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의 정치 1장

함께 읽기 2015. 10. 11. 15:4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권정우, 하승우 아렌트의 정치

-1, 수용소와 무슬림-

 

아우슈비츠가 악명 높은 이유는 희생된 이들의 숫자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비인간성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수용소에 살았을 때도,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용소: 전체주의 권력이 총체적 지배를 위하여 만든 실험소

 

1. 인간에 대한 완전한 지배는 가능한가?

전체주의는 여타 체제들과는 다른 차이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운동으로의 생명력이다. 근대의 국민국가 체제라는 것은 헌법, 영토, 국민이라는 배타적이고 제한적인 권리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전체주의는 우선 헌법을 무시해버렸다. 법이라는 체제대신 숙청, 테러, 비밀경찰들과 같은 비공식적인 방법들을 이용하였다. 정부 조직이나 관료제도 등도 무시하였다. 영토는 세계정복의 운동으로 밀고 나갔으며 국민은 지속적인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주입으로 확보하였다. 비밀경찰 등은 서로가 누구나 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 놓는다. 이에 아렌트는 전체주의 체제를 실체도 없고, 정해진 모양도 없는 체제라고 불렀다. 체제가 없다는 것은 곧 신속함, 속도전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2. 수용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수용소는 가장 인간다운 조건인 인간의 다원성, 개성, 자발성을 철저히 통제하는 장소이다.>

Q.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삶과 죽음과 연관된 존재인데, 삶과 죽음은 기억으로 연결 되어 있다. 생명이 끝이 난다고 해서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이 추모라는 의례를 통하여 망자를 기억할 때 그는 아직 살아있는 존재인 것이다. 전체주의 수용소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조건, 근거, 형식을 완전히 지배하고자 한다. 수용소에 갇혀 이름을 빼앗기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이름이 기억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실험체가 된 수인들은 인간 존엄의 마지막인 자살의 자유조차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수용소는 이렇게 인간을 동물로 만들어 버린다. 이 극악한 수용소는 그저 지나가는 운동으로 소멸됬을지도 모르는 전체주의를 극단으로 몰아붙이게 되었다.

 

3. 왜 인간은 제 발로 가스실에 들어갔나?

수용소에서 인간은 완전히 벌거벗은 평등, 아무런 욕구도 충족되지 않는 완전한 고립 속에 각각이 실험체로 존재한다. (p.47)

수용소에 갇힌 이들에게 더 이상 명예, 삶의 고귀함 등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간수들도 그들의 그러한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렇게 갇힌 이들 스스로가 쓸모 없게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인간 스스로가 느끼는 쓸모없음과 허무는 전체주의 지배의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이다.

 

무슬림: 복종하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엎드려 기도하는 무슬림같다고하여 붙여진 수용소의 은어

            그것이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가만히 엎드려 복종하는 것)


4. 누가 아이히만인가?

아이히만은 히틀러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한다거나 전체주의에 심취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 너 친위대 안할래?”라고 묻는 질문에 그러지 뭐라고 답하고 수용소에 들어가게 된 것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악마이기를 바라였으나 어쩌면 그는 그저 타인과 말하는 능력, 타인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명령만을 이행하는 무능한 인간일 뿐이었다.

 

아우슈비츠가 박물관이 되기에는 이르다고 느껴지는 지금, 우리는 과연 타인과 대화하고 있을까?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있을까? 


엄청 길어요. 뒷부분은 이해가 잘 안되어 마구 받아적은 것 같고요. 오늘 공부 마치고 좀 가닥이 잡히면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과 한국사회

아렌트의 정치

권정우 하승우 지음

 

2부 전체주의와 풀뿌리

정치와 권력

/ 지숲

 

민주적인 지도자 보다 시민. 시민의 정치력.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아니라, 대화로 구성된 교육.

기득권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한 규칙과 구조들.

 

1.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받았나?

플라톤 - ‘이데아라는 유일한 진리를 추구.

소크라테스 - 다양한 의견을 추구.

 

소크라테스를 빗대어...

산파 - 출산을 도울 뿐 아이를 대신 낳아줄 수 없는 산파처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스스로 각성하도록 돕는 교육방식. 계속되는 질문으로 상대의 무지를 드러냄.

쇠파리(등에) - 사람들이 깨어있도록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이 자기의 소명이라 믿음.

전기가오리 - 감전, 마비, 멈춰서 생각하게 만듬.

사람들이 스스로 현명하지 않다고 인정하게 만들고 가르치지 않음을 통해 스스로 가르침을 얻게 함.

 

폴리스를 시민의 삶,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지배할 수 없는 정치공동체로 보고 중요하게 여김.

 

의견은 절대적이지 않다. 모두에게 정당하지도 않다.

세계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으나 세계의 드러남은 그 사람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모두가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서로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행위는 대화로 시작되고 대화 자체의 진리성보다는 이런 대화로 맺어진 우정이 정치를 활성화시킨다.

공동체는 차이로 구성되고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원리는 우정의 평등이다. 우정의 평등은 서로 똑같거나 동등해지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는 우정의 성취다. 논쟁을 즐기는 장소에서의 동등한 관계가 시민들의 차이를 끝없이 증가시킨다. , 차이로 이뤄진 공통의 세계, 우정의 정치가 지속되는 공간을 위해 소크라테스는 목숨을 걸고 싸웠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

- 모방과 찬양을 > 토론과 합리적인 비판으로 대체

- 기성질서에 대한 거부, 반란,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이 열림, 기성체제를 위협

 

사상가 가리타니 고진이 설명한 소크라테스 - 이성은 세계나 사람에게 내재하지 않는다. ‘대화를 통한 것만이 이성적이다. 대화를 거부하는 자는 아무리 심원한 진리를 파악하고 있다 해도 비이성적이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내 생각을 드러내고 다른 이의 생각을 듣는 것을 넘어, 공감하고, 타자를 타자로 인식하고, 하나가 될 수 없는 이질성을 느끼고 본다.

 

파울루 프레이리 억압받는 사람들의 교육학’<<페다고지>>에서

우파 - 길들여진 현재로 미래를 재생산하려 함

좌파 - 미래를 불가피한 숙명으로 받아들임

우파와 좌파 모두를 비판하면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주체로 서는 혁명을 주장.

진보적 교육자의 한 가지 과제는,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진지하고 정확한 정치적인 분석을 통해서 희망을 위한 기회를 밝혀내는 것

억압당하는 사람들 내면에서 재생산되는 지배구조를 타파하려함.

해방교육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민중이 자기 사고의 주인으로 느끼도록 하는 데 있다.”

민중지식의 신비화, 민중지식의 절대 찬양은 민중지식의 거부만큼이나 문제가 된다. ... 민중지식을 거부하는 것이 엘리트주의라면, 민중지식을 절대 찬양하는 것은 근본주의.” - 민중과 지식인의 지식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문제

억압받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교육하고 의식화시키는 방법으로는 결코 인간해방을 이룰 수 없다고 믿었다. 해방에 필요한 것은 선전이나 의식화가 아니라 바로 대화이다.

민중을 끌어들인다’ - 혁명가가 아니라 억압자의 어휘. 혁명가의 역할은 민중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민중을 해방시키고 자신들도 함께 해방되는 데 있다.

교육자와 교육받는 사람, 엘리트와 대중, 혁명가와 민중은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공동연구자. 친구.

정형화된 지식. 집단주의 문화. 획일성을 강요하는 사회. / 소크라테스 식 대화와 교육

교육은 자기 속에 내재하는 의견을 드러내고 밝히며 합의하는 과정.

에두카치오 - 이끌어냄

 

김삼봉 <<도덕교육의 파시즘>> - 한국에서 시민이 출현하지 못하는 원인은 노예교육

교사의 능동성과 학생의 자발성이 양립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문제.

서양에서 교육은, 노예를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의 자기 실현.

한국교육은, 자기를 스스로 형성하는 자유로운 시민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타율적 지배에 양순하게 순종하는 노예를 기르는 것.”

 

주인이 된다는 건 참 나를 찾는 멀고 험한 과정에 오른다는 의미.

대화와 산파술이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에 빠지기 쉽다. 상관의 명령과 권위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인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음.

타자도 나와 같다고 전제하면, 질문은 사라지고 나와 다름은 배제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타자는 사라지고 그와 더불어 대화를 나눌 존재를 잃어버린 나도 괴물로 변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동일하다고 전제하는 근대적인 의미의 법 앞의 평등보다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뜻하는 희랍어 이소노미아가 더 중요하다.

하나 속의 둘’ - 내 속에 내가 많은 건 장애가 아니라 다원성의 반영이다. 한 개인도 온전하게 하나인 사유를 할 수 없는데, 인류 전체의 무한한 다원성을 부정하는 것은 정치를 가로막는 장애물.

아렌트 <<정신의 삶>> - “‘사유는 소수의 특권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능력. 사유하지 않는 무능력은 지력이 부족한 대다수 사람들의 결점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가능성이다. 과학자나 학자, 정신 활동을 하는 다른 전문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2. 정치란 무엇인가?

19681126일 발표, <국민교육헌장> (서울대 박종홍 교수 초안, 박정희가 발표>

(1994년에 폐기)

차이와 다양성보다는 특정한 이념, 획일성, 집단성을 가르쳤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아렌트에게 인간은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규정을 거부, 인간이 행위를 통해 역사를 만드는 것이지, 역사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낡은 세계에서 새로운 정치가 가능한 조건을 우리 스스로 마련하는 과정, 우리가 만든 세계를 미래 세대에게 강요하는 과정이 아니다.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나의 발전이 나라의 융성과 무관하진 않겠으나 인간이 만드는 세계는 나라의 경계를 넘어서 존재한다. 아렌트가 강조한 정치공동체는 배타적인 국민국가보다 세계시민공동체.

추상적인 개념이 구체적인 개인의 삶을 지배하면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지 못한다. 정치는 다원성을 통해서만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2010년 법무부, <법질서 탐구생활: 나의 법질서는 몇 점?> 만화

한국사회에서 모범시민은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시민이 아니라, 침 안 뱉고 새치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국과 같은 곳에서의 정치는 모범시민보다 시민불복종과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듯이, 기존의 규범과 질서를 더 이상 묵묵히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을 때 정치적인 존재가 출현한다. (과제는 이런 정치의 등장이 일시적인 흥분과 열광 속에 수그러들지 않도록 할 방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정치적 동물. 인간이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자 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 인간은 말하고 행동하면서 각기 다르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관계망을 형성.

 

김선욱 <<한나 아렌트 정치판단이론>> “아렌트, 인간의 복수성(다원성)과 같은 인간학적 사실은 고정적 실체로서 인간에게 주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를 통해 형성해가는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타인과의 정치적 관계를 맺는 가운데 형성, 이렇게 형성된 정체성이 정치적 행위를 통해 드러나게 되는 순환구조를 갖는다.”

정치는 나를 나답게, 너를 너답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고 공통의 세계 위에 구현되는 나와 너, 우리의 좋은 삶이다.

 

아렌트, 정치적인 존재는 특정한 속성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행위를 하고자 하는 사람. 말과 행위를 함으로써 인간은 타자에게 호소하고 동의를 구하며 공동체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은 특정한 사회를 실현하면 중단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있는 한 계속되어야 할 과정.

 

김선욱, “참여는 곧 자기 형성의 실존적 행위인간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당위나 의무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살기 위해서. 참여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지만, 그건 시민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동물로서의 생존에 가깝다.

 

플라톤, 정치를 진리의 실현과정으로 봄.

그런 플라톤을 비판하며 아렌트, 정치의 세계를 진리의 세계, 철학의 세계와 구분했다. 왜냐면 정치는 행위의 영역이어서. 정치의 성공과 실패는 진리의 문제일 수 없고, 행위자와 관찰자는 정치적인 의견 형성을 통해 서로 대화해야 한다. 참여자는 현안에 몰입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시야가 좁아진다. 그리고 참여자의 성공과 실패는 그의 진리가 아니라, 그에게 명예를 주려는 구경꾼의 시선과 그들의 의견에 달려있다.

 

한국사회는

진리나 기준, 정답, 모범답안이 없으면 불안,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

각자가 자기 생각을 드러내고 자기 의견을 고집한다면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아렌트, 타자와 차이 없이 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한가?

두 명 이상이 만나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공동체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계일 뿐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가 공유물이라는 것. 지금 우리의 것, 또한 미래세대의 것.

 

정치경제학자 사이토 준이치, <<민주적 공공성>>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진 타자가 존재함을 반드시 고려.

보편적인 타당성을 단념하는 것(명확히 보는 것), 사람-사이의 근원적인 복수성을 폐기하지 않기 위한 조건, ‘세계를 타자와 공유하기위한 조건

아렌트에 대해, 사적 영역의 문제를 무시하거나 배제하려는 경향, 사적 영역으로 침투하는 생명정치의 영향력을 주목하지 못했다고 비판.

 

아렌트 <<정치의 약속>> 평등과 자유를 대립시키는 자유주의는 시민의 자유를 사적인 영역에서 참게 하고 정치의 범위를 축소한다. 하지만 자유롭기 위해 나는 평등해야 하고, 평등한 존재로서 자각하기 위해 나는 자유로워야 한다. 정치세계에서 자유를 누리려면 우리는 평등한 관계를 구성해야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부나 학식이 다를지라도 공적인 존재로서 우리는 평등을 요구하고 나와 너, 우리의 목소리가 공적인 영역에 반영되도록 요구해야 한다.

아렌트, <<혁명론>> “이소노미는 평등을 보장했지만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나거나 창조되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본질적으로 평등하지 않기에 법으로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 인위적인 제도, 즉 폴리스가 필요했다평등은 인간이 노력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 인위적인 세계의 특성.

 

한국처럼 위계질서가 지배하고 신분과 재산의 경계를 넘어선 만남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정치는 힘을 얻기 어렵다.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건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세계 자체가 의도적으로 파괴되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그 세계가 작아지고 분리된 상태로 유지되었기 때문.

 

한국전쟁과 군사독재가 파괴시킨 세계, 야만적인 강제력으로 변질된 권력을 복원하는 것은 한국정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정치에서도 공통감각이 중요하다. 각기 다름에도 우리가 뭉쳐 사는 것은 어떤 공통감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체 어떤 공통감각을 공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공통감각은 참여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데, 그런 참여 과정을 거부하는 사회에서는 뒤틀릴 수밖에 없다. 국가와 자본, 그들을 대리하는 전문가들이 공통감각을 지배하려 든다. 애국심. 개발주의. 아름다움과 성공만을 강조하고 비장미나 실패를 은폐하는 문화에서도 공통감각은 왜곡된다. 한국사회의 비민주성이 가장 부각되는 영역이 바로 문화.

함께 애도하고 고통과 기쁨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공통감각은 회복될 수 있고, 그래야 정치가 가능하다.

 

아렌트, 프랑스혁명에 대해서는 부정적. 미국혁명을 높이 평가. “새로운 정치공간의 경계를 정하고 그 내부의 규칙들을 정혁명은 낡은 질서를 파괴하는 동시에 새로운 질서의 틀을 짜야한다. 그래야 세계가 지속될 수 있다. 그런 지속성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권력이다. 권력은 부패한 정치나 폭력과 다르다.

 

3. 왜 정치에서 권력이 중요한가?

정치가 지속되려면 자유로운 시민 뿐 아니라, 시민들이 만든 세계의 지속이 중요하다.

정치는 현재의 사회 운영이나 현안을 해결하는 것 뿐 아니라,

아렌트, 근본적으로 인간이 생활하는 세계의 지속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자유는 고립이나 고독이 아니라 세계를 통해 실현된다. 인간이 모든 것을 자급하지 않는 이상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거리를 조절하고 관계를 맺고 끊는 방식에 관한 소통과 합의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권력은 사람들이 행동을 위해 모일 때에만 구성된다. 결속, 약속, 연합, 계약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 일정한 권력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함께 행동할 때 생기고, 그 목적을 이루고 뿔뿔이 헤어지면 소멸한다. 이것이 더 안정화되면 정치공동체가 구성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약속하고 계약하는 능력과 약속의 준수가 중요하다.

다양한 행위자들이 함께 움직이기에 어느 순간에 우리는 그 무대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다른 주인공들의 행위를 보는 관객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들고 빠질 수 있지만 그 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권력의 역할이다.

한국에서 정치인들이 보여준 공약 파기, 정치 술수는 약속과 계약의 중요성을 왜곡하고, 세계의 지속이 아니라 지금 쥐고 있는 권력의 지속만을 최우선 과제로 만든다. 그러면서 모이고 하나도리 뿐 아니라 흩어지고 헤어지는 과정의 중요성은 사라지고, ... 정치행위를 통해 다양한 시민들이 등장하고 영예와 불멸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드러난 소수의 전문가들 / 직업정치인들만이 공적인 행복을 독점한다. 영향력 커짐, 이를 정당화하는 영웅신화.

말과 행동이 이 세계를 움직이는 방식인 이유는, 타자와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자의 존재를 위협하거나 부정하려는 폭력을 사용하는 순간, 세계에는 균열이 생긴다.

폭력과 권력은 완전히 다른 것.

관객민주주의.

 

아렌트, <<혁명론>> 세계가 지속되려면 거리가 필요하다.

공통감각은 개별 감각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같이 느낄 수 있지만 우리는 다르게 생각한다.

동정은 사람들의 교류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사이공간, 즉 거리감을 없애려 한다는 점에서 사랑과 다르지 않다”“동정은 거리감을, 즉 정치적인 사안들이 발생하는 사람 사이의 인공적인 장소를, 인간사의 전부라 할 영역을 없애기 때문에, 정치적인 면에서 부적절하고 중요하지 않다.”

빈민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과 빈민을 자유롭게 하는 것.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의 차이.

미국의 상원제도는 정제되지 않은 대중의 의견을 세련되게 만드는 중간과정. 참여자가 아닌 관찰자?(이해 안됨). 헌법정신을 만들었다.

 

시민들의 정치적인 능력이 살아나고 권력이 구성되어야...

 

한국정치.

혁명에 견줄만한 사건이 여럿 있었지만, 그 사건들이 실제로 사회를 크게 바꾸지 못한 이유는 - 시민역량 부족. 혁명을 준비하는 방법이나 혁명을 사유함이 우리 사회의 근본 구조를 건드리지 못했다. 시민을 대변한다던 지도부가 자기들의 짐권이나 자기 노선의 정당성만을 생각하고, 국가의 성격을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 한번에 사회를 바꿀 생각만 했지, 아래로부터 권력을 구성할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

 

대중사회. “사람들을 모으고 그 관계를 맺어주고 갈라놓는 힘을 잃게 함. 이 힘은 공적인 세계를 언제든 다시 구성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 힘을 상실하면 시민은 고립된 개인이나 뭉쳐진 오합지졸이 되어버린다. 정치의 가능성은 축소되거나 사라짐.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수의 문제가 아니다. 직접 간접 선거방식이나 국회의 구성방법이 아니다. “공통의 세계에 대한 관심세계를 바꿀 만큼 충분한 사람들의 결속이다.

 

아래에서부터 단단히 공화국의 기초를 다지지 못한다면, 그런 기초가 자유롭고 공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지 못한다면, 공화국은 유지될 수 없다.

 

지금 세대가 만든 약속과 합의는 새로 태어난 이들에게 낯선 것이고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세대는 기존의 합의를 새로이 바꾸어야 한다.

아르케(희랍어) - 새로운 시작,

프린키피움(라틴어) - 시작과 원리.

 

평의회. “자유의 공간파리꼬뮨

스스로 구성한 위원회.

누군가에게 선택되지 않고 스스로를 구성하는 엘리트를 풀뿌리 차원에 배치하는 최선의 방법이자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

정치능력과 행정능력을 구분하지 않은 것은 평의회의 현실적인 한계.

한국의 인민위원회 누군가의 선동에 따라 이끌리는 대리 기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다스리려는 자치기구

 

4. 한국정치에서도 가능성이 있나?

정치적이 된다는 것, 폴리스에 산다는 것은 힘과 폭력이 아니라 말과 설득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민심을 내세우는 사람 - 민심은 다양한 시민들이 드러내는 다양한 의견과 의지.

모두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정치인 - 모두를 위하는 건, 다양한 인간들을 특정한 유형의 인간으로 똑같이 만들 때에만 가능한 일.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사회는 권력이 아니라 폭력에 기반한 정치였다.

사회적 약자, 빈민 장애인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등 잔인한 일상의 폭력을 경험.

거짓된 정부정책에 복종을 거부하는 시민불복종’- 실정법을 어기더라도 헌법정신을 실현하려는 시민의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시민불복종은 새로운 행위로 사람들의 상식을 일깨우려는 것. 시민불복종의 행위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법원이 할 수 없다.

아렌트, 시민불복종은 법을 정립하는 정치행위, 공동체의 기반을 세우는 정치행위이다.

권력은 시민의 말과 행위를 보장할 의무를 갖는다.

 

꿈틀거림. 꿈을 틔우는 과정 이런 과정은 사유 뿐 아니라 타자와의 부대낌을 통해 얻어질수도 있다. 사유와 행동.

선언.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가 나라고 선언.

아렌트의 정치 / 2부 전체주의와 풀뿌리 / 1장 [전체주의와 종북]


- 아렌트는 전제정, 독재,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를 구분했다.

- 전체주의는 특정한 상대와 경쟁하거나 다투는 예측가능한 정치체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전의 정치질서와 다르다.

- 전체주의는 다름 아닌 권력자체를 없애려 한다는 점, 시민들의 공적인 장을 구성할 가능성 자체를 봉쇄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정치제제와 다르다.

- 인간의 자발성 자체를, 정치 자체를 제거하려 든다.

- 전체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분석. 악의 평범섬, 사유하지 않음, 세계를 읽어버림.

(세계 : 모든 인간사가 이루어지는 사이공간) 전체주의는 이 세계를 파괴하려 들기에 서구 역사의 연속성을 파괴한 사건이다.

- 전체주의는 특정 시기의 정치체계가 아니다. 그것을 등장시켰던 조건들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1. 어떤 상황이 전체주의를 불러오는가?

1) 반유대주의

- 유대인들은 유대인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어떤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 뿔뿔이 흩어진 존재였고, 자신이 살던 국민국가에서는 국민도, 이주민도 아닌 비국민의 지위를 가졌다.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순수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만 관심을 쏟는 세속적인 존재를 대표하던 유대인은 국가와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정부에 반감을 품은 세력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자 악덕의 표상이 되었다.

 

2) 제국주의.

- 팽창 그 자체를 추구했다. (자본주의처럼)

- 팽창된 식민지에서 정치공동체와 분리된 권력은 야만적인 폭력과 다를바 없었고, 권력의 이름으로 가해지던 노골적인 폭력은 식민지인과 이주민 모두의 마음에 지배와 폭력의 경함을 깊이 새겼다. 본국과 식민지의 이중권력이 시민도 이중화시킨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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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중사회의 출현.

- 수동적인 존재들이 공적인 상태에 불만을 품을 때 그들은 정치가 아니라 폭력에 매혹된다. 즉 타자와 함께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개별적인 분로로 뭉쳐져 화풀이를 할 약자들을 찾는다.

- 대중의 특징은 야만과 퇴보가 아니라 고립과 정상적인 사회관계의 결핍, 전체주의운동은 원자화되고 개인화된 대중이라는 특수한 조건에 의존했다.

- 대중과 엘리트의 공모,동맹. (상류사회와 부르주아의 위선에 환멸을 느끼던 엘리트들은 전체주의운동이 그 위선을 공격하고 모욕하자 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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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운동은 각기 다른 계급에 속한 참여자들에게 강력한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했고, 부조리한 현실을 파괴하려면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알리바이를 제공했다.

2. 전체주의는 무엇을 파괴하나?

 

(전체주의의 특징)

- 전체주의에서는 지도자 외에 공식적인 의사결정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지배.

- 개인이 지도자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게 만듦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한다.

-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을 내세우지만 그것을 실제 현실에서 찾지 않고 이데올리기의 허구세계에서 찾았다.

- 정치를 거부하면서 현실에 관해 논평을 하려 든다.

- 지도자의 현실 해석과 다른 해석을 하는 세력, 정치를 추구하는 세력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비밀경찰이 필요하다. “모든 정치적인 반대파가 사실상 사라졌을 때 그 업무가 늘어난다.” 실제의 적이 사라지고 난 뒤 가상의 적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공포정치가 더욱더 환산된다.

 

(파괴하는 것)

- 전체주의는 총제적 지배를 실현하려한다. 총체적 지배는 무한히 다양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마치 모든 인류가 한 사람인 것처럼 조작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자발성을 제거하려 한다.

- 정치가 실현되는 공간 자체를 없애려 하기에 사악한 체제이다. 사람은 사라질지언정 정치의 장은 결코 사라지면 안된다.

-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개인의 기원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에 관한 질문이자 정치적인 질문이다.

- 인간이 각기 다르게 태어났고 그렇기에 다양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타자라는 형상을 우리의 시야에서 지운다.

- 거대한 무리처럼 보이는 대중들은 무리를 유지하고 있는 고립된 개인들일 뿐이다.

- 국익이나 대의를 내세운 운동이 위험한 이유는 인간의 자유를 그 운동의 희생양으로 삼기 때문이다.

- 새로운 가능성이나 대안을 부정하고 이미 알려진 길만 가려는 태도는 전체주의의 흔적이다.

 

(우리가 해야할 일)

- 정치를 가능케 할 세계를 지키고 공론장을 활성화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 사람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상호작용하는 곳에서는 권력이 구성되고 말과 행위를 통해 권력이 다시 구성된다.

-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정치가 싹튼다. 소소한 소통이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한다. (골드파브)

3. 왜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에 갇혀 있나?

- 독재를 단순하게 탄압과 복종, 지배/저항, 강제/동의라는 이분법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 실체 없는 지배는 대중 개개인이 지도자와 일체감을 가지며 자신이 지도자의 위대한 뜻을 실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지배 형태이다.

- 공식적인 의사결정구조보다 밀실타협을 활성화 시켰다. 다원적인 정치의 활성화가 불가능했다.

- 국민과 지도자의 일체감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집중적인 교화와 주입식 교육(국민교육헌장), 심한 처벌을 통해 형성되었다.

- 대한민국중앙정보부KCIA. 잠재적인 범죄자를 적발한다. 비밀경찰은 적을 검거하는 장치가 아니라 내부의 적을 만드는 장치였다. 정부가 보여주는 것을 믿지 않으려는 의지’, 정부가 제시한 것과 다른 의견을 말하려는 생각자체를 단속한다. 중앙정보부의 활동은 북한보다 남한에 맞춰져 있었다.

- 한국전쟁과 남북한의 대치라는 상황은 정부나 정치인에 대한 반대를 국가에 대한 부정이나 배신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시민들이 공적인 부분에서 행복을 경험하는 것은 금지되었고 오로지 사적인 행복, 경제적인 삶에 집중할 것을 강요당했다.

- 저쪽이 가지면 악이고 내가 가지면 선이라는 이분법은 정치를 다시 진리의 영역으로 몰아갔다. 권력이 공통의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는 점도 무시되었다.

 

4. 우리는 전체주의의 조건에서 벗어났을까?

- 지금 우리 사회의 유대인은 누굴까? 여성과 청소년,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그리고 종북이라 생각한다. 종북이라 규정되는 순간 이들의 목소리는 소음이 되고 이들의 권리는 부인되어야할 위협요인이 된다.

- 사회적인 증오가 아무런 여과 없이 표출(일베의 소수자들 공격 등)되는데 공권력은 이를 방치하고 있다.

- 한국의 기득권층은 이들에 대한 반감을 활용해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치적인 조건과 상황을 만들어낸다.

- 한국정부와 재벌들은 공유지들을 사유화하고 기존의 사회적 관계들을 화폐관계로 대체하면서 시민을 소비자로, 일하는 노예로 전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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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정치_권정우하승우_2부 전체주의와 풀뿌리_혁명과 풀뿌리

과천녹색당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공부모임 _ 깃털 | 2015.10.11

 

1980서울의 봄에 다시 열린 정치의 장.

전두환 계엄사령부의 비상계엄, 광주항쟁, 통일주체국민회의 체육관 박수, 전두환 대통령 취임.

정의사회 구현’, 가짜 야당 + 통금 해제, 교복 자율화, 3S정책 + 삼청교육대와 수용시설

경기 호황. 사적인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게 중산층이라는 메시지. 마취.

잠시 열렸던 자유의 공간은 폐쇄되고, 노골적 폭력과 은밀한 거래, 위선적 만족감이 정치세계의 등장을 가로막음.

광주항쟁의 기억, 새로운 조직운동.

 

질문 :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은 왜 정치를 활성화시키지 못했나?

 

1. 자유로서의 혁명은 왜 어려웠을까?

 

혁명 : (권력 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행위자가 계속 등장할 정치의 기본틀 다시 만들기. 헌범 제개정, 시민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기구와 제도 만들기.

 

19604월항쟁

민주주의 바로잡아 공산주의 타도하자”, “질서를 지킵시다

남북 대치 현실. 시민들의 자기 검열. 질서를 내세워 이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사건 이후과정을 주도하게 함.

질서를 지켜 = 너는 목소리 내지 마. = 비지식인, 비엘리트, 청소년, 빈민, 농민 .

항쟁의 정치행위자들은 헌법 개정, 정부 기구제도 개혁을 위한 공적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못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풍기문란을 막고 질서를 세워야 한다는 논리가 열정을 가로막음. (권명아, 음란과 혁명). 혁명 이전에 내재해 있던 불안감의 투영.

엘리트 패닉’(Rebecca Solnit) : 공황에 빠진 대중과 영웅적 소수? “(엘리트의) 사회적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 빈민과 소수자와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 약탈과 경제범죄에 대한 강박관념, 치명적인 무력에 기대려는 마음, 헛소문에 기초한 행동 엘리트의 공포. 매우 중요한 개념.

주요 행위자는 대학생 아닌 중고등학생과 시민. 기록은 대학생을 주역으로.

경제, 생계, 임노동의 발목잡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국회 해산 없는 양당 타협, 50일 만에 마련된 헌법 개정안, 민주당 압승, 윤보선 대통령 선출

정치는 다시 기성 정치인의 몫이 되었다.

 

1987년 전후

1985년 김영삼, 김대중의 신한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의제는 개헌으로.

1987년 호헌 대 호헌철폐. 대통령 직선제 개헌 쟁취 운동 - 박종철 사망 -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 610 30만 명, 626 150만 명.

노태우 후보의 629선언 :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시국사범 대폭 석방.

개헌 논의는 야당만이 참여. 시위, 조직활동, 노동자투쟁은 탄압.

604월항쟁과 마찬가지로, 헌법 개정 기회는 시민의 참여로 마련.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는 대통령 직선제 문제 하나로 축소.

당시의 목소리들은 헌법 개정에 얼마나 반영되었나? “8시간 노동으로 생활임금 쟁취”, “민주노조 결성”, “통장에서 대통령까지 내 손으로”, “공정보도 언론각성”, “경제침략 자행하는 미일 외세 몰아내자”, “농민이 빚을 져서 야반도주한 후 목매어 자살하게 만든 현 정권 즉각 퇴진”, “잔업특근, 철야작업 없이도 노동자가 먹고살 수 있게 힘쓰자

민정당, 민주당 8인 정치회담이 헌법 개정 과정 주도. 48일만에 개정안 확정.

헌법 개정 과정은 민주주의의 뿌리를 단단하게 하지도, 새로운 정치공간을 열지도, 시민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강화시키지도 못했다. 대통령을 뽑는 절차와 선거가 주요 협상의제가 되었다.

제헌의회파CA : 김문수, 심상정, 유시민, 박노해 등.

 

아렌트의 시선으로 본 4월항쟁과 6월항쟁의 공통된 특징

1) 대안 정치세력 구성 없이 공명선거, 직접선거 외침. 시민들이 헌법 개정 과정에 참여하여 공적 자유와 행복을 느낄 기회 박탈. 기성 정치인이 독점. 자유를 지속시킬 틀 만드는 데 실패.

2) 개헌 주도세력은 철저히 기성 정치세력. 논의는 국회 내부로 제한.

3) 항쟁의 정치행위자들이 이후 사라짐. 대학생? 여성, 노동자, 도시빈민, 농민, 심지어 초등학생. 타자와의 세계 공유 없이 특정 주체가 중심이 되어 세계를 독점. (소위 386, 전대협)

4) 서울 중심성, 국가 중심성 강화. 부마항쟁, 광주항쟁, 지방의 사건과 지방의 죽음.

결국, 한국에 서구와 비견할 혁명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혁명정신을 지속시킬 정치공간을 구성하지 못했던 것.

 

2. 고난과 슬픔의 정치는 가능한가?

 

함석헌 : 아렌트와 비교할만한 사상가

사악한 세력과 맞설 때 저기다 대고 하지 마시고 민중을 향해 데모를 하세요. 그래서 나라라는 건 이렇습니다. 이렇게 해가지곤 민주주의가 안 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권력을 향해 징징대는 시위 하지 마라. ~해주세요.

김상봉의 함석헌 : 고난과 슬픔을 대면하는 자의식은 슬픔과 하나 되어 체념하지 않고 불행한 현실을 부정할 또 다른 현실을 사유하게 된다. 슬픔과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자기를 억누르는 모든 타자적 힘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짐으로써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공감하기 어려움.) 함석헌의 사상은 우리가 겪는 사회 부조리를 고난과 슬픔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나와 우리의 슬픔, 이런 공통의 슬픔은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용기를 낼 수 있는 정서를 형성한다.

슬픔과 동정심 : 동정심이 인간관계에서 차이와 거리를 제거하는 반정치적 감성이라면, 슬픔은 서로 마주 보면서도 자신이 주체임을 인식하는 감정. (자의적인 구분이거나, 개념의 오용. 동정심이 pity라면 그럴 수 있으나, sympathycompassion이라면 그렇지 않음. 슬픔은 매우 애매.)

어두운 시대에 슬픔을 기름 삼아 자신을 태울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어 희망의 불이 반짝인다.

김상봉의 서로주체 : 만해, 다석, 함석헌, 소월, 윤동주. 자기상실 속에서의 자기실현. 아렌트의 비지배non-rule’와 닮았다.

정치와 자유 :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 나를 발전시켜 완전에까지 이르자는 것이 인격. (현재의 시공간과 나의 상태에 저항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생의 의지를 말하는 듯하지만...)

우리의 하나는 하나 속에 전체가, 전체 속에 하나가 있는 그런 개성적 하나”. (온 인간. 글로벌 시티즌.)

자유와 우정 : 자유를 찾아나서는 길은 자신의 자유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임을 깨닫는 과정이고, 동료시민과의 우정을 키우는 과정.

아렌트의 노동, 작업, 행위 : 함석헌의 맞춤(適應), 대듦(拒否), 지어냄(創造). 베르그송의 영향. elan vital, 생명의 도약.

스스로 하는 민의 종합 행동이 정치. 길거리에서 웅성거리는 생활꾼의 정치.

연방국가의 이상 : 자치 공동체, 연방, 세계가 한 나라로.

씨ᄋᆞᆯ : 어리석고 못나 부정적인 존재이지만 그 속에 얼을 품고 있어 주체의 전환가능성을 내포한 존재. 꿈틀거림. 수동적이지만 능동적인. 삶의 절대이며,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터지고야 마는. 그러므로 민중의 바다로.

8-90년대 맑스-레닌주의에 의해 밀려났으며, 혁명을 지속시킬 자유와 정치에 관한 사유도 위축되었다.


3. 우리 시대에 정치를 부활시킬 방법은?

 

박근혜 시대, 우리는 전체주의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파괴된 세계를 복구하고 정치적 자유를 지속시킬 방법 찾아야.

기업권력의 부상. 다운사이징, 구조조정, 괴멸된 노동조합, 노동기술의 무용지물화, 해외 이전, 규제완화. 공포의 경제와 통제 시스템. 경제적 타격과 탈정치화. 경제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

살아남는 일에 급급한 사회에서 정치는 부활하기 어렵다.

아렌트의 우려 : 사회가 정치를 파괴시킨 상황.

공적인 장에 기꺼이 나서려는 용기와 그 용기를 쓸 곳(공간).

시민의회 : 공청회, 합의회의, 시민배심원제도, 공론조사, 시나리오 워크숍, 협력적 의사결정 제도 등.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대립을 넘어서기 위한 설계들 존재.

헌법개정과 시민의회

내가 약하다는 냉소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폭력. 나서는 사람에 대한 시기와 왕따. 그렇게 나는 부속품이 된다.

탄생성이라는 인간의 기적. 정치의 가능성. 일상적 삶에서 실현되는 교육.

땅과 종자를 지키는 일은 (비정규, 일용직) 노동자들의 운동에도 과제가 될 수 있다.

슬픔과 고난의 정치. 개별화된 슬픔 아닌, 정치로 이어지는 슬픔. 정치적 악용이라는 금기 넘기.

투덜거리느니 차라리, 투표를 거부하자, 미디어를 치우자, 외부에서 나를 조종하는 것들을 조금씩 떠나보내자.

권위주의 사회 : 청년이 스스로의 현실 생활에 대해 의식을 지니지 않고, 그리하여 멍청하게 무위도식하거나 맹목적으로 복종한다는 것에서 찾아짐. (W. Reich)

정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정치. 타자의 얼굴을 맞댈 때에만 우리는 정치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마치며

권력의 문제, 권력의 독점과 배제의 문제 : 배제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고, 그 권력의 행사를 통해 참 정치의 공간과 가능성을 파괴하는, 현실 권력의 문제를 다뤄야.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어 말과 행위를 시작하는 용기, 그곳에서 대화가 시작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지어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무엇이든 시작된다. 자유를 위해, 숨지 마라.

    - 정치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제2의 탄생에 버금가는 사건이다. 120. 그것은 공론장에서 말과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또 다른 자신이 된다는 것.

공동체와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자.

    - 공동체 안의 인간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무대) 위의 인간이다.

    - 우리는 공동체에게 (정치경제적 공동체로서,) 노동과 작업을 조직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를 경영하는 공론장을 통해 자유로운 인간들의 말과 행위가 꽃 피는 무대, 즉 정치 공간이 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공동체는 과거의 어떤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 아리스토텔레스 "폴리스는 단순한 생존을 위해 형성되지만 훌륭한 삶을 위해 존속하는 것." 기막힌 표현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공동체에 대해 단지 책임과 의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무대를 통해 멋진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게 정치다. 

1부 수용소와 공론장

3장 공론장과 자유

● 공론장 : public sphere 또는 in-between space. 사이공간 / 탁자의 비유

나와 너를 구분해주는 사이, 나와 너의 거리감, 중간지대

일체가 아니라 독립된 개체인 각자에 대한 상호인정, 존중, 합의, 조정이 이루어지는 공간

정치가 행해지는 자유의 공간 / 행위의 공간

 

1. 자유란 무엇인가

 

● 고대적 의미 : 필요로부터의 해방

오직 타인에 대한 폭력에 의해서만 가능

시민에게만 가능한 특혜

콩스탕 : 고대의 자유는 집단자유, 시민 전체가 권력을 나누는 것


● 중세, 봉건사회 : 면제, ‘세금을 내지 않는 자는 자유로우며 그들은 귀족이 된다

자유 = 면제특권, 배타적 권리 = 고귀함, 양육, 관대함, 대범함


 ●  자유주의 : 모든 인신적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왕이나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와 간섭, 방해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상태

- 홉스 : 자유는 저항이 없는 상태, 나를 막아서는 것이 없는 상태.

가장 큰 저항은 살해에 대한 공포

이 공포를 피하기 위해 국가(리바이어던)와 계약

자유 반납의 대가로 생명, 사적 소유의 안전을 보장

콩스탕 : 근대적 자유는 개인 자유, 정치권력과 제도로 하여금 사적 소유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

 

- 고대 폴리스에서의 자유는 정치적인 영역에서만 중요, 근대에 와서 자유는 비정치적 영역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바뀜

자유와 안전이 동일시되는 한, 개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공포의 흔적들은 더욱더 자주 드러난다. ‘타자에 대한 불신은 안전사회라 하더라도 줄어들 수 없고 제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 어둠을 다 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안전을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타자에 대한 불신을 의도적으로 증폭시킴으로써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는 경향이 강하다.

- 불신을 기반으로 안전 논리는 공간-공론장을 분리하고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확대

- 타자와의 만남의 장소 상실, 공동의 문제에 대한 관심 상실, 결국 나 아닌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게 됨.

- 객관적인 적, 내부의 적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을 고립시킴. 안전 논리는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논리

- 결국 나의 자유 상실.

 

자유는 행위로 드러날 뿐 감각을 통해 확인할 수 없다. 내면의 자유만 가지고는 자유로울 수 없다. 세계-공론장에서의 관계와 행동과 실천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 자유의 조건

1. 자유에는 인간들 간의 만남의 장소, 물리적인 공간, 정치적 행위와 말들이 통용되는 공론장이 필요하다자유는 나와 나 자신만의 뜨거운 논쟁이 아니다. 자유는 철저히 외부 세계와의 문제, 자유는 정치 없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2. 자유와 행위는 동일하고 행위는 공동세계의 원칙에 의해 촉발된다공동세계의 원칙은 탁월함,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모든 사람 가운데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 정신이다.

3. 자유는 훈련, 기교를 필요로 한다정치영역에서의 기교는 말과 행위의 능숙함, 타자를 염두에 두고 말하고 행위하는 능력.

4. 자유는 배타적 주권·지배·명령이 없는 곳에서 가능하다.

 

- 이사야 벌린, ‘적극적 자유가 옹호하는 자기지배에서 자기가 무한히 확장하여 국가나 집단이 되어버릴 경우 전체주의의 위협이 다시 도래할 것이다.’ 무질서가 전체주의를 낳을 것이다. 박정희의 논리.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전체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2. 권력이란 무엇인가

 

고립된 대중은 자기 이외의 사람과 소통할 수 없다. 이것은 공동세계의 파괴, 공통감각의 상실, 세계성의 상실이다. 이 때의 대중은 의외로 쉽게 자신과 타자를 동일시한다. 자기가 갇혀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주관성에 타인을 동일화해버리기 때문이다.

공론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정치적 행위는 작업(노동, 작업, 행위의 구별)처럼 지속성을 가지기 어렵다. 정치적 행위에 지속성을 부여해주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열린 공간에서 서로 소통하는 복수의 인간이 동의할 때 생기는 힘이다. 열린 공간이 없다면 권력은 사라진다. 그럴 때 남는 것은 폭력, 배타적 주권이다.

권력은 공론장에 불을 켜 두고 정치적 인간들이 만들어 낸 더 나은 것들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3. 자유와 평등이 다를까?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복수의 타인과 공동체를 인식하는 정치적 인간만이 자유를 경험한다. 정치는 자유다. 생존을 위한 삶(조에, 수용소의 삶)을 두고 자유롭다고 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삶(비오스)까지 누릴 수 있어야 자유로운 삶이다.

사회와 정치공간은 다르다. 사회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나의 것과 공동의 것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고대에 경제와 노동은 영역은 가정, 사적 공간이었다. 지금은 경제와 노동이 사회의 전 영역을 차지해버렸다. 인간의 행태는 생산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표준화되었고 자발적인 행위나 탁월함이라는 고대의 가치는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활동을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생각한다. 생존이 공적인 것으로 등장하는 세계가 되었다.

가장(, 주권자)이 휘두르는 권력 앞에서 유지되는 가족구성원의 평등, 생존을 위한 평등은 노예의 평등이다. 여기에 자유는 없다.

그렇다면, 생존은 보장되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보장되어야 개인이 해방될 수 있고, 해방된 개인만이 자유롭게 복수의 타자들과 함께 공론장에 참여하여 권력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권력은 생존을 위협하며 모두의 생존이 보장될 수는 없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자유는 이상주의자의 헛된 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정치는 사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삶, 할 수 있는 것들 중 최고의 것에 따라 사는데 필요하다.

 

4. 왜 정치에서 용기가 중요한가.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사적인 생활의 필요나 외부의 강요에 굴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두려움에 처해도, 욕망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판단)을 버리지 않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 속에 공포의 감정을 결여하거나 단번에 극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보려주려는 것이 공포가 아니라고 결정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공포와 두려움을 피해 자기보호로 나아갔던, 홉스의 의지 없는 인민들의 경우와는 정반대다.

가정은 생존의 위한 사적 영역, 필요의 영역, 노동의 영역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지루한 일상과 가혹한 반복이 주는 고통을 견디는 인내이다. 정치적 삶은 이 지겨운 일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용기 역시 가정 안의 삶 속에서는 드러날 수 없다. 반드시 폴리스에서의 좋은 삶을 전제해야만 가능하다. 용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가정이라는 안온한 필연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고, 진정한 인간으로서 영위할 수 있는 좋은 삶역시 요원하다. 오직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만이 필요만을 원하는 동물적 삶을 넘어 진정한 인간으로, 정치적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다.

인간이 가정에서 폴리스로 나오려면 심연을 건너야 한다. 이것은 따뜻하고 안온한, 엄격한 불평등의 장소인 가정에서 나와, ‘자신이 가혹하게 노출되고 불편하고 불안정하고 행위가 가지는 허약성이 온몸으로 느껴지는공적 영역으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적 영역 자체가 공적 영역의 자리를 대체해버린 오늘날 심연은 사라졌을 뿐 아니라 감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오늘날 공적 영역은 사라지고 심연도 사라졌다. 심연을 건너는 수고로움도, 심연을 건너서 맞이하게 되는 가혹한 노출과 곤경도 사라졌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기묘하게 뒤섞인 사회에서 대중은 노예의 풍요로움은 맛볼 수 있지만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잃어버렸다. 이는 곧 진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래, 너 잘났다!

 

- 김상봉 : 용기를, 정신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는 것,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상호적인 것, 도덕적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정신의 강건함, 도덕적 당위에 따르는 것.

- 홀로주체성 : 타자 없는 자유, 로빈슨 크루소, 노동·작업과 관련

- 서로주체성 : ‘의 인격적 만남으로서 자유가 가능,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

우리 시대에 공론장을 다시 만들고 정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용기이다. 수용소의 무슬림 같은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 단계 역시 용기이고, 이것은 우리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하나의 시작이며 우주가 이미 존재하게 된 이후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유롭다.

아렌트의 정치 추천사&서문 정리

함께 읽기/기타 2015. 9. 29. 23:5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바시 / 권정우 하승우『아렌트의 정치』추천사&서문/ 2015.10.11 / 박정원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과 한국사회

 

추천사 :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비추는 거울

본문(p245~7)에서 아렌트, 함석헌과 함께 읽어볼 만한 철학자로 거론되는 김상봉은 추천사에서 한국이 ‘폭력에 중독된 사회’(p8)라고 단언한다. 그는 이 책이 아우슈비츠에서 전체주의에 이르기까지 제도화된 폭력을 성찰하는 책이고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아렌트라는 거울을 통해 되돌아보는 책이라고 정리하고, ‘이 책의 가치는 우리에게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되돌아보게 하고 물음을 던지게 한다는 데 있다’(p10)고 말한다.

 

서문 : 아렌트, 수용소와 전체주의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다

저자들은 아렌트를 이해하는 것이 지금 우리 현실을 이해하고 ‘다른 정치’를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믿고 아렌트가 던지는 화두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항상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이해되는데, 아렌트에 따르면 정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둘째, 아렌트의 사상은 지금 현재의 한국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민주화의 성과를 자랑했던 한국의 역사가 어느 순간부터 뒤로 후퇴하고 있다.(전체주의의 징후들)

셋째, 한국의 많은 정치인이나 시민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을 다르다고 보지 않고 틀렸거나 악이라고 본다. 정치적 합의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며, 아렌트의 사상은 정치를 진리나 선악에서 빼내 다양성, 다원성으로 가져온다.

넷째, 주권자 없는 정치는 불가능한가? 아렌트는 풀뿌리 차원에서 끊임없이 정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평의회를 중요한 장치로 봤다. 주권을 반복해서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보다 우리 삶에서 내 옆의 사람과 손을 잡고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다섯째, 거짓말을 하는 정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아렌트는 시민불복종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국 그가 주장하는 정치는 ‘인간’과 다양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함께 연대하는 사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책의 1부는 수용소와 공론장이라는 아렌트 사상의 고갱이를 다루고, 2부는 아렌트가 평생을 걸고 맞섰던 전체주의라는 화두에 주목하면서 그 문제의식을 한국사회에 투영시켜 본다. 전체주의는 비공식 조직이 공식기관의 힘을 대체하고,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지,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도통 알 수 없게 만드는 지배구조이다.(세월호 참사)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한국의 정치는 이렇게 지지부진할까?

 

 

[아렌트의 정치] 1967년 론 존스 제3의물결 실험

함께 읽기/기타 2015. 9. 29. 11:3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나에겐 수년동안 밝히지 않은 이상한 비밀 하나가 있다. 2백명의 학생들과 함께 이 '침묵'을 유지해 왔다. 어제 그 학생 중 한명을 우연히 만났고, 잠깐이나마 나는 그때가 생각났다.스티브 코니지오는 나에게서 세계사 수업을 들었던 2학년 학생이었다. 우리는 아주 우연히 만났다. 그것은 뭔지도 모르고 경험을 당하게 되는 그런 사건 중 하나였다.

거리를 걷다가, 외딴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또는 속옷을 사고 있는데 예전 제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인사를 할 때가 있다. "미스터 존스, 미스터 존스" 소리치며 거리를 내려오는 이는 다름아닌 스티브였다. 약간 당황한 듯한 포옹과 얼떨결에 나누는 인사. 나는 잠깐 멈추어 기억을 떠올렸다. 나를 안고 있는 이 친구는 누구지? 그는 나를 미스터 존스라고 불렀다. 옛 제자?  이름이 뭘까?  스티브는 나의 낌새를 눈치챘는지 설명을 했다. 그리고는 살짯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찻잔을 든 자세로 손을 들었다. 이런... 그는 '제3의 물결' 멤버다. 스티브 코니지오. 그는 두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그는 기타를 연주하고 드라마를 즐기는 예민하면서 똑똑한 학생이었다.

의식적인 명령 없이 내가 손을 구부리는 자세를 취했을때 우리는 서로 웃으며 서있었다. 경례를 주고 받았다. 두명의 동지가 그 전쟁 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만난거다. 제3의 물결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미스터 존스, 제3의 물결을 기억하세요?" 물론이지. 그것은 내가 교실에서 겪은 가장 무서운 사건이었어. 또한 내 남은 평생동안 2백명의 학생들과 공유해야 할 슬픈 비밀의 시작이기도 했지.

우리는 몇시간동안 제3의 물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었다. 헤어질 시간이 됬다. 이상하다. 너는 과거의 제자, 이렇게 우연히 인생의 한 순간을 잡다니. 우리는 힘껏 포옹을 한 다음 작별인사를 했다. 언제 다시 만날수 있을지 전혀 모른다. 서로 연락하자는 약속을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다. 스티브는 계속 성장하고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삶에서 늙지 않는 하나의 벤치마크로 남아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을 현재형으로. 나는 미스터 존스다. 스티브는 돌아서서 조용히 손을 올려 물결 모양을 지어 보이며 경례를 한다. 나도 비슷하게 손을 구부려 경례에 답한다.

제3의 물결. 글쎄. 마침내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그때 학생을 만났고, 우리는 그 악몽에 대해 몇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밀은 마침내 그 '끝'에 가까왔음에 틀림없다. 3년이다. 나는 이제 '제3의 물결'에 대해 누구건 간에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꿈, 기억해야 할 그 무엇, 아니, 잊으려 노력해야 할 그 무엇이다. 그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이렇다. 아주 이상하게 우연히도 약간 의심쩍게 제3의 물결을 시작한 것이 스티브였던 것 같다.

우리는 나치 독일을 공부하고 있었고, 수업중 나는 질문을 하나 받았다. 어떻게 독일 사람들은 유태인 학살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인가요? 어떻게 도시 시민, 철도관리인, 교사, 의사 들은 강제 수용소와 대량 인간 살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죠? 어떻게 그 유태인들의 이웃이며 심지어 친구였던 이들조차 그 일이 발생할 때 거기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인가요? 그것은 괜찮은 질문이었으며, 난 그 질문의 대답을 알지 못했다.

학기가 마칠려면 아직 몇개월 남았고, 나는 이미 2차 세계대전까지 진도가 나간 상태. 나는 일주일을 할애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보기로 했다.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Strength Through Discipline

월요일. 나치 독일의 특징을 체험할 수 있는 한가지를 내 역사 수업을 듣는 2학년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훈련. 나는 훈련의 미덕에 대해 강의를 했다. 운동선수는 스포츠에서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연습하면서 무엇을 느낄까?  발레 댄서나 화가는 하나의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가?  어떤 아이디어에 대한 과학자의 헌신적인 인내력. 그것은 훈련이다. 혼자 하는 연습. 그러니까 자기 제어. 의지의 힘. 아주 뛰어난 정신 및 신체의 완성과 육체적인 고통의 교환이다. 궁극의 승리...

'훈련의 힘'을 경험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착석 자세를 연습할 것을 권유, 아니 명령했다. 어떤 자세가 집중력을 높이고 의지를 강하게 하는지에 관해 말로 설명했다. 그러니까 난 반 학생들에게 앉는 자세를 가르쳤다는 거다. 이 자세는 발을 바닥에 딱 붙이고 등뼈가 곧게 펴지도록 허리 부위에 손을 편 상태로 위치 시키는 것으로 시작했다. "좀더 쉽게 숨 쉴수 있지 않니? 좀더 깨어 있는 것 같을거야. 기분이 나아진 것 같지 않아?"

우리는 이 차려 자세를 반복해서 연습했다. 나는 앉아 있는 학생들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면서 문제점을 이야기해주고 자세를 바로 잡아 주었다. '똑바로 앉기'가 학습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되었다. 반 학생들을 책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흩뜨려 놓은 다음 갑자기 신호를 보내면 자기 자리로 돌아가 그 차려 자세를 취하게 하는 훈련도 할거다. 그걸 더 빨리하는 연습을 통해 학생들은 서있다가 앉는데 걸리는 시간을 15초로 단축시켰다. 그리고 주의 집중을 통해 발은 평행하고 평평하게, 발목을 맞붙이고, 무릎은 직각으로 굽히고, 손도 평평하게 등뒤로 교차하게, 척추는 세우고, 턱은 밑으로, 머리는 정면을 향하도록 했다. 소음 훈련도 했는데, 잡담은 허락되지 않았다. 있다면 오직 비방인 것이다. 몇분동안 학생들은 교실 바깥에 서있다가 소리를 내지 않고 책상으로 돌아와 차려 자세로 앉는 단계적인 훈련을 했다. 이런 작전 행동에 5초가 걸렸다.
 
학생들이 일률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행동 코드를 이렇게 빨리 따르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행동이 어느 수준까지 더 가능할지 궁금해졌다. 이런 모두가 함께하는 '복종 드러내기'는 잠깐의 게임일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지... 훈련과 균일성에 대한 욕망은 자연스러운 욕구일까? 프랜차이즈 식당과 TV 편성 안에 숨어 버리는 일종의 사회적 본능...

교실 학생의 인내력을 '엄격하게 조직화되고 통제되는 행동'의 형태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수업 25분을 남기고 새로운 규칙을 도입했다. 학생들은 벨소리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차려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은 연필과 적을 종이를 가지고 다녀야 하고, 질문하고 대답할 때에는 항상 책상 옆으로 나와 일어서야 하며, 대답하거나 질문할 때 항상 "미스터 존스" 라는 말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잠깐 '묵독'을 연습했다. 느릿느릿 반응하는 학생들을 꾸짖었고 제대로 잘 할때까지 행동을 반복시켰다.

반응의 강렬함이 내용이나 취지보다 더 중요해졌다. 이것을 더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대답은 세단어 이하로 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질문, 대답할때 이런 노력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보상을 했다. 그들의 행동이 또한 또렷또렷하고 주의깊어도 그들은 인정을 받았다. 곧 반 학생 모두가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서 질문과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같으면 일부 몇몇에 의해 주도되는 회의가 반 아이들 전체가 참여하는 수준이 되었다. 심지어 익숙치 못한 아이들의 대답의 수준도 향상되었다. 새로운 친구가 이야기할 때 모든 아이들이 열중하여 듣는 것 같았다. 평소같으면 발표하기를 주저할 학생들도 대답을 했고 아이들은 그들의 노력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훈련에서 내 역할은 질문하는 것 뿐이었다. 왜 전에는 이런 기술들을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학생들은 자신의 과제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고 사실과 개념에 관한 정확한 수업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들은 심지어 더 근사한 질문을 하는 듯 보였고, 서로에게 더 많은 동정심을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나는 권위주의적인 학습 환경의 틀을 만들어 주었고 그것은 매우 효과적으로 보였다. 나는 이 학급이 얼마나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열린 교실'과 '스스로 알아서 배움'에 대한 기본 신념을 바꾸어야 하는 건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칼 로저스에 대한 나의 믿음은 사그러들고 말것인지... 이 실험은 어디로 나아갈까?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 Strength Through Community

화요일. 훈련 이틀째. 교실에 들어갔을때 모두 부동의 차려자세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몇몇은 선생님을 기쁘게 하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짓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진지하게 집중하면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 근육이 굳은 듯. 미소도 생각도 심지어 질문도 없다. 뭔가를 하기 위해 긴장한 듯 보인다. 긴장을 좀 풀고자 나는 칠판에 큰 글씨로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이라고 쓰고 그 아래에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 이라고 썼다.

학생들은 침묵을 지키며 앉아 있고 나는 공동체의 가치에 관한 설교 강의를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이번 단계에서 이 교실 실험을 멈출지 계속할지를 고민했다. 이 정도 강렬함 또는 순응은 계획에 없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만들어진 규율에 관한 아이디어를 찾았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실험을 지속할지 그만둘지 고민하면서 나는 공동체에 관해 계속 이야기했다. 선수, 코치, 역사가로서의 경험을 통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고, 그것은 어렵지 않았다. 공동체는 함께 일하고 고생하는 개인 간의 결속력이다. 그것은 이웃과 헛간을 짓는 것이며, 내가 나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 운동, 팀, 활동 같은 것의 일부가 된 느낌이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난 이제 천문학자가 왜 그렇게 집요하게 망원경에 매달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나 자신의 인식과 개인과 그룹 행동의 동기에 대해 더 깊게 탐구하고 있는 것이었고, 볼 것과 이해할 것이 너무 많았다.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왜 학생들은 자신들에 '드리워진 권위'를 받아 들였을까?  이 군대나 마찬가지인 행동에 대한 호기심이나 저항은 어디로 갔을까? 이것은 도대체 언제 끝날까?
 
공동체 설명에 이어 훈련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이해하려면 역시 그것도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공동체라는 것을 접하도록 하기 위해 나는 교실의 학생들로 하여금 일제히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 을 복창하도록 했다. 먼저 두 학생을 세워 우리의 모토를 떠올리게 하고 다른 두 학생에게 반복시키고, 교실 전체를 세워서 복창하게 했다. 그것은 재미있었다. 학생들은 서로를 쳐다 보기 시작했고 '일체감'의 힘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할수 있었고 평등했다. 그들은 함께 무언가를 했다. 우리는 이 간단한 활동을 수업시간 내내 했다. 돌아가면서 합창으로 반복적으로 모토를 외쳤고 소리 크기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우리는 항상 똑바로 앉고, 서고, 말하는 법을 강조하면서 '함께' 라고 말했다.

나는 나 자신도 실험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보여주는 단일화된 행동을 즐겼다. 이런 만족과 흥분을 보는 것은 일종의 보상이었다. 나는 이 실험의 여파로부터 빠져 나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짐을 발견했고, 이 교실이 어떻게 될지 알기가 어려웠다. 내가 이끄는 만큼 따라오는 그룹을 나는 따르고 있었다. 수업시간이 끝날때 즈음, 나는 별 생각없이 교실 경례를 만들었다. 그것은 이 학급 멤버에게만 해당되었다. 오른손을 소용돌이 자세로 오른쪽 어깨까지 올리는 것이 경례였다. 물결처럼 손을 올리는 같은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제3의 물결 경례' 라고 칭했다. '3' 이라는 것은 연쇄적으로 이동하는 물결에서 세번째 물결이 가장 오래 지속하고 가장 크다는 지식에서 나왔다. 우리는 경례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교실 밖에서도 멤버들끼리는 경례하기를 규칙으로 만들었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는 동안 나는 반 아이들에게 완전한 침묵을 요구했다. 모두 차려 자세로 앉아 있고 나는 천천히 팔을 올려 찻종 모양 손으로 경례했다. 그것은 승인의 조용한 신호였다. 그것들은 특별했다. 명령없이 모든 학생 그룹들은 답례했다.

다음 며칠을 통해 교실의 학생들은 이 인사를 교환할 것이다. 복도를 걷다가 갑자기 세명의 학급 친구들이 재빨리 경례를 할 것이다. 도서관에서 체육관에서 학생들이 이 이상한 손 자이브를 주고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식당에서는 같은 학급 학생이 서로 경례하다가 부딛치는 식판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30명이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게끔 하는 그 불사가의함은 곧 그 이 교실을 주목받도록 만들 것이고 독일인에 관한 실험이 될 것이다. 교실 밖 많은 학생들이 가입할 수 있는지 물었다.

실행을 통한 힘의 집결 Strength Through Action

수요일. 나는 지금은 실험이라고 부르는 것을 지속하기를 원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멤버십 카드를 발급하기로 결정했다. 단 한명도 교실을 나가기 위해 일어서지 않았다. 활동 세번째 날. 교실에는 43명의 학생이 있었고 13명은 실험의 일부가 되기 위해 수업도 빠졌다. 아이들이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일일이 카드를 나눠 주었다. 카드 중 3개에는 빨간 X 를 표시했고, 그것은 교실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학생을 보고하라는 특별 임무를 맡은 이들을 의미했다. '실행'의 의미를 계속 이야기했고 행동이 없으면 훈련과 공동체는 어떻게 무의미한지를 설명했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의 미덕을 설명했다. 너 자신, 너의 공동체, 가족을 믿어라. 너는 지키고, 보호하고 확장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것과 서로에 대한 헌신이 학습과 성취도를 얼마나 촉진시키는지 강조했다. 난 학생들로 하여금 경쟁이 야기하는 고통과 퇴보가 존재하는 학급에서 느껴지는 것을 상기시켰다. 체육에서 독서까지 모든 것에서 서로 경쟁하는 상황. 실행하지 않는 느낌, 무언가의 일부가 되지 않는 것, 서로 돕지 않는 것...

아이들은 별 생각없이 앉아 있었고, 기념물이 될 것을 주기 시작했다. "미스터 존스, 처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왜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어요?" 나는 놀랐다. 그래. 나는 매우 극단적으로 통제된 상황에서 그들에게 정보를 주입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그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왔다. 독일인 삶에 관한 복잡하고 시간을 좀 들여야 하는 숙제가 완성되고, 그것이 학생들 사이에서 증보되기까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학업 영역에서의 수행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그들은 더 많이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더 원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할당받는 무엇이건 간에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 내기로 했다.

학생들로 하여금 '직접 실행'을 경험토록 하기 위해서, 나는 각 개인에게 구두(口頭) 과제를 주었다. "제3의 물결 현수막을 디자인하는 거야. 너는 멤버가 아닌 학생이 이 교실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어. 난 네가 내일까지 모든 멤버들의 이름과 주소를 암기하고 암송할 수 있기를 바래. 너는 더 나은 학습을 위해 우리의 앉는 자세가 필요한 인근 초등학교에서 최소 20명의 아이들을 훈련하고 설득하는 문제를 할당 받은거야. 이 팜플랫을 읽고 수업 끝나기 전에 교실 아이들에게 그 전체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 너의 일이야. 나는 너희 모두가 제3의 물결에 가입했으면 하는 믿을 만한 친구들의 이름과 주소를 나에게 주기를 원해... "

'직접 실행'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며, 나는 새로운 멤버를 맞는 간단한 과정을 가르쳤다. 이렇게 한다. 새 멤버의 가입은 기존 멤버의 추천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내가 카드를 발급한다. 카드를 받으면 새 멤버는 우리의 규칙을 알고 있음을 증명하고, 규칙에 복종할 것을 서약한다. 나의 발표에 교실은 열광했다.

학교는 추측과 호기심이 넘쳤다.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학교 요리사는 제3의 물결 쿠키가 어때 보이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초콜릿칩 같다고 했다. 교장이 오후에 교무실에 와서 제3의 물결 경례를 나에게 했다. 나도 했다. 도서권 사서도 도서관 입구 위에 걸었던 '학습에 관한 현수막'에 대해 나에게 고마와 했다. 그날 끝무렵에는 2백명의 학생들의 가입이 허락되었다. 나는 외롭고 조금 무섭다고 느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의 대부분은 "고자질" 이라는 사건에서 나왔다. 일탈 행위를 보고하라고 공식적으로 3명을 지정했는데, 대략 20명의 학생들이 알렌이 경례를 하지 않았네, 조르진이 이 교실 실험에 대해 비평했네, 따위의 보고를 해왔다. 이러한 감시는 학급의 절반이 지금 멤버들에 대한 관찰과 보고를 자신의 의무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당한 음모를 보고하는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진행중인 것처럼 보인다.

교실의 세명의 여학생들은 우리의 교실 활동에 대해 부모님께 이야기를 했었다. 이 세 젊은 여학생들은 가장 총명한 아이들이었고 친구로서 사이좋게 지냈다. 그들은 자신감이 있었고 그들에게 학업과 리더십의 기회를 준 학교에 대해서도 만족했었다. 실험이 벌어지는 날들 동안 나는 그들이 이 평등주의와 학급의 재구성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궁금했다. 이기는 것에 익숙했던 그들에 대한 보상은 이 실험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실험에서 의문을 가지고 사유하는 지적 숙련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군대 분위기의 학급에서 그들은 놀라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되돌아보니까, 그들은 소위 학습 불능의 아이들같아 보였다. 그들은 활동을 지켜보았고 기계적인 참여를 했을 뿐이다. 다른 이들은 뛰어든 반면, 그들은 지켜보면서 망설였다.

실험에 대해 부모들에게 말하면서 그들은 일련의 이벤트를 만들었다. 그 부모들 중 한명의 랍비가 나를 집에 불렀다. 그는 예의가 바르고 겸손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단순히 독일인의 성격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기뻐했고 걱정하지 말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는 부모들에게 이야기할 것이고 그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대화를 마치면서 나는 성직자들이 지킬 수 없는 조건을 받아 들이고 사과하던 역사를 통해서 비슷한 대화를 상상했다. 그가 화가 났거나 또는 상황을 조사했다면 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저항의 예를 지적했을 거다. 하지만 아니었다. 랍비는 실험의 일부가 되었고 실험에 존재하는 그 억압을 무시하면서 그는 공범자와 옹호자가 되었다.

세번째날 끝무렵 나는 지쳤다. 분열되었다. 역할 놀이와 유도되는 행동 간의 균형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가 되었다. 많은 학생들은 완전히 '제3의 물결' 멤버가 되었다. 그들은 규칙에의 철저한 복종을 요구했고 실험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을 위협했다. 어떤 아이들은 활동에 빠져서 스스로 역할을 설정했다. 나는 로버트를 특히 더 기억한다. 로버트는 나이 또래에 비해 컸지만 학업 성취도가 낮았다. 오... 그는 성공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했다. 그는 도서관에서 참조 도서로부터 카피한 단어들을 이용해서 잘 쓴 주간 보고를 제출했다. 로버트는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다른 아이들과 같았다. 그들은 영리하지 않다. 선수팀으로 뛸수도 없고 주목을 끌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눈에 안 뜨였다. 내가 로버트를 알게 된 것은 그가 내 교실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는데, 늘 혼자였다.

'제3의 물결'은 로버트에게 어떤 지위를 부여했다. 적어도 그는 모든 사람과 평등했고, 그는 뭔가를 할 수 있었고, 참여할 수 있었고 의미있는 존재였다. 그것이 로버트가 한 일이다. 수요일 늦은 오후, 로버트는 나를 따라왔다. 나는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미스터 존스, 나는 당신의 보디가드예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요. 내가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 확신과 미소에 "아니" 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보디가드가 생겼다. 하루종일 그는 나를 위해 문을 열고 닫았고, 내 오른쪽으로 항상 다녔다. 다른 학급 멤버들에게는 미소 지으며 경례하면서. 그는 어디에서나 나를 따랐다. 교무실에서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그는 조용히 차려 자세로 서있었다. 영어 선생이 학생이냐고 말을 걸 때 웃으면서 그가 학생이 아니라고 알려 주었다. 그는 보디가드였다.

긍지를 통한 힘의 집결 Strength Through Pride

목요일. 나는 실험에서 결론 내기를 시작했다. 지쳤고 걱정이 되었다. 많은 학생들은 선을 넘었다. 제3의 물결은 그들의 존재의 중심이 되어 왔다. 나는 몸상태가 안좋았다. 나는 지금 독재자로서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오, 난 자비로와. 매일같이 '체험 학습'의 장점에 대해 나 스스로와 논쟁을 벌였다. 이 실험의 4일째 되는 날, 나는 나의 주장을 잃기 시작했다. 역할에 많은 시간을 쏟을수록, 실험의 합리적 발단과 의도을 기억하는 시간이 줄어갔다. 나는 필요없을 때 조차도 그 역할에 슬며시 빠져든 나를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럴까 궁금해졌다. 우리는 적합한 역할을 부여받고 우리의 삶을 그 이미지에 바친다. 곧 그 이미지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유일한 자아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지가 된다. 내가 만들어 낸 상황과 역할과 벌이던 고민은 내가 그것이 어디로 갈지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거였다. 사건은 주변 여기저기 터졌다. 나는 학생들이 후회할 일을 벌이는 것이 걱정되었고, 나 자신도 걱정되었다.

다시 한번 실험을 마무리할지 아니면 그 코스대로 진행되게 둘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실은 두가지 선택 모두 실행불능이었다. 실험을 멈추면 많은 학생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그들은 남들 보는 앞에서 스스로 급진적 행동을 벌여 왔었다. 감정적으로 심리학적으로 그들은 그 자신들을 드러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을 세게 후려쳐서 교실의 '현실'로 되돌린다면 나는 혼란스러워 하는 학생들과 일부 단체를 남은 해 동안 만나게 될 뿐이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단지 게임이었어 하는 것은, 로버트와 비슷한 아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며,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거다. 그리고 그들은 조심스럽게 참여했던 좀더 영리한 학생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게 될거다. 나는 로버트를 다시 패배하게 할 수는 없었다.

실험을 진행되도록 그냥 두는 선택도 불가능하다. 일어난 일들이 이미 통제가 안되었다. 수요일 밤 누군가 교실에 침입해서 뒤졌다. (나중에 어떤 학생의 아버지였음이 밝혀졌는데 그는 전쟁 수용소의 독일 죄수로 시간을 보냈던 은퇴한 공군 대령이었다. 우리의 활동에 관해 듣자마자 그는 자제력을 잃고 밤에 침입했다. 나는 그가 아침에 교실문에 기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나에게 독일에서 죽임을 당했던 그의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나를 안고 흔들었다. 띄엄띄엄 그는 내가 그를 이해하고 집에 가도록 도와주기를 간청했다. 나는 그의 아내를 불렀고 이웃의 도움으로 그는 집에 걸어갔다. 우리는 그가 느끼고 저지른 것에 대해서 나중에 몇시간을 이야기했지만, 그때부터 목요일 아침까지 나는 학교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해 더 걱정이 되었다.

나는 우리의 활동이 선생들과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점점 더 걱정이 되었다. 제3의 물결은 정형화된 정규 학습을 교란시키고 있었다. 학생들은 참여하기 위해 수업을 빼먹고, 학교 카운셀러들은 학급의 모든 학생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진짜 게슈타포들이 학교에서 일했다. 백가지 방향으로 터져 버릴 이 실험을 마주한 채 나는 오래된 농구 전략을 시도하기로 했다. 네가 정말 힘겹게 플레이를 할 때, 최선의 행동은 예상치 못한 것을 시도하는 거다.

목요일까지 교실은 80명 넘는 학생들로 부풀려져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 유일하게 허락될 것은 차려 자세로 침묵하며 앉는 훈련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 이상한 고요는 교실이 '관찰'과 '기대' 속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 가득찰 때 효과적이다. 그것은 내가 그들에게 좀더 신중하게 접근하도록 도왔다. 나는 긍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긍지는 현수막, 경례 이상이다. 긍지란 아무도 너에게서 가져갈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긍지는 네가 최고임을 아는 것으로... 파괴될 수 없다..."

이런 크레센도 와중에, 나는 갑자기 제3의 물결의 진짜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고 톤을 바꿨다. 느리고 규칙적인 톤으로 제3의 물결 뒤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했다. "제3의 물결은 단순한 실험이나 교실 활동이 아닌 훨씬 더 중요한 거다. 제3의 물결은 전국적인 프로그램으로 이 나라의 정치적 변화를 위해 기꺼이 싸울 학생들을 찾는 거다.

그렇다. 우리가 훈련으로 해 온 활동들은 진짜다. 나라를 통털어 나같은 선생들이 훈련, 공동체, 긍지, 그리고 실행을 통해 더 좋은 사회를 보여 주기 위한 젊은 여단을 뽑고 훈련키시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가 돌아가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공장, 상점, 대학 그리고 모든 기관들을 바꿀 수 있다. 너희들은 이런 이유에서 돕도록 선택된 젊은 그룹이다. 우리가 일어나서 지난 4일동안 배운 것을 보여 주면 우리는 우리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질서의 감각을 가져올 수 있다. 공동체, 긍지, 실행. 새로운 목적. 모든 것은 너와 너의 의지에 달려 있다."

내 말의 진지함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나는 이 제3의 물결을 의심해왔던 3명의 여학생들을 향해, 교실을 나갈 것을 요구했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설명하고 4명의 가드를 정해서 그녀들이 도서관에 가도록 하여 금요일 수업시간에 들어오는 것을 막도록 했다. 그리고 극적인 스타일로 나는 교실 학생들에게 금요일에 있을 정오 집회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것은 '제3의 물결 멤버' 만을 위한 집회다...

그것은 거친 도박과도 같았다. 내가 멈추면 누군가 웃거나 질문을 하거나 이 위대한 계획이 혼돈으로 분해될 것을 두려워하면서 나는 계속 이야기했다. 금요일 정오에 전국 지도자 후보 한사람이 젊은이들을 위한 제3의 물결 프로그램을 만들것을 어떻게 선언할지를 설명했다. 이 선언과 동시에 일천개가 넘는 젊은 그룹들이 나라 각 지방에서 일어나서 이 운동을 지원을 한다. 나는 선택된 학생들이 그 지역을 대표할 것임을 자신했다.

또는 그들이 괜찮은 쇼를 보여줄지도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언론들이 이 이벤트를 기록하기 위해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불평이나 저항은 없었다. 반대로 교실에는 흥분만이 가득했다. "우리는 할 수 있어"  "우리 하얀 셔츠를 입어야 할까?" "친구를 데려 올수 있을까?" "미스터 존스, 타임 매거진에 이 광고 보셨어요?" 결정타는 우연히 왔다. 어떤 가죽 제품에 대한 타임지의 전면 광고였는데 광고주는 그의 상품을 제3의 물결이라고 했다. 광고는 빨갛고, 하얗고, 파란 글자로 되어 있었다. "제3의 물결이 다가온다." "이건 이 캠페인의 일부인가요? 미스터 존스" "이건 암호인가요?"

"그래 잘 들어라 모두 내일을 위한 거야. 12시 10분 전까지 강당에 앉아 있어야 한다. 배웠던 훈련, 공동체, 긍지를 보여줄 준비를 해라.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고. 집회는 오직 멤버만을 위한 거다."

이해를 통한 힘의 집결 Strength Through Understanding

금요일. 훈련의 마지막 날. 나는 이른 아침을 강당에서 있을 집회를 준비하며 보냈다.11시, 30명의 학생들이 들어왔고, 한줄씩 자리를 채워 나갔다. 급박한 침묵이 공간을 감쌌다. 제3의 물결 현수막이 구름처럼 걸려 있었다. 12시 정각, 나는 문을 닫고 가드를 문에 배치했다. 내 친구 몇명이 리포터와 사진사로서 군중들과 교류하며 사진을 찍고 극도로 흥분된 기사체 글들을 메모하고 있었다. 한 그룹 사진이 찍혔다. 2백명이 넘는 학생들이 장소를 가득 메웠고, 빈자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그룹은 많은 교파들로부터 온 학생들로 이루어진 것 같다. 운동선수, 유명인, 학생 지도자, 로너들, 일찍 하교를 하는 아이들의 그룹, 바이커들, 스도 힙, 다다이스트 클릭 대표하는 이들, 낙하산 타고 내려온 학생들 일부. 그러나 전체 모임은 완벽한 차려 자세로 앉아 있는 '하나의 힘' 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들이 TV 세트에 촛점을 기울이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공간에 사운드란 없었다. 모두 탄생의 목격자인 듯 했다. 긴장과 기대는 믿음을 넘어섰다.

"전국 프레스 컨퍼런스를 틀기 전에 5분 동안 우리 훈련의 범위를 언론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경례를 했고, 2백명이 자동으로 응답을 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뒤이어 따라했다. 계속 반복했다. 매번 할때마다 더 커졌다. 사진사는 그들이 무시되는 것처럼 사진을 찍으면서 그 의식을 순회했다. 나는 이 행사의 중요성을 반복했고 충성을 보여주기를 요구했다. 내가 복창을 요구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강당에는 목 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12시 05분. 나는 불을 끄고 TV 세트로 걸어갔다. 강당 안 공기는 다 말라 버리는 것 같았다. 숨쉬기도 어렵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소리치는 영혼의 절정이 그곳에서 모든 것을 밀어버리는 거 같았다. TV 를 켰다. 나는 모든 사람을 바라보며 TV 옆에 서 있었다.기계는 인이 발산하는 빛의 밝음을 생성해내며 살아났다. 로버트는 내 옆에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어지는 몇 분을 주의깊게 잘 보라고 속삭였다. 강당의 유일한 불빛은 TV 에서 나오고 있었고 그것은 모든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빛에 빨려든 긴장된 눈들, 그러나 그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강당은 죽은듯이 조용했다. 사람들과 TV 사이의 정신적 밀고 땅김의 대결이 있었고, TV 가 이겼다. 테스트 패턴의 백광은 어떤 정치적 후보자의 모습도 비추지 않았다. 바라보는 이들은 계속 고집했다. 뭔가 나와야 한다. 나올 것인가?  어디에?  TV 가 지속시킨 무아지경은 몇시간 계속된 듯 했다. 12시 07분. 아무것도 없다. 화이트의 빈 공간 뿐.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을거다. 기대는 걱정으로 그리고 좌절로 바뀌었다. 누군가가 일어서서 소리쳤다.

"지도자는 거기에 없습니까?" 모두 충격을 받았다. 의기소침해진 학생들이 TV 로 왔다. 그들의 얼굴에서 불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잠깐의 혼란 속에서 나는 TV 쪽으로 천천히 나아가서 그것을 껐다. 나는 갑자기 공기가 돌진하는 듯 했다. 강당은 고정된 침묵이 감돌았고 처음으로 나는 사람들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은 의자 뒤로 그들의 팔을 물리고 있었다. 나는 질문의 홍수를 기대했다. 그러나 강렬한 고요만이 있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든 단어 하나 하나가 설득력 있어 보였다.

"잘 들어. 얘들아. 중요한 이야기를 할거야. 앉아라. 지도자는 없어. 제3의 물결이라는 젊은이들의 국가적 차원의 운동? 그런거 없어. 너희는 이용당한 거야. 조종당한거야.  너희 자신의 욕망에 의해 밀려난 채 지금 너희는 여기 있는 저희 자신을 발견한거야. 너희는 우리가 공부하던 독일 나치보다 더하거나 또는 덜하지도 않아."

너희는 너희가 엘리트라고 생각했지. 여기 강당 바깥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나았을 거라고. 너희는 너희 '개인의 자유'를 '훈련과 우월에의 순응'과 흥정을 한거야. 너희는 너희 자신의 신념 위에 드리워진 커다랗지만 새빨간 거짓말과 그룹의 의지를 따르기로 선택했어. 오, 이런 너희는 스스로에게 재미로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 너희는 어느 순간에도 너희 자신을 탈출시킬 수 있었어. 그러나 너희는 어디로 갔지? 얼마나 멀리 간거야? 너의 미래를 보여 줄래?"

나는 뒤에 있던 스크린 프로젝터를 켰다. 재빨리 TV 뒤로 하얀 천을 비추었고, 커다란 숫자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뉘른베르크 집회의 포효하는 영상이 잡혔다. 나의 심장은 세게 뛰었다. 유령같은 이미지에 나치시대 독일 역사가 줄줄이 나타났다. 훈련, 수퍼 인종의 행진, 선동하는 새빨간 거짓말, 오만, 폭력, 테러, 밴으로 밀리는 사람들. 죽음의 수용소 악취의 비쥬얼, 눈없는 얼굴들, 재판, 무지의 변명. 나는 내 일을 했을 뿐이야.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 갑자기 필름은 뭐라고 쓰여 있는 프레임에서 얼어 붙은 듯이 멈추었다. "모든 사람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 아무도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강당은 어두웠고 프로젝터에서 필름의 발자취를 퍼덕퍼덕거렷다. 나는 위가 쓰렸다. 강당은 땀을 흘렸고 락커룸처럼 녹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지 알아내기 위해 그 순간을 비평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꿈과 긴 잠에서 깨어 나듯이. 강당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식을 마지막으로 한번 돌이켜 보았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정신차리도록 몇분을 기다렸다. 마침내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질문은 상상적 상황을 탐색하는 것이었고 이 행사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어하는 것들이었다.

여전히 어두운 곳에서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내 감정의 두께와 양심의 가책을 자백했다. 나는 그 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시간이 걸리는 충분한 설명을 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나 자신이 이 사건의 내성적인 참여자에서 선생으로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선생인 것이 더 쉽다. 나는 객관적인 용어들로 과거의 사건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난 주 경험을 통해, 우리는 나치 독일에서 활동하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이었나 맛 본거다. 우리는 훈육된 사회환경을 만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 특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회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웠다. 이성을 규칙으로 교체하라. 그러면 우리는 좋은 독일 사람을 만들수 있다.  우리는 유니폼을 입을지 모른다. 친구와 이웃들이 저주받고 박해받을 때 고개를 돌릴지 모른다. 자물쇠를 채워 버릴지 모른다.

"방어 " 공장에서 일하고, 생각을 불태울지 모른다. 그래 우리는 영웅을 찾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약간 알게 되었어. 우리는 무시당하는 것의 두려움을 알아. 뭔가 옳은 것을 하고 보상받는 것의 기쁨을 알아. 넘버 원이 되는 것, 옳은 것이 되는 것, 우리는 극단으로 밀려 이 행동들이 무엇으로 나아갈지 보고 느껴왔어. 우리 각자는 지난 한주 일어난 것을 목격한거야. 우리는 파시즘이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어. 이 방에서 우리 자신의 습관과 삶의 방식으로 말이야. 표면을 긁어봐 그것이 나타나지.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있어. 우리는 그걸 병처럼 달고 사는거야. 인간이 기본적으로 악하다는 믿음, 그래서 서로에게 잘 대할 수 없다는 믿음. 그래서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훈련이 필요하다는 믿음. 다른 것도 있었지. '사과'하는 행동."

ooo

"이것은 체험하는 마지막 수업이야. 이 마지막 수업이 가장 중요해. 수업의 시작은 나치 독일의 삶을 연구하는데 그 발단처럼 시작했던 질문이었어. 그 질문을 기억해? 당혹스럽게도, 독일 사람들은 왜 나치 운동을 몰랐다거나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걸까? 내가 그 질문을 기억하면 이런 거였지. 독일 군인, 선생, 철도 관리인, 간호사, 세금 공무원, 보통 시민들은 나치 제국 말기에 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모른다고 주장하는 걸까?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광기의 일부분이었으며, 정말로 그들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걸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역사를 지우게 하려는 걸까?  다음 몇분동안 그리고 아마도 몇년 동안 너희는 이 질문에 대답할 기회를 가지게 될거야."

"파시스트 정신 세계에 대한 우리의 규정이 완전하다면, 너희들 중 아무도 이 제3의 물결 집회에 참가했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을거야. 그때의 독일 사람들처럼. 너 자신들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너희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울거야. 너희들이 개인의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고 질서와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자의 명령의 힘을 따랐다는 것을 너희 친구와 부모들이 알게 되도록 너희는 허락하지 않을거야. 너희는 조종당한 것을 인정할 수 없겠지. 추종자가 된다는 것, 제3의 물결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 들이는 것, 너희는 이러한 광기에 참여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거야. 너희는 오늘과 이 집회를 비밀로 간직하게 될거야. 내가 너희와 함께 공유하는 비밀이 되는거지."

나는 강당에 있던 세대의 카메라에서 필름을 꺼내 셀룰로이드를 빼내어 빛에 노출시켰다. 실행은 끝났다. 시도도 끝났다. 제3의 물결도 끝났다. 나는 내 어깨 넘어로 흘깃보았다. 로버트는 울고 있었다. 학생들은 의자에서 일어나 말없이 바깥 불빛으로 몰렸다. 나는 로버트에게 걸어가 그를 감싸 안았다. 로버트는 흐느꼈다. 통제 불능의 공기를 한껏 들이키면셔 " 끝났어. 다 괜찮어" 서로를 위로하면서 우리는 남아 있는 학생들 속에서 가만히 있었다. 순간적으로 무언가 로버트와 나를 감싸 안았다. 다른 사람들은 울었고 눈물을 닦아냈다. 문쪽으로 바깥 세상으로 나가면서 빙빙 돌고 서로 안는 인간.

학기 중 일주일 동안 우리는 인생을 크게 공유했다. 예상한대로 깊은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난 4년동안 Cubberley High School 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아무도 제3의 물결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골똘히 이야기하고 연구했다. 그러나 집회 그 자체. 그건 아니었다. 그건 우리 모두가 잊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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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RD WAVE

Ron Jones (1972)

For years I kept a strange secret. I shared this silence with two hundred students. Yesterday I ran into one of those students. For a brief moment it all rushed back.

Steve Conigio had been a sophomore student in my World History class. We ran into each other quite by accident. It's one of those occasions experienced by teachers when they least expect. You're walking down the street, eating at a secluded restaurant, or buying some underwear when all of a sudden an ex-student pops up to say hello. In this case it was Steve running down the street shouting "Mr. Jones, Mr. Jones." In an embarrassed hug we greet. I had to stop for a minute to remember. Who is this young man hugging me? He calls me Mr. Jones. Must be a former student. What's his name? In the split second of my race back in time Steve sensed my questioning and backed up. Then smiled, and slowly raised a hand in a cupped position. My God He's a member of the Third Wave. It's Steve, Steve Conigio. He sat in the second row. He was a sensitive and bright student. Played guitar and enjoyed drama.

We just stood there exchanging smiles when without a conscious command I raised my hand in curved position. The salute was give. Two comrades had met long after the war. The Third Wave was still alive. "Mr. Jones do you remember the Third Wave?" I sure do, it was one of the most frightening events I ever experienced In the classroom. It was also the genesis of a secret that I and two hundred students would sadly share for the rest of our lives.

We talked and laughed about the Third Wave for the next few hours. Then it was time to part. It's strange, you most a past student In these chance ways, You catch a few moments of your life. Hold them tight. Then say goodbye. Not knowing when and if you'd ever see each other again. Oh, you make promises to call each other but It won't happen. Steve will continue to grow and change. I will remain an ageless benchmark in his life. A presence that will not change. I am Mr. Jones. Steve turns and gives a quiet salute. Hand raised upward in a shape of a curling wave. Hand curved in a similar fashion I return the gesture.

The Third Wave. Well at last it can be talked about. Here I’ve met a student and we've talked for hours about this nightmare. The secret must finally be waning. It's taken three years. I can tell you and anyone else about the Third Wave. It's now just a dream, something to remember, no it's something we tried to forget. That's how it all started. By strange coincidence I think it was Steve who started the Third Ways with a question

. We were studying Nazi Germany and in the middle of a lecture I was interrupted by the question. How could the German populace claim ignorance of the slaughter of the Jewish people. How could the townspeople, railroad conductors, teachers, doctors, claim they knew nothing about concentration camps and human carnage. How can people who were neighbors and maybe even friends of the Jewish citizen say they weren't there when it happened. it was a good question. I didn't know the answer.

In as such as there were several months still to go in the school year and I was already at World War II, I decided to take a week and explore the question.

STRENGTH THROUGH DISCIPLINE

On Monday, I introduced my sophomore history students to one of the experiences that characterized Nazi Germany. Discipline. I lectured about the beauty of discipline. How an athlete feels having worked hard and regularly to be successful at a sport. How a ballet dancer or painter works hard to perfect a movement. The dedicated patience of a scientist in pursuit of an Idea. it's discipline. That self training. Control. The power of the will. The exchange of physical hardships for superior mental and physical facilities. The ultimate triumph.

To experience the power of discipline, I invited, no I commanded the class to exercise and use a new seating posture; I described how proper sitting posture assists mandatory concentration and strengthens the will. in fact I instructed the class in a sitting posture. This posture started with feet flat on the floor, hands placed flat across the small of the back to force a straight alignment of the spine. "There can't you breath more easily? You're more alert. Don't you feel better."

We practiced this new attention position over and over. I walked up and down the aisles of seated students pointing out small flaws, making improvements. Proper seating became the most important aspect of learning. I would dismiss the class allowing them to leave their desks and then call them abruptly back to an attention sitting position. In speed drills the class learned to move from standing position to attention sitting in fifteen seconds. In focus drills I concentrated attention on the feet being parallel and flat, ankles locked, knees bent at ninety degree angles, hands flat and crossed against the back, spine straight, chin down, head forward. We did noise drills in which talking was allowed only to be shown as a detraction. Following minutes of progressive drill assignments the class could move from standing positions outside the room to attention sitting positions at their desks without making a sound. The maneuver took five seconds.

It was strange how quickly the students took to this uniform code of behavior I began to wonder just how far they could be pushed. Was this display of obedience a momentary game we were all playing, or was it something else. Was the desire for discipline and uniformity a natural need? A societal instinct we hide within our franchise restaurants and T.V. programming.

I decided to push the tolerance of the class for regimented action. In the final twenty-five minutes of the class I introduced some new rules. Students must be sitting in class at the attention position before the late bell; all students Must carry pencils and paper for note taking; when asking or answering questions a student must stand at the side of their desk; the first word given in answering or asking a question is "Mr. Jones." We practiced short "silent reading" sessions. Students who responded in a sluggish manner were reprimanded and in every case made to repeat their behavior until it was a model of punctuality and respect. The intensity of the response became more important than the content. To accentuate this, I requested answers to be given in three words or less. Students were rewarded for making an effort at answering or asking questions. They were also acknowledged for doing this in a crisp and attentive manner. Soon everyone in the class began popping up with answers and questions. The involvement level in the class moved from the few who always dominated discussions to the entire class. Even stranger was the gradual improvement in the quality of answers. Everyone seemed to be listening more intently. New people were speaking. Answers *tarted to stretch out as students usually hesitant to speak found support for their effort.

As for my part in this exercise, I had nothing but questions. Why hadn't I thought of this technique before. Students seemed intent on the assignment and displayed Accurate recitation of facts and concepts. They even seemed to be asking better questions and treating each other with more compassion. How could this be? Here I was enacting an authoritarian learning environment and it seemed very productive. I now began to ponder not just how far this class could be pushed but how such I would change my basic beliefs toward an open classroom and self directed learning. Was all my belief in Carl Rogers to shrivel and die? Where was this experiment leading?

STRENGTH THROUGH COMMUNITY

On Tuesday, the second day of the exercise, I entered the classroom to find everyone sitting in silence at the attention position. Some of their faces were relaxed with smiles that come from pleasing the teacher. But most of the students looked straight ahead in earnest concentration. Neck muscles rigid. No sign of a smile or a thought or even a question. Every fibre strained to perform the deed. To release the tension I went to the chalk board and wrote in big letters "STRENGTH THROUGH DISCIPLINE." Below this I wrote a second law, "STRENGTH THROUGH COMMUNITY."

While the class sat in stern silence I began to talk lecture sermonize about the value of community. At this stage of the game I was debating in my own mind whether to stop the experiment or continue. I hadn't planned such intensity or compliance. In fact I was surprised to find the ideas on discipline enacted at all. While debating whether to stop or go on with the experiment I talked on and on about community. I made up stories from my experiences as an athlete, coach and historian. It was easy. Community is that bond between individuals who work and struggle together. It's raising a barn with your neighbors, it's feeling that you are a part of something beyond yourself, a movement, a team, La Raza, a cause.

It was too late to step back. I now can appreciate why the astronomer turns relentlessly to the telescope. I was probing deeper and deeper into my own perceptions and the motivations for group and individual action. There was much more to see and try to understand. Many questions haunted me. Why did the students accept the authority I was imposing? Where is their curiosity or resistance to this marshal behavior. When and how will this end?

Following my description of community I once again told the class that community like discipline must be experienced if it is to be understood. To provide an encounter with community I had the class recite in unison "Strength Through Discipline." "Strength Through Community." First I would have two students stand and call back our motto. Then add two more until finally the whole class was standing and reciting. It was fun. The students began to look at each other and sense the power of belonging. Everyone was capable and equal. They were doing something together. We worked on this simple act for the entire class period. We would repeat the mottos in a rotating chorus. or say then with various degrees of loudness. Always we said them together, emphasizing the proper way to sit, stand, and talk.

I began to think of myself as a part of the experiment. I enjoyed the unified action demonstrated by the students. It was rewarding to see their satisfaction and excitement to do more. I found it harder and harder to extract myself from the momentum and identity that the class was developing. I was following the group dictate as much as I was directing it.

As the class period was ending and without forethought I created a class salute. It was for class members only. To make the salute you brought your right hand up toward the right shoulder in a curled position. I called it the Third Wave salute because the hand resembled a wave about to top over. The idea for the three came from beach lore that waves travel in chains, the third wave being the last and largest of each series. Since we had a salute I made it a rule to salute all class members outside the classroom. When the bell sounded ending the period I asked the class for complete silence. With everyone sitting at attention I slowly raised my arm and with a cupped hand I saluted. It was a silent signal of recognition. They were something special. Without command the entire group of students returned the salute.

Throughout the next few days students in the class would exchange this greeting. You would be walking down the hall when all of a sudden three classmates would turn your way each flashing a quick salute. In the library or in gym students would be seen giving this strange hand jive. You would hear a crash of cafeteria food only to have it followed by two classmates saluting each other. The mystique of thirty individuals doing this strange gyration soon brought more attention to the class and its experiment into the German personality. Many students outside the class asked if they could join.

STRENGTH THROUGH ACTION

On Wednesday, I decided to issue membership cards to every student that wanted to continue what I now called the experiment. Not a single student elected to leave the room. In this the third day of activity there were forty-three students in the class. Thirteen students had cut class to be a part of the experiment. While the class sat at attention I gave each person a card. I marked three of the cards with a red X and informed the recipients that they had a special assignment to report any students not complying to class rules. I then proceeded to talk about the meaning of action. I explained how discipline and community were meaningless without action. I discussed the beauty of taking full responsibility for ones action. Of believing so thoroughly in yourself and your community or family that you will do anything to preserve, protect and extend that being. I stressed how hard work and allegiance to each Other would allow accelerated learning and accomplishment. I reminded students of what it felt like being in classes where competition caused pain and degradation. Situations in which students were pitted against each other In everything from gym to reading. The feeling of never acting, never being a part of something, never supporting each other.

At this point students stood without prompting and began to give what amounted to testimonials. "Mr. Jones, for the first time I'm learning lots of things." "Mr. Jones, why don't you teach like this all the time." I was shocked! Yes, I had been pushing information at them in an extremely controlled setting but the fact that they found it comfortable and acceptable was startling. It was equally disconcerting to realize that complex and time consuming written homework assignments on German life were being completed and even enlarged on by students. Performance in academic skill areas was significantly improving. They were learning more. And they seemed to want more. I began to think that the students might do anything I assigned. I decided to find out.

To allow students the experience of direct action I gave each individual a specific verbal assignment. "It's your task to design a Third Wave Banner. You are responsible for stopping any student that is not a Third Wave member from entering this room. I want you to remember and be able to recite by tomorrow the name and address of every Third Wave Member. You are assigned the problem of training and convincing at least twenty children in the adjacent elementary school that our sitting posture is necessary for better learning. It's your job to read this pamphlet and report its entire content to the class before the period ends. I want each of you to give me the name and address of one reliable friend that you think might want to join the Third Wave."...

To conclude the session on direct action, I instructed students in a simple procedure for initiating new members. It went like this. A new member had only to be recommended by an existing member and issued a card by me. Upon receiving this card the new member had to demonstrate knowledge of our rules and pledge obedience to them. My announcement unleashed a fervor.

The school was alive with conjecture and curiosity. It affected everyone. The school cook asked what a Third Wave cookie looked like. I said chocolate chip of course. Our principal came into an afternoon faculty meeting and gave me the Third Wave salute. I saluted back. The Librarian thanked me for the 30' banner on learning which she placed above the library entrance. By the end of the day over two hundred students were admitted into the order. I felt very alone and a little scared.

Most of my fear emanated from the incidence of "tattletaling". Though I formally appointed only three students to report deviate behavior, approximately twenty students came to me with reports about how Allan didn't salute, or Georgine was talking critically about our experiment. This incidence of monitoring meant that half the class now considered it their duty to observe and report on members of their class. Within this avalanche of reporting one legitimate conspiracy did seem underway ....

Three women in the class had told their parents all about our classroom activities. These three young women were by far the most intelligent students in the class. As friends they chummed together. They possessed a silent confidence and took pleasure in a school setting that gave them academic and leadership opportunity. During the days of the experiment I was curious how they would respond to the equalitarian and physical reshaping of the class. The rewards they were accustomed to winning just didn't exist in the experiment. The intellectual skills of questioning and reasoning were non existent. In the martial atmosphere of the class they seemed stunned and pensive. Now that I look back, they appeared much like the child with so called learning disability. They watched the activities and participated in a mechanical fashion. Whereas others jumped in, they held back, watching.

In telling their parents of the experiment they set up a brief chain of events. The rabbi for one of the parents called me at home. He was polite and condescending. I told him we were merely studying the German personality. He seemed delighted and told me not to worry. He would talk to the parents and calm their concern. In concluding this conversation I envisioned similar conversations throughout history in which the clergy accepted and apologized for untenable conditions. If only he would have raged in anger or simply investigated the situation I could point the students to an example of righteous rebellion. But no. The rabbi became a part of the experiment In remaining ignorant of the oppression in the experiment he became an accomplice and advocate.

By the end of the third day I was exhausted. I was tearing apart. The balance between role playing and directed behavior became indistinguishable. Many of the students were completely into being Third Wave Members. They demanded strict obedience of the rules from other students and bullied those that took the experiment lightly. Others simply sunk into the activity and took self assigned roles. I particularly remember Robert. Robert was big for his age and displayed very few academic skills. Oh he tried harder than anyone I know to be successful. He handed in elaborate weekly reports copied word for word from the reference books in the library. Robert is like so many kids in school that don't excel or cause trouble. They aren't bright, they can't make the athletic teams, and don't strike out for attention. They are lost. invisible. The only reason I came to know Robert at all is that I found him eating lunch in my classroom. He always ate lunch alone.

Well, the Third Wave gave Robert a place in school. At least he was equal to everyone. He could do something. Take part. Be meaningful. That's just what Robert did. Late Wednesday afternoon I found Robert following me and asked what in the world was he doing. He smiled (I don't think I had ever seen him smile) and announced, "Mr. Jones I'm your bodyguard. I'm afraid something will happen to you.

Can I do it Kr. Jones, please?" Given that assurance and smile I couldn't say no. I had a bodyguard. All day long he opened and closed doors for me. He walked always on my right. Just smiling and saluting other class members. He followed me every- where. In the faculty room (closed to students) he stood at silent attention while I gulped some coffee. When accosted by an English teacher for being a student in the "teachers' room" her just smiled and informed the faculty member that he wasn't a student. he was a body guard.

STRENGTH THROUGH PRIDE

On Thursday I began to draw the experiment to a conclusion. I was exhausted and worried. Many students were over the line. The Third Wave had become the center of their existence. I was in pretty bad shape myself. I was now acting instinctively as a dictator. Oh I was benevolent. And I daily argued to myself on the benefits of the learning experience. By this, the fourth day of the experiment I was beginning to lose my own arguments. As I spent more time playing the role I had less time to remember its rational origins and purpose. I found myself sliding into the role even when it wasn't necessary. I wondered if this doesn't happen to lots of people. We get or take an ascribed role and then bend our life to fit the image. Soon the image is the only identity people will accept. So we become the image. The trouble with the situation and role I had created was that I didn't have time to think where it was leading. Events were crushing around me. I worried for students doing things they would regret. I worried for myself.

Once again I faced the thoughts of closing the experiment or letting it go its own course. Both options were unworkable. If I stopped the experiment a great number of students would be left hanging. They had committed themselves in front of their peers to radical behavior. Emotionally and psychologically they had exposed themselves. If I suddenly jolted them back to classroom reality I would face a confused student- body for the remainder of the year. It would be too painful and demeaning for Robert and the students like him to be twisted back into a seat and told it's just a game. They would take the ridicule from the brighter students that participated in a measured and cautious way. I couldn't let the Roberts lose again.

The other option of just letting the experiment run its course was also out of the question. Things were already getting out of control. Wednesday evening someone had broken into the room and ransacked the place. (I later found out it was the father of one of the students. He was a retired air force colonel who had spent time in a German prisoner of war camp. Upon hearing of our activity he simply lost control Late in the evening he broke into the room and tore it apart. I found him that morning propped up against the classroom door. He told me about his friends that had been killed in Germany. He was holding on to me and shaking. In staccato words he pleaded that I understand and help him get home. I called his wife and with the help of a neighbor walked him home. We spent hours later talking about what he felt and did, but from that moment on Thursday morning I was more concerned with what might be happening at school.

I was increasingly worried about how our activity was affecting the faculty and other students in the school. The Third Wave was disrupting normal learning. Students were cutting class to participate and the school counselors were beginning to question every student in the class. The real gestapo in the school was at work. Faced with this experiment exploding in one hundred directions, I decided to try an old basketball strategy. When you're playing against all the odds the best action to take is to try the unexpected. That's what I did.

By Thursday the class had swollen in size to over eighty students. The only thing that allowed them all to fit was the enforced discipline of sitting in silence at attention. A strange calm is in effect when a room full of people sit in quite observation and anticipation. It helped me approach them in a deliberate way. I talked about pride. "Pride is more than banners or salutes. Pride Is something no one can take from you. Pride is knowing you are the best... It can't be destroyed ..."

In the midst of this crescendo I abruptly changed and lowered my voice to announce the real reason for the Third Wave. In slow methodic tone I explained what was behind the Third Wave. "The Third Wave isn't just an experiment or classroom activity. It's far more important than that. The Third Wave Is a nationwide program to find students who are willing to fight for political change in this country. That's right. This activity we have been doing has been practice for the real thing. Across the country teachers like myself have been recruiting and training a youth brigade capable of showing the nation a better society through discipline, community. pride, and action. If we can change the way that school is run, we can change the way that factories, stores, universities and all the other institutions are run. You are a selected group of young people chosen to help in this cause. If you will stand up and display what You have learned in the past four days...we can change the destiny of this nation. We can bring it a new sense of order. community, pride and action. A new purpose. Everything rests with you and your willingness to take a stand."

To give validity to the seriousness of my words I turned to the three women in the class whom I knew had questioned the Third Wave. I demanded that they leave the room. I explained why I acted and then assigned four guards to escort the women to the library and to restrain them from entering the class an Friday. Then in dramatic style I informed the class of a special noon rally to take place on Friday. This would be a rally for Third Wave Members only.

It was a wild gamble. I just kept talking. Afraid that if I stopped someone would laugh or ask a question and the grand scheme would dissolve in chaos. I explained how at noon on Friday a national candidate for president would announce the formation of a Third Wave Youth Program. Simultaneous to this announcement over 1000 youth groups from every part of the country would stand up and display their support for such a movement. I confided that they were the students selected to represent their area. I also questioned if they could make a good showing, because the press had been invited to record the event. No one laughed. There was not a murmur of resistance. quite the contrary. A fever pitch of excitement swelled across the room. "We can do it!" "Should we wear white shirts?" "Can we bring friends?" "Mr. Jones, have you seen this advertisement in Time magazine?"

The clincher came quite by accident. It was a full page color advertisement in the current issue of Time for some lumber products. The advertiser identified his product as the Third Wave. The advertisement proclaimed in big red, white and blue letters, "The Third Wave is coming." ''Is this part of the campaign, Mr. Jones?" "Is it a code or something?" "Yes.1' "Now listen carefully."

"It's all set for tomorrow. Be in the small auditorium ten minutes before 12:00. Be seated. Be ready to display the discipline, community, and pride you have learned. Don't talk to anyone about this. This rally is for members only."

STRENGTH THROUGH UNDERSTANDING

On Friday, the final day of the exercise, I spent the early morning preparing the auditorium for the rally. At eleven thirty students began to ant their way into the room; at first a few scouting the way and then more. Row after row began to fill. A hushed silence shrouded the room. Third Wave banners hung like clouds over the assembly. At twelve o'clock sharp I closed the room and placed guards at each door. Several friends of mine posing as reporters and photographers began to interact with the crowd taking pictures and jotting frantic descriptive notes. A group photograph was taken. Over two hundred students were crammed into the room. Not a vacant seat could be found. The group seemed to be composed of students from many persuasions. There were the athletes, the social prominents, the student leaders, the loners, the group of kids that always left school early, the bikers, the pseudo hip, a few representatives of the school's dadaist click, and some of the students that hung out at the laundromat. The entire collection however looked like one force as they sat in perfect attention. Every person focusing on the T.V. set I had in the front of the room. No one moved. The room was empty of sound. It was like we were all witness to a birth. The tension and anticipation was beyond belief.

"Before turning on the national press conference, which begins in five minutes, I want to demonstrate to the press the extent of our training." With that, I gave the salute followed automatically by two hundred arms stabbing a reply. I then said the words "Strength Through Discipline" followed by a repetitive chorus. We did this again, and again. Each time the response was louder. The photographers were circling the ritual snapping pictures but by now they were ignored. I reiterated the importance of this event and asked once more for a show of allegiance. It was the last time I would ask anyone to recite. The room rocked with a guttural cry, "Strength Through Discipline."

It was 12:05. I turned off the lights in the room and walked quickly to the television set. The air in the room seemed to be drying up. It felt hard to breathe and even harder to talk. It was as if the climax of shouting souls had pushed everything out of' the room. I switched the television set on. I was now standing next to the television directly facing the room full of people. The machine came to life producing a luminous field of phosphorus light. Robert was at my side. I whispered to him to watch closely and pay attention to the next few minutes. The only light in the room was coming from the television and it played against the faces in the room. Eyes strained and pulled at the light but the pattern didn't change. The room stayed deadly still. Waiting. There was a mental tug of war between the people in the room and the television. The television won. The white glow of the test pattern didn't snap into the vision of a political candidate. It just whined on. Still the viewers persisted. There must be a program. It must be coming on. Where is it? The trance with the television continued for what seemed like hours. It was 12:07. Nothing. A blank field of white. It's not going to happen. Anticipation turned to anxiety and then to frustration. Someone stood up and shouted.

"There isn't any leader is there?" "Everyone turned in shock. first to the despondent student and then back to the television. Their faces held looks of disbelief.

In the confusion of the moment I moved slowly toward the television. I turned it off. I felt air rush back into the room. The room remained in fixed silence but for the first time I could sense people breathing. Students were withdrawing their arms from behind their chairs. I expected a flood of questions, but instead got intense quietness. I began to talk. Every word seemed to be taken and absorbed.

"Listen closely, I have something important to tell you." "Sit down." "There is no leader! There is no such thing as a national youth movement called the Third Wave. You have been used. Manipulated. Shoved by your own desires into the place you now find yourself. You are no better or worse than the German Nazis we have been studying."

"You thought that you were the elect. That you were better than those outside this room. You bargained your freedom for the comfort of discipline and superiority. You chose to accept that group's will and the big lie over your own conviction. Oh, you think to yourself that you were just going along for the fun. That you could extricate yourself at any moment. But where were you heading? How far would you have gone? Let me show you your future."

With that I switched on a rear screen projector. It quickly illuminated a white drop cloth hanging behind the television. Large numbers appeared in a countdown. The roar of the Nuremberg Rally blasted into vision. My heart was pounding. In ghostly images the history of the Third Reich paraded into the room. The discipline. The march of super race. The big lie. Arrogance, violence, terror. People being pushed into vans. The visual stench of death camps. Faces without eyes. The trials. The plea of ignorance. I was only doing my job. My job. As abruptly as it started the film froze to a halt on a single written frame. "Everyone must accept the blame No one can claim that they didn't in some way take part."

The room stayed dark as the final footage of film flapped against the projector. I felt sick to my stomach. The room sweat and smelt like a locker room. No one moved. It was as if everyone wanted to dissect the moment, figure out what had happened. Like awakening from a dream and deep sleep, the entire room of people took one last look back into their consciousness. I waited for several minutes to let everyone catch up. Finally questions began to emerge. All of the questions probed at imaginary situations and sought to discover the meaning of this event.

In the still darkened room I began the explanation. I confessed my feeling of sickness and remorse. I told the assembly that a full explanation would take quite a while. But to start. I sensed myself moving from an introspective participant in the event toward the role of teacher. It's easier being a teacher. In objective terms I began to describe the past events.

"Through the experience of the past week we have all tasted what it was like to live and act in Nazi Germany. We learned what it felt like to create a disciplined social environment. To build a special society. Pledge allegiance to that society. Replace reason with rules. Yes, we would all have made good Germans. We would have put on the uniform. Turned our head as friends and neighbors were cursed and then persecuted. Pulled the locks shut. Worked in the "defense" plants. Burned ideas. Yes, we know in a small way what it feels like to find a hero. To grab quick solution. Feel strong and in control of destiny. We know the fear of being left out. The pleasure of doing something right and being rewarded. To be number one. To be right. Taken to an extreme we have seen and perhaps felt what these actions will lead to. we each have witnessed something over the past week. We have seen that fascism is not just something those other people did. No. it's right here. In this room. In our own personal habits and way of life. Scratch the surface and it appears. Something in all of us. We carry it like a disease. The belief that human beings are basically evil and therefore unable to act well toward each other. A belief that demands a strong leader and discipline to preserve social order. And there is something else. The act of apology.

"This is the final lesson to be experienced. This last lesson is perhaps the one of greatest importance. This lesson was the question that started our plunge in studying Nazi life. Do you remember the question? It concerned a bewilderment at the German populace claiming ignorance and non-involvement in the Nazi movement. If I remember the question. it went something like this. How could the German soldier, teacher, railroad conductor, nurse. tax collector. the average citizen, claim at the end of the Third Reich that they knew nothing of what was going on. How can a people be a part of something and then claim at the demise that they were not really involved' What causes people to blank out their own history? In the next few minutes and perhaps years, you will have an opportunity to answer this question."

"If our enactment of the Fascist mentality is complete not one of you will ever admit to being at this final Third Wave rally. Like the Germans, you will have trouble admitting to yourself that you come this far. You will not allow your friends and parents to know that you were willing to give up individual freedom and power for the dictates of order and unseen leaders. You can't admit to being manipulated. Being a follower. To accepting the Third Wave as a way of life. You won't admit to participating in this madness. You will keep this day and this rally a secret. It's a secret I shall share with you."

I took the film from the three cameras in the room and pulled the celluloid into the exposing light. The deed was concluded. The trial was over. The Third Wave had ended. I glanced over my shoulder. Robert was crying. Students slowly rose from their Chairs and without words filed into the outdoor light. I walked over to Robert and threw my arms around him. Robert was sobbing. Taking in large uncontrollable gulps of air. "It's over." it's all right." In our consoling each other we became a rock in the stream of exiting students. Some swirled back to momentarily hold Robert and me. Others cried openly and then brushed away tears to carry on. Human beings circling and holding each other. Moving toward the door and the world outside.

For a week in the middle of a school year we had shared fully in life. And as predicted we also shared a deep secret. In the four years I taught at Cubberley High School no one ever admitted to attending the Third Wave Rally. Oh, we talked and studied our actions intently. But the rally itself. No. It was something we all wanted to 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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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e Third Wave by Ron Jones

(직접 번역한 것이라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원문과 비교하시기를...)


2008년 9월 6일 작성


세상을 바라보는 몇가지 시선 5차 모임

카테고리 없음 2015. 9. 24. 01:5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5차 모임

-류은숙 <사람인 까닭에>, 920일, 삼호사 공사-


참석자: 홍지숙 박정원 이한진 서형원 신은희 김예원 박병선 장예정


 

지숙

: 장애인 인권을 더 공부하고 싶다.

 

예정

: 모든 사회적 문제를 내 문제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강정마을 등등.

 

병선

: 재밌게 읽었어요. ‘p.167/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며 묻지 마 범되를 저지르도록 만든 배타성은 더 센 배타성을 부른다. 더 좋은 약 효과를 보려고 더 센 약을 먹는 것과 같다./’ 내 안의 하층민과 상층민을 나누는 기준. 이러한 기준 때문에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구나. 어느 기준 아래로 내려가면 평소에 나의 그 배타성으로 인해서 사회는 더 이상 나를 품어주지 않을까하는 불안감. ‘부류의 이데올로기절대 내가 될 수 없는 것을 모델로 삼는 것. 그로 인한 억압. 다른 계층의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 나와 다른 사람과의 타자화과 이루어지면서 인권문제 발생의 원인이라고 생각.

 

형원

: ‘인권에 대한 정의. 2권째 읽는 인권 책이지만 한 번도 인권을 체계화한 적이 없었음. 인 권을 한번 정리합시다!

인권을 더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우리 모임에서)

뭔지 모르게 불편하고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 책. 이 답답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진

: 편안하게 읽혔다. ‘인권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는 단어였는데, 문체가 편안해서 그런지 읽기에는 편안했다. 형원쌤 의견과는 반대로, 인권이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책을 덮으며, ‘연대라는 개념을 향한 모호함. 연대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연대란? 청년들에게 연대란 어떤 개념일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은희

: 청년의 언어로 연대란 무엇일까요?

 

정원

: (기대어 서지 않는 관계는 없다)chapter. 책을 통해 느껴지는 저자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앞부분은 편안히 읽다가 기대어 서지 않는 관계는 없다.’ 챕터에 와서 개인주의-연대의 관계성에 대하여 설명하는 챕터같아서 주의깊게 봄. p.143. 인권은 개인의 것. 인권의 정의-‘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게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인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부자유스럽게 살고 있다. 청소년에게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 아이의 발언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이 설명을 통하여 느낀 것만으로도 가치 있었다.” 자유는 자기답기 위하여 분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을 찾는 것이다. 유시민씨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라고 생각하여 여러 강연을 하며, 글쓰기를 연대의 한 방식으로 찾은 것 같다. 규범 등에서 벗어나 를 표현하는 것.

강용주. 5.18때 수감되어 준법서약서에 서명하면 풀려날 수 있었으나, 그것을 거부하고 형기를 모두 마치고 자신과 비슷한 고문 피해자들을 만나고, 돕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일을 통하여 자신만의 방식을 이용한 연대. 나였으면 서약서에 서명하고 나왔을 것. 사람마다 각자 느끼는 고통의 깊이와, 그 한계는 모두 다를 것. 모든 사람이 그것을 모두 느끼며 살아야할까? 피해갈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상상력을 통하여 연대하는 것. 남을 위해 싸워주는 내가 모여 함께 싸우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연대를, 어떻게, 얼마만큼 할 것인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 세상 모든 일에 관여할 수는 없으므로 관심 갖는 곳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연대를 정하여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처럼 사는 것은 저자 그 한 사람의 연대에 대한 선택일 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며 사겠다.

 

병선

: ‘노란 리본서명, 오늘이 과천의 축제 마지막 날이라 서명을 받으러 갔다. 피켓을 들고 있는데 사방에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나도 모르게 흥겹게 리듬을 타는 내 모습.

세월호에 내 모든 일상을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들은 즐기거나 놀면 안되는 것일까? 4.16연대의 사람들은 1년이 넘어가면서 투쟁과 슬픔이 일상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할까? 떠난 사람들의 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때. 유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올 권리가 있고, 유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보수 언론에서 씌워 내보내는 프레임 세월호 특조위도 놀 것 다 놀더라!” 이에 응하는 대중의 반응- “정말? 뭐야, 맨날 슬퍼야하는거 아니야? 일상을 누리고 있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들을 위해 슬퍼해야하는 것처럼 하더니만. 쯧쯧.”

 

형원

: 그러한 잘못된 시선에 맞서는 것은 이성의 영역. 유가족들도 죽은 아이의 동생과 함께 놀이공원에 갈 권리가 있다는 것, 그래야 한다는 것, 그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도저히 감성의 영역으로는 불가능.

 

은희

: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

 

정원

: 옳고 그름을 딱 판단하기보다는 그 이면을 바라보거나, 적절한 무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옳다는 것이 옳은 것만도 아니고 그르다는 것도 그른 것만은 아니다. 스스로 적정선에 대한 적립이 필요한 것 같다.

 

형원

: “인문학을 할 때 삶을 바꾸기 위하여 해라내 삶의 줄기를 바꾸지 않는 선에서 하는 것에 대한 생각.

 

정원

: 바꾸는 것의 정도도 모호한 것

 

형원

: 해보니 이렇더라, 생각해 볼 필요.

 

예원

: 연대와 개인주의는 서로 다른 것 같은게 함께 한다는 것은?

 

정원

: 연대, 개인주의가 보편의 개념상 상반되는 것 같지만, 저자는 그 두 가지 개념이 함께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내 고통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병선

: 한진- 지금 청년세대는 연대라는 말을 잘 못 듣고 자랐다/라는 말을 들으며 생각하기를,

나는 어땠지? 93년 대학에 다니면서 그 당시에 연대라는 말을 많이 쓰기는 했던 것 같다. 근데 그 당시에 연대의 의미가 잘 와 닿지는 않았던 듯. 나는 대학생이었고, 생산직 기술자가 될 것도 아니었고, 나와 연대가 필요한 이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던 듯.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연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진

: 5.18이나 그 세대는 명확히 무언가를 위해 싸웠는지 알겠는데, 우리 세대는 무언가를 향하여 싸우는가. 지금 우리는 청년층이 약자가 되었다. 청년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게 규정되었다. 청년층이 약자가 된 듯. 청년, 청년 운운하는 곳은 많아지고 있는데 해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다. 청년층 자체도 애매한 개념.

 

병선

: 나의 대학 시절 연대란, ‘나는 아닌데, 가서 도와주는 개념투쟁하다 돌아 갈 곳은 따로 있던. 그 당시 대학생이라는 어떠한 지식인과 같은 자격을 등에 업고 연대할 자격을 얻었던 듯. 지금의 대학생은 그 자체가 어느 특별한 계층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 시점.

 

지숙

: 지금의 청년도 약자는 아닌 것 같은데?

 

한진

: 청년들이 함께 투쟁해야 할 대상의 부재. 각자, 각자 흩어져 사는 모습.

 

형원

: 명백하게 지금 청년은 착취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음. 첫 번째 책(자급의 삶)에서 언급했던,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대상이 청년이 된 것 같다. 경제적으로 착취가 가능하고, 그것이 결국은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병선

: 정치적인 권리를 획득하려는 시도를 다 무아 시키고 있는 작금의 상황. 경제적 평등은 사실상 불가능. 청년들의 연대, 내가 20대 때는 전혀 내가 약자라고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바꿔나가는 중심의 역할인 계층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바뀐 것 같다,

 

한진

: 정서적 부분의 문제점.

 

지숙

: 30대 미혼 여성이라는 나의 계층. 성적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나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하자는 없는 지금의 우리 계층. 나는 축복하다고 생각했었다.

사고의 틀을 깰 수 밖에 없는 상황.

 

정원

: 연대의식을 갖기에는 파편처럼 쪼개져 있어서 어려운. 연대할 주제는? 현재의 정규직/비정규직 같은?

 

형원

: 세대라는 틀을 깨야. 노동자 -> 농민 - 빈민. 이 연대가 성공하여야 혁명이 성공한다. 노동운동의 문제점은 다른 이의 문제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모습.

 

병선

: 어느 정도의 정치적 권리 세력.

 

한진

: (보수적인)교회에서 느끼는 문제점이 사회에 비추어 보았을 때 같은 문제의식을 갖게 됨. 당회의 방식이나 그러한 모습. 교회의 규모가 곧 권력인 모습. 지금의 청년층이 그러한 규모적 측면에서 힘이 없기에 약자라고 칭한 것. 이용만 당하는 쳥년층의 모습. 자유로운 사고가 불가한 우리 세대에 대한 연민. 이 교회에, 이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수동적으로만 살아온 교회화 사회의 청년들, 이 세대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을 때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

 

지숙

: 이용과 착취?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에 디자인을 해주는 것은 이 일에 나의 재능이 필요한데 그쪽의 물질적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고 생각. 이에 우리 오빠는 그러한 태도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라고 힐난하였다.

 

형원

: 이용, 착취에 대한 불신등이 팽배해 졌기 때문에 봉사나 그러한 순수한 의미를 띈 행위 또한 착취로 취급되는 모습. 또한 임금을 받는 행위만이 그것이 대안인 것처럼 보여지는 모습.

 

은희

: 지금의 청년층에게 무임금 봉사, 재능기부라는 것 자체가 금기시. 녹색당 대의원회의에서도 청년층의 문제 제기로 올라왔었음. 녹생당에서 이런식으로 사람을 부리냐는 식의 문제제기는 옳지 않다고 느꼈다.

 

형원

: 인건비나 활동비 처우 해결을 위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내 문제를 해결해줘라는 식의 접근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함.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 녹생당의 목표란 다른 삶에 대한 대안의 이야기.

 

지숙

: 우리의 재정상황과 함께 공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상황에서 개인의 처우 문제를 1년에 한번 있는 대의원 대회에서 주장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은희

: 그 기본의 무엇도 받지 않고 헌신해 온 이들의 노력은 보지 않고 자신의 문제만 제기하는 모습은 좋지 않았다.

 

 

2:)

 

형원

: 발제문 참조!

지구 시민- global이라는 단어는 보편적으로 영어권에서는 온전한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책임’, 인간사는 거대한 채무관계

조화의 중요성. 인권은 매우 개인주의에 기반한 개념이다. 어떠한 관계 속에 있어야 편안할까?

조화는 무엇과 무엇의 조화일까. 핵가족? 그것은 분명 아니다. 가부장제로 돌아가는 것?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국가? 그도 아니다.

 

정원

: 개인주의와 연대’. 이 책의 연대가 조화 아닐까?

 

형원

: 개인은 힘이 없으니 개인이 모여서 연대를 한다? 너무나 공허한 외침처럼 들려. 우리가 그 연대라고 하는 조화를 만들어 가는 것. 범위의 문제가 아니라, 연대라고 하는 대항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은희

: 연대라는 단어가 가진 일정한 수준이 있는 것인가? 개인과 개인의 그것은 연대가 아닌가요?

 

형원

: 그런 것도 필시 연대이지만 우리가 오늘 논의하고자 하는 연대는 아닌 것 같다.

정원

: 개인과 개인의 연대와 이러한 연대는 결국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형원

: 기족에서 나와 아빠가 싸웠다. 그럼 그 연대는 깨어진다. 그렇지만 옆방에 가면 이모가 있고 삼촌이 있고, 그러한 모습.

 

은희

: 아이가 있는 엄마로서의 불편함. 이웃에도 그러한 불편함이 있는 누군가. 그렇다면 이러한 둘의 연대는 의미가 없는 걸까?

 

형원

: 비록 두 사람 밖에 없지만 함께 돌보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그것은 새로운 3번째의 어떠한 것이 만들어진 것. 핵가족에서 두 사람의 다툼은 가정이 깨어지는 것. 싸우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일종의 도덕적 책무처럼 되는 모습. 울고 있는 불쌍한 옆집아이를 돌보아주는 것과 사회적 연대는 다른 차원의 것.

 

정원

: 조화와 연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 것인가가 화두. 예부터 개인과 전체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를 고민해 왔던 것 같다. 각자 자기의 이상과 행복을 실현해가면서 함께이루어 가는 것을 고민해왔다고 생각한다.

 

지숙

: 부채감과 사랑. 빚진 마음에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혹은 재미있어 보여서라고 하셨지만. 나는 빚진 마음이 크다. 그 일종의 부채감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급의 삶 책에서 읽었던 배후지의 개념. 나에게 있어서 사회에 대한 부채감이란 나를 움직이게 하는 큰 원동력과 같은 것. 성경의 청지기처럼 내가 가진 것은 잠시 나에게 맡겨진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형원

: 옛날식으로 이야기하면 기꺼이 사회적 책무를 감당하는 심훈의 <상록수>와 같은 모습.

 

지숙

: 여기 있는 사람들은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

 

형원

: 많은 혜택을 받았으므로 그것을 누리며 즐겁게 살면 된다. 다함께.

내가 사회적 책임감 때문에 움직이게 될 때에는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부채감을 씻어 내기 위하여 하는 행위는 바지런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앞만 보고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이 행위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숙

: 내가 누리는 것들에 대한 나의 사회적 책임감.

 

형원

: 그러한 책임감, 사명감등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 또한 인간이 지닌 고결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병선

: 내가 받은 일말의 혜택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 90년대 운동을 하던 사람들.

 

형원

: 내가 투쟁해오던 어떠한 것을 그만 두려고 하지 않는다. 어떠한 곳의 사무처장들이 바뀌지 않고 항상 밑에 사람들만 바뀐다.

 

정원

: 유시민이 떠오르는 상황. 많은 사람들의 그 사람이 정치적 행위를 원하지만 그것을 내려놓은 사람.

 

병선

: 누구나 신앙을 가지고 있다. 진짜 종교든 과학이든 무엇이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물질적, 사회적 통념 등에 대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굴하지 않고 나에게 옳다고 생각하는 신앙에 기반하여 살아가는 것은 지사적 삶이다. 그러한 삶이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소수적 삶이다. 그러한 사람은 매우 소수이다. 100명 중 90명에게는 어려운 삶이다. 그러한 90명에게 신앙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말의 신앙이 있다하더라도 그것만을 기반 하여 사는 삶은 쉽지 않은 것이다.

 

예원

: 오늘의 토론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약간 뭔가 낯선 느낌? 그러한 것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이야기에서 생각해볼만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서형원 선생님의 발제문에서 생각해볼만한 사안들이 많았던 것 같다.


'사람인 까닭에'를 읽고

함께 읽기/인권 2015. 9. 20. 18:1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람인 까닭에'를 읽고 -이한진


인권에 대한 책이란 얘길 듣고 막연하게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권이라는게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평소 가까운 주제가 아니여서 일수도 있고, 어쨋든 인권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좀 거리가 멀어보이고 더욱 험한 환경에서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지키는 고귀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점에서 볼땐 이 책은 그 거리감을 좀 좁혀준 것 같다. 실제활동가들은 상상했던대로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겠지만 지키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개념설명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자연스럽게 들은 것 같고 내가 속한 곳, 내 주위의 사람이 다인 나에겐 생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단순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야라는 느낌보단 그냥 사람이구나. 이런 사연과 이유가 있었구나 그냥 공감하며 지나갔다.
그런데 한편 책을 마치고나니 무거운 마음도 약간 남는다.
인권이라는 말보단 연대라는 말이 이젠 좀 생소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듯하다.
연대한다는 것에 대해선 뭔가 정리가 안된 기분이다. 
기존에 연대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연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함께 사는 것을 기초로 하는 것 외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튼 뭔가 어려운 말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인것 같으나 그것도 어렵다.
나만의 고민이지만 청년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 약자가 되어버린 세상. 청년들이 연대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필요성은 느껴지나 어떻게 풀어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인 까닭에_류은숙 : 메모

함께 읽기/인권 2015. 9. 20. 11:40 Posted by 서형원

좋은 책을 써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저자 류은숙에게 감사를. 




150920사람인까닭에_메모.pdf



사람인 까닭에_류은숙 : 메모

과천녹색당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공부모임 _ 깃털 | 2015.9.20

 

당신이, 당신의 권리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회. 나는 이것이 모욕이 일상화된 사회만큼이나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 위험한 선동에 넘어가지 말라.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도 아니고, 불가침의 권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공적 투쟁과 사적 관용에 대해. 7-8.

 

앤지 젤터가 그런 궂은 일을 자처하는 것은 자신을 지구 시민 global citizen"이라 부르는 신념에서 나오는 것일 터이다.

글로벌 시티즌은, 시대의 절실한 요청이며, 삶의 근사한 지향이라 믿는다. 그런데 영어 global은 지구적이라는 말과는, 세계 경영, 국제적 인사, 지구를 누빈다는 말과는 내포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것은 공간적 정의 이전에, 내 생각에는 전구적(全球的)이라는 말에 가장 가깝다. 공 전체, ‘온전함’, 쪼개지거나 이지러지지 않은. 인격, 공감, 이해, 소통, 두루 생각해보자. (장회익의 온생명을 global life로 번역한다.) 47.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연대에 관한 저명한 이론가인 레옹 부르주아. “인간사는 거대한 채무관계, 다른 모든 이들의 도움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인간 각자에게는 타자에 대한 부채와 책임이 있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타인과 다음 세대에 베풀려고 하는 건 우리가 빚쟁이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해서, 사귀고 싶어서,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싶어서, 함께 더 즐거워지고 싶어서, 이런 것들이다. 빚진 심정으로, 괴로운 부채감으로, 자기를 불행하게 하는 / 자신은 즐겁지 않은 책임감 따위로는 웬만하면(아마도 절대로), 남에게 베풀지 마라. 억울해지고, 남에게 다시 내놓으라고 하고 싶어진다. 베풂은 비대칭, 다자, 그물의 것, 채권채무는 대칭, 양자, 족쇄의 것. 저자 류은숙은 어떤가? 79.

 

빈민의 삶 그 자체로 유명한 빈민

빈민 그 자체인 빈민, 농민/노동자 그 자체인 농민/노동자. 유명해지고 설사 대표가 될지언정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빈민, 농민, 노동자인 사람을 우리 사회에선 찾기 힘들다. 빈민/농민/노동자의 대변자나 천사는 넘쳐나지만. 빈민 정치인, 농민 정치인, 노동자 정치인이 없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비극에서 벗어날 힘을 갖고 있지 못한 큰 이유다. 유명인사, 대표, 정치인이 되는 것이 구질구질한 과거에서 벗어나는 입신의 길로 여겨지는 한, 더구나 억울한 과거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지는 한, 어렵다. 61.

 

이 싸움은 동정을 구하는 싸움이 아니라 권력을 구하려는 싸움이다.

이게 가장 중요. 복지나 경제적 평등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배분, 정치적 평등을 구하는 싸움. 뒤엣것 없는 앞엣것은 동정과 시혜를 구하는 것에 불과.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들과 경제적으로 평등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경제적 평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돈 벌 사람은 돈을 벌라. 질투하지 않겠다. 다만 품위 있는 삶이 가능할 정도의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이고, 무엇보다 타협할 수 없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완전히 평등한 정치적 권리, 권력을 갖는 것이다. (폴 우드러프, 최초의 민주주의 참고) 63.

 

노동 종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품위 있는 삶을 누릴 권리는 노동과는 정말 아무 관계가 없다. 노동해야 먹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범죄적인지, 착취의 공범이 되는 길인지, 모욕을 강요하는 일인지, 이성을 총동원해서 깊이 생각하라. 72-73.

 

품위와 조화. dignity & harmony. 삶에 이밖에 또 뭐가 필요할까? 73.

 

행복한 활동가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기본소득과 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