘못된 시선에 맞서는 것은 ‘이성’의 영역. 유가족들도 죽은 아이의 동생과 함께 놀이공원에 갈 권리가 있다는 것, 그래야 한다는 것, 그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도저히 감성의 영역으로는 불가능.
은희
: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
정원
: 옳고 그름을 딱 판단하기보다는 그 이면을 바라보거나, 적절한 무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옳다는 것이 옳은 것만도 아니고 그르다는 것도 그른 것만은 아니다. 스스로 적정선에 대한 적립이 필요한 것 같다.
형원
: “인문학을 할 때 삶을 바꾸기 위하여 해라” 내 삶의 줄기를 바꾸지 않는 선에서 하는 것에 대한 생각.
정원
: 바꾸는 것의 정도도 모호한 것
형원
: 해보니 이렇더라, 생각해 볼 필요.
예원
: 연대와 개인주의는 서로 다른 것 같은게 함께 한다는 것은?
정원
: 연대, 개인주의가 보편의 개념상 상반되는 것 같지만, 저자는 그 두 가지 개념이 함께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내 고통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병선
: 한진- 지금 청년세대는 연대라는 말을 잘 못 듣고 자랐다/라는 말을 들으며 생각하기를,
나는 어땠지? 93년 대학에 다니면서 그 당시에 연대라는 말을 많이 쓰기는 했던 것 같다. 근데 그 당시에 ‘연대’의 의미가 잘 와 닿지는 않았던 듯. 나는 대학생이었고, 생산직 기술자가 될 것도 아니었고, 나와 연대가 필요한 이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던 듯.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연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진
: 5.18이나 그 세대는 명확히 무언가를 위해 싸웠는지 알겠는데, 우리 세대는 무언가를 향하여 싸우는가. 지금 우리는 청년층이 약자가 되었다. 청년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게 규정되었다. 청년층이 약자가 된 듯. 청년, 청년 운운하는 곳은 많아지고 있는데 해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다. 청년층 자체도 애매한 개념.
병선
: 나의 대학 시절 연대란, ‘나는 아닌데, 가서 도와주는 개념’ 투쟁하다 돌아 갈 곳은 따로 있던. 그 당시 대학생이라는 어떠한 지식인과 같은 자격을 등에 업고 연대할 자격을 얻었던 듯. 지금의 대학생은 그 자체가 어느 특별한 계층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 시점.
지숙
: 지금의 청년도 약자는 아닌 것 같은데?
한진
: 청년들이 함께 투쟁해야 할 대상의 부재. 각자, 각자 흩어져 사는 모습.
형원
: 명백하게 지금 청년은 착취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음. 첫 번째 책(자급의 삶)에서 언급했던,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대상이 청년이 된 것 같다. 경제적으로 착취가 가능하고, 그것이 결국은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병선
: 정치적인 권리를 획득하려는 시도를 다 무아 시키고 있는 작금의 상황. 경제적 평등은 사실상 불가능. 청년들의 연대, 내가 20대 때는 전혀 내가 약자라고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바꿔나가는 중심의 역할인 계층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바뀐 것 같다,
한진
: 정서적 부분의 문제점.
지숙
: 30대 미혼 여성이라는 나의 계층. 성적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나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하자는 없는 지금의 우리 계층. 나는 축복하다고 생각했었다.
사고의 틀을 깰 수 밖에 없는 상황.
정원
: 연대의식을 갖기에는 파편처럼 쪼개져 있어서 어려운. 연대할 주제는? 현재의 정규직/비정규직 같은?
형원
: 세대라는 틀을 깨야. 노동자 -> 농민 - 빈민. 이 연대가 성공하여야 혁명이 성공한다. 노동운동의 문제점은 다른 이의 문제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모습.
병선
: 어느 정도의 정치적 권리 세력.
한진
: (보수적인)교회에서 느끼는 문제점이 사회에 비추어 보았을 때 같은 문제의식을 갖게 됨. 당회의 방식이나 그러한 모습. 교회의 규모가 곧 권력인 모습. 지금의 청년층이 그러한 규모적 측면에서 힘이 없기에 약자라고 칭한 것. 이용만 당하는 쳥년층의 모습. 자유로운 사고가 불가한 우리 세대에 대한 연민. 이 교회에, 이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수동적으로만 살아온 교회화 사회의 청년들, 이 세대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을 때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
지숙
: 이용과 착취?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에 디자인을 해주는 것은 이 일에 나의 재능이 필요한데 그쪽의 물질적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고 생각. 이에 우리 오빠는 그러한 태도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라고 힐난하였다.
형원
: 이용, 착취에 대한 불신등이 팽배해 졌기 때문에 봉사나 그러한 순수한 의미를 띈 행위 또한 착취로 취급되는 모습. 또한 임금을 받는 행위만이 그것이 대안인 것처럼 보여지는 모습.
은희
: 지금의 청년층에게 무임금 봉사, 재능기부라는 것 자체가 금기시. 녹색당 대의원회의에서도 청년층의 문제 제기로 올라왔었음. 녹생당에서 이런식으로 사람을 부리냐는 식의 문제제기는 옳지 않다고 느꼈다.
형원
: 인건비나 활동비 처우 해결을 위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내 문제를 해결해줘’라는 식의 접근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함.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 녹생당의 목표란 다른 삶에 대한 대안의 이야기.
지숙
: 우리의 재정상황과 함께 공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상황에서 개인의 처우 문제를 1년에 한번 있는 대의원 대회에서 주장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은희
: 그 기본의 무엇도 받지 않고 헌신해 온 이들의 노력은 보지 않고 자신의 문제만 제기하는 모습은 좋지 않았다.
2부 :)
형원
: 발제문 참조!
지구 시민- global이라는 단어는 보편적으로 영어권에서는 ‘온전한’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책임’, 인간사는 거대한 채무관계
‘조화’의 중요성. 인권은 매우 개인주의에 기반한 개념이다. 어떠한 관계 속에 있어야 편안할까?
조화는 무엇과 무엇의 조화일까. 핵가족? 그것은 분명 아니다. 가부장제로 돌아가는 것?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국가? 그도 아니다.
정원
: 개인주의와 ‘연대’. 이 책의 연대가 조화 아닐까?
형원
: 개인은 힘이 없으니 개인이 모여서 연대를 한다? 너무나 공허한 외침처럼 들려. 우리가 그 연대라고 하는 조화를 만들어 가는 것. 범위의 문제가 아니라, 연대라고 하는 대항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은희
: 연대라는 단어가 가진 일정한 수준이 있는 것인가? 개인과 개인의 그것은 연대가 아닌가요?
형원
: 그런 것도 필시 연대이지만 우리가 오늘 논의하고자 하는 연대는 아닌 것 같다.
정원
: 개인과 개인의 연대와 이러한 연대는 결국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형원
: 기족에서 나와 아빠가 싸웠다. 그럼 그 연대는 깨어진다. 그렇지만 옆방에 가면 이모가 있고 삼촌이 있고, 그러한 모습.
은희
: 아이가 있는 엄마로서의 불편함. 이웃에도 그러한 불편함이 있는 누군가. 그렇다면 이러한 둘의 연대는 의미가 없는 걸까?
형원
: 비록 두 사람 밖에 없지만 함께 돌보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그것은 새로운 3번째의 어떠한 것이 만들어진 것. 핵가족에서 두 사람의 다툼은 가정이 깨어지는 것. 싸우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일종의 도덕적 책무처럼 되는 모습. 울고 있는 불쌍한 옆집아이를 돌보아주는 것과 사회적 연대는 다른 차원의 것.
정원
: 조화와 연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 것인가가 화두. 예부터 개인과 전체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를 고민해 왔던 것 같다. 각자 자기의 이상과 행복을 실현해가면서 ‘함께’이루어 가는 것을 고민해왔다고 생각한다.
지숙
: 부채감과 사랑. 빚진 마음에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혹은 재미있어 보여서라고 하셨지만. 나는 빚진 마음이 크다. 그 일종의 부채감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급의 삶 책에서 읽었던 ‘배후지’의 개념. 나에게 있어서 사회에 대한 부채감이란 나를 움직이게 하는 큰 원동력과 같은 것. 성경의 청지기처럼 내가 가진 것은 잠시 나에게 맡겨진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형원
: 옛날식으로 이야기하면 기꺼이 사회적 책무를 감당하는 심훈의 <상록수>와 같은 모습.
지숙
: 여기 있는 사람들은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
형원
: 많은 혜택을 받았으므로 그것을 누리며 즐겁게 살면 된다. 다함께.
내가 사회적 책임감 때문에 움직이게 될 때에는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부채감을 씻어 내기 위하여 하는 행위는 바지런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앞만 보고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이 행위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숙
: 내가 누리는 것들에 대한 나의 사회적 책임감.
형원
: 그러한 책임감, 사명감등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 또한 인간이 지닌 고결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병선
: 내가 받은 일말의 혜택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 90년대 운동을 하던 사람들.
형원
: 내가 투쟁해오던 어떠한 것을 그만 두려고 하지 않는다. 어떠한 곳의 사무처장들이 바뀌지 않고 항상 밑에 사람들만 바뀐다.
정원
: 유시민이 떠오르는 상황. 많은 사람들의 그 사람이 정치적 행위를 원하지만 그것을 내려놓은 사람.
병선
: 누구나 신앙을 가지고 있다. 진짜 종교든 과학이든 무엇이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물질적, 사회적 통념 등에 대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굴하지 않고 나에게 옳다고 생각하는 신앙에 기반하여 살아가는 것은 ‘지사적 삶’이다. 그러한 삶이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소수적 삶이다. 그러한 사람은 매우 소수이다. 100명 중 90명에게는 어려운 삶이다. 그러한 90명에게 신앙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말의 신앙이 있다하더라도 그것만을 기반 하여 사는 삶은 쉽지 않은 것이다.
예원
: 오늘의 토론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약간 뭔가 낯선 느낌? 그러한 것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이야기에서 생각해볼만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서형원 선생님의 발제문에서 생각해볼만한 사안들이 많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