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수용소와 공론장

3장 공론장과 자유

● 공론장 : public sphere 또는 in-between space. 사이공간 / 탁자의 비유

나와 너를 구분해주는 사이, 나와 너의 거리감, 중간지대

일체가 아니라 독립된 개체인 각자에 대한 상호인정, 존중, 합의, 조정이 이루어지는 공간

정치가 행해지는 자유의 공간 / 행위의 공간

 

1. 자유란 무엇인가

 

● 고대적 의미 : 필요로부터의 해방

오직 타인에 대한 폭력에 의해서만 가능

시민에게만 가능한 특혜

콩스탕 : 고대의 자유는 집단자유, 시민 전체가 권력을 나누는 것


● 중세, 봉건사회 : 면제, ‘세금을 내지 않는 자는 자유로우며 그들은 귀족이 된다

자유 = 면제특권, 배타적 권리 = 고귀함, 양육, 관대함, 대범함


 ●  자유주의 : 모든 인신적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왕이나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와 간섭, 방해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상태

- 홉스 : 자유는 저항이 없는 상태, 나를 막아서는 것이 없는 상태.

가장 큰 저항은 살해에 대한 공포

이 공포를 피하기 위해 국가(리바이어던)와 계약

자유 반납의 대가로 생명, 사적 소유의 안전을 보장

콩스탕 : 근대적 자유는 개인 자유, 정치권력과 제도로 하여금 사적 소유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

 

- 고대 폴리스에서의 자유는 정치적인 영역에서만 중요, 근대에 와서 자유는 비정치적 영역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바뀜

자유와 안전이 동일시되는 한, 개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공포의 흔적들은 더욱더 자주 드러난다. ‘타자에 대한 불신은 안전사회라 하더라도 줄어들 수 없고 제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 어둠을 다 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안전을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타자에 대한 불신을 의도적으로 증폭시킴으로써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는 경향이 강하다.

- 불신을 기반으로 안전 논리는 공간-공론장을 분리하고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확대

- 타자와의 만남의 장소 상실, 공동의 문제에 대한 관심 상실, 결국 나 아닌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게 됨.

- 객관적인 적, 내부의 적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을 고립시킴. 안전 논리는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논리

- 결국 나의 자유 상실.

 

자유는 행위로 드러날 뿐 감각을 통해 확인할 수 없다. 내면의 자유만 가지고는 자유로울 수 없다. 세계-공론장에서의 관계와 행동과 실천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 자유의 조건

1. 자유에는 인간들 간의 만남의 장소, 물리적인 공간, 정치적 행위와 말들이 통용되는 공론장이 필요하다자유는 나와 나 자신만의 뜨거운 논쟁이 아니다. 자유는 철저히 외부 세계와의 문제, 자유는 정치 없이는 드러나지 않는다.

2. 자유와 행위는 동일하고 행위는 공동세계의 원칙에 의해 촉발된다공동세계의 원칙은 탁월함,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모든 사람 가운데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 정신이다.

3. 자유는 훈련, 기교를 필요로 한다정치영역에서의 기교는 말과 행위의 능숙함, 타자를 염두에 두고 말하고 행위하는 능력.

4. 자유는 배타적 주권·지배·명령이 없는 곳에서 가능하다.

 

- 이사야 벌린, ‘적극적 자유가 옹호하는 자기지배에서 자기가 무한히 확장하여 국가나 집단이 되어버릴 경우 전체주의의 위협이 다시 도래할 것이다.’ 무질서가 전체주의를 낳을 것이다. 박정희의 논리.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전체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2. 권력이란 무엇인가

 

고립된 대중은 자기 이외의 사람과 소통할 수 없다. 이것은 공동세계의 파괴, 공통감각의 상실, 세계성의 상실이다. 이 때의 대중은 의외로 쉽게 자신과 타자를 동일시한다. 자기가 갇혀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주관성에 타인을 동일화해버리기 때문이다.

공론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정치적 행위는 작업(노동, 작업, 행위의 구별)처럼 지속성을 가지기 어렵다. 정치적 행위에 지속성을 부여해주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열린 공간에서 서로 소통하는 복수의 인간이 동의할 때 생기는 힘이다. 열린 공간이 없다면 권력은 사라진다. 그럴 때 남는 것은 폭력, 배타적 주권이다.

권력은 공론장에 불을 켜 두고 정치적 인간들이 만들어 낸 더 나은 것들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3. 자유와 평등이 다를까?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복수의 타인과 공동체를 인식하는 정치적 인간만이 자유를 경험한다. 정치는 자유다. 생존을 위한 삶(조에, 수용소의 삶)을 두고 자유롭다고 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삶(비오스)까지 누릴 수 있어야 자유로운 삶이다.

사회와 정치공간은 다르다. 사회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나의 것과 공동의 것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고대에 경제와 노동은 영역은 가정, 사적 공간이었다. 지금은 경제와 노동이 사회의 전 영역을 차지해버렸다. 인간의 행태는 생산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표준화되었고 자발적인 행위나 탁월함이라는 고대의 가치는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활동을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생각한다. 생존이 공적인 것으로 등장하는 세계가 되었다.

가장(, 주권자)이 휘두르는 권력 앞에서 유지되는 가족구성원의 평등, 생존을 위한 평등은 노예의 평등이다. 여기에 자유는 없다.

그렇다면, 생존은 보장되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보장되어야 개인이 해방될 수 있고, 해방된 개인만이 자유롭게 복수의 타자들과 함께 공론장에 참여하여 권력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권력은 생존을 위협하며 모두의 생존이 보장될 수는 없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자유는 이상주의자의 헛된 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정치는 사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삶, 할 수 있는 것들 중 최고의 것에 따라 사는데 필요하다.

 

4. 왜 정치에서 용기가 중요한가.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사적인 생활의 필요나 외부의 강요에 굴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두려움에 처해도, 욕망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판단)을 버리지 않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 속에 공포의 감정을 결여하거나 단번에 극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보려주려는 것이 공포가 아니라고 결정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공포와 두려움을 피해 자기보호로 나아갔던, 홉스의 의지 없는 인민들의 경우와는 정반대다.

가정은 생존의 위한 사적 영역, 필요의 영역, 노동의 영역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지루한 일상과 가혹한 반복이 주는 고통을 견디는 인내이다. 정치적 삶은 이 지겨운 일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용기 역시 가정 안의 삶 속에서는 드러날 수 없다. 반드시 폴리스에서의 좋은 삶을 전제해야만 가능하다. 용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가정이라는 안온한 필연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고, 진정한 인간으로서 영위할 수 있는 좋은 삶역시 요원하다. 오직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만이 필요만을 원하는 동물적 삶을 넘어 진정한 인간으로, 정치적 공동체에 소속될 수 있다.

인간이 가정에서 폴리스로 나오려면 심연을 건너야 한다. 이것은 따뜻하고 안온한, 엄격한 불평등의 장소인 가정에서 나와, ‘자신이 가혹하게 노출되고 불편하고 불안정하고 행위가 가지는 허약성이 온몸으로 느껴지는공적 영역으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적 영역 자체가 공적 영역의 자리를 대체해버린 오늘날 심연은 사라졌을 뿐 아니라 감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오늘날 공적 영역은 사라지고 심연도 사라졌다. 심연을 건너는 수고로움도, 심연을 건너서 맞이하게 되는 가혹한 노출과 곤경도 사라졌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기묘하게 뒤섞인 사회에서 대중은 노예의 풍요로움은 맛볼 수 있지만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잃어버렸다. 이는 곧 진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래, 너 잘났다!

 

- 김상봉 : 용기를, 정신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는 것,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상호적인 것, 도덕적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정신의 강건함, 도덕적 당위에 따르는 것.

- 홀로주체성 : 타자 없는 자유, 로빈슨 크루소, 노동·작업과 관련

- 서로주체성 : ‘의 인격적 만남으로서 자유가 가능,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

우리 시대에 공론장을 다시 만들고 정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용기이다. 수용소의 무슬림 같은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 단계 역시 용기이고, 이것은 우리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하나의 시작이며 우주가 이미 존재하게 된 이후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유롭다.

아렌트의 정치 추천사&서문 정리

함께 읽기/기타 2015. 9. 29. 23:5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바시 / 권정우 하승우『아렌트의 정치』추천사&서문/ 2015.10.11 / 박정원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과 한국사회

 

추천사 :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비추는 거울

본문(p245~7)에서 아렌트, 함석헌과 함께 읽어볼 만한 철학자로 거론되는 김상봉은 추천사에서 한국이 ‘폭력에 중독된 사회’(p8)라고 단언한다. 그는 이 책이 아우슈비츠에서 전체주의에 이르기까지 제도화된 폭력을 성찰하는 책이고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아렌트라는 거울을 통해 되돌아보는 책이라고 정리하고, ‘이 책의 가치는 우리에게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되돌아보게 하고 물음을 던지게 한다는 데 있다’(p10)고 말한다.

 

서문 : 아렌트, 수용소와 전체주의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다

저자들은 아렌트를 이해하는 것이 지금 우리 현실을 이해하고 ‘다른 정치’를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믿고 아렌트가 던지는 화두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항상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이해되는데, 아렌트에 따르면 정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둘째, 아렌트의 사상은 지금 현재의 한국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민주화의 성과를 자랑했던 한국의 역사가 어느 순간부터 뒤로 후퇴하고 있다.(전체주의의 징후들)

셋째, 한국의 많은 정치인이나 시민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을 다르다고 보지 않고 틀렸거나 악이라고 본다. 정치적 합의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며, 아렌트의 사상은 정치를 진리나 선악에서 빼내 다양성, 다원성으로 가져온다.

넷째, 주권자 없는 정치는 불가능한가? 아렌트는 풀뿌리 차원에서 끊임없이 정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평의회를 중요한 장치로 봤다. 주권을 반복해서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보다 우리 삶에서 내 옆의 사람과 손을 잡고 정치를 활성화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다섯째, 거짓말을 하는 정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아렌트는 시민불복종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국 그가 주장하는 정치는 ‘인간’과 다양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함께 연대하는 사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책의 1부는 수용소와 공론장이라는 아렌트 사상의 고갱이를 다루고, 2부는 아렌트가 평생을 걸고 맞섰던 전체주의라는 화두에 주목하면서 그 문제의식을 한국사회에 투영시켜 본다. 전체주의는 비공식 조직이 공식기관의 힘을 대체하고,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지,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도통 알 수 없게 만드는 지배구조이다.(세월호 참사)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한국의 정치는 이렇게 지지부진할까?

 

 

[아렌트의 정치] 1967년 론 존스 제3의물결 실험

함께 읽기/기타 2015. 9. 29. 11:3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나에겐 수년동안 밝히지 않은 이상한 비밀 하나가 있다. 2백명의 학생들과 함께 이 '침묵'을 유지해 왔다. 어제 그 학생 중 한명을 우연히 만났고, 잠깐이나마 나는 그때가 생각났다.스티브 코니지오는 나에게서 세계사 수업을 들었던 2학년 학생이었다. 우리는 아주 우연히 만났다. 그것은 뭔지도 모르고 경험을 당하게 되는 그런 사건 중 하나였다.

거리를 걷다가, 외딴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또는 속옷을 사고 있는데 예전 제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인사를 할 때가 있다. "미스터 존스, 미스터 존스" 소리치며 거리를 내려오는 이는 다름아닌 스티브였다. 약간 당황한 듯한 포옹과 얼떨결에 나누는 인사. 나는 잠깐 멈추어 기억을 떠올렸다. 나를 안고 있는 이 친구는 누구지? 그는 나를 미스터 존스라고 불렀다. 옛 제자?  이름이 뭘까?  스티브는 나의 낌새를 눈치챘는지 설명을 했다. 그리고는 살짯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찻잔을 든 자세로 손을 들었다. 이런... 그는 '제3의 물결' 멤버다. 스티브 코니지오. 그는 두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그는 기타를 연주하고 드라마를 즐기는 예민하면서 똑똑한 학생이었다.

의식적인 명령 없이 내가 손을 구부리는 자세를 취했을때 우리는 서로 웃으며 서있었다. 경례를 주고 받았다. 두명의 동지가 그 전쟁 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만난거다. 제3의 물결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미스터 존스, 제3의 물결을 기억하세요?" 물론이지. 그것은 내가 교실에서 겪은 가장 무서운 사건이었어. 또한 내 남은 평생동안 2백명의 학생들과 공유해야 할 슬픈 비밀의 시작이기도 했지.

우리는 몇시간동안 제3의 물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었다. 헤어질 시간이 됬다. 이상하다. 너는 과거의 제자, 이렇게 우연히 인생의 한 순간을 잡다니. 우리는 힘껏 포옹을 한 다음 작별인사를 했다. 언제 다시 만날수 있을지 전혀 모른다. 서로 연락하자는 약속을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다. 스티브는 계속 성장하고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삶에서 늙지 않는 하나의 벤치마크로 남아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을 현재형으로. 나는 미스터 존스다. 스티브는 돌아서서 조용히 손을 올려 물결 모양을 지어 보이며 경례를 한다. 나도 비슷하게 손을 구부려 경례에 답한다.

제3의 물결. 글쎄. 마침내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그때 학생을 만났고, 우리는 그 악몽에 대해 몇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밀은 마침내 그 '끝'에 가까왔음에 틀림없다. 3년이다. 나는 이제 '제3의 물결'에 대해 누구건 간에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꿈, 기억해야 할 그 무엇, 아니, 잊으려 노력해야 할 그 무엇이다. 그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이렇다. 아주 이상하게 우연히도 약간 의심쩍게 제3의 물결을 시작한 것이 스티브였던 것 같다.

우리는 나치 독일을 공부하고 있었고, 수업중 나는 질문을 하나 받았다. 어떻게 독일 사람들은 유태인 학살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인가요? 어떻게 도시 시민, 철도관리인, 교사, 의사 들은 강제 수용소와 대량 인간 살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죠? 어떻게 그 유태인들의 이웃이며 심지어 친구였던 이들조차 그 일이 발생할 때 거기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인가요? 그것은 괜찮은 질문이었으며, 난 그 질문의 대답을 알지 못했다.

학기가 마칠려면 아직 몇개월 남았고, 나는 이미 2차 세계대전까지 진도가 나간 상태. 나는 일주일을 할애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보기로 했다.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Strength Through Discipline

월요일. 나치 독일의 특징을 체험할 수 있는 한가지를 내 역사 수업을 듣는 2학년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훈련. 나는 훈련의 미덕에 대해 강의를 했다. 운동선수는 스포츠에서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연습하면서 무엇을 느낄까?  발레 댄서나 화가는 하나의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가?  어떤 아이디어에 대한 과학자의 헌신적인 인내력. 그것은 훈련이다. 혼자 하는 연습. 그러니까 자기 제어. 의지의 힘. 아주 뛰어난 정신 및 신체의 완성과 육체적인 고통의 교환이다. 궁극의 승리...

'훈련의 힘'을 경험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착석 자세를 연습할 것을 권유, 아니 명령했다. 어떤 자세가 집중력을 높이고 의지를 강하게 하는지에 관해 말로 설명했다. 그러니까 난 반 학생들에게 앉는 자세를 가르쳤다는 거다. 이 자세는 발을 바닥에 딱 붙이고 등뼈가 곧게 펴지도록 허리 부위에 손을 편 상태로 위치 시키는 것으로 시작했다. "좀더 쉽게 숨 쉴수 있지 않니? 좀더 깨어 있는 것 같을거야. 기분이 나아진 것 같지 않아?"

우리는 이 차려 자세를 반복해서 연습했다. 나는 앉아 있는 학생들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면서 문제점을 이야기해주고 자세를 바로 잡아 주었다. '똑바로 앉기'가 학습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되었다. 반 학생들을 책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흩뜨려 놓은 다음 갑자기 신호를 보내면 자기 자리로 돌아가 그 차려 자세를 취하게 하는 훈련도 할거다. 그걸 더 빨리하는 연습을 통해 학생들은 서있다가 앉는데 걸리는 시간을 15초로 단축시켰다. 그리고 주의 집중을 통해 발은 평행하고 평평하게, 발목을 맞붙이고, 무릎은 직각으로 굽히고, 손도 평평하게 등뒤로 교차하게, 척추는 세우고, 턱은 밑으로, 머리는 정면을 향하도록 했다. 소음 훈련도 했는데, 잡담은 허락되지 않았다. 있다면 오직 비방인 것이다. 몇분동안 학생들은 교실 바깥에 서있다가 소리를 내지 않고 책상으로 돌아와 차려 자세로 앉는 단계적인 훈련을 했다. 이런 작전 행동에 5초가 걸렸다.
 
학생들이 일률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행동 코드를 이렇게 빨리 따르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행동이 어느 수준까지 더 가능할지 궁금해졌다. 이런 모두가 함께하는 '복종 드러내기'는 잠깐의 게임일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지... 훈련과 균일성에 대한 욕망은 자연스러운 욕구일까? 프랜차이즈 식당과 TV 편성 안에 숨어 버리는 일종의 사회적 본능...

교실 학생의 인내력을 '엄격하게 조직화되고 통제되는 행동'의 형태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수업 25분을 남기고 새로운 규칙을 도입했다. 학생들은 벨소리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차려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은 연필과 적을 종이를 가지고 다녀야 하고, 질문하고 대답할 때에는 항상 책상 옆으로 나와 일어서야 하며, 대답하거나 질문할 때 항상 "미스터 존스" 라는 말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잠깐 '묵독'을 연습했다. 느릿느릿 반응하는 학생들을 꾸짖었고 제대로 잘 할때까지 행동을 반복시켰다.

반응의 강렬함이 내용이나 취지보다 더 중요해졌다. 이것을 더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대답은 세단어 이하로 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질문, 대답할때 이런 노력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보상을 했다. 그들의 행동이 또한 또렷또렷하고 주의깊어도 그들은 인정을 받았다. 곧 반 학생 모두가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서 질문과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같으면 일부 몇몇에 의해 주도되는 회의가 반 아이들 전체가 참여하는 수준이 되었다. 심지어 익숙치 못한 아이들의 대답의 수준도 향상되었다. 새로운 친구가 이야기할 때 모든 아이들이 열중하여 듣는 것 같았다. 평소같으면 발표하기를 주저할 학생들도 대답을 했고 아이들은 그들의 노력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훈련에서 내 역할은 질문하는 것 뿐이었다. 왜 전에는 이런 기술들을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학생들은 자신의 과제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고 사실과 개념에 관한 정확한 수업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들은 심지어 더 근사한 질문을 하는 듯 보였고, 서로에게 더 많은 동정심을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나는 권위주의적인 학습 환경의 틀을 만들어 주었고 그것은 매우 효과적으로 보였다. 나는 이 학급이 얼마나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열린 교실'과 '스스로 알아서 배움'에 대한 기본 신념을 바꾸어야 하는 건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칼 로저스에 대한 나의 믿음은 사그러들고 말것인지... 이 실험은 어디로 나아갈까?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 Strength Through Community

화요일. 훈련 이틀째. 교실에 들어갔을때 모두 부동의 차려자세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몇몇은 선생님을 기쁘게 하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짓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진지하게 집중하면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 근육이 굳은 듯. 미소도 생각도 심지어 질문도 없다. 뭔가를 하기 위해 긴장한 듯 보인다. 긴장을 좀 풀고자 나는 칠판에 큰 글씨로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이라고 쓰고 그 아래에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 이라고 썼다.

학생들은 침묵을 지키며 앉아 있고 나는 공동체의 가치에 관한 설교 강의를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이번 단계에서 이 교실 실험을 멈출지 계속할지를 고민했다. 이 정도 강렬함 또는 순응은 계획에 없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만들어진 규율에 관한 아이디어를 찾았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실험을 지속할지 그만둘지 고민하면서 나는 공동체에 관해 계속 이야기했다. 선수, 코치, 역사가로서의 경험을 통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고, 그것은 어렵지 않았다. 공동체는 함께 일하고 고생하는 개인 간의 결속력이다. 그것은 이웃과 헛간을 짓는 것이며, 내가 나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 운동, 팀, 활동 같은 것의 일부가 된 느낌이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난 이제 천문학자가 왜 그렇게 집요하게 망원경에 매달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나 자신의 인식과 개인과 그룹 행동의 동기에 대해 더 깊게 탐구하고 있는 것이었고, 볼 것과 이해할 것이 너무 많았다.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왜 학생들은 자신들에 '드리워진 권위'를 받아 들였을까?  이 군대나 마찬가지인 행동에 대한 호기심이나 저항은 어디로 갔을까? 이것은 도대체 언제 끝날까?
 
공동체 설명에 이어 훈련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이해하려면 역시 그것도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공동체라는 것을 접하도록 하기 위해 나는 교실의 학생들로 하여금 일제히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 을 복창하도록 했다. 먼저 두 학생을 세워 우리의 모토를 떠올리게 하고 다른 두 학생에게 반복시키고, 교실 전체를 세워서 복창하게 했다. 그것은 재미있었다. 학생들은 서로를 쳐다 보기 시작했고 '일체감'의 힘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할수 있었고 평등했다. 그들은 함께 무언가를 했다. 우리는 이 간단한 활동을 수업시간 내내 했다. 돌아가면서 합창으로 반복적으로 모토를 외쳤고 소리 크기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우리는 항상 똑바로 앉고, 서고, 말하는 법을 강조하면서 '함께' 라고 말했다.

나는 나 자신도 실험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보여주는 단일화된 행동을 즐겼다. 이런 만족과 흥분을 보는 것은 일종의 보상이었다. 나는 이 실험의 여파로부터 빠져 나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짐을 발견했고, 이 교실이 어떻게 될지 알기가 어려웠다. 내가 이끄는 만큼 따라오는 그룹을 나는 따르고 있었다. 수업시간이 끝날때 즈음, 나는 별 생각없이 교실 경례를 만들었다. 그것은 이 학급 멤버에게만 해당되었다. 오른손을 소용돌이 자세로 오른쪽 어깨까지 올리는 것이 경례였다. 물결처럼 손을 올리는 같은 모양이라 나는 그것을 '제3의 물결 경례' 라고 칭했다. '3' 이라는 것은 연쇄적으로 이동하는 물결에서 세번째 물결이 가장 오래 지속하고 가장 크다는 지식에서 나왔다. 우리는 경례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교실 밖에서도 멤버들끼리는 경례하기를 규칙으로 만들었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는 동안 나는 반 아이들에게 완전한 침묵을 요구했다. 모두 차려 자세로 앉아 있고 나는 천천히 팔을 올려 찻종 모양 손으로 경례했다. 그것은 승인의 조용한 신호였다. 그것들은 특별했다. 명령없이 모든 학생 그룹들은 답례했다.

다음 며칠을 통해 교실의 학생들은 이 인사를 교환할 것이다. 복도를 걷다가 갑자기 세명의 학급 친구들이 재빨리 경례를 할 것이다. 도서관에서 체육관에서 학생들이 이 이상한 손 자이브를 주고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식당에서는 같은 학급 학생이 서로 경례하다가 부딛치는 식판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30명이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게끔 하는 그 불사가의함은 곧 그 이 교실을 주목받도록 만들 것이고 독일인에 관한 실험이 될 것이다. 교실 밖 많은 학생들이 가입할 수 있는지 물었다.

실행을 통한 힘의 집결 Strength Through Action

수요일. 나는 지금은 실험이라고 부르는 것을 지속하기를 원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멤버십 카드를 발급하기로 결정했다. 단 한명도 교실을 나가기 위해 일어서지 않았다. 활동 세번째 날. 교실에는 43명의 학생이 있었고 13명은 실험의 일부가 되기 위해 수업도 빠졌다. 아이들이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일일이 카드를 나눠 주었다. 카드 중 3개에는 빨간 X 를 표시했고, 그것은 교실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학생을 보고하라는 특별 임무를 맡은 이들을 의미했다. '실행'의 의미를 계속 이야기했고 행동이 없으면 훈련과 공동체는 어떻게 무의미한지를 설명했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의 미덕을 설명했다. 너 자신, 너의 공동체, 가족을 믿어라. 너는 지키고, 보호하고 확장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것과 서로에 대한 헌신이 학습과 성취도를 얼마나 촉진시키는지 강조했다. 난 학생들로 하여금 경쟁이 야기하는 고통과 퇴보가 존재하는 학급에서 느껴지는 것을 상기시켰다. 체육에서 독서까지 모든 것에서 서로 경쟁하는 상황. 실행하지 않는 느낌, 무언가의 일부가 되지 않는 것, 서로 돕지 않는 것...

아이들은 별 생각없이 앉아 있었고, 기념물이 될 것을 주기 시작했다. "미스터 존스, 처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왜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어요?" 나는 놀랐다. 그래. 나는 매우 극단적으로 통제된 상황에서 그들에게 정보를 주입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그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왔다. 독일인 삶에 관한 복잡하고 시간을 좀 들여야 하는 숙제가 완성되고, 그것이 학생들 사이에서 증보되기까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학업 영역에서의 수행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그들은 더 많이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더 원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할당받는 무엇이건 간에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 내기로 했다.

학생들로 하여금 '직접 실행'을 경험토록 하기 위해서, 나는 각 개인에게 구두(口頭) 과제를 주었다. "제3의 물결 현수막을 디자인하는 거야. 너는 멤버가 아닌 학생이 이 교실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어. 난 네가 내일까지 모든 멤버들의 이름과 주소를 암기하고 암송할 수 있기를 바래. 너는 더 나은 학습을 위해 우리의 앉는 자세가 필요한 인근 초등학교에서 최소 20명의 아이들을 훈련하고 설득하는 문제를 할당 받은거야. 이 팜플랫을 읽고 수업 끝나기 전에 교실 아이들에게 그 전체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 너의 일이야. 나는 너희 모두가 제3의 물결에 가입했으면 하는 믿을 만한 친구들의 이름과 주소를 나에게 주기를 원해... "

'직접 실행'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며, 나는 새로운 멤버를 맞는 간단한 과정을 가르쳤다. 이렇게 한다. 새 멤버의 가입은 기존 멤버의 추천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내가 카드를 발급한다. 카드를 받으면 새 멤버는 우리의 규칙을 알고 있음을 증명하고, 규칙에 복종할 것을 서약한다. 나의 발표에 교실은 열광했다.

학교는 추측과 호기심이 넘쳤다.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학교 요리사는 제3의 물결 쿠키가 어때 보이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초콜릿칩 같다고 했다. 교장이 오후에 교무실에 와서 제3의 물결 경례를 나에게 했다. 나도 했다. 도서권 사서도 도서관 입구 위에 걸었던 '학습에 관한 현수막'에 대해 나에게 고마와 했다. 그날 끝무렵에는 2백명의 학생들의 가입이 허락되었다. 나는 외롭고 조금 무섭다고 느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의 대부분은 "고자질" 이라는 사건에서 나왔다. 일탈 행위를 보고하라고 공식적으로 3명을 지정했는데, 대략 20명의 학생들이 알렌이 경례를 하지 않았네, 조르진이 이 교실 실험에 대해 비평했네, 따위의 보고를 해왔다. 이러한 감시는 학급의 절반이 지금 멤버들에 대한 관찰과 보고를 자신의 의무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당한 음모를 보고하는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진행중인 것처럼 보인다.

교실의 세명의 여학생들은 우리의 교실 활동에 대해 부모님께 이야기를 했었다. 이 세 젊은 여학생들은 가장 총명한 아이들이었고 친구로서 사이좋게 지냈다. 그들은 자신감이 있었고 그들에게 학업과 리더십의 기회를 준 학교에 대해서도 만족했었다. 실험이 벌어지는 날들 동안 나는 그들이 이 평등주의와 학급의 재구성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궁금했다. 이기는 것에 익숙했던 그들에 대한 보상은 이 실험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실험에서 의문을 가지고 사유하는 지적 숙련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군대 분위기의 학급에서 그들은 놀라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되돌아보니까, 그들은 소위 학습 불능의 아이들같아 보였다. 그들은 활동을 지켜보았고 기계적인 참여를 했을 뿐이다. 다른 이들은 뛰어든 반면, 그들은 지켜보면서 망설였다.

실험에 대해 부모들에게 말하면서 그들은 일련의 이벤트를 만들었다. 그 부모들 중 한명의 랍비가 나를 집에 불렀다. 그는 예의가 바르고 겸손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단순히 독일인의 성격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기뻐했고 걱정하지 말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는 부모들에게 이야기할 것이고 그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대화를 마치면서 나는 성직자들이 지킬 수 없는 조건을 받아 들이고 사과하던 역사를 통해서 비슷한 대화를 상상했다. 그가 화가 났거나 또는 상황을 조사했다면 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저항의 예를 지적했을 거다. 하지만 아니었다. 랍비는 실험의 일부가 되었고 실험에 존재하는 그 억압을 무시하면서 그는 공범자와 옹호자가 되었다.

세번째날 끝무렵 나는 지쳤다. 분열되었다. 역할 놀이와 유도되는 행동 간의 균형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가 되었다. 많은 학생들은 완전히 '제3의 물결' 멤버가 되었다. 그들은 규칙에의 철저한 복종을 요구했고 실험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을 위협했다. 어떤 아이들은 활동에 빠져서 스스로 역할을 설정했다. 나는 로버트를 특히 더 기억한다. 로버트는 나이 또래에 비해 컸지만 학업 성취도가 낮았다. 오... 그는 성공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했다. 그는 도서관에서 참조 도서로부터 카피한 단어들을 이용해서 잘 쓴 주간 보고를 제출했다. 로버트는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다른 아이들과 같았다. 그들은 영리하지 않다. 선수팀으로 뛸수도 없고 주목을 끌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눈에 안 뜨였다. 내가 로버트를 알게 된 것은 그가 내 교실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는데, 늘 혼자였다.

'제3의 물결'은 로버트에게 어떤 지위를 부여했다. 적어도 그는 모든 사람과 평등했고, 그는 뭔가를 할 수 있었고, 참여할 수 있었고 의미있는 존재였다. 그것이 로버트가 한 일이다. 수요일 늦은 오후, 로버트는 나를 따라왔다. 나는 뭐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미스터 존스, 나는 당신의 보디가드예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요. 내가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 확신과 미소에 "아니" 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보디가드가 생겼다. 하루종일 그는 나를 위해 문을 열고 닫았고, 내 오른쪽으로 항상 다녔다. 다른 학급 멤버들에게는 미소 지으며 경례하면서. 그는 어디에서나 나를 따랐다. 교무실에서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그는 조용히 차려 자세로 서있었다. 영어 선생이 학생이냐고 말을 걸 때 웃으면서 그가 학생이 아니라고 알려 주었다. 그는 보디가드였다.

긍지를 통한 힘의 집결 Strength Through Pride

목요일. 나는 실험에서 결론 내기를 시작했다. 지쳤고 걱정이 되었다. 많은 학생들은 선을 넘었다. 제3의 물결은 그들의 존재의 중심이 되어 왔다. 나는 몸상태가 안좋았다. 나는 지금 독재자로서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오, 난 자비로와. 매일같이 '체험 학습'의 장점에 대해 나 스스로와 논쟁을 벌였다. 이 실험의 4일째 되는 날, 나는 나의 주장을 잃기 시작했다. 역할에 많은 시간을 쏟을수록, 실험의 합리적 발단과 의도을 기억하는 시간이 줄어갔다. 나는 필요없을 때 조차도 그 역할에 슬며시 빠져든 나를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럴까 궁금해졌다. 우리는 적합한 역할을 부여받고 우리의 삶을 그 이미지에 바친다. 곧 그 이미지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유일한 자아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지가 된다. 내가 만들어 낸 상황과 역할과 벌이던 고민은 내가 그것이 어디로 갈지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거였다. 사건은 주변 여기저기 터졌다. 나는 학생들이 후회할 일을 벌이는 것이 걱정되었고, 나 자신도 걱정되었다.

다시 한번 실험을 마무리할지 아니면 그 코스대로 진행되게 둘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실은 두가지 선택 모두 실행불능이었다. 실험을 멈추면 많은 학생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그들은 남들 보는 앞에서 스스로 급진적 행동을 벌여 왔었다. 감정적으로 심리학적으로 그들은 그 자신들을 드러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을 세게 후려쳐서 교실의 '현실'로 되돌린다면 나는 혼란스러워 하는 학생들과 일부 단체를 남은 해 동안 만나게 될 뿐이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단지 게임이었어 하는 것은, 로버트와 비슷한 아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며,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거다. 그리고 그들은 조심스럽게 참여했던 좀더 영리한 학생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게 될거다. 나는 로버트를 다시 패배하게 할 수는 없었다.

실험을 진행되도록 그냥 두는 선택도 불가능하다. 일어난 일들이 이미 통제가 안되었다. 수요일 밤 누군가 교실에 침입해서 뒤졌다. (나중에 어떤 학생의 아버지였음이 밝혀졌는데 그는 전쟁 수용소의 독일 죄수로 시간을 보냈던 은퇴한 공군 대령이었다. 우리의 활동에 관해 듣자마자 그는 자제력을 잃고 밤에 침입했다. 나는 그가 아침에 교실문에 기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나에게 독일에서 죽임을 당했던 그의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나를 안고 흔들었다. 띄엄띄엄 그는 내가 그를 이해하고 집에 가도록 도와주기를 간청했다. 나는 그의 아내를 불렀고 이웃의 도움으로 그는 집에 걸어갔다. 우리는 그가 느끼고 저지른 것에 대해서 나중에 몇시간을 이야기했지만, 그때부터 목요일 아침까지 나는 학교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해 더 걱정이 되었다.

나는 우리의 활동이 선생들과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점점 더 걱정이 되었다. 제3의 물결은 정형화된 정규 학습을 교란시키고 있었다. 학생들은 참여하기 위해 수업을 빼먹고, 학교 카운셀러들은 학급의 모든 학생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진짜 게슈타포들이 학교에서 일했다. 백가지 방향으로 터져 버릴 이 실험을 마주한 채 나는 오래된 농구 전략을 시도하기로 했다. 네가 정말 힘겹게 플레이를 할 때, 최선의 행동은 예상치 못한 것을 시도하는 거다.

목요일까지 교실은 80명 넘는 학생들로 부풀려져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 유일하게 허락될 것은 차려 자세로 침묵하며 앉는 훈련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 이상한 고요는 교실이 '관찰'과 '기대' 속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 가득찰 때 효과적이다. 그것은 내가 그들에게 좀더 신중하게 접근하도록 도왔다. 나는 긍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긍지는 현수막, 경례 이상이다. 긍지란 아무도 너에게서 가져갈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긍지는 네가 최고임을 아는 것으로... 파괴될 수 없다..."

이런 크레센도 와중에, 나는 갑자기 제3의 물결의 진짜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고 톤을 바꿨다. 느리고 규칙적인 톤으로 제3의 물결 뒤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했다. "제3의 물결은 단순한 실험이나 교실 활동이 아닌 훨씬 더 중요한 거다. 제3의 물결은 전국적인 프로그램으로 이 나라의 정치적 변화를 위해 기꺼이 싸울 학생들을 찾는 거다.

그렇다. 우리가 훈련으로 해 온 활동들은 진짜다. 나라를 통털어 나같은 선생들이 훈련, 공동체, 긍지, 그리고 실행을 통해 더 좋은 사회를 보여 주기 위한 젊은 여단을 뽑고 훈련키시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가 돌아가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공장, 상점, 대학 그리고 모든 기관들을 바꿀 수 있다. 너희들은 이런 이유에서 돕도록 선택된 젊은 그룹이다. 우리가 일어나서 지난 4일동안 배운 것을 보여 주면 우리는 우리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질서의 감각을 가져올 수 있다. 공동체, 긍지, 실행. 새로운 목적. 모든 것은 너와 너의 의지에 달려 있다."

내 말의 진지함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나는 이 제3의 물결을 의심해왔던 3명의 여학생들을 향해, 교실을 나갈 것을 요구했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설명하고 4명의 가드를 정해서 그녀들이 도서관에 가도록 하여 금요일 수업시간에 들어오는 것을 막도록 했다. 그리고 극적인 스타일로 나는 교실 학생들에게 금요일에 있을 정오 집회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것은 '제3의 물결 멤버' 만을 위한 집회다...

그것은 거친 도박과도 같았다. 내가 멈추면 누군가 웃거나 질문을 하거나 이 위대한 계획이 혼돈으로 분해될 것을 두려워하면서 나는 계속 이야기했다. 금요일 정오에 전국 지도자 후보 한사람이 젊은이들을 위한 제3의 물결 프로그램을 만들것을 어떻게 선언할지를 설명했다. 이 선언과 동시에 일천개가 넘는 젊은 그룹들이 나라 각 지방에서 일어나서 이 운동을 지원을 한다. 나는 선택된 학생들이 그 지역을 대표할 것임을 자신했다.

또는 그들이 괜찮은 쇼를 보여줄지도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언론들이 이 이벤트를 기록하기 위해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불평이나 저항은 없었다. 반대로 교실에는 흥분만이 가득했다. "우리는 할 수 있어"  "우리 하얀 셔츠를 입어야 할까?" "친구를 데려 올수 있을까?" "미스터 존스, 타임 매거진에 이 광고 보셨어요?" 결정타는 우연히 왔다. 어떤 가죽 제품에 대한 타임지의 전면 광고였는데 광고주는 그의 상품을 제3의 물결이라고 했다. 광고는 빨갛고, 하얗고, 파란 글자로 되어 있었다. "제3의 물결이 다가온다." "이건 이 캠페인의 일부인가요? 미스터 존스" "이건 암호인가요?"

"그래 잘 들어라 모두 내일을 위한 거야. 12시 10분 전까지 강당에 앉아 있어야 한다. 배웠던 훈련, 공동체, 긍지를 보여줄 준비를 해라.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고. 집회는 오직 멤버만을 위한 거다."

이해를 통한 힘의 집결 Strength Through Understanding

금요일. 훈련의 마지막 날. 나는 이른 아침을 강당에서 있을 집회를 준비하며 보냈다.11시, 30명의 학생들이 들어왔고, 한줄씩 자리를 채워 나갔다. 급박한 침묵이 공간을 감쌌다. 제3의 물결 현수막이 구름처럼 걸려 있었다. 12시 정각, 나는 문을 닫고 가드를 문에 배치했다. 내 친구 몇명이 리포터와 사진사로서 군중들과 교류하며 사진을 찍고 극도로 흥분된 기사체 글들을 메모하고 있었다. 한 그룹 사진이 찍혔다. 2백명이 넘는 학생들이 장소를 가득 메웠고, 빈자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그룹은 많은 교파들로부터 온 학생들로 이루어진 것 같다. 운동선수, 유명인, 학생 지도자, 로너들, 일찍 하교를 하는 아이들의 그룹, 바이커들, 스도 힙, 다다이스트 클릭 대표하는 이들, 낙하산 타고 내려온 학생들 일부. 그러나 전체 모임은 완벽한 차려 자세로 앉아 있는 '하나의 힘' 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들이 TV 세트에 촛점을 기울이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공간에 사운드란 없었다. 모두 탄생의 목격자인 듯 했다. 긴장과 기대는 믿음을 넘어섰다.

"전국 프레스 컨퍼런스를 틀기 전에 5분 동안 우리 훈련의 범위를 언론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경례를 했고, 2백명이 자동으로 응답을 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뒤이어 따라했다. 계속 반복했다. 매번 할때마다 더 커졌다. 사진사는 그들이 무시되는 것처럼 사진을 찍으면서 그 의식을 순회했다. 나는 이 행사의 중요성을 반복했고 충성을 보여주기를 요구했다. 내가 복창을 요구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강당에는 목 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

12시 05분. 나는 불을 끄고 TV 세트로 걸어갔다. 강당 안 공기는 다 말라 버리는 것 같았다. 숨쉬기도 어렵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소리치는 영혼의 절정이 그곳에서 모든 것을 밀어버리는 거 같았다. TV 를 켰다. 나는 모든 사람을 바라보며 TV 옆에 서 있었다.기계는 인이 발산하는 빛의 밝음을 생성해내며 살아났다. 로버트는 내 옆에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어지는 몇 분을 주의깊게 잘 보라고 속삭였다. 강당의 유일한 불빛은 TV 에서 나오고 있었고 그것은 모든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빛에 빨려든 긴장된 눈들, 그러나 그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강당은 죽은듯이 조용했다. 사람들과 TV 사이의 정신적 밀고 땅김의 대결이 있었고, TV 가 이겼다. 테스트 패턴의 백광은 어떤 정치적 후보자의 모습도 비추지 않았다. 바라보는 이들은 계속 고집했다. 뭔가 나와야 한다. 나올 것인가?  어디에?  TV 가 지속시킨 무아지경은 몇시간 계속된 듯 했다. 12시 07분. 아무것도 없다. 화이트의 빈 공간 뿐.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을거다. 기대는 걱정으로 그리고 좌절로 바뀌었다. 누군가가 일어서서 소리쳤다.

"지도자는 거기에 없습니까?" 모두 충격을 받았다. 의기소침해진 학생들이 TV 로 왔다. 그들의 얼굴에서 불신의 모습이 나타났다. 잠깐의 혼란 속에서 나는 TV 쪽으로 천천히 나아가서 그것을 껐다. 나는 갑자기 공기가 돌진하는 듯 했다. 강당은 고정된 침묵이 감돌았고 처음으로 나는 사람들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은 의자 뒤로 그들의 팔을 물리고 있었다. 나는 질문의 홍수를 기대했다. 그러나 강렬한 고요만이 있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든 단어 하나 하나가 설득력 있어 보였다.

"잘 들어. 얘들아. 중요한 이야기를 할거야. 앉아라. 지도자는 없어. 제3의 물결이라는 젊은이들의 국가적 차원의 운동? 그런거 없어. 너희는 이용당한 거야. 조종당한거야.  너희 자신의 욕망에 의해 밀려난 채 지금 너희는 여기 있는 저희 자신을 발견한거야. 너희는 우리가 공부하던 독일 나치보다 더하거나 또는 덜하지도 않아."

너희는 너희가 엘리트라고 생각했지. 여기 강당 바깥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나았을 거라고. 너희는 너희 '개인의 자유'를 '훈련과 우월에의 순응'과 흥정을 한거야. 너희는 너희 자신의 신념 위에 드리워진 커다랗지만 새빨간 거짓말과 그룹의 의지를 따르기로 선택했어. 오, 이런 너희는 스스로에게 재미로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 너희는 어느 순간에도 너희 자신을 탈출시킬 수 있었어. 그러나 너희는 어디로 갔지? 얼마나 멀리 간거야? 너의 미래를 보여 줄래?"

나는 뒤에 있던 스크린 프로젝터를 켰다. 재빨리 TV 뒤로 하얀 천을 비추었고, 커다란 숫자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뉘른베르크 집회의 포효하는 영상이 잡혔다. 나의 심장은 세게 뛰었다. 유령같은 이미지에 나치시대 독일 역사가 줄줄이 나타났다. 훈련, 수퍼 인종의 행진, 선동하는 새빨간 거짓말, 오만, 폭력, 테러, 밴으로 밀리는 사람들. 죽음의 수용소 악취의 비쥬얼, 눈없는 얼굴들, 재판, 무지의 변명. 나는 내 일을 했을 뿐이야.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 갑자기 필름은 뭐라고 쓰여 있는 프레임에서 얼어 붙은 듯이 멈추었다. "모든 사람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 아무도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강당은 어두웠고 프로젝터에서 필름의 발자취를 퍼덕퍼덕거렷다. 나는 위가 쓰렸다. 강당은 땀을 흘렸고 락커룸처럼 녹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지 알아내기 위해 그 순간을 비평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꿈과 긴 잠에서 깨어 나듯이. 강당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식을 마지막으로 한번 돌이켜 보았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정신차리도록 몇분을 기다렸다. 마침내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질문은 상상적 상황을 탐색하는 것이었고 이 행사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어하는 것들이었다.

여전히 어두운 곳에서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내 감정의 두께와 양심의 가책을 자백했다. 나는 그 집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시간이 걸리는 충분한 설명을 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나 자신이 이 사건의 내성적인 참여자에서 선생으로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선생인 것이 더 쉽다. 나는 객관적인 용어들로 과거의 사건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난 주 경험을 통해, 우리는 나치 독일에서 활동하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이었나 맛 본거다. 우리는 훈육된 사회환경을 만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 특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회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웠다. 이성을 규칙으로 교체하라. 그러면 우리는 좋은 독일 사람을 만들수 있다.  우리는 유니폼을 입을지 모른다. 친구와 이웃들이 저주받고 박해받을 때 고개를 돌릴지 모른다. 자물쇠를 채워 버릴지 모른다.

"방어 " 공장에서 일하고, 생각을 불태울지 모른다. 그래 우리는 영웅을 찾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약간 알게 되었어. 우리는 무시당하는 것의 두려움을 알아. 뭔가 옳은 것을 하고 보상받는 것의 기쁨을 알아. 넘버 원이 되는 것, 옳은 것이 되는 것, 우리는 극단으로 밀려 이 행동들이 무엇으로 나아갈지 보고 느껴왔어. 우리 각자는 지난 한주 일어난 것을 목격한거야. 우리는 파시즘이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어. 이 방에서 우리 자신의 습관과 삶의 방식으로 말이야. 표면을 긁어봐 그것이 나타나지.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있어. 우리는 그걸 병처럼 달고 사는거야. 인간이 기본적으로 악하다는 믿음, 그래서 서로에게 잘 대할 수 없다는 믿음. 그래서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훈련이 필요하다는 믿음. 다른 것도 있었지. '사과'하는 행동."

ooo

"이것은 체험하는 마지막 수업이야. 이 마지막 수업이 가장 중요해. 수업의 시작은 나치 독일의 삶을 연구하는데 그 발단처럼 시작했던 질문이었어. 그 질문을 기억해? 당혹스럽게도, 독일 사람들은 왜 나치 운동을 몰랐다거나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걸까? 내가 그 질문을 기억하면 이런 거였지. 독일 군인, 선생, 철도 관리인, 간호사, 세금 공무원, 보통 시민들은 나치 제국 말기에 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모른다고 주장하는 걸까?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광기의 일부분이었으며, 정말로 그들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걸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역사를 지우게 하려는 걸까?  다음 몇분동안 그리고 아마도 몇년 동안 너희는 이 질문에 대답할 기회를 가지게 될거야."

"파시스트 정신 세계에 대한 우리의 규정이 완전하다면, 너희들 중 아무도 이 제3의 물결 집회에 참가했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을거야. 그때의 독일 사람들처럼. 너 자신들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너희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울거야. 너희들이 개인의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고 질서와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자의 명령의 힘을 따랐다는 것을 너희 친구와 부모들이 알게 되도록 너희는 허락하지 않을거야. 너희는 조종당한 것을 인정할 수 없겠지. 추종자가 된다는 것, 제3의 물결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 들이는 것, 너희는 이러한 광기에 참여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거야. 너희는 오늘과 이 집회를 비밀로 간직하게 될거야. 내가 너희와 함께 공유하는 비밀이 되는거지."

나는 강당에 있던 세대의 카메라에서 필름을 꺼내 셀룰로이드를 빼내어 빛에 노출시켰다. 실행은 끝났다. 시도도 끝났다. 제3의 물결도 끝났다. 나는 내 어깨 넘어로 흘깃보았다. 로버트는 울고 있었다. 학생들은 의자에서 일어나 말없이 바깥 불빛으로 몰렸다. 나는 로버트에게 걸어가 그를 감싸 안았다. 로버트는 흐느꼈다. 통제 불능의 공기를 한껏 들이키면셔 " 끝났어. 다 괜찮어" 서로를 위로하면서 우리는 남아 있는 학생들 속에서 가만히 있었다. 순간적으로 무언가 로버트와 나를 감싸 안았다. 다른 사람들은 울었고 눈물을 닦아냈다. 문쪽으로 바깥 세상으로 나가면서 빙빙 돌고 서로 안는 인간.

학기 중 일주일 동안 우리는 인생을 크게 공유했다. 예상한대로 깊은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난 4년동안 Cubberley High School 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아무도 제3의 물결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골똘히 이야기하고 연구했다. 그러나 집회 그 자체. 그건 아니었다. 그건 우리 모두가 잊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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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RD WAVE

Ron Jones (1972)

For years I kept a strange secret. I shared this silence with two hundred students. Yesterday I ran into one of those students. For a brief moment it all rushed back.

Steve Conigio had been a sophomore student in my World History class. We ran into each other quite by accident. It's one of those occasions experienced by teachers when they least expect. You're walking down the street, eating at a secluded restaurant, or buying some underwear when all of a sudden an ex-student pops up to say hello. In this case it was Steve running down the street shouting "Mr. Jones, Mr. Jones." In an embarrassed hug we greet. I had to stop for a minute to remember. Who is this young man hugging me? He calls me Mr. Jones. Must be a former student. What's his name? In the split second of my race back in time Steve sensed my questioning and backed up. Then smiled, and slowly raised a hand in a cupped position. My God He's a member of the Third Wave. It's Steve, Steve Conigio. He sat in the second row. He was a sensitive and bright student. Played guitar and enjoyed drama.

We just stood there exchanging smiles when without a conscious command I raised my hand in curved position. The salute was give. Two comrades had met long after the war. The Third Wave was still alive. "Mr. Jones do you remember the Third Wave?" I sure do, it was one of the most frightening events I ever experienced In the classroom. It was also the genesis of a secret that I and two hundred students would sadly share for the rest of our lives.

We talked and laughed about the Third Wave for the next few hours. Then it was time to part. It's strange, you most a past student In these chance ways, You catch a few moments of your life. Hold them tight. Then say goodbye. Not knowing when and if you'd ever see each other again. Oh, you make promises to call each other but It won't happen. Steve will continue to grow and change. I will remain an ageless benchmark in his life. A presence that will not change. I am Mr. Jones. Steve turns and gives a quiet salute. Hand raised upward in a shape of a curling wave. Hand curved in a similar fashion I return the gesture.

The Third Wave. Well at last it can be talked about. Here I’ve met a student and we've talked for hours about this nightmare. The secret must finally be waning. It's taken three years. I can tell you and anyone else about the Third Wave. It's now just a dream, something to remember, no it's something we tried to forget. That's how it all started. By strange coincidence I think it was Steve who started the Third Ways with a question

. We were studying Nazi Germany and in the middle of a lecture I was interrupted by the question. How could the German populace claim ignorance of the slaughter of the Jewish people. How could the townspeople, railroad conductors, teachers, doctors, claim they knew nothing about concentration camps and human carnage. How can people who were neighbors and maybe even friends of the Jewish citizen say they weren't there when it happened. it was a good question. I didn't know the answer.

In as such as there were several months still to go in the school year and I was already at World War II, I decided to take a week and explore the question.

STRENGTH THROUGH DISCIPLINE

On Monday, I introduced my sophomore history students to one of the experiences that characterized Nazi Germany. Discipline. I lectured about the beauty of discipline. How an athlete feels having worked hard and regularly to be successful at a sport. How a ballet dancer or painter works hard to perfect a movement. The dedicated patience of a scientist in pursuit of an Idea. it's discipline. That self training. Control. The power of the will. The exchange of physical hardships for superior mental and physical facilities. The ultimate triumph.

To experience the power of discipline, I invited, no I commanded the class to exercise and use a new seating posture; I described how proper sitting posture assists mandatory concentration and strengthens the will. in fact I instructed the class in a sitting posture. This posture started with feet flat on the floor, hands placed flat across the small of the back to force a straight alignment of the spine. "There can't you breath more easily? You're more alert. Don't you feel better."

We practiced this new attention position over and over. I walked up and down the aisles of seated students pointing out small flaws, making improvements. Proper seating became the most important aspect of learning. I would dismiss the class allowing them to leave their desks and then call them abruptly back to an attention sitting position. In speed drills the class learned to move from standing position to attention sitting in fifteen seconds. In focus drills I concentrated attention on the feet being parallel and flat, ankles locked, knees bent at ninety degree angles, hands flat and crossed against the back, spine straight, chin down, head forward. We did noise drills in which talking was allowed only to be shown as a detraction. Following minutes of progressive drill assignments the class could move from standing positions outside the room to attention sitting positions at their desks without making a sound. The maneuver took five seconds.

It was strange how quickly the students took to this uniform code of behavior I began to wonder just how far they could be pushed. Was this display of obedience a momentary game we were all playing, or was it something else. Was the desire for discipline and uniformity a natural need? A societal instinct we hide within our franchise restaurants and T.V. programming.

I decided to push the tolerance of the class for regimented action. In the final twenty-five minutes of the class I introduced some new rules. Students must be sitting in class at the attention position before the late bell; all students Must carry pencils and paper for note taking; when asking or answering questions a student must stand at the side of their desk; the first word given in answering or asking a question is "Mr. Jones." We practiced short "silent reading" sessions. Students who responded in a sluggish manner were reprimanded and in every case made to repeat their behavior until it was a model of punctuality and respect. The intensity of the response became more important than the content. To accentuate this, I requested answers to be given in three words or less. Students were rewarded for making an effort at answering or asking questions. They were also acknowledged for doing this in a crisp and attentive manner. Soon everyone in the class began popping up with answers and questions. The involvement level in the class moved from the few who always dominated discussions to the entire class. Even stranger was the gradual improvement in the quality of answers. Everyone seemed to be listening more intently. New people were speaking. Answers *tarted to stretch out as students usually hesitant to speak found support for their effort.

As for my part in this exercise, I had nothing but questions. Why hadn't I thought of this technique before. Students seemed intent on the assignment and displayed Accurate recitation of facts and concepts. They even seemed to be asking better questions and treating each other with more compassion. How could this be? Here I was enacting an authoritarian learning environment and it seemed very productive. I now began to ponder not just how far this class could be pushed but how such I would change my basic beliefs toward an open classroom and self directed learning. Was all my belief in Carl Rogers to shrivel and die? Where was this experiment leading?

STRENGTH THROUGH COMMUNITY

On Tuesday, the second day of the exercise, I entered the classroom to find everyone sitting in silence at the attention position. Some of their faces were relaxed with smiles that come from pleasing the teacher. But most of the students looked straight ahead in earnest concentration. Neck muscles rigid. No sign of a smile or a thought or even a question. Every fibre strained to perform the deed. To release the tension I went to the chalk board and wrote in big letters "STRENGTH THROUGH DISCIPLINE." Below this I wrote a second law, "STRENGTH THROUGH COMMUNITY."

While the class sat in stern silence I began to talk lecture sermonize about the value of community. At this stage of the game I was debating in my own mind whether to stop the experiment or continue. I hadn't planned such intensity or compliance. In fact I was surprised to find the ideas on discipline enacted at all. While debating whether to stop or go on with the experiment I talked on and on about community. I made up stories from my experiences as an athlete, coach and historian. It was easy. Community is that bond between individuals who work and struggle together. It's raising a barn with your neighbors, it's feeling that you are a part of something beyond yourself, a movement, a team, La Raza, a cause.

It was too late to step back. I now can appreciate why the astronomer turns relentlessly to the telescope. I was probing deeper and deeper into my own perceptions and the motivations for group and individual action. There was much more to see and try to understand. Many questions haunted me. Why did the students accept the authority I was imposing? Where is their curiosity or resistance to this marshal behavior. When and how will this end?

Following my description of community I once again told the class that community like discipline must be experienced if it is to be understood. To provide an encounter with community I had the class recite in unison "Strength Through Discipline." "Strength Through Community." First I would have two students stand and call back our motto. Then add two more until finally the whole class was standing and reciting. It was fun. The students began to look at each other and sense the power of belonging. Everyone was capable and equal. They were doing something together. We worked on this simple act for the entire class period. We would repeat the mottos in a rotating chorus. or say then with various degrees of loudness. Always we said them together, emphasizing the proper way to sit, stand, and talk.

I began to think of myself as a part of the experiment. I enjoyed the unified action demonstrated by the students. It was rewarding to see their satisfaction and excitement to do more. I found it harder and harder to extract myself from the momentum and identity that the class was developing. I was following the group dictate as much as I was directing it.

As the class period was ending and without forethought I created a class salute. It was for class members only. To make the salute you brought your right hand up toward the right shoulder in a curled position. I called it the Third Wave salute because the hand resembled a wave about to top over. The idea for the three came from beach lore that waves travel in chains, the third wave being the last and largest of each series. Since we had a salute I made it a rule to salute all class members outside the classroom. When the bell sounded ending the period I asked the class for complete silence. With everyone sitting at attention I slowly raised my arm and with a cupped hand I saluted. It was a silent signal of recognition. They were something special. Without command the entire group of students returned the salute.

Throughout the next few days students in the class would exchange this greeting. You would be walking down the hall when all of a sudden three classmates would turn your way each flashing a quick salute. In the library or in gym students would be seen giving this strange hand jive. You would hear a crash of cafeteria food only to have it followed by two classmates saluting each other. The mystique of thirty individuals doing this strange gyration soon brought more attention to the class and its experiment into the German personality. Many students outside the class asked if they could join.

STRENGTH THROUGH ACTION

On Wednesday, I decided to issue membership cards to every student that wanted to continue what I now called the experiment. Not a single student elected to leave the room. In this the third day of activity there were forty-three students in the class. Thirteen students had cut class to be a part of the experiment. While the class sat at attention I gave each person a card. I marked three of the cards with a red X and informed the recipients that they had a special assignment to report any students not complying to class rules. I then proceeded to talk about the meaning of action. I explained how discipline and community were meaningless without action. I discussed the beauty of taking full responsibility for ones action. Of believing so thoroughly in yourself and your community or family that you will do anything to preserve, protect and extend that being. I stressed how hard work and allegiance to each Other would allow accelerated learning and accomplishment. I reminded students of what it felt like being in classes where competition caused pain and degradation. Situations in which students were pitted against each other In everything from gym to reading. The feeling of never acting, never being a part of something, never supporting each other.

At this point students stood without prompting and began to give what amounted to testimonials. "Mr. Jones, for the first time I'm learning lots of things." "Mr. Jones, why don't you teach like this all the time." I was shocked! Yes, I had been pushing information at them in an extremely controlled setting but the fact that they found it comfortable and acceptable was startling. It was equally disconcerting to realize that complex and time consuming written homework assignments on German life were being completed and even enlarged on by students. Performance in academic skill areas was significantly improving. They were learning more. And they seemed to want more. I began to think that the students might do anything I assigned. I decided to find out.

To allow students the experience of direct action I gave each individual a specific verbal assignment. "It's your task to design a Third Wave Banner. You are responsible for stopping any student that is not a Third Wave member from entering this room. I want you to remember and be able to recite by tomorrow the name and address of every Third Wave Member. You are assigned the problem of training and convincing at least twenty children in the adjacent elementary school that our sitting posture is necessary for better learning. It's your job to read this pamphlet and report its entire content to the class before the period ends. I want each of you to give me the name and address of one reliable friend that you think might want to join the Third Wave."...

To conclude the session on direct action, I instructed students in a simple procedure for initiating new members. It went like this. A new member had only to be recommended by an existing member and issued a card by me. Upon receiving this card the new member had to demonstrate knowledge of our rules and pledge obedience to them. My announcement unleashed a fervor.

The school was alive with conjecture and curiosity. It affected everyone. The school cook asked what a Third Wave cookie looked like. I said chocolate chip of course. Our principal came into an afternoon faculty meeting and gave me the Third Wave salute. I saluted back. The Librarian thanked me for the 30' banner on learning which she placed above the library entrance. By the end of the day over two hundred students were admitted into the order. I felt very alone and a little scared.

Most of my fear emanated from the incidence of "tattletaling". Though I formally appointed only three students to report deviate behavior, approximately twenty students came to me with reports about how Allan didn't salute, or Georgine was talking critically about our experiment. This incidence of monitoring meant that half the class now considered it their duty to observe and report on members of their class. Within this avalanche of reporting one legitimate conspiracy did seem underway ....

Three women in the class had told their parents all about our classroom activities. These three young women were by far the most intelligent students in the class. As friends they chummed together. They possessed a silent confidence and took pleasure in a school setting that gave them academic and leadership opportunity. During the days of the experiment I was curious how they would respond to the equalitarian and physical reshaping of the class. The rewards they were accustomed to winning just didn't exist in the experiment. The intellectual skills of questioning and reasoning were non existent. In the martial atmosphere of the class they seemed stunned and pensive. Now that I look back, they appeared much like the child with so called learning disability. They watched the activities and participated in a mechanical fashion. Whereas others jumped in, they held back, watching.

In telling their parents of the experiment they set up a brief chain of events. The rabbi for one of the parents called me at home. He was polite and condescending. I told him we were merely studying the German personality. He seemed delighted and told me not to worry. He would talk to the parents and calm their concern. In concluding this conversation I envisioned similar conversations throughout history in which the clergy accepted and apologized for untenable conditions. If only he would have raged in anger or simply investigated the situation I could point the students to an example of righteous rebellion. But no. The rabbi became a part of the experiment In remaining ignorant of the oppression in the experiment he became an accomplice and advocate.

By the end of the third day I was exhausted. I was tearing apart. The balance between role playing and directed behavior became indistinguishable. Many of the students were completely into being Third Wave Members. They demanded strict obedience of the rules from other students and bullied those that took the experiment lightly. Others simply sunk into the activity and took self assigned roles. I particularly remember Robert. Robert was big for his age and displayed very few academic skills. Oh he tried harder than anyone I know to be successful. He handed in elaborate weekly reports copied word for word from the reference books in the library. Robert is like so many kids in school that don't excel or cause trouble. They aren't bright, they can't make the athletic teams, and don't strike out for attention. They are lost. invisible. The only reason I came to know Robert at all is that I found him eating lunch in my classroom. He always ate lunch alone.

Well, the Third Wave gave Robert a place in school. At least he was equal to everyone. He could do something. Take part. Be meaningful. That's just what Robert did. Late Wednesday afternoon I found Robert following me and asked what in the world was he doing. He smiled (I don't think I had ever seen him smile) and announced, "Mr. Jones I'm your bodyguard. I'm afraid something will happen to you.

Can I do it Kr. Jones, please?" Given that assurance and smile I couldn't say no. I had a bodyguard. All day long he opened and closed doors for me. He walked always on my right. Just smiling and saluting other class members. He followed me every- where. In the faculty room (closed to students) he stood at silent attention while I gulped some coffee. When accosted by an English teacher for being a student in the "teachers' room" her just smiled and informed the faculty member that he wasn't a student. he was a body guard.

STRENGTH THROUGH PRIDE

On Thursday I began to draw the experiment to a conclusion. I was exhausted and worried. Many students were over the line. The Third Wave had become the center of their existence. I was in pretty bad shape myself. I was now acting instinctively as a dictator. Oh I was benevolent. And I daily argued to myself on the benefits of the learning experience. By this, the fourth day of the experiment I was beginning to lose my own arguments. As I spent more time playing the role I had less time to remember its rational origins and purpose. I found myself sliding into the role even when it wasn't necessary. I wondered if this doesn't happen to lots of people. We get or take an ascribed role and then bend our life to fit the image. Soon the image is the only identity people will accept. So we become the image. The trouble with the situation and role I had created was that I didn't have time to think where it was leading. Events were crushing around me. I worried for students doing things they would regret. I worried for myself.

Once again I faced the thoughts of closing the experiment or letting it go its own course. Both options were unworkable. If I stopped the experiment a great number of students would be left hanging. They had committed themselves in front of their peers to radical behavior. Emotionally and psychologically they had exposed themselves. If I suddenly jolted them back to classroom reality I would face a confused student- body for the remainder of the year. It would be too painful and demeaning for Robert and the students like him to be twisted back into a seat and told it's just a game. They would take the ridicule from the brighter students that participated in a measured and cautious way. I couldn't let the Roberts lose again.

The other option of just letting the experiment run its course was also out of the question. Things were already getting out of control. Wednesday evening someone had broken into the room and ransacked the place. (I later found out it was the father of one of the students. He was a retired air force colonel who had spent time in a German prisoner of war camp. Upon hearing of our activity he simply lost control Late in the evening he broke into the room and tore it apart. I found him that morning propped up against the classroom door. He told me about his friends that had been killed in Germany. He was holding on to me and shaking. In staccato words he pleaded that I understand and help him get home. I called his wife and with the help of a neighbor walked him home. We spent hours later talking about what he felt and did, but from that moment on Thursday morning I was more concerned with what might be happening at school.

I was increasingly worried about how our activity was affecting the faculty and other students in the school. The Third Wave was disrupting normal learning. Students were cutting class to participate and the school counselors were beginning to question every student in the class. The real gestapo in the school was at work. Faced with this experiment exploding in one hundred directions, I decided to try an old basketball strategy. When you're playing against all the odds the best action to take is to try the unexpected. That's what I did.

By Thursday the class had swollen in size to over eighty students. The only thing that allowed them all to fit was the enforced discipline of sitting in silence at attention. A strange calm is in effect when a room full of people sit in quite observation and anticipation. It helped me approach them in a deliberate way. I talked about pride. "Pride is more than banners or salutes. Pride Is something no one can take from you. Pride is knowing you are the best... It can't be destroyed ..."

In the midst of this crescendo I abruptly changed and lowered my voice to announce the real reason for the Third Wave. In slow methodic tone I explained what was behind the Third Wave. "The Third Wave isn't just an experiment or classroom activity. It's far more important than that. The Third Wave Is a nationwide program to find students who are willing to fight for political change in this country. That's right. This activity we have been doing has been practice for the real thing. Across the country teachers like myself have been recruiting and training a youth brigade capable of showing the nation a better society through discipline, community. pride, and action. If we can change the way that school is run, we can change the way that factories, stores, universities and all the other institutions are run. You are a selected group of young people chosen to help in this cause. If you will stand up and display what You have learned in the past four days...we can change the destiny of this nation. We can bring it a new sense of order. community, pride and action. A new purpose. Everything rests with you and your willingness to take a stand."

To give validity to the seriousness of my words I turned to the three women in the class whom I knew had questioned the Third Wave. I demanded that they leave the room. I explained why I acted and then assigned four guards to escort the women to the library and to restrain them from entering the class an Friday. Then in dramatic style I informed the class of a special noon rally to take place on Friday. This would be a rally for Third Wave Members only.

It was a wild gamble. I just kept talking. Afraid that if I stopped someone would laugh or ask a question and the grand scheme would dissolve in chaos. I explained how at noon on Friday a national candidate for president would announce the formation of a Third Wave Youth Program. Simultaneous to this announcement over 1000 youth groups from every part of the country would stand up and display their support for such a movement. I confided that they were the students selected to represent their area. I also questioned if they could make a good showing, because the press had been invited to record the event. No one laughed. There was not a murmur of resistance. quite the contrary. A fever pitch of excitement swelled across the room. "We can do it!" "Should we wear white shirts?" "Can we bring friends?" "Mr. Jones, have you seen this advertisement in Time magazine?"

The clincher came quite by accident. It was a full page color advertisement in the current issue of Time for some lumber products. The advertiser identified his product as the Third Wave. The advertisement proclaimed in big red, white and blue letters, "The Third Wave is coming." ''Is this part of the campaign, Mr. Jones?" "Is it a code or something?" "Yes.1' "Now listen carefully."

"It's all set for tomorrow. Be in the small auditorium ten minutes before 12:00. Be seated. Be ready to display the discipline, community, and pride you have learned. Don't talk to anyone about this. This rally is for members only."

STRENGTH THROUGH UNDERSTANDING

On Friday, the final day of the exercise, I spent the early morning preparing the auditorium for the rally. At eleven thirty students began to ant their way into the room; at first a few scouting the way and then more. Row after row began to fill. A hushed silence shrouded the room. Third Wave banners hung like clouds over the assembly. At twelve o'clock sharp I closed the room and placed guards at each door. Several friends of mine posing as reporters and photographers began to interact with the crowd taking pictures and jotting frantic descriptive notes. A group photograph was taken. Over two hundred students were crammed into the room. Not a vacant seat could be found. The group seemed to be composed of students from many persuasions. There were the athletes, the social prominents, the student leaders, the loners, the group of kids that always left school early, the bikers, the pseudo hip, a few representatives of the school's dadaist click, and some of the students that hung out at the laundromat. The entire collection however looked like one force as they sat in perfect attention. Every person focusing on the T.V. set I had in the front of the room. No one moved. The room was empty of sound. It was like we were all witness to a birth. The tension and anticipation was beyond belief.

"Before turning on the national press conference, which begins in five minutes, I want to demonstrate to the press the extent of our training." With that, I gave the salute followed automatically by two hundred arms stabbing a reply. I then said the words "Strength Through Discipline" followed by a repetitive chorus. We did this again, and again. Each time the response was louder. The photographers were circling the ritual snapping pictures but by now they were ignored. I reiterated the importance of this event and asked once more for a show of allegiance. It was the last time I would ask anyone to recite. The room rocked with a guttural cry, "Strength Through Discipline."

It was 12:05. I turned off the lights in the room and walked quickly to the television set. The air in the room seemed to be drying up. It felt hard to breathe and even harder to talk. It was as if the climax of shouting souls had pushed everything out of' the room. I switched the television set on. I was now standing next to the television directly facing the room full of people. The machine came to life producing a luminous field of phosphorus light. Robert was at my side. I whispered to him to watch closely and pay attention to the next few minutes. The only light in the room was coming from the television and it played against the faces in the room. Eyes strained and pulled at the light but the pattern didn't change. The room stayed deadly still. Waiting. There was a mental tug of war between the people in the room and the television. The television won. The white glow of the test pattern didn't snap into the vision of a political candidate. It just whined on. Still the viewers persisted. There must be a program. It must be coming on. Where is it? The trance with the television continued for what seemed like hours. It was 12:07. Nothing. A blank field of white. It's not going to happen. Anticipation turned to anxiety and then to frustration. Someone stood up and shouted.

"There isn't any leader is there?" "Everyone turned in shock. first to the despondent student and then back to the television. Their faces held looks of disbelief.

In the confusion of the moment I moved slowly toward the television. I turned it off. I felt air rush back into the room. The room remained in fixed silence but for the first time I could sense people breathing. Students were withdrawing their arms from behind their chairs. I expected a flood of questions, but instead got intense quietness. I began to talk. Every word seemed to be taken and absorbed.

"Listen closely, I have something important to tell you." "Sit down." "There is no leader! There is no such thing as a national youth movement called the Third Wave. You have been used. Manipulated. Shoved by your own desires into the place you now find yourself. You are no better or worse than the German Nazis we have been studying."

"You thought that you were the elect. That you were better than those outside this room. You bargained your freedom for the comfort of discipline and superiority. You chose to accept that group's will and the big lie over your own conviction. Oh, you think to yourself that you were just going along for the fun. That you could extricate yourself at any moment. But where were you heading? How far would you have gone? Let me show you your future."

With that I switched on a rear screen projector. It quickly illuminated a white drop cloth hanging behind the television. Large numbers appeared in a countdown. The roar of the Nuremberg Rally blasted into vision. My heart was pounding. In ghostly images the history of the Third Reich paraded into the room. The discipline. The march of super race. The big lie. Arrogance, violence, terror. People being pushed into vans. The visual stench of death camps. Faces without eyes. The trials. The plea of ignorance. I was only doing my job. My job. As abruptly as it started the film froze to a halt on a single written frame. "Everyone must accept the blame No one can claim that they didn't in some way take part."

The room stayed dark as the final footage of film flapped against the projector. I felt sick to my stomach. The room sweat and smelt like a locker room. No one moved. It was as if everyone wanted to dissect the moment, figure out what had happened. Like awakening from a dream and deep sleep, the entire room of people took one last look back into their consciousness. I waited for several minutes to let everyone catch up. Finally questions began to emerge. All of the questions probed at imaginary situations and sought to discover the meaning of this event.

In the still darkened room I began the explanation. I confessed my feeling of sickness and remorse. I told the assembly that a full explanation would take quite a while. But to start. I sensed myself moving from an introspective participant in the event toward the role of teacher. It's easier being a teacher. In objective terms I began to describe the past events.

"Through the experience of the past week we have all tasted what it was like to live and act in Nazi Germany. We learned what it felt like to create a disciplined social environment. To build a special society. Pledge allegiance to that society. Replace reason with rules. Yes, we would all have made good Germans. We would have put on the uniform. Turned our head as friends and neighbors were cursed and then persecuted. Pulled the locks shut. Worked in the "defense" plants. Burned ideas. Yes, we know in a small way what it feels like to find a hero. To grab quick solution. Feel strong and in control of destiny. We know the fear of being left out. The pleasure of doing something right and being rewarded. To be number one. To be right. Taken to an extreme we have seen and perhaps felt what these actions will lead to. we each have witnessed something over the past week. We have seen that fascism is not just something those other people did. No. it's right here. In this room. In our own personal habits and way of life. Scratch the surface and it appears. Something in all of us. We carry it like a disease. The belief that human beings are basically evil and therefore unable to act well toward each other. A belief that demands a strong leader and discipline to preserve social order. And there is something else. The act of apology.

"This is the final lesson to be experienced. This last lesson is perhaps the one of greatest importance. This lesson was the question that started our plunge in studying Nazi life. Do you remember the question? It concerned a bewilderment at the German populace claiming ignorance and non-involvement in the Nazi movement. If I remember the question. it went something like this. How could the German soldier, teacher, railroad conductor, nurse. tax collector. the average citizen, claim at the end of the Third Reich that they knew nothing of what was going on. How can a people be a part of something and then claim at the demise that they were not really involved' What causes people to blank out their own history? In the next few minutes and perhaps years, you will have an opportunity to answer this question."

"If our enactment of the Fascist mentality is complete not one of you will ever admit to being at this final Third Wave rally. Like the Germans, you will have trouble admitting to yourself that you come this far. You will not allow your friends and parents to know that you were willing to give up individual freedom and power for the dictates of order and unseen leaders. You can't admit to being manipulated. Being a follower. To accepting the Third Wave as a way of life. You won't admit to participating in this madness. You will keep this day and this rally a secret. It's a secret I shall share with you."

I took the film from the three cameras in the room and pulled the celluloid into the exposing light. The deed was concluded. The trial was over. The Third Wave had ended. I glanced over my shoulder. Robert was crying. Students slowly rose from their Chairs and without words filed into the outdoor light. I walked over to Robert and threw my arms around him. Robert was sobbing. Taking in large uncontrollable gulps of air. "It's over." it's all right." In our consoling each other we became a rock in the stream of exiting students. Some swirled back to momentarily hold Robert and me. Others cried openly and then brushed away tears to carry on. Human beings circling and holding each other. Moving toward the door and the world outside.

For a week in the middle of a school year we had shared fully in life. And as predicted we also shared a deep secret. In the four years I taught at Cubberley High School no one ever admitted to attending the Third Wave Rally. Oh, we talked and studied our actions intently. But the rally itself. No. It was something we all wanted to 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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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e Third Wave by Ron Jones

(직접 번역한 것이라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원문과 비교하시기를...)


2008년 9월 6일 작성


'사람인 까닭에'를 읽고

함께 읽기/인권 2015. 9. 20. 18:1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람인 까닭에'를 읽고 -이한진


인권에 대한 책이란 얘길 듣고 막연하게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권이라는게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평소 가까운 주제가 아니여서 일수도 있고, 어쨋든 인권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좀 거리가 멀어보이고 더욱 험한 환경에서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지키는 고귀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점에서 볼땐 이 책은 그 거리감을 좀 좁혀준 것 같다. 실제활동가들은 상상했던대로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겠지만 지키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개념설명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자연스럽게 들은 것 같고 내가 속한 곳, 내 주위의 사람이 다인 나에겐 생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단순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야라는 느낌보단 그냥 사람이구나. 이런 사연과 이유가 있었구나 그냥 공감하며 지나갔다.
그런데 한편 책을 마치고나니 무거운 마음도 약간 남는다.
인권이라는 말보단 연대라는 말이 이젠 좀 생소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듯하다.
연대한다는 것에 대해선 뭔가 정리가 안된 기분이다. 
기존에 연대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연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함께 사는 것을 기초로 하는 것 외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튼 뭔가 어려운 말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인것 같으나 그것도 어렵다.
나만의 고민이지만 청년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 약자가 되어버린 세상. 청년들이 연대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필요성은 느껴지나 어떻게 풀어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인 까닭에_류은숙 : 메모

함께 읽기/인권 2015. 9. 20. 11:40 Posted by 서형원

좋은 책을 써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저자 류은숙에게 감사를. 




150920사람인까닭에_메모.pdf



사람인 까닭에_류은숙 : 메모

과천녹색당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공부모임 _ 깃털 | 2015.9.20

 

당신이, 당신의 권리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회. 나는 이것이 모욕이 일상화된 사회만큼이나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 위험한 선동에 넘어가지 말라.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도 아니고, 불가침의 권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공적 투쟁과 사적 관용에 대해. 7-8.

 

앤지 젤터가 그런 궂은 일을 자처하는 것은 자신을 지구 시민 global citizen"이라 부르는 신념에서 나오는 것일 터이다.

글로벌 시티즌은, 시대의 절실한 요청이며, 삶의 근사한 지향이라 믿는다. 그런데 영어 global은 지구적이라는 말과는, 세계 경영, 국제적 인사, 지구를 누빈다는 말과는 내포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것은 공간적 정의 이전에, 내 생각에는 전구적(全球的)이라는 말에 가장 가깝다. 공 전체, ‘온전함’, 쪼개지거나 이지러지지 않은. 인격, 공감, 이해, 소통, 두루 생각해보자. (장회익의 온생명을 global life로 번역한다.) 47.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연대에 관한 저명한 이론가인 레옹 부르주아. “인간사는 거대한 채무관계, 다른 모든 이들의 도움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인간 각자에게는 타자에 대한 부채와 책임이 있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타인과 다음 세대에 베풀려고 하는 건 우리가 빚쟁이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해서, 사귀고 싶어서,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싶어서, 함께 더 즐거워지고 싶어서, 이런 것들이다. 빚진 심정으로, 괴로운 부채감으로, 자기를 불행하게 하는 / 자신은 즐겁지 않은 책임감 따위로는 웬만하면(아마도 절대로), 남에게 베풀지 마라. 억울해지고, 남에게 다시 내놓으라고 하고 싶어진다. 베풂은 비대칭, 다자, 그물의 것, 채권채무는 대칭, 양자, 족쇄의 것. 저자 류은숙은 어떤가? 79.

 

빈민의 삶 그 자체로 유명한 빈민

빈민 그 자체인 빈민, 농민/노동자 그 자체인 농민/노동자. 유명해지고 설사 대표가 될지언정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빈민, 농민, 노동자인 사람을 우리 사회에선 찾기 힘들다. 빈민/농민/노동자의 대변자나 천사는 넘쳐나지만. 빈민 정치인, 농민 정치인, 노동자 정치인이 없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비극에서 벗어날 힘을 갖고 있지 못한 큰 이유다. 유명인사, 대표, 정치인이 되는 것이 구질구질한 과거에서 벗어나는 입신의 길로 여겨지는 한, 더구나 억울한 과거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지는 한, 어렵다. 61.

 

이 싸움은 동정을 구하는 싸움이 아니라 권력을 구하려는 싸움이다.

이게 가장 중요. 복지나 경제적 평등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배분, 정치적 평등을 구하는 싸움. 뒤엣것 없는 앞엣것은 동정과 시혜를 구하는 것에 불과.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들과 경제적으로 평등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경제적 평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돈 벌 사람은 돈을 벌라. 질투하지 않겠다. 다만 품위 있는 삶이 가능할 정도의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이고, 무엇보다 타협할 수 없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완전히 평등한 정치적 권리, 권력을 갖는 것이다. (폴 우드러프, 최초의 민주주의 참고) 63.

 

노동 종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품위 있는 삶을 누릴 권리는 노동과는 정말 아무 관계가 없다. 노동해야 먹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범죄적인지, 착취의 공범이 되는 길인지, 모욕을 강요하는 일인지, 이성을 총동원해서 깊이 생각하라. 72-73.

 

품위와 조화. dignity & harmony. 삶에 이밖에 또 뭐가 필요할까? 73.

 

행복한 활동가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기본소득과 존경

류은숙, <사람인 까닭에>를 읽고

함께 읽기/인권 2015. 9. 16. 14:3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바시 / 류은숙『사람인 까닭에』/ 2015.9.20 / 박정원

 

연대하는 개인주의

-기대어서지 않는 관계는 없다-

 

‘인권은 개인의 것’

신체, 소유, 사상의 자유라는 삼두마차를 내세운 인권의 대표 구호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게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로운 계약이라는 미명 아래 갖은 임노동 관계에 얽혀 있으면서 대부분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할 부자유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청소년들에게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 학생이 “제가 옳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저는 자유를 느꼈어요.” 학교나 집에서 정해 준 선악에 따른 규범을 거부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자기’를 찾았을 때 자유를 느낀 것이다. 자유는 자기답기 위해 분투해야 얻을 수 있다.

- 멘토 자유인 유시민은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글쓰기)로 공동체에 기여(연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

 

스물네 살의 강용주는 5.18 때 수감되어 14년 만에야 감옥 밖 세상으로 나왔다. ‘사람이 다니는 대문을 놔두고 개구멍으로 기어나갈 순 없다’며 ‘준법 서약서’를 거부. 같은 처지의 고문 피해자들과 만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개인들은 만남을 통해서, 나만 아픈 것이 아니며 저 사람의 고통이 내 고통과 같다는 것을 느꼈다.

- 자신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정도는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문이 있어도 개구멍을 이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다 느끼며 살고 싶지는 않다.

 

당돌해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상상력은 연대하는 개인주의가 가진 제일 좋은 무기이다.

나에 대한 모욕에 같이 싸워 주는 다른 자기들이 없으면 나를 지킬 자신이 없다. 그런 자기들이 만나서 서로의 낯을 세워 주는 것이 연대하는 개인주의일 것이다.

- 연대도 개인주의도 다 인정. 연대의 정도는 나름의 방식으로.

2015830. ‘세상을 바라보는 몇가지 시선’ 4번째 시간.

살아가겠다(고병권 저)를 읽고.

삼호사 공사.

 

참석자 : 장예정, 홍지숙, 박정원, 서형원, 박병선, 이한진(기록).

 

지난 3번의 모임동안 나눴던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처럼 챕터별로 나눠 발제형식으로 하지 않고 간단하게 감상문을 기록해오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확한 주제의 구분이 없어서 그런지 자유롭게 이 얘기 저 얘기가 오갔고 덕분에 기록을 맡은 저는 혼이 반정도 나가있었던 것 같네요. 이 내용을 어떻게 정리해야하나 막막하다가 그냥 기록해 놓은대로 조금씩만 다듬어서 그대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대화록이라 해야 할 것 같네요. 놓친 부분도 엄청나게 많고 발언자가 말한 의도와 뜻이 맞지 않는 부분 많을텐데 불편하신 부분은 언제든 알려주시면 수정해나가도록 할께요. 읽으시면서 서술어 없이 말이 짧아도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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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 감상 발표

잘 산다는 것

사람이 잘 산다는 건 뭔가? 내 경우엔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어떻게? 내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찾아서 진정한 나를 표현하는 일, 나답게 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병권의 지식이 아니라 욕망이 생기게 하라’(p98)는 말은 나의 본성을 찾아 실현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니체는 그대들이 의욕하는 바를 언제든 행하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의욕할 수 있는 자가 되라!”(차라투스트라 p304)고 했다. 욕망하고 욕망을 실현하면서 만나게 되는 타인과의 욕망의 충돌 속에서 적절함을 찾아내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하여튼 살아가는 일은 남과 얽히는 일이고 타인이 없이 행복도 없다.

타인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나도 너도 억압되지 않고 함께 행복과 평화가 커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나, 그리고 세계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저자는 감히 알려 하고 감히 말하려 하는 용기가 참된 지식에 이르는 길(p60)이라고 말하고 있고, 각자는 자기의 앎이 이르는 수준에서 판단하고 행위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잘 살기 위해서 앎을 확장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잊지 않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계속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슈를 정하고 그것을 지속하는 방식에서 내가 드러난다. 철학한다는 것은 잘 사는 것에 대한 추구고, ‘행함으로 드러나는 지혜라는 저자의 생각에 매우 공감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고병권 씨의 내용에 많은 공감.

 

[서형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확장해야 하는가.

이것도 원래 학습된 오염된 사고방식 아닌가. 나와 나아닌 세계로만 구분되는 세계관이.

 

[홍지숙]

타인이 사람으로 안보였었다.

나와 나아닌 것을 분리하는 것은 어려운일 아닌가.

 

[박병선]

잡식가족 딜레마 영화를 보면서.

사람이 식량한테도 연민 동정 공감을 느끼는구나.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고 방식.

죽음의 소회.

먹는 다는 것이 살해하고 식량화되어 버리는.

죽음을 내리는 행위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혐오. 먹을 것에도 그렇게 대하게 되는게 아닌가.

 

[서형원]

어떻게 살 것인가가 훨씬 중요.

결국 죽고 사는 것이 반복 되는데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것 같은.

단순한 개체로만 놓고 보면 죽고 사는 것에 대한 단순한 생각에 머물게 된다.

 

[박병선]

옛날 공동체에선 공동체가 굶어 죽는 일이 있어도 개인이 굶어 죽는 일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홍지숙]

죽음이 또 다른 생명을 이어진다는 생각이 단절되고 분리되어서 드는 생각.

 

[박정원]

우선순위를 떠나서 나나 타인 모두가 존중되어야.

 

[홍지숙]

심리학 공부한 친구. 나르시즘이 강한 사람이 깨지면 타인에 대한 사랑도 커진다는.

 

[서형원]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살까 잘 살야할텐데' 너무 생각 많이 하는게 좀 쓸데없는 것 같다.

자아에 대한 사유. 어디까지 해야하나.

 

[장예정]

삼수한 친구. 연대고대를 거쳐 서울대. 별거 없더라.

앞만 보고 살아야 할 때도 있고.

자기를 돌아보며 사는게 필요할 때도 있지 않나.

결국 그 적정선은 사람마다 다르고 각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나.

 

[홍지숙] / 감상 발표

관습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틀 밖에서 사고하고.

학교나 회사나 속한 공동체에서 규칙을 자꾸 어기는 사람이었는데.

크게 보면 큰 주류에 순응하며 살았던 사람인 것 같다.

어찌보면 답이 앞에 제시되어 있었고.

기독교인이라 교리가 있고 답이 있었다.

교회 안에서는 늘 답이 있었다. 이런 삶을 추구해야 하는. 이럴 때 이래야하는.

대학교 기독교 동아리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참한 언니. 모두가 이 언니를 따라하는.

예수를 만들어서 정해놓고 예수를 따라하고 모방하는. 실제 예수님과는 상관 없이.

어렸을 땐 질문해도 되는지 몰랐다.

성경말씀에 너희가 신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알만한 것들은 세상 곳곳에 두었다는 말씀. 로마서 8장인가.

이렇게 해야한다는 생각, 욕망.

외부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습관.

억누를게 아니라 질문해 보는게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장애인 이야기. 읽기 싫고 자꾸 피하고 싶었다.

한꼭지만 읽고도 숨막히고 끔찍하고 비참했다.

 

회사 그만두면서 돈을 많이 주고 시간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자들이 밤에 안쉬고 공부했다. (책내용)

건강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답게 살려면 정신이 건강해질 수 있다면, 몸이 좀 축날 필요가 있나.

의자놀이. 쌍용차.

이제는 그만 읽고 싶은 마음이지만 결국 외면할 수 없는 진실.

 

3때 닭갈비 집에서 알바.

아빠 회사가 망했었는데 (그 땐 몰랐지만 집안에서 알고 보니 어려웠었다.)

아빠가 힘들어지셔서 꼭 알바를 해야한다고 설득하고 들어갔는데.

2일만에 그만둠. 너무 힘들어서.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과 있으면 내가 고3을 망칠것 같다는 생각.

 

[박병선]

초등학교 저학년. 콩쥐팥쥐 권선징악.

계몽사가 각색한 버전.

콩쥐가 쫓기다 못해 절벽에서 하늘에서 데려가는 이야기.

콩쥐처럼 살면 안되겠구나. 핍박받다가 죽겠구나.

어린아이들의 정서가 아닐까. 굉장히 비겁한 존재. 자기밖에 생각할 수 없는.

소외되고 고립된 존재를 확장된 존재로 만들어주는게 이 사회에 구성원이 되는 성인식이라 하는 것 같은데.

개인을 사회에 구성원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과정을 누락시키고 있는 것 같다.

양양군. 케이블카 반대하러 갔었는데.

찬성하는 사람이 버스 33. 1200명 왔다는. 해병전우회부터 젊은 사람들까지.

오색케이블 개발 이익. 경상도는 많이 먹었으니 우리도 좀 얻어먹자는 식의 논리, 떡고물 좀 먹자.

폭넓은 사고가 안먹히는. 다른 동네 사람들이 왜 간섭하냐는 식.

 

[서형원]

제로썸 심리. 결국 저놈이 가져가느냐 내가 가져가느냐. 뺏느냐 뺏기느냐의 문제.

그게 매달리는게 너무 중요하고 절박하다 생각하는 것. 남들이 해야 하는 것에는 해야만 하는.

곧 죽어도 오늘 먹고 떨어져야하는 것. 다음 세대니 뭐니.

 

[박정원]

나이브 한거 아닌가.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자꾸 알아야 한다.

토지를 읽다보니까. ‘임이네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 삶의 의지 일관되게 보여준다.

이기적은 혹은 이타적인 적절한 조화라고 해야하나.

나라는 것이 이타적인 것으로 인해 무시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성숙하기 위해서 이런 걸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걸 하면서 함께 사는 행위가 가능하지 않을까.

 

[장예정]

해를 품은 달. 원작.

김수현의 여동생 공주.

민화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사랑스러워 보일 수 있지?

이타적으로 살아야한다는 강박관념.

자신에게 가장 충실했던건 공주였다.

나에게 충실하라고 가르친 사람은 없었다.

'착하려고 사는게 아니라 행복하려고 사는거야'

저렇게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서형원]

그런 욕망을 가지고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나.

그것이 과제인 것 같다.

 

[박정원]

배치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

 

[서형원]

상당히 이타적이어야 한다고 배우고 자란사람.

스스로에 대한 억압이 심하다.

이기적인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시선 속에 질투. 공동체가 낙인 찍고 방출하길 바라는 마음.

양양에 할아버지들. 두근두근 쫓아내는 사람들. 미래 창조과학부 아니면 안되는 사람.

우리 같은 사람들을 낙인 찍고 잘난척한다고 추방하길 원하고 질투한다. 근본적인 정서.

착한사람들이 전부인 곳에서 한사람이 그 상황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면 그 사람이 다 가져가게 되어있다.

공동체는 그 사람을 추방하길 원한다. 천사 같은 사람들이 소수로 인해 악마가 되어가는 이야기 많다.

핵심은.

공동체를 위해서 이타적으로 선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지.

하나의 이물질만 생겨도 얼마나 얄팍해지는지. 욕망을 드러내지 않은 착한 공동체.

 

[박병선]

자신이 그런지 잘 모른다. 이권에 따라 움직이는게 세상 원리라는 자연스러운 것.

세상의 이치가 그런거다. 사람들의 그 이치가 낮은 차원이다라는 것.

미워하기 보다는 도와줘야 한다 알도록.

연민하는 마음이 모두에게 든다.

 

[서형원]

싸우는 방식으로 애정해야 한다.

지지고 볶아야 한다.

 

[홍지숙]

덮어주고 감싸주고만 살 순 없지 않은가.

 

[장예정] / 감상 발표

학생이라 공감되는 부분.

47. 오늘날 대학은 무엇인가 3가지.

꼭 대학을 가야하나라는 물음. 후회하는 것은 아니나 3학년인데도 잘 모르겠다.

저렇게 힘들게 등록금을 벌면서 학교를 다니며 얻게 되는 것이 뭘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아버지가 얘기하셨다.

학교에 가보니 조선시대에 대해 배우는데 새로운걸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다른 분야도 똑같겠구나.

그렇게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박병선]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덴마크 성인 자유학교. 학교가 싸지 않다. 기숙사. 수료증도 없다. 대학을 왜 다니나.

진짜 공부하기 위해서. 이직을 할 때마다 공부를 장려.

 

[서형원]

두려움 때문. 대학안나오면 뭘 하나. 취업도 안되고.

케이블 카를 놓는다는 것도 결국엔 다 두려움이다. 이 라인에서 떨어지면 나락이다라는 것.

그 줄에 서있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 떨어지면 절벽이 된 세상.

실제로 죽는다는 것을 봤기 때문에. 두려움의 실체를 보아서.

어디에도 고유성이라는 것은 없는 것.

 

[박정원]

남산강학원. 대학에서 학문이 죽었다. 인문학은 바닥이다.

대학을 안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 않나.

 

[박병선]

출산율 1% 아래로 들어서고. 애도 안낳고. 대학산업은 곧 정리될.

치킨게임을 계속해서 누군가 폭탄 맞겠지 하는.

 

[서형원]

탈출의 개연성과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

별 대안이 없어서 가긴 가지만.

탈출을 어떻게 조직할까.

코뮌으로 하면 그것이 의미가 있는 건가.

상업적으로 대체되버릴 수도 있고.

그냥 탈출하는 것만으로는 이 책을 읽은 의미가 약하고.

그 탈출이 의미가 있으려면 어떠해야 하는가.

 

[홍지숙]

먼저 그 길을 가는 사람 한사람을 만나는 것.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

 

[박정원]

탈출한다고 해서 또 뭐 대단한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은 일상에서 드러나는 것.

 

[홍지숙]

그래도 혁명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서형원]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들에 대해 모델 삼지 말자.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 모델이 될만한 사람이 있는지.

노동운동에 당연히 기반을 둬야하는데.

노동에 관련 없는 지식인, 지도자가 가득한 사회가 옳은가.

정말 삶에 모델이 있는가.

누구나 선택할만한 개연성이 있는.

 

[박병선]

결사적으로 전환해서 투사적인 형태가 아니라.

저렇게 살면 괜찮다는 모델?

 

[서형원]

자신의 출신이나 자신을 만들어온 무엇에 기생하는 것이 있다.

본인은 그것들보다 가치가 높다고 생각.

권력을 다투는 자리에서 그런 사람이 있나.

 

[홍지숙]

밀양 대책위 청년 3.

1. 거기서 농사짓고 살꺼다.

1. 20. 밀양시내에서 마을 원룸으로

1. 환경대학원 환경 공부해서 밀양으로 돌아가겠다.

 

밀양이 왜좋냐. 할매들이 좋고. 대책위 사람들이 좋고.

송전탑 영향아래 없는 사람들로 생성된 관계들이 좋다.

 

[서형원]

수수도 비슷하지 않나.

원래 그 마을 사람이 아니지만 운동하면서 사는.

전업활동가 좀 다른면이 있다.

 

[박병선]

이계삼씨가 한 말에 마음이 혹한건.

환경단체들이 현장에 뿌리내리는 걸 너무 안하더라.

이를테면 활동 전문가들 지킴이들.

투쟁의 형식이 삶의 형식이 되는 것이 확연해지나.

전문활동가 보도자료 내는 것과 가서 같이 사는 것.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살 장소를 선택하는 일이 되겠네 라는 생각이 든다.

 

[서형원]

전문활동가 비평을 쓰는 사람들.

노동자였는데 현장에서 변화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

선비 같은 사람. 의병장처럼. 인품이나 지식이 훌륭해서 리더가 된 사람들. 지사들.

지킴이. 새로운 분류.

지사들에 지목하는 것은 퇴보하는 방법이 아닌가.

지사는 욕망을 안드러낸다. 적어도 끝까지 그런척하며 살 수 있는.

 

[박정원]

욕망을 드러내고 안드러내고 보다.

기본적으로 명예욕이 있는 것 아닌가.

아무튼 내가 일체화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도닦는 일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서형원]

지사. 플라톤의 철인 정치가 말하는 철인이 아닌가.

 

[박병선]

내가 진짜 바라는건 뭘까. 계속 고민하는.

자유롭든 자유롭지 못하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박정원]

억압이라는 것.

부자유스러운 것.

 

[홍지숙]

성경에 가진 것을 모두 팔아 밭을 산다.

밭에 금화가 있다는 것을 아니까.

제자가 보물을 갖고 싶으니까 억압하고 도닦는게 아니라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타인을 병들게 하지는 않을 것인데.

도닦으며 살고 싶진 않다.

 

[장예정] / (발표 이어서)

대학 외의 이야기.

탈 시설 운동을 어떻게 읽었는지 다른 분들 이야기 궁금.

장애인 인권영화제 스텝 했을 때.

시설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내용의 영화.

과연 이 시설을 벗어났을 때 살 수 있을까. 행복할까.

장애인이 많기 때문에 실제 장애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다 다르지 않을까.

 

[서형원]

장애인 운동은 철저하게 당사자 운동으로.

교도소는 그래도 보이는 곳.

사각지대에 있는 곳이 지옥이 어딘가 있다.

 

[박정원]

스스로 표현하게 해서 스스로 깨닫고 욕구를 표출하도록.

탈시설을 자기 의지로 하는 사람이 그래서 나오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욕구대로 살려고 하는 의지.

결국 인간에 대한 태도인거죠.

만인이 다 공부해야한다로 귀결되는 것 같다.

 

[박병선]

당연히 탈시설해야한다고 생각. 책 읽고 더 그렇게 생각.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는 것.

장애인들을 부담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외부적인 목적으로 해야 하는 것 말고.

탈시설 그렇게 되면 질문을 더 세게 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안에 있던 사람이 밖으로.

안에 있어도 대책이 없으니 일단 나와서.

 

[서형원]

대책이 있든 없든 나와야. 생존에 대한 것.

지금의 내 삶의 행태는 계속 싸움의 행태일 수 밖에 없을지라도. 그렇게 사는 것.

소설이든 르포든 그 사람들의 삶이 불쌍하게 비추도록 한다면 잘못됐다 생각한다.

아이들 불쌍하게 비춰서 기부 받는 모습에 질린 (ㅎㅈ 선생님 딸.)

동정 연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친구가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 굉장히 잘못된 태도.

 

어떤 조건에 있던지 간에 시설이나 노예제도에 있지 않는한 삶의 해학을 느끼며 산다.

가난한 뒷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나름 행복. 살아겠다는 대단한 의지라기보다 살아가게 되는 그런게 있는데.

타자로서 너무 그런 삶을 불쌍하게 전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닌가.

친구가 되지 못했으면서 그 사람 이야기를 전하는것.

중졸 고기집 알바하는 사람들(홍지숙 고3 이야기)과 친구가 되는게 행복해야 한다. 실제로 즐겁다.

삶의 다양한 용기와 의지를 느낀다. 나도 그렇게 될까봐의 걱정보단.

 

[박정원]

주제넘게 연민하는 것.

인간의 존엄성. 한사람 한사람에게 우주가 들어있다.

그 사람 자체로 완전한건데.

존엄성을 생각하고 지켜주는 태도 예의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홍지숙]

아이가 장애인이 아닌데 어눌한 아이를 둔 엄마.

자기 딸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냥 생각났다.

 

[서형원]

예전 동네에선 다 드러났는데.

정상과 비정상을 더 나누고.

산업일군이 아닌 사람을 숨기는.

위생사회랑도 비슷한데.

 

[장예정]

장애인을 대하던 조선시대.

렛미인. 못생기면 장애인이 되는.

못생겼다고 때리는 아빠. 그 아이를 성형시키는.

사회 전체가 병들어 버린 것 같다.

 

[박병선]

맹인들이 안마사 하는게 정책이었던 조선시대.

사람으로 같이 살아야하니까.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맹인 친구학교를 만들었다. 1900년대 후반을 거치며 없어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을 미적 기준이건 기준을 하나로 제시하는 것.

그 하나에 맞추도록 너도나도 강요하는.

매체의 발달이 좋은 것인가.

이미지가 모든 것을 다 가져간다.

 

[홍지숙]

우리 안에서 해당되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 나누고 있는데.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의 기본적으로 호감형.

하나라도 해당 되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으면 굉장히 부담되지 않을까.

 

[박병선]

괜찮은 사람들?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이런 얘길 나누기 어려워도 그래도 나눠야 하지 않나.

 

[서형원]

인문학. 상대적으로 덜 배운 사람들에게

우리가 있는 자리에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계속 생각하고 조심해야하는 부분이 아닌가.

자연스러운 것보다 의식해서 노력해야하는 부분이라 여겨지니

기능적인 모임이 아니라 삶에 변화를 주고 싶은 단체나 모임들

삶의 다양성이 반영되고 있는가 예민하고 있는가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

우리 동네사람들이 잘해왔다는 생각은 든다.

비닐하우스에 살던 주민들이 이웃이 되어가는 과정.

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그 반대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시설을 깬다는 것, 사회의 계층을 깨는 작업들을 계속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처음부터 다양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건 어렵지만 그 점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박병선]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

어제 탈핵캠페인.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이런거 다 필요 없는 일이야 던지던.

이런거 하는게 뭐 하러 가는게 아니구나 그냥 삶이구나.

삶에서 이것이 최선인 것이구나.

캠페인을 할 수 있는 생활이니까.

세월호에 대한 행사에 그냥 가는 것. 최소의 형식이겠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서형원]

그런데 그게 옳다!라고 하면 뭔가 달라진다.

 

[서형원] / 감상 발표.

http://ecologists.tistory.com/12 (길어서 링크로)

 

[홍지숙]

이계삼이라는 사람이 모델이 되도록 이계삼을 만든 사람들이 존재.

 

[서형원]

누군가를 따라가는 일이 가장 쉬운 일.

스스로 하려고 하는게 너무 힘든 일. 정치. 경제.

참여라는게 억압적인 일이라 느끼는.

유명한 정치인, 이계삼에게 의탁하는게 자연스러운 일.

시민운동도 제가 대신 해드리겠습니다가 판을 치고 있다.

당장에 좋은 일이 일어날지는 몰라도 사회는 안바뀐다.

 

[박병선]

김연아 박지성이 싫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아이들 티비에서 항상 나온다.

 

[서형원]

꿈을 주입하려는 것. 조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이계삼이 결론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대안을 말하는 책에서 대안이 못되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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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모임은 2015920. 사람인 까닭에(류은숙 저)를 읽고 나눕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몇가지 시선모임은 계속됩니다. 5번째 시간에 뵙겠습니다

소감문이라고 썼지만 짧은 단상들입니다. (조금 고쳐서 다시 올렸습니다.)


150830살아가겠다_고병권_소감문v2.hwp

150830살아가겠다_고병권_소감문v2.pdf



소감문 : 살아가겠다_고병권

과천녹색당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공부모임 _ 깃털 | 2015.8.30

 

철학하는 왕을 철학하는 데모스로.

철학하는 데모스, 이성을 사용하는 대중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희망일 거라고 자주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결국 철학하는 데모스가 어떻게 탄생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사람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가진 이가 곧 민주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아직 그렇다고 주장할 정도의 생각은 아니다. 사람을 깊이 신뢰하지 못하면서 민주주의자인 양 하는 이는 시대를 잘 타고난 권력 추구자에 불과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45.

 

폭력을 행사하기 전에도 시설은 잔인하다. 인간의 삶을 날 생명으로 떼어내어 권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시켰다는 점. 한 삶이 날 생명으로 분리된 채 관리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시설의 장애인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을 개체로 발가벗기는 이 사회에 순응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조화로움을 체험하는 삶, (경제적, 정치적 힘을 가지는) 공동체, 세대를 잇는 삶을 허용하지 않고, 개체로서 권력 앞에 웅크리도록 강제된 것이 현대의 삶이다. 우리는 날 생명이며, 잔인하게 벌거벗겨진 무기력한 생명체다. 이 조건 위에서 지배가 작동한다. (개체의 생명과 권리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태도에 대해 돌이켜 생각할 필요가 있다.) 71.

 

의지가 꺾일 때 바보가 생겨난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지를 꺾어 놓는다79.

 

시설사회, 시설병을 앓는 사회, 생명권력

어떤 바보들은 인간의 문제가 심각한데 무슨 동물복지냐고 말한다. 모두 우리가 만든 지옥들이며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장애인 시설, 정신질환 관련 시설(최근까지도), 바닷가와 배 위에 있다는 노예 노동 등등 사람으로 채워진 지옥들과, 동물로 채워진 축산 공장은 다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지옥 위에 집을 짓고 산다는 바로 그 점에 있다. 80.

 

인권 담론은, 권리 단위를 고립된 생명으로서 재생산하는 측면이 있다.

인권은, 개인을 억압한다고 전제된 공동체와 폭력을 독점한 국가로부터 개인을 지켜내는 매우 소중하고 타협 불가능한 가치다. 더 큰 조화로부터 뿌리 뽑혀 무기력한 개체로 내던져진 삶의 존재 조건 자체에 대해서는 어떨까? 자본주의는 개인을 신분적으로 불평등한 과거의 생산관계에서 떼어내어 인권의 진보와 동시에 새로운 지배-피지배 관계 구축에 성공했다. 81.

 

정상적인 삶은 없다. 비정상의 삶을 연민하는 데서 멈추지 마라. 81-82.

 

탈출 구축 기성의 삶을 공격하고 변형시키는 투쟁

논리로는 늘 옳다 여기면서도 한 번도 실감나지 않는 이야기. 왜일까? 새로운 코뮌을 구축하는 것 자체로 심원하고 의미 있고 즐거운 프로젝트. 그래서 비정상 속에 하나의 정상을 만드는 데 그치고 다음으로 잘 나아가지 않는다는 느낌. (논리적/현실적) 단계론에는 늘 함정이 있다. 처음부터 정치여야 하지 않을까. 너무 깔끔한 논리는 더 생각할 의무를 적당한 데서 멈출 핑계가 되기도 한다. 82-82.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 죽는다. (들뢰즈) 자신일 수도 있었을 많은 것들을 실현시키지 않은 채 죽어간다.

거꾸로다. 기계 부품이나 노예일 때, 타인이 나를 규정할 때 내가 누구인지 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테론 그레이조이는 램지 볼튼의 장난감이 되고서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되었다.) ‘나는 누구입니까?’ ‘너는 장애인이다.’ 사실은 누구인지가 아니라 무엇인지겠지만. 저자의 말대로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라면 그 삶은 멈추지 않으므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고, 심지어 누구인지 알려하지도 않는다. 나는 삶을 누릴 뿐이며, 굳이 말하자면 내가 누구인지는 내 삶이라는 책을 통해 사후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으나, 역시 나의/주체의 삶은 말과 지식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은,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말 자체가, 조작된 욕망일 가능성이 크다. 개체에게 무한이 어디 있냐?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96.

 

현장이란 시간공간이 결합되어 있는 흥미로운 단어이다. 무엇보다 사건시공간이다.

현장에 있다는 말은 어떨 때 쓸 수 있을까? 현장이라는 말은 자부심과 두근거림을 동반한다. 거기 긴장이 산다. 아마도 현장은 갈림길이며, 의지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시공간이기 때문 아닐까. 현실을, 삶을, 이편으로도 저편으로도 이끌 수 있는 그 갈림길에 발 딛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삶 아닐까. 대체로 현실은 무기력하고 정해진 듯하지만, 어떤 시공간의 어떤 삶은 변화의 가능성에 발 딛고 있다는 것. (거꾸로 말해 현장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정해진 대로 산다는 것, 혹은 내 의지로 선택할 변화가 없는 삶을 산다는 것.) 104.

 

죽음의 설교자

내 삶의 가치를 절하하는 사람. 내 의지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사람. 내게 기대하는 게 없는 사람. 나를 장애인, 혹은 정해진 어떤 것이라 부르며 규정짓는 사람. 수많은 주인들, 스톡홀름 증후군은 대체 얼마나 보편적인 질병인가? 117.

 

우리 안에 맹수가 살고 있다.” 학생들이 자기 안에 산다고 확신하는 그 맹수는 아마 그동안 입은 상처의 표시겠지만 앞으로 그들의 엄청난 힘이 될 수도 있겠다.

내 안에도 맹수의 의지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의지의 억압에 대한 순응에서 탈출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또 한 편, 이제 이 사회는 상처 받은 맹수를 풀어놓으라고 이 멋진 맹수 전용 상품을 사라고 부추겨지기도 한다. 사회가 맹수를 길들이기 전에 내가 맹수의 주인이 되는 것이 그래서 문제다. 117.

 

소위 대안이라는 것 자체가 좌우 엘리트들에 의해 구조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현실적 대안이라는 말의 득세와 함께 그들의 권력이 공고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현실적 대안이 없음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 ... , 혹은 하나의 대안을 다른 대안으로 계속 바꿔치기 하며 대안 없음에 대한 자각을 늦추는 것.

적어도, 너희에게는 대안이 없다고, 분명히 말해야. 그러나 어차피 대안은 없구나, 라는 안도와 안주도 안 된다. 자칫, 생각하기를 멈추게 된다. 131.

 

난 석사학위를 땄고, 그 대신 5만 불의 학자금 대출을 떠안았다. 보험도 안 되는 2개의 파트타임을 뛰고 있고, 의료보험도 없으며, 집도 없고, 아이 둘을 키워야 한다. 젠장, 완전히 엿같다!” “해고는 살인이다!” ‘이 체제의 존속은 살인이다.’ ‘삶의 불가능성에 대한 고발.

우리는 매일 듣는다. 삶이 체제에 하는 말, 삶이 불가능하므로 체제도 불가능하다. 136, 146-147.

 

민주주의의 직접성과 직접민주주의

민회를 통해 민주주의의 직접성을 체험(해방)하면서, 그런 해방에 턱없이 부족한 직접민주주의와 같은 제도적 변화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도전해야 한다. 해방의 체험에 안주하지도, 그 순간에 중독되거나 집착하지도 마라. 비루한 현실에서도 그 현실의 구차한 개선에서도 빠져나가지 마라. 137-138.

 

목적과 수단은 분리되지 않는다. 당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가 당신의 투쟁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운동은, 투쟁은, 예시적이다.

나도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그 예시적 삶이 충분히 유혹적이어서, 내 삶과 우리의 투쟁을 이어줄 거란 믿음이 사실 잘 들지 않는다. 훌륭하게 살면 훌륭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위로가 되나? 삶과 세상이 이어지는 지점에 대해, 더 집요하게 생각하기 힘들어서 택하는, 논리의 위안 같은 건 아닐까? 훌륭한 삶은, 세상의 변화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그 자체로 좋고 그 이상 생각하는 건 무리라고, 이렇게 솔직하게 (도가적으로?) 말하는 게 옳을까? 139.

 

이제는 운동도 무한정의 시간에 직면하고 있다. 단기냐 장기냐가 아니라, 시간을 한정하지 않는 어떤 운동의 형식, 시간의 한정성을 넘어선 투쟁의 형식 우리는 시간적 무한정성을 다루는 운동의 형식을 발명해야 한다.

최소한의 올바름. 그냥 절망하지는 말라는 거지. 144, 147.

 

지킴이들의 삶의 방식. 현장의 삶. 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정당한 방식으로 선택할 만하다. 지킴이와 같은 삶이, 특이한 몇몇 사람의 삶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삶의 한 형태가 될 순 없을까? 가능할 것도 같은데. 149.

 

당시의 지배적 감성, 노동자는 낮에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밤에 자지 않고 읽고, 쓰고, 토론하는 노동자들이 생겨났을 때가 해방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넘어서는 그 깨침의 과정을 나는 공부라고 말하고 싶다.

어떻게든 시간을 짜내어 공부를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노예인 줄 모르는 것, 오늘 노동의 스트레스를 푸는 오락이나 내일 노동을 위한 휴식이 아닌, 쓸 데 없는 일들에 매달리는 사람을 경멸하는 것, 이야말로 정말 가련한 일. p. 188.

 

해고는 살인

해고가 살인이라면 고용은 뭐냐? A에서 벗어나는 게 곧 죽음이라면 A는 살인의 공범이다. 어째서 임금노동자 되기가 인간 삶의 보편적 조건이 되었는가? 비극은 해고에 있는 게 아니라 임금노동자로 고용되어야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데 있다. 203.

 

청년유니온. 존재 자체가 연대

마음으로 연대하고 가끔씩 가서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위치(position)를 연대의 일부로 이동해야 한다. 연민이 아닌(연민도 중요하다.) 연대라면. 218-219.

 

이계삼

민주주의의 직접성을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노동자, 농민,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쓰기 시작했다가, 다시 헌신하는 소수의 삶의 이야기로 후퇴했다. 이 책은 여전히 현장에 있지 않다. 이름 불리는 사람의 삶을 동경하지 마라. 221-233

 

그동안 현장을 장악했던 건 기독교 담론이에요. 헌신, 봉사, 이런 담론.

해방의 기독교와, 헌신과 봉사의 기독교. 원래 기독교는 무엇이었냐, 따위의 질문은 의미 없다. 해방의 종교/사상이 필요할 뿐. 238

고병권, <살아가겠다>를 읽고

함께 읽기/인권 2015. 8. 23. 16:1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상을 바라보는 몇가지 시선 / 고병권『살아가겠다』/ 2015.8.30 / 박정원

 

잘 산다는 것

 

사람이 잘 산다는 건 뭔가? 내 경우엔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어떻게? 내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찾아서 진정한 나를 표현하는 일, 나답게 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병권의 ‘지식이 아니라 욕망이 생기게 하라’(p98)는 말은 나의 본성을 찾아 실현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니체는 “그대들이 의욕하는 바를 언제든 행하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의욕할 수 있는 자가 되라!”(차라투스트라 p304)고 했다. 욕망하고 욕망을 실현하면서 만나게 되는 타인과의 욕망의 충돌 속에서 적절함을 찾아내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하여튼 살아가는 일은 남과 얽히는 일이고 타인이 없이 행복도 없다.

 

타인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나도 너도 억압되지 않고 함께 행복과 평화가 커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나, 그리고 세계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저자는 ‘감히 알려 하고 감히 말하려 하는 용기’가 참된 지식에 이르는 길(p60)이라고 말하고 있고, 각자는 자기의 앎이 이르는 수준에서 판단하고 행위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잘 살기 위해서 앎을 확장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잊지 않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계속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슈를 정하고 그것을 지속하는 방식에서 내가 드러난다. 철학한다는 것은 ‘잘 사는 것’에 대한 추구고, ‘행함으로 드러나는 지혜’라는 저자의 생각에 매우 공감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9장.hwp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9자급과 정치

 

타로 밭의 정치인가 남성의 집 정치인가?

벨라우 섬 이야기.

여성이 중요한 역할. 밭에서 양식 생산, 남성들의 결정을 여성들에게 정당화 시켜야하고 결정은 뒤집힐 수 있음.

여성들은 특별한 회의에서 의논하지 않고 타로밭에서.

 

타로밭 : 어떤 사안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해주는 공간. 결속력, 친근감, 주인의식, 그 자체. .

남성들이 생각하는 정치는 오로지 돈에 대한 생각뿐.


자급의 정치화?

자급의 관점을 정치적인 차원으로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

 

<슈페르의 자급의 정치화에 대한 5가지 비판>

1. 자급 관점 매력이지 않다. 작고, 많은 일을 요구, 지배체제에 대항하는데 무력.

2. ‘자급 틈새는 사회적 시스템과 생태계 보전을 위해 국가가 치러야 하는 비용을 낮추는데 일조.

3. 자급은 정의되지 않는다. 누가 그것을 정의하는 권력을 갖는가?

4. 권력과 조직문제에 대해 예민한 차이를 낭만화하는 경향이 있다.

5. 과거의 역사는 폭력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좋은 삶에 대한 개념을 확신시켜도 그 기반이 사라지지 않는다.

 

자급 관점의 필요성과 매력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확신이란 타당성과 당파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가치중립적인 이성적 담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

 

<슈페르의 비판에 대한 대답>

1.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라고 생각했던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정치로 인식을 못한다. ‘자유로운 남성의 직업.

이 구조가 계속되는 한, 가정이나 타로밭보다 남성 의회가 더 매력적일 것이다.

문제는 구조 자체. 일상의 삶과 정치의 분리. 정치와 일상생활의 위계화이다.

 

2. 편협한 흑백논리식 사고.

자급틈새 영역은 사유지를 없애는 것을 배우는 교육장.

종속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한, 우리의 목적은 자유나 자율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요구할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으로만 제한 될 것이다.

 

3. 4. 5. 그 말하는 권력. 노동조합, 정당, 교회 등 크고 조직화된 권력. 대중의 낡은 사고 안에서의 권력.

여성에 대한 폭력이 경제체제의 본질적인 부분. 폭력과 대항폭력이라는 모델은 남성 정체성이 만들어 왔다.

젊은이들의 람보화 큰 문제. 탈군사화를 요구하는 남성운동이 필요하다.

자급정치란, 남성이 자급의 일을 여성과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이 아니라 남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타로밭 정치의 다른 측면>

- 정치는 일상생활, 자급과 분리되지 않는다.

- 정치는 위임, 선거, 정당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 정치는 일상의 작은 문제와 관련된 것 만이 아니다. 전체의 시스템과 관련된다.

-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는 모두에게 분명히 드러난다.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것을 정의하는 권력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

- 여성은 합의에 의해 일한다. (형식에 치중하지 않는다)

- 타로밭의 의견을 특별한 미디어와 정보 채널로 퍼뜨릴 필요가 없다. 여러 관계의 채널로 널리 퍼진다.

- 지역 공동체의 요구인 도덕 경제’, 환경과 미래 세대의 보호를 강조하는 정치는 장기적 관점을 가져야만 한다.

(단기간의 이윤이나 권력 잡단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 타로 밭 정치에서의 권력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무력하게 희망도 없이, 지배 체제가 앞에 열어놓은 블랙홀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다른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싶다. 산업사회는 매우 역사가 짧고 주변적이며 일반화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고 싶다. 우리는 이 터널에서 빠져나와 무지, 편협함 그리고 도시적 오만에서 오는 사고의 장막을 걷어내려 한다.

 

저항 없이는 자급도 없다! 자급 없이는 저항도 없다!

[마라구아의 여성들]

케냐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남편의 땅에서 일하고 그 생산물을 통제하는 권리를 지님.

수출을 위한 생산이 도입되면서 이익은 남편들에게만, 일하기를 거부.

정부, IMF(SAP 프로그램), 여성정책도 이를 막지 못함.

 

마라구아 여성들은 몰래 콩을 심어서 자신과 아이들을 먹였다.

커피나무 해끼치는 것 불법 임에도 땔감으로 썼다.

집에서 재배한 과일과 야채를 가지고 스스로 지역 시장을 만들었다.

 

여성들의 투쟁 세단계 : 여성착취(남편에 의한 착취), 국가에 의한 착취, 국제 자본에 의한 착취에 대항.

여성들은 투쟁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자급 기반을 만들었기 때문에, 투쟁에서 승리했다.

 

어떻게 거기까지 이르렀는가?’

1. 여성들은 지역 시장으로 자급 사회를 만들었다.

2. 여성을 착취하는 모든 권력(남편, 국가, 초국적 자본은 서로 긴밀히 얽혀있음)들과 투쟁했다.

3. 가정주부화된 개인으로 서려고 하지 않고, 전통적이고 집단적인 여성의 조직을 고수했다.

4. 결과적으로 남성에게 남은 선택. (여성지원 권위 인정 or 정부, 자본과 폭력적으로 여성을 공격할 것인지)

 

<인도 농장의 사티야그라하 종자 저항운동>

인도의 카길사(인도의 모든 종자에 대한 소유권을 변용, 소유) 같은 다국적 종자 기업들이 종자 생산을 독점하려 함.

남인도 농장 기업 카르나타카 라지야 이료타 상하는 농장의 옥수수 종자와 이에 대한 지식, 이들의 식량 주권의 착취에 저항해서 싸움. (카길 사의 지역 사무소를 습격하여 종자 저항운동 시작)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 사유화 정책을 강요하는 정부, 초국적 기업,GATT/WTO와 같은 모든 행위자들에 대항하는 직접 행동이 되었다.

 

<다른 경제 개념이 다른 정치 개념을 이끈다>

- 자급을 지향하는 지역운동이 결국은 지배적인 글로벌 자유 시장 정치와의 갈등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사실 분명.

(정치에 대한 다른 개념도 발전시킬 것이다.)

- ‘민중의 아젠다는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지구화대신에 지역화를 강조한다.

- 지역공동체의 다원적인 직접민주주의, 신분과 성별에 기반한 식민 지배 구조를 폐지해야 한다.

- 피라미드식 빙하구조 사라지고, 삶은 그 중심에 개인이 있는 대양의 동심원처럼 조직될 것.

(민족국가의 힘이 공동체들 안에 있는 이 개인들을 보호할 것이다)

- 우리를 강요된 소비라로 만드는 상황에서, 지역 경제와 직접 민주주의야말로 식량 주권과 같은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자유권을 회복하는 길이다.

 

자급정치는 특정 장소와 특정 공동체 안에 있는 개인들의, 구체적인 정치적·경제적 임파워먼트를 나타낸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서로 평등하게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국제주의는 착취에 기반하지 않고 북반부와 남반구의 살림 공동체가 서로 자산의 자급 정치를 결정할 때에만 가능하다. 문화, 사회, 민족의 다양성을 위협하지 않는 힘의 근원으로서 진정한 풍요로움이 만들어진다.


지금 여기서 자급 정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급 정치는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과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단계보다 첫 번째 단계.

 

- 작은 소규모 농업을 보호하는 실천해야 한다.

- 유전자 조작, 모든 생활양식에 대한 특허, 지속적인 전 지구적 식량 사유화 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거대 초국적 식량기업의 상품을 안쓰는 불매운동(장바구니 정치)

- 일과 노동 이슈를 임금 노동 체계를 너머서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정치가, 자본가, 노동조합에 맡기지 않아야한다. 일을 다르게 이해하는 개념이 필요하다.

- 임금 노동의 지배에 종말을 고하는 것을 의미하는 임금 노동 체계의 헤게모니를 해체하는 것이 중요하다.

- 공유지의 사유화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그 지역에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말아야 한다.

젊은 남성들이 보수를 받지 않는 자급 노동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람보화를 멈춰야 한다.)

- 농민, 여성, 토착민 운동 등과 같은 민중운동과 긴밀한 국제 네트워크를 유지해야 한다.

그들과 연결, 대중화, 서로 배우며 시민 아젠다 조직해야 한다.

- 도시를 경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도 함께 시작해야 한다.

 

[쾰른 최초의 여성 감자밭]

검은 딸기 덤불로 덮인 황무지를 감자밭으로 경작.

이웃들의 호응, 종자 구입 도움, 아이들 스스로 자신들의 화단을 돌봄.

 

[나야크리쉬 안돌론 : 행복한 삶과 식량 보호를 위한 방글라데시 농민운동]

새로운 자급 경제와 정치가 무엇이며 그것이 지역적인 차원과 글로벌한 차원, 물질적인 영역과 상징적인 영역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수확 품종 종자의 단일 경작으로 인해 농업의 유전적 기반이 좁아졌다. 글로벌 시장의 확대로 여성들은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다. 자살률 높아지고 피임약의 덤핑, 신약 테스트의 타깃. 비쉬(살충제, 해로운 화약약품 지칭함)에 반대하여 방글라데시 농민들이 조직되었다. 혼합곡식재배, 윤작, 다른 정교한 기법과 아난다(모든 행복이 식량생산과 함께 시작된다는 뜻)생산방식을 통해 독특한 농업 실천으로 빠르게 확대되었다.

 

나야크리쉬 안돌론의 단순한 원칙.

- 해충제, 화학비료 사용하지 않거나 점점 줄이기

- 토양을 비옥하게 할 수 있는 친숙한 방법 사용하기.

- 다목적 나무 생산을 통합하기

- 농가의 총 산출과 공동체의 실질 수익을 전체적으로 계산하는 일

- 가축, 가금류, 집에서 기르는 새와 동물은 농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성요소로 인식

- 다양한 지역의 생물들은 거의 항상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고 생태적으로도 어울린다

- 종자와 유전자원들은 가구와 공동체 차원에서 보존된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기술을 발전시키려는 나야크리쉬 안돌론은 식량과 식량 생산이 다양한 문화적 시스템의 맥락에서, 그리고 공동체의 풍요로운 문화적 실천들과의 관계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